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2009

아버지의 얼굴을 뵙는 방법의 두 방면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아버지의 얼굴을 뵙는 방법에 대한 두 방면입니다.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를 뵙는 방법
 요한복음 1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아버지 품속에 계셨던 아들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태를 통해 오심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형상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신 분이 아들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를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누구든지 아버지를 보려거든 아들을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8-10절을 보면 빌립이 말하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라고 할 때에 예수께서는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아들 그리스도를 보내신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은밀하게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은밀하게 아들과 함께 오셔서 아들을 통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 왕국 시대에는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천년 동안 이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으나 아들 안에서 은밀하게 오실 것입니다.

이사야 9 6절을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아들을 주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고 한 아기가 태어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사야 7 14절을 보면 그 아기를 낳은 자는 처녀이며 그 아기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존하신 아버지로 불려 진다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아버지를 보는 방법을 말합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시작이 없으나 아들은 아버지로부터의 시작이 있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이십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그 분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셨고(1:1)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1:2)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고(1:14) 그 관계는 하나님의 외아들이셨습니다(3:16-17)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1:14) 이 동일한 사건을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한 아이를 주셨는데 그 아이는 아버지라 불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를 보려거든 나를 보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으며 아버지의 보냄을 받고 오셨고 아버지를 나타내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보는 방법은 아들을 보아야 하며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를 직접 대면하여 뵙는 방법
요한 계시록 22 3-5절을 보면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말은 아버지를 직접 대면하여 보는 방법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33-18-23절을 보면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 덩어리인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습니다. 은총을 입은 모세라도 이와 같이 직접 얼굴을 대면하여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죄 덩어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힘써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자가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버지를 보는 방법의 두 방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를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기는 자가 되어서 아버지 앞에 설 때에 아버지의 얼굴을 뵐 수 있습니다. 항상 주님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 그 얼굴을 뵙기 원하시는 모든 자들에게 보혜사의 내주하심으로 공급하시는 평강이 더욱 많을 찌어다.

<출처:예수님따라가기>

심판의 두 방면 - 은밀한 심판과 공개적인 심판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심판의 두 방면을 말합니다. 성경은 항상 두 방면으로 비밀스럽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 5:19-30]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이 말은 심판의 두 방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들의 일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고 하시되 임의로 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21절은 그 아들이 하시는 일이 뭔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들이 하시는 일은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22-24절까지는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그 심판을 아들에게 다 맡기셨다고 말씀하시고 또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보내신 분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나중에 일어나는 심판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심판을 말합니다. 그 심판은 믿는 자는 생명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이미 받았답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말씀을 듣는 지금 이 때를 말합니다. 지금 이 때 듣는 자는 살아난다고 합니다.

27절을 보면 또 라는 말씀을 합니다. 곧 여기서부터는 다른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자됨을 인하여 주신 심판의 권세입니다. 그러니까 19-26절까지는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고 아들이 하신 일 즉 생명 살리는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이 때라 즉 지금 이 때에 듣는 자는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생명의 권세를 말합니다. 그 생명의 권세는 심판 기능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미 사망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아들의 음성을 믿는 자는 생명을 주어 살립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들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삶으로서 성취하신 권세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아들이니까 그저 주신 것이 아니라 합당한 삶의 행위로 인정받아 성취하신 권세라는 말씀입니다. 그 권세는 심판권세입니다. 이 심판 권세는 나중에 아들이 다시 오실 때에 땅에 살아 있는 사방 백성을 모으고 심판하실 것입니다(25:31-47) 그리고 18절은 아들의 음성을 듣고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살아날 것인데 생명의 부활로 나올 자와 심판의 부활로 나올 자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이 말은 설명하기가 조금 복잡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창세 이후로 제일 하나님을 잘 믿는 자 십사만 사천명은 큰 환난 전에 부활하여 들림 받게 됩니다. 이것을 처음 익은 열매들이라고 합니다(14:1-5) 또 큰 환난 끝 무렵 즉 예수님 재림 직전에 있을 일곱째 나팔 불 때에 두 번째 부활하여 데려감을 당할 것입니다. 이들을 이기는 자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들만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아버지 집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패배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천년 왕국 끝에 있을 크고 흰 보좌 심판 때에 사망의 부활로 나와서 심판을 받고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20:11-15) 28-29절은 이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30절에 듣는 대로 심판한다는 말씀은 아들이 심판하시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여 그뜻대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심판자이신 예수님의 심판의 두 방면을 말합니다. 19-26절까지는 은밀한 심판을 말하고 27-30절까지는 공개적인 심판을 말합니다. 은밀한 심판은 지금 주님의 음성을 믿는 자는 살아나고 순종치 않는 자는 심판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공개적인 세 번의 부활과 두 번의 심판 즉 산 자의 심판과 죽은 자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세 번의 부활이라 함은 큰 환난 전에 있을 처음 익은 열매 추수와 큰 환난 끝에 있는 익은 곡식 추수와 천년 왕국 끝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에 들어가기 전에 신앙의 패배자들이 부활하여 백 보좌 심판을 통하여 각각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그 행위대로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죽은 자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산 자의 심판과 죽은 자의 심판은 약 천년 차이가 납니다. 산 자의 심판은 예수님 재림 때에 있을 것이고 죽은 자의 심판은 천년왕국 끝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기 원하시는 모든 형제자매님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보혜사 성령의 평강이 늘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예수님따라가기>

