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장막의 회복이라 불리는 가르침이 메시야 몸(Body of Messiah)의 어떤 카리스마틱 흐름사이에 인기가 있게 되었다. 이러한 강의는 다윗 왕의 영(spirit)을 가진 계속되는 또는 24/7 중보기도와 예언적 예배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은 이 movement를 이용하셔서 고대의 기도 무기와 예언적 예배가 전세계 모든 지체(body)안에 회복되도록 하고 계신다. 주님 그 자신이 침범하는 어둠과 악의 물결에 대응하여 기도와 찬양을 일으키고 계시다.
그러나 어떤 메시아닉 유대인 믿는자들은 이러한 새 운동에서 사용하는 다윗의 장막 (David’s Tabernacle)이라는 용어를 문제 삼는다. 성경은 어떤 특정한 유대인 맥락(context)에서 이 다윗의 장막과 그 회복의 용어를 사용하는 반면, Restoration of David’s Tabernacle Movement (RDTM, 다윗의 장막 회복 운동)의 몇사람들은 이런 맥락(context)을 무시한다. 그 결과 어떤 성경말씀들이 부적절하게 다루어지고, 잘못된 기초가 놓여지게 된다. 이러한 기도 운동은 좋고 하나님의 것이지만, 다윗의 장막이라는 용어를 잘못 이용하는 것은 메시아닉 유대인 공동체에 걸림돌을 야기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메시아의 전체 몸을 위한 중요한 성경 진리를 모호하게 한다. 게다가 이런 운동은 대체 신학(replacement Theology)과 흔히 연관되는 방식으로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RDTM에 수정을 제한하고자 한다. 나는 메시아의 몸안에서 더 많은 카리스마틱 흐름들이 아모스와 사도행전에서 “다윗의 장막” 용어의 성경적, 문맥상 사용을 연구하기를 촉구한다- 유대인들의 육적 영적 완전한 회복과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다윗 계보의 왕이 그의 출신 유대를 다스리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다윗 계보의 왕 (Davidic King)이 다윗의 보좌로 이땅에 회복 될 수 있는가?
나는 RDTM과 다른 운동을 통해 메시아의 몸안에서 예언적 예배와 중보기도를 위해 전심으로 애쓰는 많은 중보기도자들로 인해 감사한다. 나는 RDTM의 리더들이 다윗의 장막의 회복이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을 성경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결과는 메시아의 전체 몸 (whole Body of Messiah)에 더 큰 축복과 명확함을 가져올 것이다. 또한 그결과 당신의 운동이 하나님의 마음을 우선으로 하여 그분 마음에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될 것이다.
1.What’s in a Name? (이름안에 무엇이 있나?)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졌다. 현대 번역들이 상당히 정확하기는 하지만, 어떤 잘못된 해석과 오해가 일어나고 있다. 종종 어떤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상한 결론을 내리고 원어의 의미가 다를 때 조차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견을 지지한다고 확신한다. 이런 많은 문제들이 히브리 원어를 연구하는 것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 다윗의 장막이라는 용어가 그 예이고 이것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한가지 논쟁중에 하나이다.
히브리어에는 어떤 종교적 사당(shrine)을 위한 여러가지 단어들이 있다. Ohel mo’ed는 한 용어로 만남의 텐트(a tent of meeting)이라는 의미이다. Ohel ha’edut 은 증언의 텐트 (a tent of testimony)이다. Mishkan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거주 장소 (dwelling place)라는 의미이다. Heichal은 궁전 (palace)나 성전(temple)을 의미한다. Mikadash는 성전 (holy place) 또는 성소(sancturary)를 의미한다. Dvir는 성스러운 가장 깊숙한 방 (holy innermost room)이고, kodesh hakodashim은 가장 성스러운 영역, 지성소 (the holy of the holies)를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단어들 어떤것도 아모스 선지자가 다윗의 장막을 예언할 때 사용되지 않았다.
아모스 9:11의 히브리 원어는 “Bayom hahu akim et sukkat David, hanofelet, v’gadarti et pirtzeihen. Vaharisotav akim uv’nitiha k’yemei olam” 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그날에 나는 다윗의 sukka(여성형), 무너진 것 (여성형으로 sukka를 말함)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그 무너진 터(broken-through areas)에 울타리를 칠 것이다. 그 파괴된 터를 나는 일으킬 것이고 나는 그녀(her)를 다시 세울 것이다, 옛적과 같이 (in that day I will raise up the sukka (feminine) of David, the fallen one (feminine, referring to sukka). I will fence over its broken-through areas. Its destroyed areas I will raise up and I will rebuild her, as in ancient days).
