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2011

천국 수준의 믿음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가장 큰 이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행 26:8) 라고 했습니다.

위글스워스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선 열 네 번이나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때로는 그의 기도를 통하여,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가운데 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온 가족이 다섯 살 된 아이의 죽음 때문에 울고 있는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당시엔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그대로 집에 두고 장례를 거행했습니다.  관 속에 누워있는 얘를 바라보면서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천진난만한 꼬마가 차가운 시신이 되어 벌써 관 속에 누운 것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든 것입니다.

위글스워스는 자기만 남겨두고 모두 밖으로 나가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는 문을 잠궜습니다.  그리고 딱딱하게 변해버린 아이의 시체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아이를 벽에 기대어 놓고 방구석에 강제로 세웠습니다.

위글스워스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사망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사망더러 이 아이의 몸에서 떠나라고 세웠습니다. 순간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었던 다섯 살 된 아이가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던 위글스워스는 조금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또 다른 사역과 이적의 경우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어떤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요. 나의 믿음이 갑자기 천국 수준 정도까지 올라가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원하시는 믿음의 수준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믿음은 다름 아닌 천국 수준의 믿음입니다. 내 믿음의 한계가 느껴지는 순간, 다른 수준의 믿음, 즉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내게 다가왔지요. 그때 나는 조금 전의 위글스워스가 아니더군요. 하나님께서 천국을 흔들고 남을 정도의 큰 믿음을 내게 주셨습니다."

그는 항상 불신앙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승리의 삶으로 이끌어갔습니다. 한번은 어느 젊은이가 "어떻게 그렇게 큰 믿음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8)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답변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성서신학이 아닐까요? 그가 언급한 믿음이라는 것은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져서 결국에 온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믿음은 날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감으로써 자라가는 것입니다.

종종 사람들이 스미스 위글스워스라는 사람은 일생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위글스워스는 그러한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하면 누구든지 위글스워스가 쓰임 받은 것처럼 또는 그 이상 쓰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알버트 히버트가 지은 “스미스 위글스워스, 그 능력의 비밀” 중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면 약점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믿음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받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면 내 믿음은 자라게 될 것이다. 내가 행동할 때까지는 내 믿음은 결코 자라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자라기 원한다면 어떤 경우에든지 성령님을 거슬리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단을 해야 한다.  성령의 불은 나를 쇠퇴케하고 파괴하는 어떤 것이라도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마귀는 언제나 내가 가장 자신없어 하는 약점과 약한 것을 통해서 시험하고 접근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면 내 강점보다 오히려 약점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자연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살아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 가는 것(translation)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 가는 것은 거룩한 순종과 함께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녹에게 일어난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도 에녹과 같이 성령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분과 교통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웃는 모습 아래서 살아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움직이셔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곳에  우리도 있게 되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자연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행전 26장18절 에서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주님이 그에게 사명을 주어 보내실 때 그에게 한 말을 하고있습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이것이 바울의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그에게 주신 믿음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계속 가까이 나아갈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는 믿음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의 차이를 여러분앞에 보여주기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한계에 도달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 나는 더이상 갈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믿음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멈추어서 기다려야만 합니다". 라고 말한 지점에 와 있습니다.

내가 랭카쉬어에 있던 어느날 아픈 사람들을 돌아보던 것이 생각납니다. 나는 한 젊은 여자가 소망이 전혀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어떤 집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이유는 알수 없었고 마귀적인 여러가지 일들이 나타났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젊은 나이의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젊은 남편이 아이를 안고 들어와서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몸을 굽혔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그순간 그녀는 귀신들린 사람이 그렇게 하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반대편 쪽으로 자기 몸을 던졌습니다.그것은 정말 가슴찢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아기를 안고 가서 어머니에게 젖을 물리려고 아기 입술을 대었습니다. 또 다시 대단히 거친 행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녀를 돌보고 있는 사람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누군가 도와준 사람이 있습니까"?
"네 우리는 모든 종류의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영적인 도움은 없었습니까? " 라고 내가 물었습니다.

그 남편이
"도움이라고요? 칠주 동안이나 잠 한잠 자지 못하고 귀신들린 상태에 있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 라고 소리 지르며 나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열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히죽 웃더니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나는 그 여자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무엇인가 해 주어야했습니다.

