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2009

영분별의 은사 (5)

악령의 존재나 종류를 분별하는 방법
여기에는 자연적인 방법과 초자연적인 방법 즉 은사에 의한 방법이 있다.

1. 자연적인 방법
축귀 사역을 위해 기도하는 중에 어떤 사람의 외부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하여 악령의 존재를 분별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눈동자가 완전히 돌아가서 흰자위가 보이는 경우, 또 어떤 사람은 갑자기 앞으로 비틀거리며 보통의 기침이 아닌 발작적인 기침을 해대기도 한다. 그러면서 입으로 거품을 내뿜으면서 어떤 것을 기침으로 토해 내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의 경우 손이 뻣뻣해지며 허리가 활 모양같이 휘어지기도 한다.

또한 이상한 소리를 통하여 분별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바닥에 쓰러져서 짐승 같은 괴성을 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너를 미워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너를 미워한다," "너는 우리를 결코 쫓아내지 못한다"라고 악을 쓰면서 소리를 지른다. 어떤 목소리가 "이 사람은 내꺼야"라고 소리지르기도 한다.

기도를 받는 사람에게서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면 대부분의 경우 귀신의 장난이며 축귀가 필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위와 같이 극적이고 분별하기 쉬운 현상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정신분열증(schizophrenia) 환자의 경우와 같이 귀신의 장난인지 심리적인 현상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애매한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쫓아내는 일만큼 낭패스러운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귀신을 쫓는 시늉을 하여 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영악한 귀신이 잠복하여 존재를 위장하더라도 초능력적으로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교회에 주셨다.

2. 영 분별의 은사에 의한 방법
영 분별하는 은사는 두 가지 수준으로 나타난다.

(1) 첫 번째 수준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 귀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한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많은 경우 은사를 가진 사람은 내담자에게 귀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꿈, 환상, 느낌으로 강하게 확신하며 이것은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내담자에게 귀신이 있는 경우 본인의 몸에 어떤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2) 영들 분별함의 두번째 단계에 있는 사람은 단순히 귀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뿐만 아니라 귀신의 종류까지 아는 경우이다. 두 번째 단계의 은사를 가지면 유익한 점이 상당히 많다. 귀신의 종류를 알면 귀신의 이름을 불러 축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귀신이 어떤 죄악을 발판으로 해서 들어왔는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내담자를 보다 잘 치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 귀신의 경우 우리는 우울증이 시작한 원인을 규명하여서 기도해 줄 수 있다. 만일 마녀나 힘이 강한 귀신의 경우에는 사교로 인해 귀신이 들어온 경로를 규명하여 내담자에게 사교에 빠진 죄를 회개하고 그로 인해 들어온 귀신의 존재를 부인하게 하며 다시는 그러한 죄악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할 수 있다.

영 분별의 은사는 전쟁을 치르는 군사에게 적의 규모나 작전을 알려 주는 고급 정보처럼, 사단의 왕국을 쳐부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유익한 은사이다. 그러나 영적 전쟁의 경우 완강하게 대항하는 사단의 세력들이 광명의 천사로도 가장하므로(고후 11:14), 정확한 분별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적의 역 정보에 타격을 입듯, 말썽을 부리고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이 하는 말이 귀신의 말인 줄 몰랐다(16:16-18). 점치는 귀신이 바울에게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17)라는 너무나 지당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말이 지나쳐 하나님의 영광의 아니라 사람인 바울의 영광을 나타내었고 또 마음도 괴로워서 사도 바울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귀신의 장난인 줄 알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쫓아낼 수 있었다(18). <구요한 목사>

영분별의 은사 (4)

1. 성경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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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선지자들 속에서 역사하는 거짓의 영을 알아맞춘 선지자 미가야(대하 18: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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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 예수님께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요청한 베드로의 배후에 역사하는 영의 정체를 아신 예수님"(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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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의 상태와 생각을 알아맞힌 예수님( 9:4; 13; 15:8; 1:47; 2:25).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9:3-4).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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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탄의 책동으로 헌금을 속인 사실을 안 베드로(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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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돈 주고 사겠다는 마술사 시몬의 마음 상태를 안 베드로(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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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하나님의 종인 것처럼 말했지만 점치는 여종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귀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바울( 16:16-18).



