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2010

인생의 가치와 존재목적(4) - 역사의 연대를 정하심

인류의 모든 족속을 혈통으로 만드사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의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사도행전 17:26-28).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혈통으로 만드사 땅에 거하게 하시고. 혈통이라 함은 한사람 아담의 자손이라는 입니다. 말씀대로 우리는 아담의 자손입니다. 사람과 원숭이는  혈통이 아니어서 사람과 같은 피를 가진 원숭이는 마리도 없습니다.

어떤 짐승도 사람과 같은 피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아시아 사람이나 유럽 사람, 아프리카 사람, 미국사람일지라도 피는 같습니다. 혈액형만 맞으면 아프리카 사람의 피나 미국 사람의 피를 한국 사람에게 넣어도 되고, 한국 사람의 피를 유럽 사람에게 넣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원숭이의 피는 사람 몸에 방울도 넣으면 됩니다.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저희의 연대를 정하셨다 것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끝이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영원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창세기 1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하시고 요한 계시록 21 1절에 내가 하늘과 땅을 바라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연대가 차면 끝나도록 만드셨습니다. 앞으로 인류의 역사가 년이나 년이 지나면 어떻게 같습니까? 지구는 말할 없이 생지옥이 것입니다.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히브리서 1:10-12).

지구는 말씀대로 결국 멸망할 밖에 없습니다. 일권 『하나님께로 가는 길』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연대를 정하시고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습니다’(사도행전 17:26).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연대 안에 지구에서만 살도록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습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시편 115:16).

하나님은 사람으로 땅에 살면서 땅의 것을 정복하라고 하셨지 하늘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달이나 화성, 목성 등에 위성도시를 만들어 놓고 이민을 가지는 못합니다. 하늘을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땅에서 살다가 하나님이 작정하신 연대가 차면 지구의 역사도 끝이 납니다. 거주의 경계를 한하신 것도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며 그분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기한 안에 목적이 있음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도서 3:1,2).

‘이 지구의 연대를 정했다’는 말이나 ‘기한을 정했다’는 말은 같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 말씀은 작정된 기한 안에 목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역사의 기간 안에 하나님의 목적이 없겠습니까? 역사의 목적도 있고 우리 각자의 삶의 목적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이나 역사를 운영하시는 목적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인류의 역사는 천국에 들어갈 백성을 준비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구원받은 사람들로 천국에 들어갈 백성이 다 준비되면 역사는 끝이 납니다. 마치 종달새가 둥우리를 만들고 알을 낳아 새끼를 까서 데리고 날아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듯이, 하나님이 작정하신 역사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이 지구는 더 이상 두실 이유가 없으므로 없애버리시는 것입니다.

본 건물을 짓기 전에 만든 가건물은 본건물이 완성된 후에 철거되듯이, 지금 우리가 보는 하늘과 땅은 가건물과 같아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백성이 준비되면 이 지구는 가건물을 철거하듯이 지금 있는 하늘과 땅을 없애버리시는 것입니다.

이 역사 속에 많은 사람이 나고 죽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역사 속에서 왔다가 언젠가는 갑니다. 그러면 역사 속에 우리 개인이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적도 역사의 목적과 일치합니다. 죄를 지으려고 사는 것도 아니고, 고생을 하거나 세상적인 어떤 재미를 보려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은 자기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정해놓으셨습니다.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은 역사가 존재하는 목적과 동일합니다. 곧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몇 십 년의 삶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알고 영혼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갈 준비를 위함입니다. 이 긴 역사 기간 안에 천국에 들어갈 백성이 완성되면 하나님의 목적이 다 이루어지고 역사는 끝이 납니다

사람의 영생을 얻으려 세상에 왔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셨는데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수박이나 참외 같은 과일이 있습니다. 여름 과일은 열량이 적으며,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므로 수분을 공급받으라고 수박 같은 과일 속에 물기도 많습니다. 그리고 부패하기도 쉬우므로 빨리 먹어 없애야 합니다. 가을의 열매는 겨울에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저장이 가능하며 밤 호두 같은 것도 있으며 겨울양식을 주십니다. 그것이 떨어지면 또 이듬해에 새 것을 주십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이치에 합당하게 잘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신 하나님이 사람에게만은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주셨는데, 무엇이든지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대상이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목이 마르면 갈증을 해소하는 물이 있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젖을 찾습니다. 젖이 있는지도 모르고, 젖 빠는 방법은 배우지 않았지만 젖을 찾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젖을 빨아먹고 싶어 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으며 그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편안히 안겨 빨 수 있는 젖을 엄마 가슴에 달아주셨습니다.

