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2012

혀가 아닌 마음으로 대하라

말을 정말로 잘하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다. 대화를 통해서 목적한 바를 달성하는 사람이다. 성공한 사람 가운데 달변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대신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던진다. 그리고 질문을 통해서 대화의 질도 높이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화제를 이끌어 나간다.

성공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한 순간 "이 사람은 참 진실 하구나"하는 걸 느끼게 된다. 세치의 혀로 대화를 하지 않고 마음으로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 육체나 영혼이 깨끗해 지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때가 덜 묻은 순수한 사람을 만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기에 성공한 사람 가운데 의외로 순수한 사람이 많은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사람을 이용 하거나 속이려 들지 말아라 속인 사람은 금세 잊어버려도 속은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한다. - 좋은 글 중에서 -

은혜에 들어감.

바울은 칭의의 결과를 현재적인 측면에서 하나님과의 화평, 과거적인 측면에서 은혜에 들어감, 미래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총 망라하여 은혜를 덧입는 것입니다. 특별히 은혜에 들어감이란 말은 마치 어느 공간 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깁니다.

과거 이방인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고, 일반 백성이나, 심지어 제사장들도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데 이제 믿음으로 의롭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담대히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죄로 인해 원수되었던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때문입니다.

의롭게 된 우리들은 이제 환난을 당해도 불행으로 생각하거나, 운명주의자가 되거나 절망가운데 머물지 않습니다. 환난을 나에게 꼭 필요해서 주신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내하며 연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 오히려 즐거워합니다. 당신은 환난을 분노와 비탄으로 반응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서 훨씬 더 풍성한 복을 가져올 것으로 믿고 감사하십니까?

일용할 양식:기독대학인회(ESF) 제공

♥믿음의 부자

어느 전도자가 길을 지나다가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 앞에 섰습니다주머니를 뒤졌습니다만 마침 그에게는 한 푼의 돈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차마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속 깊은 연민 때문에 전도자는 손을 내밀어 걸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면서 말했습니다. “형제여마침 내게 준비된 것이 없군요그러나 당신의 너무 춥게 보이는 손을 잡아 드리고 싶소부디 용기를 내서 일어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새 생활을 시작해 보십시오. 걸인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나에게 적선한 모든 이들보다 더욱 값진 선물을 주셨습니다.

남에게 소망을 주면 자기도 소망을 얻게 되고
남을 사랑하면 자기도 사랑을 받게 되고남을 성공시키면 자기도 성공하게 되고남을 축복하면 자기도 복을 받게 됩니다그러나 남을 실패하게 만들면 자기도 실패하게 되고남에게 고통을 주면 자기도 고통을 당하게 되고남을 저주하면 자기도 저주받게 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에 서서 이웃을 사랑하고 축복하고 구제하며 성공시키는 ‘믿음의 부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딤후2:22)

히브리서 3장1절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고 말씀합니다.
말씀 그대로 우리는 오랜 시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쁜 현대 도시인의 삶을 살기 때문에 이 일이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여유가 많아서 이런 명령을 했을까요?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특별히 히브리서를 받아 읽는 성도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 다니며 노숙인처럼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궁핍과 핍박을 견뎌야만 했던 사람입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를 깊이 묵상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첫째, ‘너희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가장 낮은 자리로 인도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철학과 종교도 십자가만큼 인간을 낮은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보게 된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아르키메데스 원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물이 가득한 욕조에 몸을 담그면 몸의 부피는 흘러넘친 물의 부피와 같습니다. 흘러넘친 물의 양을 보면 나 자신의 몸의 부피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죄의 결과 흘러넘친 물의 양이 어떠합니까? 그 물의 양은 상상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왜요? 우리 죄의 결과가 우주보다 크시고 온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가 죽으시는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는 우주보다 더 큰 것입니다. 우리가 설사 느낄 수 없어도 깨닫고 알아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죄의 부피’는 진실로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십자가는 우리 자신이 어느 정도로 죄인인지를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 어느 누구도 정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한없이 겸손하게 합니다.

둘째,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늘보다 땅보다 더 큰 우리의 죄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셨습니까? 아르키메데스의 원리가 또다시 적용됩니다. 흘러넘친 물의 양을 보십시오. 우리가 받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물이 흘러넘쳤습니까? 온 세상보다, 온 우주보다 더 크신 분이 죽으셨습니다.
R C 스프라울은 “예수님보다도 더 비싼 가격을 인간에게 붙인 분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철학도, 어떤 종교도 기독교 복음보다 더 비싼 가격표를 인간에게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 앞에 서면 어떤 인간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을 향해 오늘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우리가 서야 할 자리는 바로 이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의 Daily Bread는 (http://blog.naver.com/paul_jhkim)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