아모스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예언을 하였고 sukka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히브리 단어는 King James Bible에서 장막 (tabernacle)으로 잘못 해석되었다, “In that day will I raise up the tabernacle of David, which is fallen.” New American Standard Bible은 booth(임시로 지은 오두막, 초소, 파수막)로 해석을 하고 New International Version은 tent(천막)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히브리어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히브리말로 sukka (복수형은 sukkot)는 어근 s-kh-kh(samech, khaf, khaf) 또는 sachach에서 왔다. 동사는 ‘함께 짜다 (weave things together), 특히 식물들(가지, 잎, 버드나무, 야자 가지 등)을 짜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33:17에서 “야곱은 숙곳(sukkot)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sukkot)이라 부르더라”에서 그것은 들판에 짐승들의 우릿간을 설명하기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요나 선지자는 그가 니느웨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초막(sukka)를 지었다. “요나는 그 성읍에서 빠져 나와 그 성읍 동쪽으로 가서 머물렀다. 그는 거기에다 초막(sukka)을 짓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다. 그 성읍이 어찌되는가를 볼 셈이었다 (욘4:5).” 느헤미아와 에스라 리더쉽하의 부흥시기에, 바빌론에서 유다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임시 변통의 오두막집 (makeshift shanties)에 거주하라는 명령을 들었다.
(느8:15-16) 또한 그들은 책에, 산으로 가서 올리브 나무와 들올리브 나무와 소귀나무와 종려나무와 참나무의 가지를 꺽어다가, 초막(sukkot)을 짓도록 하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말을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16 그래서 백성은 나가서, 나뭇가지를 꺽어다가, 지붕 위와 마당과 하나님의 성전 뜰과 수문 앞 광장과 에브라임 문 앞 광장에 초막을 세웠다.
성경시대에 모든 유대 아이들은, 지금 이스라엘의 아이들이 알았던 것처럼, sukka가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그것은 흔들거리는 오두막집, 짚으로 덮인 임시 오두막 (shack), 초막절 (Feast of Booths, Hag Hasukkot)에 몇일 있는 곳을 말한다. 그것은 장막 (tabernacle)이라는 단어가 서양인들, 특히 RDTM의 관계자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어떤 비법, 로맨스, 향, 중동의 종소리가 결여된 것이다. 왜 아모스는 sukka라는 세련되지 못한 단어를 사용했는가?
이러한 질문이 대답될 수 있기전에, 우리는 우선 하나님이 다윗에게 한 약속 (royal promises)에 대해, 그리고 그 왕조가 어떻게 어려운 시기로 무너지게 되었는지 역사적 기초를 놓아야한다.
2. I Have Sworn to David, My Servant (나는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한다)
하나님이 다윗왕과 그의 언약을 세울 때 (삼하7, 대상17, 시편89), 하나님은 다윗에게 많은 것을 약속했다. 이들 약속중 어떤 것들은 성취되었고, 어떤 것들은 가까운 미래에 성취될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다윗 언약 (Davidic covenant)의 유일하게 중요한 핵심으로 메시아 예수님에게만 초점을 맞추려 하지만, YHVH(하나님)은 유대 국가적 언약을 다윗언약의 구절로 쓴다. 유대 국가를 위한 이러한 축복의 몇가지는 유대인들을 위한 영원한 평화, 이스라엘의 모든 적들의 멸망,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한 이스라엘 전 영토의 독점적이고 영원한 소유를 포함한다 (삼하7:10; 대상17:9-10).
흥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 언약에서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미래의 실질적(physical) 축복을 전략적으로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실제적인 유대백성들의 회복은 로마서 9:1-5, 11:28-29에 나타난 변경할 수 없는 은혜의 선물과 부르심의 한부분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는자들은, 특히 메시야 몸 (Body of Messiah)의 어떤 흐름들(streams)은 다윗의 회복(Davidic restoration)에 관심을 가지고 듯있기에, 유대 국가의 완전한 회복을 기대해야만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다윗에게 개인적으로 3가지를 약속했다: 왕조 (royal house or dynasty of his own- the House of David, Israel’s ongoing Jewish royal family, 삼하7:11-13); 다윗 자손들의 전세계적인 통치 (시89:20-27); 다윗 자손들의 영원한 통치 (삼하7:13,16, 19:25-26, 렘33:17; 시89:4, 29, 34-37).
