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2010

인생의 가치와 존재목적(1) - 하나님과 사람

하나님과 사람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편 14:1-3).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불과 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일생을 살다가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야 하지만 인생들의 삶의 모습을 세상에서 일도 많고 저마다 원하는 것도 참으로 많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번쯤은 스스로 삶의 가치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참으로 얻어야 것은 무엇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숙고해 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사는 동안에 하실 일도 많고 무엇인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수고하고 계실 것입니다.

분명히 사람은 세상에 무엇을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것은 사는 우리 육신이 어떻게 하면 먹고 사느냐 하는 눈에 보이는 현실적이고 육신적인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짐승은 먹을 것이 있고 자유롭고 편안한 환경이 있고 자기 짝이 있고 새끼 낳고 있는 육체적인 조건만 갖추어지면 만족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짐승과 차원이 다른 영적이고 영원한 것을 갈망하는 영혼이 있으므로 현실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을 주셨고 짐승이 가지지 못하는 지성도 주셨습니다.

지성을 가진 사람
나를 지으신 하나님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우리를 교육하시기를 땅의 짐승에게 하심보다 더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시는 이가 어디 계신가 말하는 자가 사람도 없구나”(욥기 35:10,11).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차가 지나갈 철로 가에 앉아 있는 개구리나 곤충들은 열차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지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아니라 이상의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지구에 살면서도 지구가 공중에 매달려서 시속 108000Km라는 엄청난 속력으로 우주를 달리고 있다는 , 우주가 일천억 내지 이천억개의 별로 만들어진 은하계가 있는데 그런 은하계가 일천억개 이상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과학의 힘으로 우주의 비밀도 점점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교육하시고 짐승은 따라올 없는 지성을 주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브리서 3:4).

집마다 지은 사람이 있고 자동차나 비행기도 사람이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면 지구와 태양을 만드시고 하늘의 수많은 별들, 웅장한 우주를 만드시고 우주를 운행해 가시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하나님을 더욱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편 14:1).

“어리석은”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이치가 어둡게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진리를 거스리고 거짓에 속아 참을 거짓인 알고 거짓을 참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엄연한 사실을 부인하고 자기의 미련한 생각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어리석은 중에 가장 어리석은 자는 바로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입니다.

집이 저절로 생겼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면 각종 나무와 꽃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공중의 나는 새와 바다의 각종 물고기와 온갖 짐승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주만물은 어떻게 저절로 생겨날 있겠습니까? 대우주는 살아 움직입니다. 아주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자, 위대한 창조주께서 지혜와 능력으로 우주를 설계하고 창조하여 능력으로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히브리서 1:3),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연고니이다”(시편 119:9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성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세계 속에 살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성공하는 확률은 바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관계를 유지하느냐의 여부에 좌우될 있으므로 세상에 살아가면서 성실하고 부지런한 자기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진실하고 유능한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일 것입니다. 진실하고 유능한 사람과 올바른 인간관계를 가짐으로 세상에서 자신의 생애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있는가 하면 인간관계를 잘못 가짐으로 생애를 실패로 마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러할진대 영원하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관계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것은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살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잘만 살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나 악한 사람도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비와 만물을 골고루 주시는 "(마태 5:45)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물을 먹고 입고 숨쉬고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밖에 되는 짧은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다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육신이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다음에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죽음 이후에는영원한 운명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혼을 가진 사람
사람은 다른 만물과 달리 영혼이 있습니다. 식물은 살았다는 것만 있는데 그것을 생혼이라고 합니다. 각혼이 없으므로 나무는 잘라도 아픈 줄을 모릅니다. 짐승은 생혼도 있고 각혼도 있어서 새끼를 알고 배고프고 아픈 압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한문에도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天地之間 萬物之中 唯人最貴)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지 만물 가운데 인간이 제일 귀하다는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을 가장 귀하다고 했을까요? 짐승은 년을 살기도 하지만 사람은 년도 살지 못하고 새들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고 물고기들은 바다를 마음대로 헤엄쳐 다니며 인간보다 멋있고 즐거우며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인간처럼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수고하고 고생하는 한심스러운 존재가 어디 있습니까? 인간처럼 악하고 더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날짐승은 이념과 사상 관계로 고통 받는 일도 없고 국경도 없으므로 새들은 어디든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있습니다. 들짐승도 뛰면서 산속을 자유롭게 뛰어다닙니다.