온도와 양분과 맛도 그 아이에게 가장 적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엄마 젖이지만 금방 낳은 아이와 백일 된 아이, 열 달된 아이가 먹는 젖의 영양이 각각 다르다는 연구보고가 발표되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異性)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짝이 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반드시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요구가 있으면 그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에게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이 있고, 영원한 세계가 있고, 영원한 진리와 영원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하고 완전하고 거룩한 그 세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려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고 영원한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음도 주신 것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그대와 살고 싶소”라는 노래가 있듯이 사람 속에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사람은 영생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인간 세계에서 영원한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열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요한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서 진리를 깨달으면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찾으러, 그 진리를 깨달으러, 그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왔습니다. 다른 것은 혹 잃어버리고 양보할지라도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영원한 생명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아마 앞으로 몇 십 년 안쪽에 이 세상에 한사람도 없게 됩니다.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곳에 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서 심판을 받고 그 다음에 영원한 곳으로 갑니다. 천국도 영원한 곳이고 지옥도 영원한 곳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는 곳이고 지옥은 세세토록 마귀와 함께 고통 받는 곳입니다. 빛과 어두움, 생명과 죽음, 진리와 거짓, 행복과 불행이 영원히 나눠지는 그 두 곳 중 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곧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음으로 천국에 가든지 영원한 생명을 잃음으로 지옥에 가든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여러분들은 영원을 어디서 보내시렵니까! 이 육신이 몇 십 년 사는 것을 위해서는 그렇게 애쓰고 고생하고 준비하고 그것은 당연한줄 알면서 왜 영혼을 위해서는 준비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몇 십 년은 영원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오늘 이후에 내일이 있듯이 금세 후에 내세가 있습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준비입니다. 영원한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러 왔고 그 길을 발견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인생의 가치와 존재목적(3) - 사람에게는 영적인 요구가 있음

사람에게는 영적인 요구가 있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목적을 위해서 지음받은 영혼이 나의 실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이 자기의 전부인줄 알고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간수를 합니다. 건강식품이나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고 조금만 아프면 약도 먹고 얼굴도 단장하고 주름살을 펴보려고 성형수술도 하고 육신의 치장은 잘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영혼은 있는지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부자가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고 자기 영혼에게 “영혼아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였을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누가 12:19-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의 요구는 물질적인 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짐승은 먹을 것이 있고 환경이 편안하고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고 살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육체의 조건만 이루어지면 이상의 요구는 없습니다.

사람은 육신적인 조건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가족이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훌륭한 문화 시설을 즐기고 산다면 행복할 같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육체 외에 영혼이 있어서 영적인 요구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요구는 육체적인 만족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인 갈등을 육신적인 것으로 해결해보려고 이상의 것을 추구함으로 온갖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라는 말씀대로, 사람은 (body) (soul) (spirit)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요구는 식욕, 성욕, 명예욕 등이고 혼은 마음, 생각, 정신 등의 활동을 말하는데 이러한 혼의 요구는 지식과 사랑, 그리고 고상한 사상 같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영의 요구는 신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 19절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짐승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원숭이가 사람과 비슷하게 흉내는 내지만 영적인 요구는 없습니다.

또한 영의 요구에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로마서 2 15절에 양심이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죄를 지으면 양심이 송사를 합니다. ‘이 나쁜 놈아, 남의 것을 가지면 안돼. 도둑질을 하면 안돼. 나쁜 짓을 하면 안돼’ 하며 죄를 지적하는 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그래서 양심을 마음에 새긴 율법”(로마서 2:15)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은 선을 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의 요구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도서 3:11). 육신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이고 육신적이며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지만 영은 영원하고 완전하며 신령한 것을 찾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처럼 되기 전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옛날 중국에 서태후라는 황후가 중국을 40 년간 통치를 , 북경에 인공 호수를 만들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바다와 같은 호수를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파서 만들었습니다. 옛날에 굴착기(포크레인) 자동차가 있지도 않았을 , 호수를 만들고 흙을 전부 파서 산을 만들고 거기다 엄청난 궁궐을 지어 놓았습니다.  
  