은밀한 방면 - 열매 맺는 방법(비밀) - 2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열매를 맺는 방법
요한복음 15 1-2절을 보면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하고 그 붙어 있는 방법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살아야 하며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계명을 지켜야 하고 예수님은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오셔서 사시며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킬 때에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신다고 하셨으며 그 열매 맺는 가지를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그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열매를 맺는 방법입니다. 보이는 능력과 은사를 좇음이 잘못하면 함정이 될 수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3 8-10절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은 능력으로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배반치 않은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그 행위를 지키면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은 큰 환난 전 휴거를 말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세상 끝까지 모든 사람들 중에서 십사만 사천 명만 부활하여 먼저 데려감을 당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처음 익은 열매라고 합니다. 그러니 많은 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징이 아니며 모든 믿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 14 1-5절을 보면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요 정절이 있는 자며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들을 말합니다. 형제님들 그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능력과 은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죄를 끝내며 하나님을 모신 성전 된 우리 몸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합당하면 하나님께서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고 열매에 합당치 않으면 그 가지를 포도나무에서 제해 버리실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는 방법이 바로 부활 안에서 관유가 되셔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보혜사 곧 아버지와 아들이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한 영안에서 함께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보혜사가 한 영 되시는 방면을 말합니다.
  
☆우리를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이유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아들 삼으신 목적을 말합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창세전에 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 계획은 거룩한 찬송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의 조건은 왕이 있고 백성이 있어야 하며 영토가 있고 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한 나라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미리 아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 그 안에서 구속하시고 우리를 예정하사 부르신 이유는 흠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맏아들 즉 장자들이 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거룩하게 된 장자 즉 큰 아들들을 통해서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정 된 자라면 죄가 없고 거룩해야 하며 흠이 없는 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예정 되었으니 천국에 갈 것이라고 느슨해지지 마시고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알아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 앞에서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삼층 천까지 다녀 온 바울 형제도 천국을 향하여 달리기 하였고 베드로 형제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향하여 달리기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느슨해진 자들은 아직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자들입니다.
  
예정을 구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온 세계를 지으셨으니 하나님은 모든 자들의 주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온 백성들에게 찬송을 받으셔야 맞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것들을 좋아합니다. 우상은 자기 욕심 때문에 생긴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룩한 제사장 나라를 삼으시려고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9 5-6절을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란 거룩한 나라로서 장자의 나라 즉 큰 아들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레위를 선택하였습니다. 민수기서 3 12-13절을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지파는 초태생 즉 큰 아들 지파를 상징합니다. 예정이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여러 아들들 중에 큰 아들을 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정에 대한 바울의 사상 - 미리 아심을 따라 큰 아들을 정하신 것임
 로마서 8 29-30절을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정에 대한 모든 비밀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정하신 기준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미리 아심을 따라 예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형제들 중에 큰아들이 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답니다. 그러니까 여러 아들들 중에 큰 아들이 될 자를 예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의 두 아들들 중에 큰 아들 에서는 세상 것들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 야곱은 장막생활을 좋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미리 아심을 따라 작은 아들 야곱을 영적인 큰 아들로 정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으로 미리 아심을 따라 정한 것이지 일방적인 예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정이란 초태생 즉 영적 큰 아들들을 택하신 것을 말하고 그 목적은 흠이 없고 거룩한 자가 되게 하려고 택하신 것이며 흠이 없고 거룩하게 하시는 이유는 찬송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정 안 된 자들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천국을 향하여 달리기함으로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정에 대한 베드로의 사상 - 미리 아심을 따라 정하고 선택하셨음
 베드로 전서 1 2절을 보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통하여 베드로 형제도 바울 형제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그 전능하심으로 큰아들을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정되지 못한 자들도 이 비밀을 알고 달리기 하면 됩니다. 마태복음 11 12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침노란 강탈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강탈하듯이 누구든지 천국을 향해서 달리기 하여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힘써 이기는 자가 되지 않으면 용이 삼켜버림
 요한 계시록 12 4절을 보면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용이 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 12 5절을 보면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여자가 하는 일을 말합니다. 믿는 자들의 신앙을 용과 여자의 전쟁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여자로 상징 된 은혜시대의 믿는이들은 애써 남자아이를 낳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여자 앞에서 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용이 여자 앞에 있는 이유는 여자가 남자 아이를 낳기만 하면 삼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남자 아이란 강한 자를 상징하는데 강한 자란 이기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큰 환난 시대가 오기 전 지금의 영적 전쟁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1 7절을 보면 신앙의 결론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 5절을 보면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성경의 결론을 아주 간략하게 말해 준 것입니다. 이기는 자만 천국에 갑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만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또 이기는 자는 흰 옷 입은 자들입니다. 흰 옷은 의로운 자 즉 거룩한 자들을 말합니다. 또 흰 옷 입은 자들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흐려지지 않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흐려지지 않고 기록되어 있는 자들을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인정을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인정을 받은 자만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인정받지 못한 자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져 있다는 말입니다. 믿는 자들이 이것을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 목숨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마치 요한이 홀로 죽음의 자리를 지킨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믿는 이들이 크게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체의 삶을 드리지 않으면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자가 어찌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까? 다 버려도 거룩하지 못한 자는 하늘로 솟아오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에도 계시는 하나님이란 찬송의 나라를 계획하신 분을 말하고 이제도 계시는 하나님이란 그 뜻을 비밀스럽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우리를 성전 삼고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흠이 없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우리를 사랑하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미리 아심을 따라 미리 정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통해 그 영으로 함께 오셔서 창세전에 예수 안에서 계획하신 뜻을 우리 안에서 은밀하게 이뤄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목자가 되사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출처:예수님따라가기>