어떤 신자들은 다윗 언약의 이러한 측면을 결코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예수님이 다윗의 더큰 자손(David’s Greater Son)이라고 단순히 생각하는데 만족한다. 많은 이방인 신자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사랑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과 관련된 다윗 언약의 이러한 측면들과 부딪혔을때, 많은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다윗 언약의 주제를 불러일으키는 이유중 하나는 그의 교회가 다윗의 회복(Davidic restoration)에 유대인과 관련됨에 관해 하나님의 마음과 그들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씨름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3.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합치면 살고 나뉘면 무너진다)
다윗의 통치의 영광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절정이었다. 여러 시편기자들은 다윗의 예루살렘 (Davidic Jerusalem)에 왕궁의 찬람함을 묘사한다 (시48:3, 12-13, 122:3,7, 왕상7:1-12). 솔로몬 왕시대에 예루살렘은 그 부와 풍성함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왕상4:20-34, 10:14-29). 시바의 여왕 (현제 아덴/예멘/ Hadrama’ut) 은 사막과 산을 가로질러 다윗의 집의 영광을 보러 왔다. 아모스 9:11절은 다윗의 집의 찬람함이 옛적과 같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윗의 통치의 영광은 또한 개인적인 죄에의해 손상되었다. 다윗의 예배와 기도는 많은 시편과 감동이 넘치는 예배를 낳았으나, 그의 정욕은 살인을 가져오고 그의 가족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파괴했다. YHVH는 다윗의 죄를 용서했지만 (시32:1-2), 다윗의 자손들은 그것이 성적인 죄(다말을 강간)든 아니면 피를 흘리는 죄든(암몬의 살인) 비슷한 죄들에 연류된다. 다윗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은 그의 친아버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그땅에 반역과 피흘림을 퍼뜨렸다.
다윗의 선택받은 아들 솔로몬 (히브리어에서 Sh’lomo은 ‘그안에 평화가 있다 (in him is peace)’라는 의미이다, 대상22:9)은 위대한 찬란함가운데 그의 아버지의 통치를 계속했으나, 그는 점점 하나님과 친밀감으로부터 멀어져 1000명의 후궁을 두고 이방신을 위한 산당을 지었다 (열왕11:1-7). 결과적으로 YHVH는 솔로몬에게 진노했고, 그 왕국의 대부분을 유다로부터 찢어놓겠다는 약속을 한다. 주님은 어느날 2지파는 충성을 하겠지만 12지파중 10지파가 솔로몬의 자손들에게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예언하셨다(왕상11:9-13, 26-40). 다윗의 빛나는 집은 곧 반란과 유기, 제한된 파괴를 당할 것이었다. 이러한 예언의 말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좌에 앉았을 때 일어났다. 그의 교만함은 유대백성들의 마음을 멀어지게 했다. 여로보암은 다윗의 왕조에 대항한 반란에서 이스라엘의 10지파를 이끌으며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 ‘….우리가 다윗에게서 받을 몫이 무엇인가? 이새의 아들에게서는 받을 유산이 없다. 이스라엘아, 저마다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아, 이제 너는 네 집안이나 돌보아라.’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윗 왕조에 반역하여서 오늘에 이르렀다" (왕상12:16, 19).
메시아 예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거부당했을 때, 이들 지도자들은 그들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랐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열왕기상 12장에서 다윗의 왕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 메시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계속되는 세대를 낳았다! 다윗의 장막 (tabernacle)또는 sukka의 진정한 회복에 있어 열쇠중 하나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하는 것이다- 유대인 지도자들과 유대국가가 과거 세대의 죄를 회개하고 다윗과 예수아(이스라엘의 메시아)의 집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것으로부터 돌아서도록 중보기도하는 것이다. 다음 성경구절들이 이런 중보기도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스가랴12:7-13:1, 호세아34:4-5, 에스겔20:32-44, 마태복은 23:37-39.
