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은사와 다른 은사들과의 비교
1. 예언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 - 예언은 과거의 일은 물론 미래의 일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내용을 전달하지만 지식의 말씀은 주로 과거의 일에 대한 "한 조각의 정보"(a piece of information)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 "지금 남자는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여 그 여인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지식의 말씀을 전하셨지만(요 4:18), 아나니아는 사울 청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행 9:15-16). 물론 사울이 직가에 있으며 지금 기도 중이라고 알려주신 것은 지식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행 9:11).
2. 예언의 은사와 방언 통역의 은사 -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 14:5).
통역된 방언은 예언의 효과를 가진다. 언젠가 어떤 자매가 방언하는 것을 통역한 적이 있는데 그 자매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방언을 통해 계속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해석을 들은 자매는 큰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 차이점은 무엇인가? 물론 한 성령의 역사이지만 방언은 사람이 하나님께 하는 말이고(고전 14:2), 예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성령의 주도하심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3.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거의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무엇(what)을 말해준다면,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어떻게(how)를 말해 준다. 즉 전자는 내용을 후자는 전달 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나니아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바울이 어디에 있으며 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까지 알게 되었다(행 9:11-19). 선지자 나단도 다윗의 죄악을 고할 때 죄악의 내용은 물론 전하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삼하 12:2-14).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대처할 방법까지 제시해 주었다(창 41:25-36).
언젠가 어떤 자매를 상담할 때 그 자매가 상당히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매에게 확인하기 위해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해서 몇 번이고 물어보았더니 이 자매는 그제야 마지못해 "그럴지도 모르죠"라고 시인했는데 나는 나중에 "아차"했다.
1. 예언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 - 예언은 과거의 일은 물론 미래의 일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내용을 전달하지만 지식의 말씀은 주로 과거의 일에 대한 "한 조각의 정보"(a piece of information)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 "지금 남자는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여 그 여인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지식의 말씀을 전하셨지만(요 4:18), 아나니아는 사울 청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행 9:15-16). 물론 사울이 직가에 있으며 지금 기도 중이라고 알려주신 것은 지식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행 9:11).
2. 예언의 은사와 방언 통역의 은사 -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 14:5).
통역된 방언은 예언의 효과를 가진다. 언젠가 어떤 자매가 방언하는 것을 통역한 적이 있는데 그 자매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방언을 통해 계속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해석을 들은 자매는 큰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 차이점은 무엇인가? 물론 한 성령의 역사이지만 방언은 사람이 하나님께 하는 말이고(고전 14:2), 예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성령의 주도하심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3.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거의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무엇(what)을 말해준다면,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어떻게(how)를 말해 준다. 즉 전자는 내용을 후자는 전달 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나니아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바울이 어디에 있으며 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까지 알게 되었다(행 9:11-19). 선지자 나단도 다윗의 죄악을 고할 때 죄악의 내용은 물론 전하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삼하 12:2-14).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대처할 방법까지 제시해 주었다(창 41:25-36).
언젠가 어떤 자매를 상담할 때 그 자매가 상당히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매에게 확인하기 위해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해서 몇 번이고 물어보았더니 이 자매는 그제야 마지못해 "그럴지도 모르죠"라고 시인했는데 나는 나중에 "아차"했다.
비록 지식의 말씀은 맞았지만 지혜롭게 전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자신의 아픈 부분을 드러내니 시인도 못하고 그렇다고 부인도 하지 못해 고심했던 것이다.
이후 필자는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단어나 생각이 떠오르면, 먼저 이 말을 지금 당장 전해야 하는가(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른 방법으로 전할 수 있는가(보다 완곡한 표현이나 긍정적인 표현으로), 아니면 본인 자신이 직접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말씀을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이 직접 알게 해달라고 기도한 경우 놀랍게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본인 스스로 자신의 결점이나 잘못을 고백하는 경우가 있다.
4.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 - 예언의 은사를 통해 상담자는 내담자의 과거는 물론 미래의 일까지 알 수 있다. 이때 특히, 지식의 말씀을 전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언의 말씀을 전할 때 지혜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예언의 말씀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구해야 한다. 특히 초보자나 영적 권위가 없는 평신도는 책망하거나 미래의 중대한 결단이나 방향 설정에 대한 예언은 삼가해야 한다.
5.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 - 과거나 미래에 대한 정보나 예언은 틀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분변해야 하고 또한 원천이 어떤 영인가를 분변해야 한다(고전 14:29; 살전 21: 요일 4:1).
그러나 실제로 사역할 때는, 육해공군이 합동작전을 벌이듯,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 문제의 근원을 발견하고, 영 분별의 은사를 통해 영을 분별하고,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 말씀을 지혜롭게 전달하고, 치유사역의 경우, 방언을 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불일듯하고, 믿음의 은사를 확신하고, 능력행하는 은사나 신유의 은사를 사용하여 치유함으로써 여러 가지 은사가 한꺼번에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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