은밀한 방면 - 열매 맺는 방법(비밀) - 1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밀한 방면 즉 비밀들에 대해서 입니다. 성경은 항상 두 방면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두 방면이라함은 공개적인 면과 은밀하게 감춰진 비밀이 있습니다. 공개 된방면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나 은밀한 방면은 성경을 보는 영의 안목이 없으면 보지 못하는 귀한 보화들입니다. 열매를 맺는 방법은 그 은밀한 방면에 감춰져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과 천사와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하나님의 나라인 찬송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 3-6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가졌던 계획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3절의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라는 말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로 계획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말합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은 복주시는 방법 즉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것들은 복이 아닙니다. 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복의 종류를 말합니다. 그 예비하신 복은 썩을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썩지 않는 영원한 복을 주시기로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는 말은 택하신 때와 방법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답니다. 우리가 탄생되기 전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미리 아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라는 말은 예정하신 목적을 말합니다. 그 목적은 우리들을 흠 없게 하시려고 예정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죄를 끝내야 합니다.

☆이제도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 삼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15 45절을 보면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 즉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0 22-23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말이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하시면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이른 아침에 무덤에 갔을 때 무덤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그는 시체를 도적맞은 줄 알았습니다. 그랬다가 나중에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니 나중에 알아보고는 반가워서 손으로 만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몸에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은밀한 승천의 근거가 됩니다. 성경은 중요한 사항의 거의 모두가 다 두 방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제자들 중에 없었으므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팔일 후에 오셔서 손을 내밀어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곧 이 말은 그동안에 하늘에 은밀하게 승천하셨다가 오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두방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주제를 가지고 한번은 은밀하게 말씀하시고 한 번은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의미는 이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그분은 두 방면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인자 즉 사람의 아들 된 방면과 성자 즉 하나님의 아들 된 방면이 있습니다. 말씀이 보냄을 받고 육신을 입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말씀이 보냄을 받았다는 말이고 예수라는 말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말은 인자 된 방면을 말하고 그리스도라는 말은 성자 된 방면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실 때에도 두방면이 있습니다. 예수로서의 부활의 방면은 사람들 중에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앞에 바쳐지기 전에는 누구도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만지려고 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만지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됨의 방면은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 누구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이후에 우리 안에 불어 넣으신 성령님으로 인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냄을 받으신 말씀 즉 그리스도는 진리의 영을 말합니다. 그 진리의 영은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성전 삼고 계시는 보혜사 성령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께서는 한 영 안에 계십니다.
  