2.
임하는 방법 

. 불쑥 생각으로 들어오거나 그냥 알게 되는 경우  - 물론 성령의 역사이지만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쑥 생각이 들어오거나 그냥 알게되는 경우이다. 언젠가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 중에 그 사람이 자기의 은사와 지식을 자랑하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필자는 갑자기 "저것은 거짓말이야"이라는 생각이 쑥 들어왔다. 물론 필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하나님이 영을 분별해 주신 예라고 할 수 있다.

. 마음의 부담이나 느낌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의 상태를 아는 경우이다. - 언젠가 어떤 형제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초창기에 영 분별의 은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이므로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그 형제가 무엇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마음의 상태가 나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것도 전달된다. 언젠가 어떤 자매를 위해 기도하는데 내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그 자매를 기뻐하시는 것이 영으로 나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주시는 영 분별의 은사이지 독심술이 아니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사람을 한 두 번 보면 성격이 어떻고 어떤 말을 들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물론 사람도 영적인 존재이므로 보지 못하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는 능력이 있겠지만 이것은 성령이 주시는 것과는 다르다.

. 꿈이나 환상을 통해 - 필자의 경우 악령의 역사나 존재에 대해서는 꿈이나 환상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꿈으로 오는 경우는 마귀의 어떤 나쁜 계획을 경고할 때 자주 온다(2:12, 13 참조). 꿈자리가 사납고 흉흉할 때는 반드시 그 다음날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경고해 준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당했지만 이제는 미리 보호하고 방어하는 기도를 하여 재앙이나 사고를 피해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어떤 귀신이 붙어 있는 경우에는 환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어떤 아이의 모습을 보니 입이 축 처져있고 표정이 다소 일그러져 있었다. 왜 그런가 하고 기도했더니 그 아이의 오른쪽 머리와 어깨 사이에 어떤 귀신이 붙어있었다. 가만히 그 아이에게 손을 얹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더러운 것아 썩 물러가라"고 했더니 금방 그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서 귀신이 보인다고 해서 함부로 말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킨다. 자기에게 귀신이 붙어있다는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지나치게 뚱뚱한 어떤 아이에게 귀신이 붙어있었다. (비만증은 귀신의 장난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험이 없는 이 형제는 그 아이의 부모에게 "당신 아이 살찌게 하는 귀신이 붙어서 그러니 귀신 쫓아야 한다"고 직언해 버렸다. 그 부모는 당연히 당황하여 말을 하지 못했디.

그러므로 이런 때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만일 그 사람이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만일 상담 중이라면 이미 내담자의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이므로 부드럽게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축사에 임하는 것이 좋다<구요한 목사>

영 분별의 은사 (3)

1.조나단 웨드워즈가 제시하는 영 분별의 방법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이면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미국의 제 일차 영적대각성 운동의 지도자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요한일서 41절을 본문으로 하는 설교를 통해 영 분별의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성령의 능력이 풍성하게 역사하는 곳에는 사탄의 가짜 역사도 활개를 치기 때문에 교회는 이런 것들을 분별할 원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첫째 모든 것을 쉽게 믿어서 이상한 영적인 현상이 나타나면 바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하고, 둘째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이 세상에서 활약하기 때문에 가짜들이 많으므로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과연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가, 내주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가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임을 증거하는 독특한 성경적 증거 5 가지를 제시했다 ("The Distinguishing Marks of the Works of God,"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Ⅱ (Edingburgh: Banner of Truth,1992)

첫째 그 사역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시고 예루살렘 성문 밖의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구원자라고 복음이 선포하는 진리를 확인하고 그 마음이 이 진리에 더욱 충실하도록 하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확실한 표식이다.

둘째 운행하고 있는 영이, 죄를 장려하거나 짓게 하고 인간의 세상적인 욕심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탄의 왕국의 이익에 반대되게 역사한다면, 그것은 가짜 영이 아닌 진리의 영임을 증거하는 확실한 표식이다.

셋째 역사하고 있는 영이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을 더욱 귀중하게 여기게 만들고 진리와 하나님의 일에 뿌리박게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심이 분명하다.