인간이 육체뿐이라면 오히려 짐승보다 훨씬 못한 점이 많습니다. 인간이 제일 귀하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영혼을 가리킵니다. 만일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영혼이 어디 있느냐? 원숭이가 진화되어서 사람이 것이지’라고 진화론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중국에서 공산당원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들이 배워서 주장하는 진화론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면 세계적으로 사람이 되어가는 원숭이가 하나라도 있든지,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형태라도 하나쯤 있어야 되는 아니냐고 이야기했습니다.

현대 과학에 의해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 고리가 거짓말임이 드러났습니다. 이제 진화론이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기 위해서 진화론을 주장합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영혼도 부정함으로써 ‘인간이 있느냐? 짐승과 같다. 그러니, 짐승처럼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인간을 타락시키는 마귀의 학설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악해졌으며, 비참하고 온갖 모순과 거짓이 충만한 가운데서 살아야 되었는가?

이는 바로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가치와 삶의 목적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거기서 모든 죄가 파생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신즉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편 14:2,3).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시지만 인간은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각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짐승이 진화되어서 사람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퇴화되어 짐승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짐승들을 보십시오. 코와 입을 땅에 대고 항상 먹을 찾지 않습니까? 위를 쳐다보며 하나님의 신령하고 영원한 세계에 이상과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존재인 인간이 타락하여 땅에 소망을 두고 그것만을 위해서 살게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천하게 되고 거짓되고 비참하게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아는 지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찾을 없게 것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종교가 있습니다.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으려는 행위입니다. 일본에는 800 가지나 되는 신이 있다고 합니다. 별별 것을 섬기는데 그것이 신이냐고 물으면 물론 신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섬기느냐고 물으면 어딘가 신이 있을 테니까 찾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자기 방법대로 신을 찾는 것입니다. 사람 속에는 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각을 상실해 버려서 사람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을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자이심을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계획과 비밀이 무엇인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계시로 주신 말씀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배워야 하고 성경에서 인생의 근본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
“하나님이 자기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7,28).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구에 생물이 있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셨습니다. 창세기 1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말씀에서 땅은 지구를 가리킵니다. 학교에서는 지구가 원래 불덩어리가 오래오래 타면서 용암이 솟아오르고 부글부글 끓는 과정이 있었다고 배웠는데 성경에는 그것을 혼돈이라고 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포기, 벌레 마리, 생명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공허‘라고 했습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불이 점점 식으면서 땅속으로 들어가고, 지구는 두꺼운 수증기와 구름으로 둘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름으로 지구의 의복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욥기 38:9). 수증기와 구름은 물이라고 있습니다.

물이 지구를 둘려있을 , 하나님의 신은 ,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운행이라는 말은 암탉이 알을 품고 있듯이 지구에 하나님이 새로운 창조를 하시기 위해서 포괄하셨다는 뜻입니다. 달걀을 깨보면 흰자와 노른자 밖에 없지만 암탉이 달걀을 품고 21일이 되면 병아리가 태어나듯이 지구에 생명을 주시려고 성령이 운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구에 사람이 있도록 하시려고 첫째날 빛을 주시고, 둘째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시고 궁창 아래의 물은 바다가 되고 궁창 위의 물은 투명체로 지구에 둘려 있었습니다.

지구에 처음에는 식물을 만드시고 식물을 만드신 다음 동물을 만드셨습니다. 식물은 동물을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식물이 있어야 동물이 살기 때문입니다. 꽃을 보시면 꽃이 아름다운 자기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각종 꽃들을 만드셨을까요?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꽃이 아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아가씨들이 머리를 예쁘게 단장하고 화장도 하고 귀고리와 목걸이를 하고 예쁜 옷을 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나들이를 가는데 보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아름답게 치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무에 탐스러운 열매가 맺혀 있는 것은 나를 먹어달라는 것입니다.  