☆관유가 되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4 21-23절을 보면 보혜사 성령님만 보내심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과 보혜사께서 함께 우리 안에 은밀하게 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영으로 함께 계심을 증명합니다. 이것은 곧 관유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출애굽기 30 23-25절을 보면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과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감람기름은 성령을 예표하고 몰약과 육계와 창포와 계피의 네 가지 향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심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네 가지 과정을 겪으신 것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방면과 성령님이 영으로 한 영 안에 계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구약의 건물 성전이 신약 안에서 법이 개혁 되면서 우리가 성전이 되었습니다(고전3:16-17)

출애굽기 30 26-29절을 보면 ‘너는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그 기구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지성물로 구별하라 무릇 이것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관유의 용도를 말합니다. 성전과 성전 기명 기구와 제사장들에게 관유를 발라 거룩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곧 고린도전서 15 45절에 말하는 마지막 아담이 살리는 영 즉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는 것의 예표입니다. 그것은 부활 안에서 관유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유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우리 몸을 성전 삼고 우리 안에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우리 위에 임재하셨지만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역사가 두 방면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 49절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 1-4절을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은 누가복음 24 49절의 성취로서 우리 위에 임재하신 성령님을 말합니다. 우리 위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목적은 복음 전파의 수단으로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그 임재의 결과는 능력과 은사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7 37-39절을 보면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0 22-23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요한복음 7 37-39절의 성취입니다.

우리 안에 오신 보혜사 성령님은 아주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방면입니다. 이 보혜사 성령님은 세상에게는 감추시고 진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속에 들어오셔서 성전 삼고 사십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제 생각해 보시면 어떻게 열매를 맺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님들 능력과 은사의 보이는 것들을 좇는 것을 이제 그만 그치고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는 자들 속에 은밀하게 오셔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이 비밀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열매 없는 쭉정이들은 그 날에 밝히 드러나 불태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는 말은 출애굽기 30 23-25절에서 말하는 관유가 되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14 20-21절을 보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오신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 사신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 속에 다시 오셔서 사시는데 이것은 열매 맺는 방법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의 두 방면 - 처음 익은 열매로 바쳐짐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승천의 두 방면입니다.

 요한복음 20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막달라 마리아가 이른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무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시체를 도적 맞은 줄 알고 슬퍼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 모습을 보이시니 반가워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지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다. 이제 하나님께로 올라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날 아침에는 아직 하나님께 처음 익은 열매로 바쳐지기 전이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20 19-20절을 보면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처음 익은 열매로 아버지께 바쳐진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벌써 하늘에 갔다 오셨다는 말이다. 이것을 은밀한 승천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20 26-27절을 보면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말은 부활하신 후 일주일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일주일 전 부활하신 날 저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을 때에 도마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도마를 만났을 때 부활하신 주를 만났다는 소식을 알려 주자 도마가 말하기를 자신의 손으로 주님의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에 넣어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일주일 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내밀어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에 넣어보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은밀하게 승천하셨다가 오셨다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 날 아침에 손을 대려 할 때에는 내 몸에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하였다. 이제 올라가신다고 이 말을 형제들에게 전하라고 하신 것은 은밀한 승천 전이었고 그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신 것은 이미 하늘에 처음익은 열매로 아버지께 드려진 이후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도마에게 말하기를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밀하게 하늘에 올라갔다가 다시 오신 뒤라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 3절을 보면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공개적인 승천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두 방면의 승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은밀하게 승천하셨고 한번은 공개적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죽으신지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 은밀하게 처음 익은 열매로 아버지 앞에 드려진 후에 다시 오셔서 그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그 후에도 몇 차례 더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에 관하여 말씀하시다가 해 받으신 후 40여일 만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승천하셨습니다

창세 전에 계획하신 뜻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밀히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무리들에게 충만하게 그 영으로 임재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보혜사의 평강이 우리 마음 속에 넘칠 찌어다. 아멘

<출처:예수님따라가기>

하나님의 두 방면 - 셋 한 분이신 하나님 (2)


[참고:마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하나님의 두 방면/존재적으로 세분이시며 영으로 한 분이신 하나님

은밀한 승천/부활하신 날 아침 첫 열매로 바쳐지심
요한복음 20 15-17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 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밀한 승천에 관한 증거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무덤에 와서 보니 무덤을 막아뒀던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맞은 줄 알고 슬퍼하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생각하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다시 그 이름을 부르시니 그 때서야 알아보고 반가운 나머지 손으로 만지려 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서 형제들에게 이르라.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이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날 새벽에 은밀하게 승천하셔서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바쳐 지셨던 것입니다.

그 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가 그곳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지 못한 도마가 말하기를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어보고 손으로 옆구리를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여드레 후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도마에게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 직 후 처음 익은 열매로 은밀하게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께 바쳐지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신 날 새벽에 은밀하게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처음 익은 열매로서 바쳐지신 후 다시 오셔서 그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영으로 한 분이신 방면/다시 오셔서 제자들 속에 성령을 불어 넣으심
요한복음 20 21-23절을 보면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안식 후 첫날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고 새벽에 은밀한 승천이 있었으며 그 날 저녁에 다시 제자들에게 오셔서 내주하시는 성령을 제자들 속에 불어 넣으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요한복음 7 38-39절에 말씀하신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라고 하신 말씀의 성취입니다.