나는 나의 믿음으로 하늘나라에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곧 그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는 땅 위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얻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이든지 얻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하늘나라 속으로 기도를 해야합니다(you will have to pray into heaven). 왜냐하면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땅의 영역(earth realm)에 살면서 하늘나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있다면, 당신이 구하는 것은 결코 얻지 못할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내 믿음의 한계를 본것과 같이 다른 믿음이 와야만 합니다. 즉 부정될수 없는 믿음, 약속을 쟁취하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와야만 합니다. 그 임재로부터 나는 다시 땅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사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지옥이나 어떤것도 흔들수없는 그런 믿음을 하나님은 주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이 여자에게서 나가라" !!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침대 위에서 한바퀴 몸을 돌리고 잠이 들더니 열 네시간 후에 완전히 온전한 정신을 가진 ,완전히 온전한 사람이 되어 깨어났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은 모든 것이 죄이기 때문에 나는 오직 믿음 이외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없다는 것을 알수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되도록 한것은 하나님의 원칙이요 이상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라고 말한 히브리서 12장2절의 아름다운 말씀을 내 생각속에 사랑하며 간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처음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을 처음 만드셨습니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 되었으니,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에게 이렇게 위대한 구원을 마련해 주는 너무나 풍성한 기쁨때문에 그는 살아있는 믿음의 창시자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시요 완성자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 살아있는 믿음의 원리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여러분이 과거에 가졌던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의 과거의 것들은 잊어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에서 부르신 그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려감으로써 그분이 기꺼이 공급해 주려고 하는 매우 충만한 믿음과 능력과 생명과 승리로 나오십시오
       
스미스 위글 스워스의 승리하는 믿음 중 ---

스미스 위글스워스의 믿음에 대한 가르침 - 믿음에 이르는 길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부족한 부분입니다. 모든 믿음의 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매일 필요합니다.

어떻게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말씀에 가득한 살아있는 그리스도를 먹으십시오. 여러분이 그 영광스러운 사실과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임재에 사로잡히게 되면 하나님의 믿음이 여러분 안에서 솟아나오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로마서 10:17)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이렇게 간단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누구라고 합니까?   그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베드로와 함께 "당신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라고 말하십니까?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었습니까? 그분이 알게 해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것을 계시해 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내적인 계시입니다(an inward revelation).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나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1:27).

아들에 대한 강한 계시를 받을 때까지, 내적인 계시로 말미암아 당신이 항상 흔들리지 않고 튼튼히 서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주님의 일에 항상 풍성한 그런 자리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때까지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이 계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그리스어로 하데스, 곧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세계')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복음 16:18-19).

베드로가 반석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몇 분 후에 그는 너무나 마귀로 충만하여서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이 반석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그 반석입니다. 이를 확증하는 많은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분은 믿음의 열쇠 즉 매는 능력과 푸는 능력을 주십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이 사실을 확실히 하십시오.



열정으로 하나님을섬기라

한국이 낳은 세계적 생물학자 석주명, ‘나비박사’로 잘 알려진 그는 자기 스스로에게 무서울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학자였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삶의 끝에 이르기까지 오직 나비 하나만을 연구하기 위해 자기 일생을 바쳤지요. 평생 60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채집하였으며, 논문 한 줄을 쓰기 위해 나비 3만 마리를 만졌습니다. 그의 논문은 자신의 손과 발로 나비를 직접 만져가며 써내려간 ‘삶의 노동’ 그 자체였습니다.

2003년 S그룹이 각 언론사에 실은 광고에, ‘236억 달러를 벌어온 여권’이라는 제목으로 초록색 빛을 띄는 아주 낡은 여권사진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S전자 김 과장은 지난 한 해에만 여권을 두 번이나 바꿨습니다. 세계최고의 반도체기술로 유럽을 놀라게 하고, 미국을 공략하고, 중동에 디지털 바람을 일으키며 세계를 뛰어다녔습니다. 지난 2003년 벌어들인 외화는 모두 236억 달러! 올해도 S전자의 김 과장들은 세계를 뛰어다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루는 사람은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창의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신앙생활도 그 원리 자체는 다르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삶도 같은 원리입니다. 목적을 위해 열정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그 삶을 기억하십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열정은 성공을 위한 열정과는 다릅니다. 석주명 박사나 S전자의 김 과장들에게도 비범함이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저들이 감히 필적할 수 없는, 비교할 수 없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부활,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그것은 온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뉴스입니다.

부활은 교회로 하여금, 세상을 위하여 그리고 세상 안에서 선교하게 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19∼20절)” 제자들은 이 일을 들고 세상을 향하여 뛰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라기는,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에 뛰어들 우리에게 뜨거울 열정이 불일듯 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