넷째 영을 시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6절 마지막에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에 대한 호칭을 통한 것이다. 이 말은 진리의 영과 그것을 모방하는 미혹의 영의 두 가지 상반된 인격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영이 진리로 이끌면 그것은 진리의 영의 사역이고 어두움과 잘못으로 인도한다면 미혹의 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영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영이라면, 그것은 성령이심을 증거하는 확실한 표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집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외적인 현상이나 분위기가 내 마음이나 내가 속한 단체의 것과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과연 그런 집회에서 에드워즈가 말한 이 5가지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다.

2. 잘못된 분별
생소한 영적 현상이나 체험을 외양만을 보고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영 분별이라기 보다는 '의심'불신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많은 경우 "기적은 사도시대에 끝났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적은 모두 사탄의 장난이다"라는 기적종식론에 젖어있는 사람은 그런 것들을 보면 금방 사탄의 장난이나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의심한다.

또한 시기심이 발동할 경우에도 그렇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사도들을 핍박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럴듯한 이유를 대었지만 이면에는 시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27:18; 5:17). 필자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직후 잘 아는 어떤 형제에게 안수하고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그 형제가 "의심하고 시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쑥 들어왔다. 이 형제는 한편으로는 내가 받은 은사를 의심하고 다른 한편으로 시기했던 것이다.

결국 오늘날 기적행하는 은사들, 생소한 영적 현상이나 체험에 대한 인정 여부는 잘못된 신학으로 인한 편견과 무지, 의심과 시기, 기득권 유지라는 집단이기주의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영 분별이 아니다<구요한 목사>

영분별의 은사 (2)

일반적인 영 분별의 방법
어떤 말이나 행동의 배후에는 사람, 사탄 및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고 있으므로 영 분별의 은사가 없더라도 신자들은 영 분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사람의 생각, 마귀의 충돌질에 빠져 자신의 형편을 어렵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신자들에게 모든 영을 믿지 말고 시험할 것을 권고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

성경에는 보통의 신자들도 영 분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한다.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금식한 후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했다. 처음에 돌이 떡이 되게 하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4:3-4).

그러므로 신자들은 말씀을 잘 알아야 한다. 말씀이 신자들의 인도자요 영 분별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기록된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아무리 그럴 듯 하더라도 사람의 영이 아니면 마귀의 영이 역사하는 증거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첫 번째 유혹에 실패한 사탄은 두 번째에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유혹했다.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4:6).

핵심은 이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시편 91:11, 12에 보면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너도 한 번 그렇게 해보라.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너의 묘기에 감동되어 너를 높일 것이다"라고 유혹한 것이다. 사탄은 성경에 "기록하였으되"라고 유혹한 것이다.

이처럼 마귀도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성경은 무엇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관심을 기록하여 영광 받기 위해 기록한 책이다. 성경 구절의 해석은 하나님의 뜻을 살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지 않고 어느 한 구절만 드러내어 이기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말씀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 기록되었으되"로 응답하셨다.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4:7). 물론 하나님은 자녀들이 곤경에 처해있을 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도와주시지만 그런 도움을 유도하기 위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밝혀주신 것이다.

비록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나 의도에 맞지 않게 해석하고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사람의 영, 사탄의 영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첫째 신자들은 무엇보다 말씀을 많이 읽고 잘 알아야 하고, 둘쩨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말씀을 오용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많이 읽고 듣고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분별력이 증대될 것이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5:13-14).

또한 건전한 신학의 바탕 위에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들은 성경의 한 두절이나 일부를 무리하게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해왔다. 그러므로 성경이 지지하는 건전한 성경해석법에 의해 성경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신자들은 정통 교리와 건전한 신학을 배운 목자들의 인도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 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이 구절은 신자들은 내주하는 성령을 통해 이단과 사이비를 분별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성령이 주시는 생각은 생명과 평안에 이르지만 육신의 생각은 고통과 사망에 이른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6).

육신의 생각 즉 사람의 죄악된 생각, 이를 통해 마귀가 역사하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불안, 초조, 두려움을 야기시킨다( 8:15). 그러나 성령이 주시는 생각은 자유, 평안, 기쁨을 가지게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17).