여기에서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에서 숨과 성령이 원어가 똑같습니다. 그 뜻은 숨, 바람, 호흡, , 성령 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성경의 해석은 한 숨 쉬며 성령 받으라고 하신 것처럼 보이나 그것이 아니라 영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한 숨 지으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린도 전서 15 45절을 보면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성경 해석이 잘못 되어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로 해석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두 방면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항상 중요한 거의 모든 것이 두 방면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공개적인 방면은 모두가 다 눈으로 보면 압니다. 그러나 같은 주제의 은밀한 방면이 꼭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9 39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방면으로 감추신 이유는 본다고 하는 자들을 모두 소경되게 하시려고 감추셨다는 말입니다. 또 마태복음 11 27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 갑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다 소경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며 또 눈이 어두운 자도 구덩이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앞에 진실로 겸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구약의 건물 성전이 신약 시대에는 우리 마음의 성전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 장소가 교회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교회에 나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날을 지키는 것으로 신앙생활 잘한 것처럼 생각하고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체의 삶을 주님 앞에 드려도 부족합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당장에 죽을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날을 내 마음의 성전을 지키며 거룩한 열매를 맺어 가야합니다. 우리를 성전 삼고 우리 속에 오신 주님은 아주 예민하십니다. 조그마한 죄가 있어도 떠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끝내야 합니다. 성전이 더러우면 멸하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고전3:16-17)

 사도들의 인식/신약사상(하나님과 예수님과 그 영)
 로마서 15 6절을 보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분명하게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신약 안에서 하나님 하면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 사상이며 이 사상은 신약 전체에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거의 대부분의 각 서신서 첫머리에 어김없이 이 사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 2절을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1 31절을 보면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주 예수의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 3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1 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도 되고 그리스도의 아버지도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에베소서 4 5-6절을 보면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주도 한 분이시고 하나님도 한 분 이시라고 각각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무슨 말이냐면 신약 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신약 안에서 하나님 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님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2 29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는 말에 예수님이 포함되지 않으며 아버지 하나님만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서신서 거의 전체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면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인식하시고 예수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존재적으로 셋이신 방면/하나님과 예수님과 그 영

1. 셋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
에스겔 1 26-28절을 보면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임
요한 계시록 1 16절을 보면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0 19-20절을 보면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이신데 손과 옆구리를 본 제자들이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그 영 하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임
요한 계시록 5 6절을 보면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보혜사 성령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해석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보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 영 하나님의 상징적인 모습을 모두 살펴보아도 그 영광의 형태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성경은 한 면은 공개되어 있고 한 면은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 거룩하시고 빛에 쌓인 분이라서 볼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에스겔 형제님께는 그 모습을 공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 영광의 모습을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2.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 시대의 통치
 [고전 15: 24-28]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이 말은 예수께서 천년왕국 시대에 천년동안 다스리시고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들을 멸하신 후 만유를 통일하시고 나라를 하나님께 바칠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 시대에는 아들도 아버지께 복종하시고 영원토록 다스리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저희들은 원합니다우리의 눈이 순수하여 누룩의 고정관념을 벗고 밝은 눈으로 그 뜻을 깨닫기 원합니다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보혜사 성령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아버지를 사랑하여 알기 원하여 모든 무리에게 충만하게 임재하옵소서! 아멘 

 <출처:예수님따라가기>

하나님의 두 방면 - 셋 한 분이신 하나님 (1)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두 방면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실 대에 두 방면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참 신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심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셨습니다. 이 말은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말합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이사야 44 6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숭배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여호와 외에 신이라고 숭배 받는 다른 신들은 피조물들을 신격화한 것들로서 다 가짜들입니다. 참 신은 오직 여호와 한 분 뿐입니다.

이사야 45 18-22절을 보면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한가지로 가까이 나아 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니라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신이시며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품 속에 말씀이 계셨고 그 영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확장

확장 방법/하나님께서 자기가 자기를 보내심
출애굽기 3 14-15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원대로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1:11) 그 하나님께서 자기가 자신을 보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 보내시는 방법은 말씀 즉 아들을 보내셨고 또 그 영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시는 방법은 두 방면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합니다. 새 언약 안에서는 세 형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이 땅에 오시면서 육신이 되셨습니다. 육신은 부활하시면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안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 영으로 분명하게 그 이름이 나눠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심의 두 방면/아들과 그 영을 보내심