자금성은 옛날 중국 황제들이 살던 궁궐인데 안을 구경해 보니 방만 9999개라고 합니다. 방이 1개만 있으면 개인데 하나님만 개이고 인간은 개가 모자란답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자기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기 전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구원받으면 하나님처럼 되고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만족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적인 욕구가 있음을 알지 못하여 “영혼아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며 영혼을 육신적인 것으로 자꾸 달래는 것은 비단 부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우는데 ‘울지 . 사탕 줄께. 장난감 줄께’하면서 사탕을 입에 넣으면 너무 달아서 잠깐은 엄마 생각을 잊을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엄마를 부르며 울어서 사탕을 입에 넣어 주니 사탕을 뱉어 내고 장난감도 집어 던지면서 엄마만 찾는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를 만나 엄마 품에 안기기 전에는 마음에 평안과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세상의 온갖 것으로 자기 영혼을 달래봐야 죽을 때까지 달래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어리석은 자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어리석고, 육신의 요구를 만족시킴으로 영혼을 달래보려는 자도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것이 되겠느냐 하십니다. 사람은 년이나 년이나 것처럼 계속 쌓아 놓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밤이라도 영혼을 도로 찾아가실 있습니다.

대통령직을 물러난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평생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받을 테고,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대우받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부하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텐데, 년을 살며 자손만대로 물려줄 것인 엄청난 재물을 쌓으려는 것은 무슨 연고일까요?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것이 있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빌딩이 있으면 개를 갖고 싶고, 개를 갖고 있으면 개를 갖고 싶고, 신형자가용을 갖고 있으면 좋은 신형외제차를 갖고 싶고, 자가용 비행기 온갖 것을 갖게 되면 만족이 있을 싶지만 막상 그런 것을 가져도 만족은 없습니다.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아름다움과 부귀, 영광, 권세 모든  것을 몸에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도 행복하지 못했고 결국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런 일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무엇을 해봐도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 전에는 만족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나의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기 19:26).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사람이 늙어서 죽든지 병이 들어 죽든지 무슨 사고로 죽든지 죽으면 심장이 멈추고 그때부터 썩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예쁘거나 유명한 사람도 죽으면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육체의 가죽이 썩을 육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영혼인데, 사람의 영혼은 육체 밖에 나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도서 12:7).

영혼과 육신이 나누어지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육체는 흙으로 만들어졌으므로 흙으로 돌아가고(창세기 3:19) 영혼은 영혼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조차도 조금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점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없음이니라” (잠언 27:1).

늙고 병든 사람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 젊은 사람도 갑자기 죽을 수 있습니다. 오래 산다고 해도 불과 몇 십 년 안에 다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죽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이나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내 손이며 내 발, 내 몸, 내 얼굴 등은 모두 나의 껍질에 불과합니다. 건물 안에 사람이 살듯이 흙집 안에 영혼이 살고 있습니다(욥기 4:19).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는 말씀처럼 죽으면 영혼이 실제로 육체 밖으로 나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저는 죽었다가 살아난 네 사람을 만나보았습니다. 그 중, 목포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은 돌아가신지 이틀 후 장례식을 하기 전날에 살아났습니다. 그 할머니는 제게 자기가 죽었을 때 있었던 사건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또 한사람은 수원 가까운 반월에서 사는 57세 된 남자 분이었는데 병을 앓다가 심장이 멎고 죽었는데 자기의 죽은 시체를 자기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홑이불을 덮어 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우는 것을 꿈이 아니고 실제로 본 것입니다.

소련에서 40년간 의사생활 하던 한 사람이 환자들 중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있어서 만났습니다. 이 사람이 그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메모해 놓은 것이 신문에 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따르면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은 약 5분에서 15분 동안인데, 이 때 이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죽을 때 자신의 육신을 빠져나와 자신의 시체가 누워있는 것을 내려다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의사들도 죽었다가 살아난 이야기를 종합하여 한 이야기에 의하면 오토스코프 (autoscope-오토는 스스로란 말이며, 스코프는 본다는 말임) 곧 육체 밖에서 자기의 시체를 내려다보게 되며 주변에 누가 왔는지를 깨어난 후에 생생히 말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지난 번 SBS TV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프로그램에서 사후세계, 즉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얘기를 방영했는데 그것도 내용이 동일합니다. 죽음 건너편의 세계가 분명히 있고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