성령이 우리에게 사역이나 소명에 대한 어떤 부담을 주실 때, 우리의 마음이 위축되고 의심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기도를 통해 강한 확신, 기쁨 또는 평안이 넘치게 하신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늘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그것이 성령의 사역인 경우 내 영과 내 심령이 그것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3. 열매로 분별하라.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지 않은 어떤 생소한 영적 현상이나 체험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생소하고 이상하면 성급하게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혜를 성경에 기록하셨지만(딤후 3:15-17), 구체적이고 자세한 것까지 다 기록하신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면서 기도의 여러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언제, 어떤 것을 기도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형편에 따라 또는 성령의 개인적, 구체적 인도에 따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일어날 수 있는 영적 현상과 체험을 모두 다 기록한 것은 아니다. 성경의 예는 "예증적인 것이지 철저한 것이 아니다"(illustrative, not exhaustive).

그런 경우 그것의 배후에 있는 영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성경은 좋은 방법을 제시한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7:17-20).

어떤 집회에서 초월적인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서 즉시 하나님의 영의 역사라고 믿지도 말고 동시에 어떤 생소한 영적 현상이나 체험이라고 해서 외양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로 인해 맺어지는 열매로 판단하라는 말이다. <
구요한 목사>

영 분별의 은사 (1)

1. 정의 -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디아크리세이스 프뉴마톤)”(고전 12:10).

은사로서의 영 분별은 일반적인 영 분별의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은사로서의 영 분별은 다른 기적행하는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이 특정한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영의 정체를 알게 해주시는 은사이다. 몇 가지 정의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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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교회에서 개인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의 배후에서 동기를 부여하는 영들을 분변하도록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인들에게 주신 초자연적인 인식의 은사이다(David Pyt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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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분별의 은사는 하나님이 교회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인데, 이 은사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행동이 실제로 하나님, 사람 또는 사탄의 역사인지의 여부를 확신 있게 알게 한다(C. Peter Wa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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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분별의 은사는 계시된 진리와 그 진리로부터 도출된 원칙들에 비추어서 진리와 비진리를 분석하는 능력이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본 이 은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다(Bobby Clinton).

언젠가 어떤 사역을 시작하려고 기도했더니 마음에 '곧 시작하라'는 내적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고 초조했다. 즉시 감을 잡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거짓의 영은 썩 물러가라"했더니 분명하지는 않지만 ', 히거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금방 마음에 평강이 임했다. 악한 영이 하나님 행세를 한 것이다.

성경에는 영을 시험하다(요일 4:1), 영을 분별하다(고전 12:10)는 말을 사용한다. 시험하다는 말은 도키마죠인데 "나누어 분리시키다, 식별하다, 구분하다"는 뜻이다. 분별하다는 말은 디아크리시스(명사), 디아크리노(동사)인데 "나누다, 분리하다, 판단하다, 차별하여 배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영을 시험하고, 분별한다는 말은 영의 종류를 판단하여 구분한다는 말이다.

2. 영의 종류  - 영 분별의 은사가 있든 없든 신자들은 영을 분별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말이나 행동의 배후에는 사람, 사탄 및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의 영 - 사람이 하는 말 중에서도 정직한 말이 있고 거짓말이 있다. 이것을 제대로 분변하지 못하면 낭패를 당한다.

가나안의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기세등등해 있었다. 그러자 기브온 거민들은 자기들도 멸망당할까봐 두려워 멀리 사는 족속임을 가장하고 화친 조약을 청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외모와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과 화친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은 진멸의 대상인 가나안 족속들이었다.

하나님은 진멸의 대상인 가나안 족속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그들과 어떤 계약도 맺지말고 모두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여호수아는 그만 깜빡 속아서 그들과 화친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조약을 취소하려했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은 것이기 때문에, 만일 취소하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들을 살려주었는데 그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살면서 이방신을 섬기고 죄를 짓게 하는 가시가 되어버렸다( 9).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9:14-15). 여호수아와 무리들은 기브온 족속들이 굽실거리고 나오니까 우쭐해져서 여호와께 물어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화친 조약을 체결했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사람은 교만, 욕심 등의 죄가 끼일 때 판단이 흐려지고 미혹당하기 쉽다.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3:10).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5:2).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4).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영 분별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지배하는 것들이 많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23:16).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지식과 과학이 하나님 행세를 하는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의 이성을 하나님 대신 섬겨서 정확무오하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오류가 있는 인간의 말로 격하시킨다.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피 공로를 부인하는 자유신학, 신신학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더 있다. 기록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마귀와 귀신들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오늘날에도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귀신을 좇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면 틀린 주장이라고 반대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 또한 사람의 말이다.