갈라진 틈이 다윗의 마천루에 나타났고 막강한 다윗 왕조는 무너졌다. 다윗의 집은 이제 유대 백성의 1/6만을 다스렸다. 시편기자 에단(Ethan)은 다음과 같이 썼다,
(시89:38-40, 44, 46, 49) 89:38 그러나 주님은, 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왕에게 노하셨습니다. 물리치시고 내버리셨습니다. 89:39 주의 종과 맺으신 언약을 폐기하시고, 그의 왕관을 욕되게 해서 땅에 내던지셨습니다. 89:40 주께서 모든 성벽을 허무시고, 요새를 폐허로 만드셨습니다. 89:44 그의 영광을 끝나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땅바닥에 내던지시셨습니다. 89:46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영영 숨어 계시렵니까 ? 언제까지 주님의 진노를 불처럼 태우려고 하십니까? 89:49 주님, 주의 신실하심을 두고, 다윗과 더불어 맹세하신 그 첫사랑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에 대항한 이스라엘의 반역을 심판하셔서 그들을 앗시리아로 포로로 끌려가게 했고, 유다의 변절은 바빌론으로의 포로로 끌려가게 하는 것으로 심판하셨다. 다윗의 집은 열방들 사이에 흩어지게 되었다. 다윗의 집의 찬란함은 무너져 내렸다.
4.Sukka - a Biblical Sign of Destruction (Sukka- 멸망의 성경적 사인)
Section 2의 마지막에 어떤 질문이 있었다: 왜 아모스는 다윗의 집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sukka라는 거친 단어를 선택했는가? 이사야는 이 점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사야는 유대인들이 침략과 멸망으로 고난을 겪을 것이라 예언했다. 다가올 바빌론의 침공동안 예루살렘은 약탈당하고 솔로몬의 성전은 그 기초까지 무너질 것이라 예언되었다. 이사야는 이러한 멸망에 대해 괴로워 하며 묘사했다:
(사1:7-8) 너희의 땅이 황폐해지고, 너희의 성읍들이 송두리째 불에 탔으며, 너희의 농토에서 난 것을, 너희는 보는 앞에서 이방 사람들이 약탈해 갔다. 1:8 도성 시온이 외롭게 남아 있는 것이 포도원의 초막과 같으며, 참외밭의 원두막과 같고, 포위된 성읍과 같구나.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대백성은 그들의 수도, 그들의 성전, 그들의 다윗계보의 왕의 파괴로 인해 고난을 겪을 것이고 그들은 집도 희망도 없이 남겨질 것이다. 궁전과 좋은 집에 사는 대신, 그들의 상태는 포도 추수동안 sukka에서 사는 가난한 농부와 같아서 어느 누구도 밤에 그의 어렵게 얻은 수확을 훔쳐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예루살렘의 기품은 들판의 오두막집의 농부로 변화될 것이다.” 이것은 이사야가 그의 사랑하는 유대 백성들에게 한 예언이었다.
이러한 설명은 독자들로 하여금 히브리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이사야가 sukka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느끼는 공포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Sukka는 낭만적이거나 회복시키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멸망과 굴욕의 약속이었다. 그것은 이런 맥락을 갖는 히브리어 단어이다. 다음에 살펴 보듯이, 그것은 아모스가 이 용어를 사용한 배경이기도 하다.
5.The Stump of Hope(희망의 그루터기)
이사야 선지자는 5:1-5에서 유대 백성이 직면한 멸망에 대해 계속해서 예언을 하는데,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되는 어떤 감식가 (connoisseur) 의 포도원으로 비교했다. 이사야 6:11-13에서 주님은 두가지를 예언했다: 유대 땅에 임한 멸망과 그백성들의 포로생활 (exile). 파괴된 들판, 황폐화된 집들, 거주하지 않는 도시- 이것은 유대 백성들이 기대해야할 것들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이사야는 희망을 힐끗보인다. “주민의 십분의 일이그 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가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13절)." 어느정도 이러한 거룩한 씨앗이 포로로 잡혀가는 눈들에게 빛을,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멸망으로부터 회복을 가져올 것이다.
11장에서 이사야는 그루터기(stump)와 씨앗(seed) 환상으로 돌아온다. 그는 그루터기가 다윗의 왕조라고 예언을 하고 그 씨앗은 유대로부터 와서 온 열방을 다스릴 메시아닉 왕이라고 예언한다. “이새(다윗의 아버지)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사11:1).” 이사야는 11장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지막 시대 전략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은 파괴당했고 다윗의 왕조는 멸살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언젠가 두배의 회복을 가져올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백성들을 그들의 약속의 땅으로 귀환시키실 것이다 (한번이 아니라 두번, 사11:11, 렘31:10), 그리고 하나님은 유대백성과 전세계에 대해 다윗의 왕조의 통치를 회복할 것이다 (눅1:32-33).
