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IHOP의 역사 및 핵심 가치관
A. 1982년 카이로 이집트에서 주님은 마이클 비클에게 “내가 한세대에 기독교(교회)에 대한 이해와 표현을 바꾸리라” 말씀하셨다.
1. 이해란 불신자들이 어떻게 교회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열방의 왕들, 대통령, 지도자들이 교회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그들은 거의 교회를 무료하고, 의미없고, 전혀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땅의 지도자들은 다시 한번 교회가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진진하게 받아드리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5:11-14)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2. 표현이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능력과 산상수훈적 삶의 모습을 함께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종말에 이런 교회의 모습은 일반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마이클 비클은 이사야서 56:7절에 근거한 지역 교회의 모습이 기름 부음을 받은 기도하는 집의 모습일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들은 하루 24시간 주 7일 쉬지 않는 기도로 주님을 예배할 것이다.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걸음이 될 것임이라”(마21:13; 막11;17; 늑19:46)
B. 아히합 기도실 GPR(Global Prayer Room) 벽에 있는 중요한 성경 구절 3가지
1. 누가복음18장7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꼈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2. 에스겔44:15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 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3. 레위기 6:12절 “단 위에 줄은 항상 피워꺼지지 않게 할지니...”
C. 국제기도의 집(I.H.O.P.)의 핵심 가치관
Intercession based on intimacy(친밀감에 기초한 중보기도)
Holiness of heart / Sermon on the Mount(거룩한 마음 / 산상수훈적 삶)
Offering to the poor / Simple life(가난한 자들과 나누는 삶 / 단순한 삶)
Prophetic / Prevailing faith(예언적 / 인내하는 믿음)
Ⅱ. 종말의 징조들
A. 기도와 예배 운동이 일어난다. - 이사야 56:7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또한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바친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내가 기꺼이 받을 것이니,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B. 지상 대명령 –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C. 이스라엘의 회복(1948년)
D. 대추수 – 4000BC-1800AD: 10억, 1800-1900; 20역, 1900-1950; 40억, 2025까지; 80~100억 (현재65억) 계시록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E. 비통(sorrow)의 시작 – 마24:4-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또 너희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소문을 들을 것이다. 너희는 당황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민족이 민족을 거슬러 일어나고 나라가 나라를 거슬러 일어날 것이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은 진통의 시작이다”
Ⅲ.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A.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의 능력을 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기도로 동역이 일어나지 않으면 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축복들이 있다. 야고보서 4: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B.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기도를 기다리신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로 부르짖기를 기다리신다고 말씀하신다(사30:18-19)
C.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비성경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맡기신 역할을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기다린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추정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일을 하시지 않으신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잘못 적용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역사 중에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일들은 기도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신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도 인간의 자유 의지를 하나님께서는 무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D.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사이에서 서 있을 사람을 찾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걷어가시도록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셨다는 말씀이다. 에스겔22: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E. 나라의 위기 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주된 방법은 거룩한 성회로 부르시는 것입니다(요엘 2:12-17) 다른 말로 하면, 역사적인 이 시간에 우리에게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합심 중보기도와 찬양이 있는 예배다.
1. 합심(공동체적,Corporate) – 하나님은 합심기도를 보기를 원하신다. 다 같이 모인다는 것은 겸손의 필요를 의미한다. 찬양과 기도의 다른 스타일, 강도하는 교리의 다른 점들, 우리의 다른 배경들을 생각할 때 지속적으로 같이 모이려 한다면 겸손은 반드시 필요하다.
2. 중보기도(Intercessory) – 하나님은 중보기도 또는 다른 사람들의 축복을 위해 기도의 모습을 찾으신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약속(구원, 치료, 축복, 등등)을 붙잡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다.
3. 찬양(Worship) – “하나님, 사랑해요”라는 고백과 경건한 음악을 합친 것이다. 이것은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같은 진리를 고백하고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역동적인 환경을 만들어 준다. 성령님은 예술적(음악적)이시다. 그래서, 사람의 영도 음악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음악에 감동받고 영향을 받는다.