이런 주장은 인간이 만든 온갖 신학으로 성경이 말하는 축귀를 부정하면서 말씀의 메시지만 전달하는 것이 교양 있고 바른 교훈이라고 가르쳐 마귀의 존재를 은닉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마귀의 영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다는 말을 하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16:22)라고 간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영의 정체를 아시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16:23)라고 책망하셨다. 비록 베드로가 말했지만 사탄이 베드로를 충동질하여 그런 말을 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미혹당하지 말라는 구절들이 많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4-5).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이 1:7).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미혹하는 사탄의 고단수의 궤계를 분별하기 위해서 신자들은 말씀과 성령에 의해 영 분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문명 세계에서 사탄의 미혹은 겉으로 드러나기에 우스꽝스럽고 흉악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 교만을 그럴듯하게 자극하고 만족시켜주는 방법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사탄이 하와와 아담을 타락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너희도 하나님같이 된다"는 교만을 부추겨서 하나님의 지엄하신 명령을 왜곡하고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금지된 실과를 먹으면, "네가 정녕 죽으리라"( 2:1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와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3:3)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챤스를 잡은 마귀는 흉악하게 흰 이빨을 드러내고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3:4)라고 단언함으로써 인류를 타락시키는데 성공했다<구요한 목사>

예언의 은사 5

예언의 은사와 교회 행정
K
는 어느 집회에서 영력 있는 목사의 안수를 받아 영안이 열리고 예언의 은사를 포함한 많은 은사를 받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출석하는 M 교회의 L 집사가 남선교회 회장으로 남선교회를 주재하는 환상을 보았다. 이때만 해도 개척교회인 M 교회에는 남선교회가 조직되지 않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남선교회가 조직된다면 L 집사가 회장으로 선임될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K
는 자신의 환상을 담임목사에게 전했다. 자신이 그런 환상을 보았으니 빨리 남선교회를 조직하여 L 을 회장으로 앉히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담임목사는 이전에 섬기던 교회에서도 이런 폐해를 익히 보아왔던 터라 일언지하에 K의 제의를 거절하고, 설교시간을 통해 사적인 예언을 통해 교회의 행정에 간섭하려는 K를 책망했다. 이후 K는 이런 일로 인해 담임목사와 수 차례 부딪친 후 교회를 떠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되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예언은평신도의 것이든 목회자의 것이든분변되어야 한다.

그러면 교회의 행정이나 정치가 과연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는가?

결론을 먼저 말하면 신약의 교회에서조차 교회정치나 행정의 중요한 결정은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의 장로들에 의해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교회를 개척할 때마다예를 들어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아, 비스디아 안디옥의 교회에서기도하면서 장로들을 먼저 택했다. "각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 14:23).

에베소 교회에서도 장로들이 있었고( 20:17; 딤전 1:3; 딤전 5:17-21). 예루살렘의 교회에도 장로들이 있었다( 15:2, 4, 6, 22, 23 참조). 더군다나 신약의 각 교회에는 장로, 감독자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다.

물론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나 선지자들직책이 활발하게 활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실제로 교회의 정치나 행정에 직접 개입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15:32 이하). 그들의 기능은 권장 사항에 불과했다. 실제적인 교회의 정치나 행정은 장로들에 의해 운영되었다(벧전 5:1이하).

물론 이런 장로들의 대부분은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딤전 4:14).

그러므로 교회의 비전이나 방향 설정 또는 중대한 결정 사항, 교회 지도자의 죄를 드러내는 것과 같은 예언은 일단 사적으로 지도자들에게 고하고 공개 여부를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구요한 목사>


예언의 은사 4 - 2

5. 목회 상담의 통찰력을 제공한다  - 어떤 교인의 집을 심방하기 전에 새벽기도 때 받은 말씀을 전해주었다. 필자는 교우의 집에 심방갈 때는 새벽기도 때 충분히 회개하여 마음판이 깨끗해 있을 때 그 사람들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적어서 전한다.