 하나님께서 그 아들(말씀)을 보내심(3:16)
그 하나님의 품속에 말씀이 계셨습니다(1:18) 이 말씀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기 전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1:1)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은 하나님의 독생자 즉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말씀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3:17)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그 말씀의 시작이 하나님으로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의 근본이 되시며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죽어가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3:16) 그 하나님의 아들 즉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1:14)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말씀 즉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1. 말씀이 계신 때/태초부터
요한복음 1 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은 말씀이 계신 때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태초 즉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2. 말씀과 함께 계신 분/하나님
요한복음 1 2상 절을 보면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 즉 진리와 함께 계신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말씀이 함께 계셨습니다. 여기에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은 하나님과 말씀이 한 존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언어의 모순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형제님은 혼자 계시면서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합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함께 라는 말에 해당되는 분은 말씀과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말씀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3:16) 이 말씀은 이해하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말씀이란 하나님 품속에 계신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불린 이유는 말씀은 시작점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은 시작이 없는 분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시며 시작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품속에 계신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두 관계에 있어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3:16)

3.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아들과 아버지
요한복음 3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은 말씀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하나님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4. 말씀이 보냄을 받기 전에 계신 장소/아버지 품속
요한복음 1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해석은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 즉 외아들이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말씀이 세상에 보냄을 받기 전에 계신 장소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계셨던 장소는 하나님의 품속입니다.

5.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분/외아들
요한복음 3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아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한 분 밖에 없는 외아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입니다. 아들은 왜 아들이라고 하고 아버지는 왜 아버지라고 합니까? 이치적으로는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아들이고 아버지는 자녀를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처음부터 존재하신 분이지만 말씀은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시작 되셨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칭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6.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방법
요한복음 1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방법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7.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의 이름/예수
마태복음 1 25절을 보면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의 이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이것은 공개적인 방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을 보내심/우리 속에 임하신 보혜사(20:22)
 요한계시록 56절을 보면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구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보좌 앞과 주위에 네 생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좌에 둘려 24장로석이 있고 어린양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보좌 우편에 계시고 일곱 영 즉 성령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곱이란 완전수로서 하나님의 영의 완전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성령을 일곱 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 영 즉 보혜사 성령께서는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6 7절을 보면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장소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야 보혜사가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5 6절을 보면 어린 양으로 상징 된 예수님은 보좌 앞에 계시고 일곱 영으로 상징된 보혜사 성령님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내심을 받고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의 보좌로 다시 가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대로 보혜사 성령님을 땅으로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영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 즉 하나님의 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 20-23절을 보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가서 보혜사를 보낼 것이라고 하니 제자들이 근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되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은 곧 육신을 입으신 예수께서는 부활 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늘로 올라가시고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다시 오셔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 속에 오셔서 우리 몸을 성전 삼고 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세상에게는 올라가고 이 세상에 안 계신 것처럼 감추시고 그를 사랑하여 예수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그 안에 오신 것을 알 수 있도록 나타내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은 쉽게 말하면 못 된 자들을 혼내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수께서 우리 안에 성전 삼고 계셔야 성장이 있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치 않으면 예수님은 떠나갑니다. 곧 그 영혼은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못 된 자들을 혼내실 것이라는 말도 바로 이 말입니다. 그는 성장이 없을 것이고 마지막 날에 벌거벗은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성전 삼고 우리 안에 오실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함께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세 위께서 영으로 하나되신 방면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심의 두 방면/말씀(아들)과 그 영을 보내심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심의 두 방면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말씀과 그 영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셨습니다. 이 말은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말합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신이시며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을 보내심/우리 위에 임하신 성령
출애굽기 3 14-15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원대로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1:11) 그 하나님께서 자기가 자신을 보내실 수 있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시는 방법은 신약 안에서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그 중 하나는 아들을 보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은 사람들 가운데 임재하셨지만 우리 속에 내주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 안에서 그 생명주는 영이 되시면서(고전15:45) 우리를 성전 삼고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게됩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두 방면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시는방법은 말씀(아들)을 보내심과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시는 두 방면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말씀)을 보내심(3:16)
하나님의 품속에 말씀이 계셨습니다(1:18) 이 말씀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기 전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1:1)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은 하나님의 독생자 즉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말씀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3:17)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그 말씀의 시작이 하나님으로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의 근본이 되시며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죽어가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3:16) 그 하나님의 아들 즉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1:14)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말씀 즉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1. 말씀이 계신 때/태초부터
요한복음 1 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은 말씀이 계신 때를 말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로서 태초 즉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2. 말씀과 함께 계신 분/하나님
요한복음 1 2상 절을 보면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이 말씀 즉 진리와 함께 계신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말씀이 함께 계셨습니다. 여기에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은 한 존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류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언어의 모순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형제님은 혼자 계시면서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합니까?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함께 라는 말에 해당되는 분은 말씀과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를 말합니다.