4. 결론: 이 세가지 요소가 합쳐서 합심 중보기도 찬양을 만든다. 그리고 합심 중보기도 찬양은 하나님의 심판을 축복을 풀어내고, 원수의 파괴적인 역사를 멈추게 한다.
F.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반응: 거룩한 성회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어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15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16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17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요엘2:12-17)
1. 이 구절에서 주님께서는 주님께서는 정확하게 우리가 위기의 때에 어떻게 해야 그분의 자비와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말씀하시고 계신다. 우리는 거룩한 성회로 모여야 한다. 이것은 리더들과 성도들이 같이 모여서 금식과 기도, 죄를 위한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해 간구하는 것이다. 요엘서는 성경에서도 아주 짧고 간단하게 종말의 때에 있어질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극적인 사건들에 기록한 책이다.
2. 이 방법은 하나님께서 위기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위기 전에, 위기 가운데 우리가 제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다. 기도와 회개의 응답으로 하나님은 그분의 은총과 보호를 내려 주신다.
유대의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선포했다 (니느웨는 그 당시 이스라엘의 천적이었던 앗수르의 수도 이였다). 니느웨의 사람들은 온 백성의 거룩한 성회와 회개의 모습으로 반응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고 요나를 통해 예언하신 심판을 내리시지 아니하셨다. 하나님은 도리어 니느웨를 축복하셨다. 요나3: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나하시니라.”
3. 성경에서 이렇게 선명하게 지역적 혹은 민족적 위기 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구절은 없다. 종말때 세계적 드라마가 펼쳐지면서, 주님께서 교회에게 어떤 모습을 원하시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반응하기를 원하신다.
4. 주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지! 위기 때에도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반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흔드실 것이다. 이 결과, 하나님밖에는 해답이 없다는 필사적인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거짓된 소망을 제거해서 우리의 소망이 오직 그분 안에만 있게 하실 것이다.
5.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오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요엘2:12-13)
a.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 그분은 우리의 모든 사랑을 원하신다(마23:37).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한 반응으로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b. 그러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 우리는 죄에서 돌이키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에 반대되는 모든 것에서 돌이키어야 한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것은 회개, 금식과 기도를 포함한다. 우리가 그분께 돌이킬 때 우리는 그분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c.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하는 첫번째 길은 장기적으로 전심으로 합심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 오직 안전한 곳은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순종의 모습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계시록에서 나오는 심판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를 받을 것이다. 마지막 때 제일 큰 압박은 하나님의 그분의 백성들을 향한 열정, 즉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6. 옷을 찢지 말고 너의 마음을 찢어라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라...”(요엘2:13)
a. 문화적으로, 요엘의 시대 사람들은 옷을 찢음으로 자신들의 슬픔과 다급함을 표현했다. 찢는다는 것은 거칠고 강압적은 뜻을 포함한다 – 즉 마음의 절실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b.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마음을 찢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마음의 문제들에 대해서 철저하며 급진적으로 다루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엘의 말씀 중 우리에게 제일 도전이 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어떤 것도 우리의 삶에서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c. 우리는 반드시 죄에서 우리의 마음을 찢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찢기를 원하신다. 요엘이 외친 것을 요약한다면 이런 것이다. “마음을 찢어 열어라! 봐주지 마라!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무엇이 마음이 있다면, 버려라!”
이런 극적인 찢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마5:29). 주님은 극적인 순종의 모습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마음을 찢는 것 같은 각오와 아픔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타협을 그만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5:29-30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d. 우리의 삶의 죄된 속박을 지원하는 체계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고통이 따를 수 있다. 돌파구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영적 싸움을 할 때는 우리의 영혼을 아프게 할 수 있으나 이 길이 참 자유를 찾는 길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어떻게 하셔서 우리의 문제가 사라져 버리거나 우리가 어떤 대가나 값을 치루지 않고서도 (우리의 마음을 찢지 않고서도) 문제가 없어지기를 원한다. 우리는 마음을 찢는 것을 관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금식을 하면서 몇 끼 음식을 못먹거나 기도실에서 조금 힘들어서 우는 것을 잘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찢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강력하고 아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e. 우리가 전심으로 주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평범할 수 없다. 전심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보통 때와 다르지 않다면 이것은 모순일 것이다. 우리는 전심으로 나아가되 부드럽고, 쉽고 순한 방법을 원한다. 우리가 돌파구를 찾으려고 할 때 고통이 수반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러나 그런 방법만이 돌파구를 찾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쉬운 길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찢겨야만 한다. 이것은 현대 교회에게 익숙치 않은 개념이다.