전할 때 미리 해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 . . .을 위해 주시는 말씀을 적어보았습니다. 좋은 말씀은 아멘으로 받으시면 되고 혹시 책망하시는 말씀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채찍으로 생각하고 받으셔서 고치거나 회개하시면 됩니다. 받으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여 ""라고 하면 전해준다.

그날 그 집사에게 주신 말씀은 "너는 성격이 강하고 고약하니 고치도록 하라. 너는 성격이 강하고 고약하니 고치도록 하라 . . ."였다. 나는 혹시나 언짢은 표정을 짓지 않을까 저으기 염려했는데 그 집사는 "맞아요, 저는 그 성격을 고쳐야 해요. 목사님 말씀 잘해주셨어요"라고 대답했다.

만일 이런 것이 없이 내 생각으로 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 그 집사는 기분 나빠했거나 시험 들어 교회를 떠났을 것이다.

6. 예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 준다 - 필자도 어떤 중대한 결정 사항에 관한 것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었다고 바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통로를 거쳐서 확인한다. 때로는 같은 말씀을 계속 주시는 것을 통해, 때로는 은사가 있는 사람에게 자세한 정보는 주지 않고 단지 ". . .에 대해 기도해 보라"고 요청하여 동일한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 때로는 내 영이 증거하는 것을 통해 확인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까지 25년에 걸쳐 무려 7-8회의 말씀을 주셨는데 대부분이 처음에 주신 말씀을 확인, 확대 및 구체화 하는 말씀들이었다.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하거나 어떤 기도 응답은 받았는데 실제로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으면 좌절하고 낙심할 때가 많다. 특히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는 약속에 대해서는 회의와 낙심, 희망과 기대가 교차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런 때에 이전에 주신 말씀을 다시 확인하는 말씀을 주셔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신다. 또한 때때로 확인은 분변과도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분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7. 예언은 우리의 마음을 테스트한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이삭이 어떤 아들인가? 아브라함이 100세 때 낳은 아들이 아는가? 요즈음 늦둥이가 유행이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엽다고 하는데, 100세에 얻은 (언약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니 기가 찰 일이 아닌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칼을 내려치려는 순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2).

하나님의 원래 의도는 이삭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애지중지하는 이삭마저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바칠 수 있는가 하는 마음을 시험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100세에 얻은 독생자 이삭마저 바칠 만큼,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할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는 것을 하트 테스트(heart test)라고 한다(대하 32:31 참조). "사람의 일이 제 눈에는 모두 잘돼 보여도 야훼께서는 속생각을 헤아리신다"( 16:2; 한글 킹 제임스). 속생각이란 마음의 동기(motives)를 말한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이삭을 바칠 결단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하트 테스트에 합격하여( 2:21), 다시 한 번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약속을 재확인 받았다(16-17).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자신을 잘 모른다. 더군다나 우리 마음을 잘 모른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7:9-10).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내 영광, 내 축복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간의 의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조금 잘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보다는 내 영광을 취하기가 쉽다.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유다의 히스기야왕에게 죽음을 선포했을 때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받는 축복을 얻었다. 하나님은 그 징조로 일영표 위에 나타난 해 그림자가 십도나 물러가는 징조를 주셨다(왕하 20:1-11).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바벨론의 부로닥발라단 왕은 축하하기 위해 사자를 통해 편지와 예물을 보냈다.

하나님이 적국의 왕을 충동질하여 축하 사절을 보내게 하신 것은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떤한가를 아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 32:31).

그런데 이때 히스기야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히스기야는 적국 왕의 사자들에게 왕궁에 쌓여있는 막대한 재물과 무기를 과시함으로써(왕하 20:12-13), 시험에 떨어졌다.

히스기야의 교만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 모든 재산이 바빌론에 옮김 바되고 그 몸에서 난 자식들은 사로잡혀 환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왕하 20:15-18).