식물이 식물을 위해서 꽃이 꽃을 위해서 만들어졌겠습니까? 보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꽃이 있고, 열매들은 그것을 먹을 있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있습니다. 쌀이 있습니까? 사람 먹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땅에 기는 모든 동물을 종류대로 만드신 후에 제일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동물과 식물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려면 식물도 있고 동물도 있어야 합니다. 만일 식물만 있고 동물이 없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소도 없고 말이나 , 돼지, , 물고기 아무것도 없다면 너무나 심심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은 잡아먹든지 부려먹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만드셨을까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말씀은 육체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한복음 4:24)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존재란 하나님처럼 신령하고 영원히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것에는 너무나 중요하고 심오한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으면 자기 자녀가 자기들을 닮았다고 하면 기분 좋아합니다. ‘아빠를 닮았다. 국화빵이다. 찍었다’고 하면 부모는 기뻐합니다. 만일 아기더러 ‘너는 옆집 아저씨 닮았다’고 하면 큰일납니다. 부모가 ‘나는 못생겼으니까 닮으면 되는데…. 옆집 아저씨가 생겼으니까 옆집 아저씨를 닮아야 되는데…’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자기 닮았다고 하면 좋아서 ‘나 닮았구나’하고 대단히 좋아합니다.  자녀는 자기의 분신이고 자기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어서 자기 생명의 상속자입니다. 자기를 닮은 자식에게 부모는 모든 것을 줍니다.  

사람은 자기 자녀에게 주고 싶어도 것이 없으면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을 주실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영원히 살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며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 고작 육신이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고 육신에 묻혀 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시편 49:15, 20).

사람이 존귀에 처한다는 말은 지극히 귀하다는 말인데 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위해서 지으신 영혼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얼마나 존귀한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영원히 살아서 영광을 누리게 하기 위한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만을 위해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짐승으로 나는 것이 좋을 뻔했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잠간 말씀드린 대로 ‘천지지간 만물 중에 유인이 최귀하다’(天地之間 萬物之中 唯人最貴) 말이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는 말도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문으로 신령 ()자에 ()자를 씁니다. 사람에게는 영이 있어서 길게 산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이 있어서 길게 있기 때문에 만물 중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거울을 보아야 자기의 얼굴을 있듯이 하나님을 알아야만 비로소 인간이 무엇인지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인간의 가치도 모르고 인간의 가치를 모르면 인간으로 살아가는 목적도 모르고 소망 없이 살아갑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있냐.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기 방법대로 아무렇게나 살게 됩니다.

여러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 죽인 ‘지존파’라는 20 초반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것을 보니 거의 새파란 청년들입니다. 아무 관계도 없는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짐승처럼 죽여서 토막을 내고 불에 태우는 시설가지 해놓고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기관총을 사들이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사람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 같습니다.

처음에는 오렌지족들이나 야타족들이 보기 싫으니 그런 놈들을 죽이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붙잡았습니다. ‘너희들, 남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죽이고서도 온전할 알았느냐’라고 호통 치면 머리를 숙이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꼿꼿이 들고 ‘우리가 평생 살아봐야 50 밖에 살겠소. 까짓껏 50 사나 미리 죽으나 그게 그거 아니요’라고 도리어 큰소리를 쳤습니다. 말인즉 그렇습니다. 스물 살이니까 70세까지 산다고 경우 50년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사람의 생각도 그럴 수가 있겠다. 살다가나 먼저 가나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납니까? 결코 아닙니다. 나중에 지존파들은 전부 사형집행을 당했습니다.

다음에 ‘막가파’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살다가 가는 , 이런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가치관이 없고 스스로 천해지고 악해져 그런 엄청난 죄를 짓고도 태연한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존재의 가치가 귀한 모르면 남의 생명도 파리 목숨처럼 마구잡이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귀함을 알지 못하는 데서 모든 죄가 파생되는 것입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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