9/21/2011

‘믿음 테스트’를 잘 통과하셨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걱정하거나 낙심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 시련 때문에 내가 더 잘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믿음 때문에 인생의 해석이 다릅니다. 현실에 따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보고 해석합니다. 고난에 대한 생각과 사고방식이 아예 다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시련은 '믿음의 시험', '우리의 믿음에 대한 시험을 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내가 믿는 믿음, 즉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믿고 영생을 믿느냐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테스트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시험은 낙제시키시 위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통과해서 더 높은 단계로 진급해 올라가기 위한 것입니다. 인생의 단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더 나은 단계로 진급하기 위해 그때마다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여호수아도 믿음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물이 불어난 요단강 법궤를 매고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을 때, 요단당이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담대한 믿음에서 오는 희락입니다. 하나님을 대강 우물쭈물 믿으면 손해입니다. 왜 그럴까요? 적당히 믿었기 때문에 영적인 힘이 없는 탓입니다.

주중에 적당히 살아 영적인 힘이 없는 사람은 주일에 교회에 나와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찬송도 마음껏 부르지 못합니다. 죄의식때문이지요. 일주일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니까 하나님 앞에 가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듭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도망치듯 나가버립니다.

그렇다고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재미있게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교회에 와도 재미가 없고, 세상에 나가도 재미가 없으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 삶이 아니라 나가도 불편하고 들어와도 불편한 것이 예수를 믿으나 대강대강 믿는 사람들입니다. 시련을 만났을 때, 그것이 어떤 시련이든지 간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사람이나 자기의 실력, 돈과 명예, 권력이나 우상을 신뢰해서는 절대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믿고 "나는 부족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 믿습니다"라는 담대한 믿음으로 전진할 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승리의 경험을 한 번, 두 번 하다보면 이제 시련이 오는 것이 점차 두렵지 않게 됩니다. 시련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회하라는 하나님의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시련의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 결과를 통해 삶의 축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이 시험에 반드시 믿음으로 합격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이 시험에 반드시 믿음으로 합격해야 합니다. 시험 자체가 즐거운 것은 물룬 아닙니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하여 한 단계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있어도절망은없다중에서...>

‘기도’하기가 왜 이렇게 힘들지?

우리는 모구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기도가 어려운 것은 그 행위 자체에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진정 어려운 일이며, 참으로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기도를 성가신 짐으로 여깁니다.
신령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짐을 짊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개중에는 매일 조금씩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마저도 기도하는 이유는 단지 주님이 기도를 엄격히 요구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노력으로 변할수록 기도생활에 소홀하기가 더욱 쉬워집니다.
그런 경유 영적 생황을 훼손하는 결과들이 즉시는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기도와 관련에 일어나는 어려움은 대부분 올바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섬세하고 정교한 도구입니다. 그것을 올라보 사용하는 것은 위대한 기술, 곧 거욱한 기술입니다.

하지만 기도의 기술에 정통(精通)하려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 곧 '실천'과 '인내'입니다.
실천이 없는 신자는 참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실천은 인내가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의 영, 곧 성령님은 우리에게 영의 기도를 가르치십시다.
성령님은 말씀과 매일의 기도 훈련을 통해 기도하는 습관과 기도행활에 관한 거룩한 통찰력을 허락하시고, 참 기도의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법칙을 가르펴주십니다.

기도생활에소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에 어기고 기도의 본질에 어긋난 기도를 드린다면, 우리의 기도생활은 아무 결실도 보지 못한 채 성가신 의무로 변질되고 맙니다.

하지만 기도를 지배하는 법칙, 곧 하나님이 기도의 특권을 베푸실 때 친히 정하였던 법칙을 찾아 따른다면 견실하고 흠 없는 기도생활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나아가 더 많은 기도를 드리도록 독려해줄 열매도 많이 맺게 될 것입니다.

<영의기도중에서....>

Via Dolorosa (고난의 길) / Sandi Patti

라틴어 Via Dolorosa는 ‘슬픔의 길’이라는 의미로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해 걷던 약 800 m 의 길을 말합니다. 어려서 소프트 볼 선수였고 보칼리스트로 활약한 Sandi Patti가 영화 '나자렛 예수'에서 이 곡을 불러 널리 알려졌지요. 그녀는 1986년부터 활동을 하면서 약 20여 년 동안 39번의 도브상, 5번의 그래미 어워드 수상과 함께 그녀의 앨범 중 3개의 앨범이 플래티넘(100만장) 기록하고 5개의 앨범이 골드(50만장)판매를 기록한 화려한 경력의 CCM 계의 디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합병원' 의 주제가로서 김 태영이 ‘혼자만의 사랑’이란 곡으로 번안해서 불러 많은 사랑과 주목을 받았던 노래입니다.

Via Dolorosa (고난의 길) / Sandi Patti
그 날 예루살렘의 비아 돌로로사 거리에서 군병들이 그 좁은 길을 봉쇄코자 했지만 갈보리에서 사형당할 사람을 보려고 무리들이 몰려들었네 그는 맞아서 피를 흘리고, 그의 등에는 채찍자국이 선명했네. 그의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매 걸음마다 그를 죽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조롱을 당하셨네

고난의 길이라는 비아 돌로로사 거리에 메시야, 그리스도 왕께서 어린 양처럼 오셨네 그러나 그는 당신과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길을 걸으시기로 하셨네 갈보리까지 이어지는 그 비아 돌로로사 거리를 그날 예루살렘의 비아 도로로사 거리 군인들이 그 좁은 골목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십자가에 매달아 사형토록 형을 받은 남자를 볼려고 군중들은 몰려들었지

고통의 길이라고 부르는 비아 도로로사 길에 한 마리의 어린 양 예수, 구세주가 나타난 거야 그는 여러분과 내게 사랑을 베풀려고 그 비아 도로로사 길을 택하셨던 거야.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실 피가 예루살렘의 심장을 통해서 흘러 넘쳤네.

고난의 길이라는 비아 돌로로사 거리에 메시야, 그리스도 왕께서 어린 양처럼 오셨네 그러나 그는 당신과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길을 걸으시기로 하셨네 갈보리까지 이어지는 그 비아 돌로로사 거리를 .

Nobody, Nobody... 아무도 없구나

나는 무실론자들이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똑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을 어릴 때 붙잡아놓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대부분 무신론자로 남게 되고, 설령 믿음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자신들에게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야말로 마음 밭으로 비유하면 '좋은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좋은 땅은 결국 가시덤불이나 돌밭, 아니면 길가가 되어간다. 그러니 이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에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교가 중국을 거쳐 서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를 쓰시겠다는 말씀이셨다. 그때부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학교를 세우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하나님은 참 묘하시다.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우시더니만, 1년만 헌신해보라는 신호를 보내셨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나는 3년간 헌신하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3년을 계획하고 이곳 중국에 왔지만, 나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성령님과 깊은 사랑에 빠졌고, 그와 동시에 내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 살아가기로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

<네인생을주님께걸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