3.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아들과 아버지
요한복음 3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은 말씀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하나님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4. 말씀이 보냄을 받기 전에 계신 장소/아버지 품속
요한복음 1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해석은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 즉 외아들이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말씀이 세상에 보냄을 받기 전에 계신 장소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계셨던 장소는 하나님의 품속입니다.

5.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분/외아들
요한복음 3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아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한 분 밖에 없는 외아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입니다. 아들은 왜 아들이라고 하고 아버지는 왜 아버지라고 합니까? 이치적으로는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아들이고 아버지는 자녀를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처음부터 존재하신 분이지만 말씀은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시작 되셨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생각 합니다.

6.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방법
요한복음 1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방법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7.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의 이름/예수
마태복음 1 25절을 보면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의 이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하나님의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우리 속에 임하신 보혜사(20:22)
 또 한 번의 보내심이 있습니다. 아들이 죽고 부활 승천하신 후 보냄을 받으신 보혜사이십니다. 그 보혜사는 우리를 성전 삼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구약시대 때부터 사람들 가운데 성령이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은 그 원대로 역사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자기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그 자기가 자기를 보내시는 방법은 바로 그 영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도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 영은 사람들 위에 머물렀을 뿐 속에 들어오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신 보혜사는 우리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부터는 성령께서 두 방면으로 임하십니다. 우리 위에와 우리 속에 오십니다. 우리 위에 오시는 성령님은 은사와 능력을 주셔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수단으로서 예수의 증인들에게 부어주시는 능력주시는 성령을 말합니다(2:3) 그러나 우리 안에 오시는 보혜사는 성전 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게 합니다(20:22) 그러므로 성령의 두 방면 역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비밀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더 알기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예수님따라가기>

[계1장6]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두 방면 - 주인과 참 신(우상근절)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성경 말씀](1:8) -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두 방면에서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관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 되심과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우리가 누구를 주인 삼고 누구를 섬겨야 하는 지를 말해 줍니다. 이 말은 곧 우상이 쓸데 없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으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알게합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 말은 하나님의 자기 소개에 앞서 요한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한 내용입니다이 글을 통해서 요한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여기에서 주란 하나님과 우리와의관계를 말하고 하나님이란 피조물들 앞에서의 신적 존재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 되심을 말하고 피조물 앞에서의 신적 존재란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 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신이란 말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말이며 다른 신이 있다면 그것은 다 가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라는 말은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유일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그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유일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1.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창조 주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되 말씀으로 창조하심
이사야 44장 24절을 보면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3절을 보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란 말씀을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함께 한 자 없이 하나님 홀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고 말하고 요한은 만물이 말씀이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홀로 만물을 지으시되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2) 계획하시고 말씀하신 분 즉 창조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
창세기 1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라는 말은 말씀하시는 분을 말합니다.그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영 하나님과 말씀 하나님께 그 계획을 상의 하시는 것으로서 이 말은 곧 여호와께서 그 영 하나님과 말씀 하나님 안에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다시 정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영 하나님과 말씀 하나님 안에서 계획하셨다는 말씀입니다.

3) 모든 세계를 지으신 방법 / 말씀으로 지어짐
히브리서 11장 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계를 지으신 방법이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4) 말씀으로 지으시는 방법/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심
로마서 4장 17절을 보면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시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유일하신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 존재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처음과 나중이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품속에는 그 영과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영은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고 지칭 될 때는 한 분 하나님이시며 단수로 쓰입니다.

창조의 목적
이사야 43장 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릇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 형제도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되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사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사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엡1:3-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찬송의 그릇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괴로워했으며 번제 양을 가지고 나오지도 않았고 그들의 제물로 하나님을 공경치 않았으며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사43:21-24)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음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고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내신 여호와께만 경외하고 그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면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리라고 하였으나 저희가 그 말을 듣지 않고 이전 풍속대로 행했으며 이스라엘 외에 여러 민족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되 우상을 겸하여 섬기더니 그 자자손손이 그 열조의 행한 것을 좇아 오늘날까지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왕하17:35-41)