하나님은 수시로 하트 테스트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서 순수하지 않은 것, 동기가 불순한 것을 하나하나 드러내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한 것인가를 절감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서도 스스로 속아 자신의 영광을 취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나 자신의 사역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예언의 말씀을 통해 한 번 물어보라. 뜻밖의 말씀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8. 예언은 우리를 인도한다 - 예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만남, 새로운 사역, 새로운 사업, 새로운 방향 설정이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내가 전임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과정이 그렇다. 출석 교회의 담임목사가 거의 6개월 전에나에게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을 때나에게 목사로서의 소명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어떤 식으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로 알았을 것이다. 또한 어느 집사도 기도 중에 나에게 소명이 있다고 아내에게 여러 번 말했고 아내도 금식기도 중에 나에게 소명이 있음을 확인하고 나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Law School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내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런 공부가 아니고 신학을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도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오히려 성경말씀 읽기에 더 치중한 것같다. 말씀을 보면 글자가 살아서 끔틀거리기도 하고 내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도 금식기도를 통해 주님이 나를 전임사역자로 부르셨다고 확신한 후 법과대학원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이때는 내가 예언의 말씀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받은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성경 말씀을 읽는 중에 감동을 받고 그것을 평생의 사역으로 섬긴 사람도 있다. 5만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뮐러는 어느날 성경을 묵상 하던 중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1:27)라는 말씀이 그의 마음에 너무나 와 닿았다. 이후 그는 영국에 고아원을 열어서 기도 하나만으로 평생에 걸쳐 수천 명의 고아를 먹여 살리는 사역을 감당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또는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신다. 새로운 사역, 새로운 사업, 새로운 만남으로 인도하신다. <구요한 목사>

예언의 은사 4 -1

예언의 유익
예언은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전하는 것이다. 피조물이자 타락한 사람은 상황이나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 아무리 신앙이 성숙하고 성경 지식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시는 만큼 상황이나 사람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물론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봉사하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지만, 반드시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도 이런 것들을 나타내신다. 그런 점에서 예언의 말씀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유익이 있다.

1. 예언은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한다  -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고전 14). 힘들고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 예언의 말씀은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한다.

어떤 자매는 남편을 잃고 혼자 삶을 꾸리면서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삶에 회의를 느끼고 살 의욕을 잃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교회의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고 봉사활동도 하지만 집에 혼자 있을 때 밀려닥치는 고독감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뜻밖의 말씀을 주셨다. "순희야(가명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줄 아느냐?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느니라. 내가 너의 친구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그녀의 삶은 좌절과 낙심에서 벗어나 소망과 기대로 바뀌어졌다.

하나님이 나의 형편과 처지를 아실 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심령이 치유 받는다.

2. 예언은 우리의 생각, 관점을 바꾼다  - Y 자매는 평범한 가정 주부다. 자녀들도 성장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은 후 각자 인생을 살기에 바쁘고 이제 집에는 자기와 남편만이 남아있다. 오십대 초반에 접어든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데 단 한 가지 남편이 아직 예수님을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했다.

비록 둘은 한 지붕 아래 살지만 공통적인 화제도 드물고 친밀감도 결여되어있었다. 남편의 회심을 위해 수년에 걸쳐 기도했지만 아무런 열매가 없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남편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Y 자매는 하나님의 음성듣기 세미나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음성듣기 훈련을 받은 후 남편에 대해 주님께 물어보았다.

"
주님, 주님은 제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죄악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그런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 주님의 아들이라뇨?"
"이제 곧 내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속히 좀 해주십시오. 주님, 믿지 않는 남편 때문에 제가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나는 내 품을 떠난 너를 오랫동안 기다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느냐?

그런데 너는 왜 못기다리느냐?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자비를 베풀어라."

불신자 남편, 술이나 담배에 찌들린 남편을 하나님이 심하게 책망이라도 하실 줄 알았는데 주님은 그런 남편을 보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시다니! Y 자매는 너무나 감격하여 남편을 하나님의 자녀처럼 잘 대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자기도 이제 세상 죄악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알 때가 된 것 같다면서 순순히 교회를 따라나섰다. 그 남편이 일 년 후에는 집사까지 되었고 자기보다 더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은 불신자 남편에 대한 아내의 생각을 바꾸심으로써 남편을 변화시키신 것이다.