정말로, 마지막 날에 유대인들은 다윗의 집에 대항한 그들의 반역에 대해 집단적으로 회개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서 주 저희의 하나님을 찾으며, 저희의 왕 다윗을 찾을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떨면서 주 앞에 나아가, 주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을 것이다 (호3:5).”
이사야 11장 예언에서 강조하는 것은 미래 회복, 즉 다윗의 왕조를 통한 모든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의 회복에 관한 것이다. 아모스 9:11이 하나님이 다윗의 sukka를 옛적에 그러 했듯이 영광으로 회복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두가지를 고려해야한다: 옛적의 영광이 무엇과 같은가, 그리고 예언자들이 미래의 영광의 회복을 어떻게 묘사했는가?.
여기에 이러한 비전을 구체화하도록 우리를 돕는 6개 예언적 구절이 있다. 이 구절들 모두는 다윗의 메시아닉 자손에게 그리고 다윗의 도성 예루살렘에 통치적인 권위가 회복되는 것을 강조한다.
(사2:1-4) 이것이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두고, 계시로 받은 말씀이다. 2:2 마지막 때에, 주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설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2:3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께서 우리에게 주의 길을 가르칠 것이니, 주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2:4 주께서 민족들 사이에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슥8:20-23)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제 곧 세상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민족들과 주민들이 몰려올 것이다. 8:21 한 성읍의 주민이 다른 성읍의 주민에게 가서 어서 가서 만군의 주께 기도하고 주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다 할 것이다. 8:22 수많은 민족과 강대국이 나 만군의 주에게 기도하여 주의 은혜를 구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 것이다. 8:23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 때가 되면, 말이 다른 이방 사람 열 명이 우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가 너와 함께 가겠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하고 말할 것이다.
(렘23:5-8) 내가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가 하나 돋아나게 할 그 날이 오고 있다. 나 주의 말이다. 그는 왕이 되어 슬기롭게 통치하면서,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23:6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름을 우리를 공의로 다스리시는 주라고 부를 것이다. 23:7 그러므로 보아라, 그 날이 지금 오고 있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않고, 23:8 그 대신에 이스라엘 집의 자손이 쫓겨가서 살던 북녘 땅과 그 밖의 모든 나라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그 때에는 그들이 고향 땅에서 살 것이다."
(슥14:16)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온 모든 민족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은 해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왕이신 만군의 주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다.
위의 구절 모두는 다른 각도에서 같은 그림 즉, 지구상에 영적, 사법적, 정의적 중심으로서 다윗의 회복된 왕조가 예루살렘에서 전세계를 다스리는 것을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는 명확하게 통치적인 묘사(governmental descriptions)이다. 이사야 11:3-5에 따르면, 이새의 다윗계보 자손(Jesse’s Davidic Son)은 정의, 의, 신실함으로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서 열방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사야 9:6-7은 또한 통치적인 개념으로 같은 메시아닉 인물을 묘사한다:
(사9:6-7)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9:7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실 것이다.
다윗의 그루터기는 황폐화되고 불에 타며 거의 파괴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늘의 군대들의 주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다윗의 왕조를 부활시키고 그의 자손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열방들을 다스리는 통치를 다시 세울 것을 약속한다. 다윗 그자신(죽음에서 부활된) 뿐만 아니라, 그의 육적인 자손들이 예루살렘에서 메시야 예수아에 종속되어 옆에서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여러 구절들이 있다. 부활된 다윗과 그의 육적 자손들에 대한 예언적 미래를 묘사한 구절들은 이곳에 있다: 렘30:9, 33:17,21-22,26, 겔34:23-24, 슥12:7-13:1.
실질적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전세계에 다윗의 실질적인 통치를 재건립하는 것이 하나님의 열망이다. 성경은 이러한 불타는 열정을 만군의 주의 열심으로 분명하게 묘사한다 (사9:7).
YHVH은 이땅에 위에 다윗의 통치를 회복하는데 심각하시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가장 높은 우선순위 (priorit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