f.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우실 때 찢어지셨다. 그리고 오래 참으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분의 백성들이 회개하기를 거절할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지도록 아프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그 마음을 찢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 스스로 마음을 찢기를 원하시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며 자신의 마음을 찢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거리에서, 떨어져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셨다. 이 사랑 안에 완전히 들어가려면, 우리의 마음이 찢어져야 한다.
G. 하나님의 애정 어린 마음에 대한 확신을 가진 회개: 5가지 계시
(요엘2;13-14)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며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누가 알겠느냐?”
요엘은 지혜로우면서도 가능한 5가지 이유를 들어서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기를 촉구한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셔서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찢고 회개할 용기를 주신다. 우리가 주께 한걸음 나가면, 주께서 열 걸음 우리를 향해 오실 것이다.
1. 첫째, 주님은 은혜로우시다. 주님은 사람들과 다르게 우리를 평가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진토(흙)임을 기억하신다(시편103:14). 그분은 어떤 연약함도 용납지 않는 혹독한 군대 대장이나 성이 난 리더 같지 않다. 하나님은 인간을 잘 이해하시고 연민스럽게 대하신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나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시편103:10
2. 둘째, 주님은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진 후에도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그분의 은혜를 깨닫고, 우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깨어나는 것을 기뻐하신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가7:18)
3. 셋째, 주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신다.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이 말씀을 하셨다. 주님은 그들이 음란의 죄에서 회개할 시간을 주셨다(계2:20-22). 주님은 바로 심판을 하신 것이 아니라 회개할 시간을 주셨다.
4. 넷째, 주님의 인애(kindness)는 크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애를 믿을 때 우리를 방해하는 세력을 계속 대적하고 완전한 회개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의 회개를 주님은 절대 거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화목하기를 원하신다는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마음을 찢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5. 다섯째, 주님은 재앙을 내리시지 않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아무 이유 없이 그 마음을 바꾸시고 그 자신도 이 변화에 놀라신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그분의 공의를 위반함 없어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신다.
H. 요엘 2장 영적 문화를 설립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인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요엘1:2-3)
1. 요엘서에서 첫번째 요구하는 것은 “듣고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때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듣고 귀를 기울이라”는 뜻은 역사를 통해 배우라는 것이다. 또 요엘이 하는 말을 들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요엘서를 깊이 공부하라는 것이다. 미래에 있을 영광과 위기에 대해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라고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요엘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도전한다. 그 뜻은 듣는 귀를 준비시켜주는 영적인 훈련을 포함한다. 우리는 요엘서에 나오는 메시지를 깊이 알아야 한다!
2. 우리가 크리스챤이라고 이렇게 듣는 것이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요엘서를 신중하고 의도적인 통찰력을 구하는 것을 요구한다.
3. 요엘은 전례에 없었던 다가올 심판의 강도에 대해서 강조한다. 요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묻는 것이다 – “이런 것을 전에 본적이 있느냐? 이것이 정상적인 것인가?” 요엘의 메시지의 중요성을 다가오는 것은 전례가 없던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낯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듣기에 힘들것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요엘1:2)
4.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 안에 새로운 계절로 들어가고 있다. 그분의 영광과 심판이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흔들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독특한 시간 안에 있기 때문에 이해의 기준이 없다. 이해하지 못하는 예언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좋은 예는 노아다. 그에게 들려진 예언의 메시지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40일 동안 비가 내릴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때까지 역사상 비가 내리지 아니하였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땅 밑에 있는 물로 땅을 적으셨지 위에서 내리는 비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