우상을 숭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신이심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너를 위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고(출20:3-4) 이사야 46장 5-10절을 보면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44 6-7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내가 옛날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고하며 진술할 자가 누구뇨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고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이사야 45 21-22절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천지와 만물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경영자이십니다. 그 증거는 바로 그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장래 일을 미리 말씀하시고 그것들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 42 8절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 못할 우상을 만들며 그것들을 섬기는 자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44:10-11) 누가 하나님을 비기며 누구를 하나님과 짝하여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만물을 조성하시고 만물을 섭리하시는 주 하나님, 그 증거로서 장래 일을 미리 말씀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그 전능자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 누가 하나님과 같은 자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과 비길 자 있겠습니까?전능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깨달았다면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아 주인을 잊어버린 인생들아 우리의 죄를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니 그것은 바로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내 자신이 주인이 된 것이 타락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아 보려고 어떤 계획을 갖거나 부를 축척하고  명예를 탐낸 것이 타락이며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생각이타락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즘 시대엔 가족 간의 우상이 최고의 우상이랍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처자와 전토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숭배를 하고 맙니다. 다 내어 버리십시오. 그 내어 버리는 방법은 마음에서 끊어 내십시오. 사람들아 여호와를 귀히 여기며 인생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 하나님께서도 존중히 여기시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경멸히 여기실 것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조성하시고 천사와 사람을 지으신 크신 주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누가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자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과 비길 자 있겠습니까? 주는 만군의 여호와시니 회개치 않는 자는 누구든지 그 앞에서 초개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마음을 빼앗길만한 모든 우상을 버리고 중심으로 회개하며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과 천사와 사람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의 빼어나심과 놀라우심을 바로 안다면 우리는 다른 우상이 필요치 않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며 모든 우상은 사단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높이시니 사단이 만족하지 못하고 그의 욕심으로 인해 자기의 보좌를 높이며 하나님과 비기려하다가 그는 땅의 맨 밑 뿌리에 찍힌바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이며 하나님 외에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모든 것은 다 우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세상을 향하는 정을 못 박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똥으로 여긴 것도 하나님께 우상숭배를 하지 않으려는 그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똥으로 여겨야 합니다. 부모와 처자와 재산과 자기 목숨까지도 다 똥으로 여기십시오. 이것을 실행한 자만 우상숭배의 죄에서 벗어나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모시고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의 주인 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창조에 기인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과 천사와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만물이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물과 우리를 지으신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신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말은 여호와 외에 참 신은 없으며 만약 다른 신이 있다면 그것은 다 가짜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신격화 한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유일하신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 같은 분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자신을 위하여 우상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우상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요 다른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의 자기 소개에 대한 내용을 말하기에 앞서 요한이 하나님을 소개한 내용으로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주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주란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으로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을 말하고 하나님이란 유일하신 참 신이신 분으로서 다른 신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상을 숭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신으로 여기는 것은 다 피조물을 신격화 한 것으로서 참 신이 아닌 가짜 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우상을 철저하게 버리고 우리 하나님께만 경배합시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주인 삼은 것을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원하는 모든 형제자매님들에게 회개의 영이 충만하게 임할 찌어다.

<출처:예수님따라가기>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호칭의 바른 인식 -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호칭의 바른 인식에 대해서입니다. 그 호칭을 성경은 아버지를 하나님이라고 말하였고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5 6절을 보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분명하게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신약 안에서 하나님 하면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 사상이며 이 사상은 신약 전체에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거의 대부분의 각 서신서 첫머리에 어김없이 이 사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 2절을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1 31절을 보면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주 예수의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 3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1 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도 되고 그리스도의 아버지도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에베소서 4 5-6절을 보면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주도 한 분이시고 하나님도 한 분 이시라고 각각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무슨 말이냐면 신약 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신약 안에서 하나님 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님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2 29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는 말에 예수님이 포함되지 않으며 아버지 하나님만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서신서 거의 전체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면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인식하시고 예수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더 알아가기 원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보혜사의 평강이 더욱 넘치게 하옵소서 아멘

그리스도의 이름의 두 방면 - 임마누엘과 예수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보냄을 받았다는 말은 마리아 태를 빌어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존재하셨던 분임을 말해줍니다

이사야 7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 이사야의 예언은 마태복음 1 18-25절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1 18-25]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이 말은 예수께서 남자와 상관없이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방법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말합니다.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 이 말은 마리아를 오해하고 있는 요셉에게 오해를 풀라는 말입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 - 이 말은 처녀 마리아가 낳을 아이의 이름과 그 아이가 할 일을 말합니다. 그 이름은 예수이고 그가 할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이십니다.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계신 분의 이름을 말합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 이 말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의 이름을 말합니다.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아들 곧 그리스도의 이름의 두 방면을 말합니다. 그 두 이름은 임마누엘과 예수입니다.

임마누엘이란
태초부터 계셨으나 보냄을 받고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함께 계신 외아들 그리스도 즉 성자의 방면을 말하고 

예수란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의 이름 즉 피를 흘릴 수 있고 제물이 될 육신이 있는 인자의 방면을 말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보혜사의 평강이 우리 안에 충만케 하옵소서 아멘

<출처:예수님따라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