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스라엘 땅에 돌아와 그 땅을 개척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은 그 옛날 자기 조상들이 살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입을 맞추고 흙을 어루만지며 황무지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쓸모 없는 황무지를 아랍 사람들에게 사들이고 죽을 고생을 하며 농사를 했으나 여러 번 실패를 거듭했다. 가을에 겨우 조금 거두어 들인 곡식마저 밤에 아랍 사람들이 탈취해 가기도 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보이고 실의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 유럽에 있는 유대인 재벌들의 지원을 받아 그들은 다시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주 농장을 건설했으며, 농장을 만들어 다음에 오는 유대인들의 터전을 마련했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가 끝나고 영국군이 철수하는 날, 텔 아비브에서 벤구리온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자 바로 그 다음 날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이 연합한 팔레스타인 해방군이 이스라엘에 공격을 개시해 왔다. 이것이 제 1차 중동전(中東戰)이었다.
군대도 조직되지 않은 이스라엘이 처음에는 고전했으나. 1949년 6월 국제연합이 개입하여 정전(停戰)이 성립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분할된 토지의 경계선을 넘어 광대한 아랍인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75만 명의 아랍인들이 그들의 땅을 빼앗기고 난민 신세가 되었다.
그 때로부터 네 차례의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인들에게 더 이상 돈을 주고 땅을 살 필요 없이, 그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67년 6월에 있었던 "6일 전쟁"에서는 시나이 반도에서 골란고원까지, 전쟁 이전의 3배 이상이나 되는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약 2,600년 전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비로소 이루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30:3).
건국 초기에 60만 명이었던 유대인 인구는 3년 뒤에는 두 배 이상으로 증가되었고, 1973년에는 270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1987년에는 350만 명, 그리고 지금은 5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이스라엘이 독립된 뒤부터 전 세계 유대인들은 계속 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들었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 (이사야 60:4,8).
1948년에 740대의 비행기가 이스라엘 자손을 가득 싣고 그들의 땅으로 날아들어 왔다. 지금부터 2,700년 전에는 "비행기"라는 어휘가 없었기 때문에,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 같이 날아올 것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인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이스라엘)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拘留)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이사야 43:5,6).
세계 중앙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사방(四方)은 세계전역을 뜻한다. 그 가운데 동방이나 서방은 아시아나 유럽, 아메리카 지역이어서 유대인들이 귀환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유대인이 많이 사는 지역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곧 옛 소련은 유대인들의 본국송환을 방해했다.
인두세(人頭稅)를 부과하는 등의 방해공작으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소련에게 무역상의 최혜국(最惠國) 대우를 해 주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유대인의 본국 송환을 도왔다. 식량을 싼값에 수입하는 대가로 유대인의 출국을 허용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북방(北方)은 모스크바이다. 또한 남방(南方)에 유대인이 거주한 곳이 에티오피아이다. 솔로몬왕 당시에 스바 여왕과의 교류로 인해 에티오피아에 이주해 살아온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흑인이 다 된 채 그 땅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친미(親美)국가였는데, 군사 쿠데타로 인해 갑자기 친소(親蘇)로 전향한 바람에 자유로이 귀국치 못한 유대인들이 에티오피아에 남아있었다. 관련 내용은 앞에서도 살펴본 바 있다.
# 중앙일보 1971. 4. 6.
"박해(迫害)속의 소련 유대인. 3백 20만명「귀향(歸鄕)」염원. 적성국민으로 취업 등에 차별. 출국 허용설 계기로 본 분포와 현황 - 최근 소련 정부는 앞으로 2,3년 안에 약 25만~30만 명 정도의 유대인에게 출국 '비자'를 허용할 방침…"
# 중앙일보 1973. 4. 21.
"미국 밀과 바꾸는「유대인 이민세(移民稅)」(소련)흉작 노린 닉슨 압력 주효(奏效) - 무역협정 미끼에 (소련)굴복, 시베리아개발 투자유치 위해서도 소(蘇) 양보 불가피"
# 조선일보 1974. 12. 15.
"대소(對蘇) 최혜국(最惠國) 법안 통과. 미 상원 유대인 자유이민(自由移民) 보장 조건부로"
# 동아일보 1985. 10. 28.
"소(蘇). 유태인 40만명 출국허용. 프랑스가 비행기편 제공. 고르바초프 '미소 정상회담 전 작업 개시'. 소·이스라엘 외교기구 설치 합의"
[신문기사]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이사야 43:6).
# 조선일보 1990. 2. 1.
"유대인 신(新) 엑소더스… ’80년대 들어 줄곧 연간 1천 명 내외에 머물렀던 소련 내 유대인들의 이주는 지난해에 1만 2천 명을 기록한데 이어, 올 들어 1월 한 달 동안만 1만 명이 쏟아져 들어 왔으며, 연말까지 이 숫자는 모두 15만명 선에 달할 것으로 전망… 소련내의 유대인 1백만 명 가운데 70에서, 80만 명이 ’94년까지 귀국할 것으로… "
# 신앙계 1990. 6.
"소련 유대인들의 엑소더스 - 금년에 23만 명의 소련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할 것이며 향후 3~5년간 60~70만 명이 이주할 것이라고 이스라엘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 세계일보 1991. 1. 14.
"유대인들 이스라엘 이주(移住) 러시 - 「신판(新版) 엑소더스」- '아랍권에 대항'… 작년 20여만 명 불러 들여"
# 북방저널 창간8호 1992. 3.
"핫 잇슈 - 소련유태인 엑소더스. 약속의 땅 이스라엘로"
[신문기사]
#부산일보 1985. 1. 7.
"「검은 유태인」현대판 출애굽기. 에티오피아 饑餓(기아)유태인 이스라엘 공수 「모세作戰」완료. 지난해 봄부터 치밀한 극비계획. 人道的차원서 西方 협조로 성공."
# 경향신문 1985. 1. 11.
"검은 猶太人 出에티오피아. 現代版『엑소더스』 세계 이목 끈 이스라엘「모세작전」 작년부터 극비리 7천명 空輸."
# 한국일보 1991. 5. 26.
"이스라엘, 유대인 脫에티오피아 作戰. 美 반군 등과 중재 벌여 측면 지원. 萬8천명 空輸 21시간만에 완료."
# 세계일보 1991. 5. 26.
"流血의 에티오피아 유태인 大脫出"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이사야 43:6).
하나님께서 "보내라"고 명령하시는데 누가, 무슨 수로 유대인의 귀국을 막겠는가? 결국 그들은 한 명도 빠짐 없이 다 이스라엘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다른 민족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들이 세계도처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고, 아직은 "그 땅에 평안히 거하고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될 때"(에스겔 39:26)가 못되었기 때문에 귀국을 미루고 있을 뿐이다. 중동(中東)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세계평화와 세계연방정부 설립을 위한 준비가 완료되면 이스라엘은 세계의 부(富)가 집적된 명실상부한 세계 중심이 된다.
"전에는 내가 그들로 사로잡혀 열국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토(故土)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異邦)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에스겔 39:28)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