예언 사역을 하다보면 이런 경우를 자주 만난다. 언젠가 어떤 자매의 부탁을 받고 그의 십대 아들을 위해 내적치유를 하기로 했다. 약속된 날에 그 집을 향해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운전해 가는 동안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어미가 문제다"라는 생각을 주셨다. 혹시 잘못 듣지 않았나 해서 계속 기도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집에 도착하여 그 아들과 마주 앉아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상담을 했지만 이 아들은 생각과 판단이 건전하고 믿음에 서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운전 중에 하나님이 주신 생각대로 어머니를 불러 상담을 했더니 그제야 그녀는 수십 년 동안 혼자만 마음속에 간직해 온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한 여러 가지 상처를 토로했다. 그래서 아들 대신 어머니를 위해 몇 시간 동안 치유기도를 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정확하시다. 만일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분변하지 못했다면 헛수고만 했을 것이다.

3. 예언은 우리를 책망하고 훈계한다.  - 언젠가 상담 중에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데 습관적으로 어떤 죄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숨기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알게 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깜짝 놀라면서 자백했다. "사실은 제가 그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지적해 주셨군요. 당장 고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전14:24-25).

그러나 남을 책망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영적 권위도 없고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이 책망, 훈계하는 말을 함부로 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므로 지혜를 구해야 한다.

4. 예언을 통해 기도 제목을 받는다  - 언젠가 기도하는 중에 나도 모르게 유창하게 기도하는데 그 내용이 전혀 내가 생각한 것들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성령이 주장하여 기도하게 하신 것이다. 이런 기도를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엡6:18;  20; 8:26 이하 참조)라고 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중보기도 사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기도 제목조차 하나님이 주시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이런 기도를 예언적기도(proph etic prayer), 또는 예언적 중보기도(prophetic intercession)라고 한다. 예언을 해주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 제목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예언적으로 받아서 하는 기도를 말한다.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시의 평신도 사역자인 돈 블럭은 예언적 기도에 대해 "주님은 금방 일어날 일을 나에게 보여주시면서 그것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나는 하나님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은사를 주신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중보기도 사역자로 유명한 '중보기도 장군들' 모임의 신디 제이콥스는 예언적 중보기도란 "일반적으로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어떤 상황이나 환경을 위해 성령님의 강권에 의해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을 기도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위한 기도제목을 주신 경우는 예언적 기도이고 남을 위해 중보기도하라고 주신 기도는 예언적 중보기도라고 한다. 하나님은 주의 사자들에게 이런 기도 제목을 더러 주셨다(삼하 24: 18-25; 42:7-9; 7:10-25 ).

사실 예언적 기도란 말이 생소하여서 그렇지 역사적으로 수많은 기도의 용사들은 '성경으로 기도'(praying the Scriptures)하기를 실천해왔다.

성경으로 기도하기란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약속, 책망, 인도하심 등을 기도하는 것이다. 조지 뮐러는 항상 성경책을 펴놓고 기도했고, 설교 왕 찰스 스펄전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했고, 기도의 용사 E. M. 바운즈는 말씀으로 인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기도를 강조했고, 앤드류 머레이는 매일 말씀을 많이 보면서 기도할 것을 강조했다.

결국 예언적 기도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이다.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본토로의 귀환을 약속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 말씀이 성취되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36:37).

하나님은 어떤 일을 단독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몇 날이 못되어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5, 8). 이 말씀을 받은 그들을 어떻게 행동했는가? 늘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일심으로 간절히 기도한 결과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다(24:53. 1:5. 8; 2:1-4).

이런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이 이루어주기로 작정하시고 기도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첫째 반드시 응답이 오고 둘째 비록 오랜 세월에 걸쳐 기도하더라도 항상 새로운 기분과 능력으로 기도할 수 있다
.

언젠가 필자는 교회에 필요한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이런 은사 있는 사람, 저런 은사 있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기도 제목을 바꾸셨다. "은사 있는 사람이 오면 행세나 하고 말썽만 부린다.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있기 마련이므로 충성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너무나 고마운 말씀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당연히 그렇게 기도했다
.

언젠가 자고 있는데 새벽 3시경에 갑자기 주님이 깨우셨다. 이런 일은 가끔 있는 일이라서 피곤하기도 하여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요?"라고 했더니 "N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N은 그 당시 마음 아픈 일이 많아서 상당히 힘든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