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목회 상담의 통찰력을 제공한다 - 어떤 교인의 집을 심방하기 전에 새벽기도 때 받은 말씀을 전해주었다. 필자는 교우의 집에 심방갈 때는 새벽기도 때 충분히 회개하여 마음판이 깨끗해 있을 때 그 사람들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적어서 전한다.
전할 때 미리 해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 . . .을 위해 주시는 말씀을 적어보았습니다. 좋은 말씀은 아멘으로 받으시면 되고 혹시 책망하시는 말씀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채찍으로 생각하고 받으셔서 고치거나 회개하시면 됩니다. 받으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여 "예"라고 하면 전해준다.
그날 그 집사에게 주신 말씀은 "너는 성격이 강하고 고약하니 고치도록 하라. 너는 성격이 강하고 고약하니 고치도록 하라 . . ."였다. 나는 혹시나 언짢은 표정을 짓지 않을까 저으기 염려했는데 그 집사는 "맞아요, 저는 그 성격을 고쳐야 해요. 목사님 말씀 잘해주셨어요"라고 대답했다.
만일 이런 것이 없이 내 생각으로 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 그 집사는 기분 나빠했거나 시험 들어 교회를 떠났을 것이다.
6. 예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 준다 - 필자도 어떤 중대한 결정 사항에 관한 것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었다고 바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통로를 거쳐서 확인한다. 때로는 같은 말씀을 계속 주시는 것을 통해, 때로는 은사가 있는 사람에게 자세한 정보는 주지 않고 단지 ". . .에 대해 기도해 보라"고 요청하여 동일한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 때로는 내 영이 증거하는 것을 통해 확인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까지 25년에 걸쳐 무려 7-8회의 말씀을 주셨는데 대부분이 처음에 주신 말씀을 확인, 확대 및 구체화 하는 말씀들이었다.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하거나 어떤 기도 응답은 받았는데 실제로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으면 좌절하고 낙심할 때가 많다. 특히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는 약속에 대해서는 회의와 낙심, 희망과 기대가 교차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런 때에 이전에 주신 말씀을 다시 확인하는 말씀을 주셔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신다. 또한 때때로 확인은 분변과도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분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7. 예언은 우리의 마음을 테스트한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이삭이 어떤 아들인가? 아브라함이 100세 때 낳은 아들이 아는가? 요즈음 늦둥이가 유행이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엽다고 하는데, 100세에 얻은 (언약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니 기가 찰 일이 아닌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칼을 내려치려는 순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하나님의 원래 의도는 이삭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애지중지하는 이삭마저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바칠 수 있는가 하는 마음을 시험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100세에 얻은 독생자 이삭마저 바칠 만큼,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할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는 것을 하트 테스트(heart test)라고 한다(대하 32:31 참조). "사람의 일이 제 눈에는 모두 잘돼 보여도 야훼께서는 속생각을 헤아리신다"(잠 16:2; 한글 킹 제임스). 속생각이란 마음의 동기(motives)를 말한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이삭을 바칠 결단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하트 테스트에 합격하여(약 2:21), 다시 한 번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약속을 재확인 받았다(16-17절).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자신을 잘 모른다. 더군다나 우리 마음을 잘 모른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내 영광, 내 축복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간의 의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조금 잘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보다는 내 영광을 취하기가 쉽다.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유다의 히스기야왕에게 죽음을 선포했을 때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받는 축복을 얻었다. 하나님은 그 징조로 일영표 위에 나타난 해 그림자가 십도나 물러가는 징조를 주셨다(왕하 20:1-11).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바벨론의 부로닥발라단 왕은 축하하기 위해 사자를 통해 편지와 예물을 보냈다.
하나님이 적국의 왕을 충동질하여 축하 사절을 보내게 하신 것은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떤한가를 아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 32:31).
그런데 이때 히스기야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히스기야는 적국 왕의 사자들에게 왕궁에 쌓여있는 막대한 재물과 무기를 과시함으로써(왕하 20:12-13), 시험에 떨어졌다.
히스기야의 교만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 모든 재산이 바빌론에 옮김 바되고 그 몸에서 난 자식들은 사로잡혀 환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왕하 20:15-18).
하나님은 수시로 하트 테스트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서 순수하지 않은 것, 동기가 불순한 것을 하나하나 드러내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한 것인가를 절감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서도 스스로 속아 자신의 영광을 취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나 자신의 사역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예언의 말씀을 통해 한 번 물어보라. 뜻밖의 말씀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8. 예언은 우리를 인도한다 - 예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만남, 새로운 사역, 새로운 사업, 새로운 방향 설정이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내가 전임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과정이 그렇다. 출석 교회의 담임목사가 거의 6개월 전에―나에게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을 때―나에게 목사로서의 소명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어떤 식으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로 알았을 것이다. 또한 어느 집사도 기도 중에 나에게 소명이 있다고 아내에게 여러 번 말했고 아내도 금식기도 중에 나에게 소명이 있음을 확인하고 나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Law School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내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런 공부가 아니고 신학을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도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오히려 성경말씀 읽기에 더 치중한 것같다. 말씀을 보면 글자가 살아서 끔틀거리기도 하고 내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도 금식기도를 통해 주님이 나를 전임사역자로 부르셨다고 확신한 후 법과대학원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이때는 내가 예언의 말씀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받은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성경 말씀을 읽는 중에 감동을 받고 그것을 평생의 사역으로 섬긴 사람도 있다. 5만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뮐러는 어느날 성경을 묵상 하던 중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라는 말씀이 그의 마음에 너무나 와 닿았다. 이후 그는 영국에 고아원을 열어서 기도 하나만으로 평생에 걸쳐 수천 명의 고아를 먹여 살리는 사역을 감당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또는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신다. 새로운 사역, 새로운 사업, 새로운 만남으로 인도하신다. <구요한 목사>
전할 때 미리 해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 . . .을 위해 주시는 말씀을 적어보았습니다. 좋은 말씀은 아멘으로 받으시면 되고 혹시 책망하시는 말씀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채찍으로 생각하고 받으셔서 고치거나 회개하시면 됩니다. 받으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여 "예"라고 하면 전해준다.
그날 그 집사에게 주신 말씀은 "너는 성격이 강하고 고약하니 고치도록 하라. 너는 성격이 강하고 고약하니 고치도록 하라 . . ."였다. 나는 혹시나 언짢은 표정을 짓지 않을까 저으기 염려했는데 그 집사는 "맞아요, 저는 그 성격을 고쳐야 해요. 목사님 말씀 잘해주셨어요"라고 대답했다.
만일 이런 것이 없이 내 생각으로 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 그 집사는 기분 나빠했거나 시험 들어 교회를 떠났을 것이다.
6. 예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 준다 - 필자도 어떤 중대한 결정 사항에 관한 것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었다고 바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통로를 거쳐서 확인한다. 때로는 같은 말씀을 계속 주시는 것을 통해, 때로는 은사가 있는 사람에게 자세한 정보는 주지 않고 단지 ". . .에 대해 기도해 보라"고 요청하여 동일한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 때로는 내 영이 증거하는 것을 통해 확인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까지 25년에 걸쳐 무려 7-8회의 말씀을 주셨는데 대부분이 처음에 주신 말씀을 확인, 확대 및 구체화 하는 말씀들이었다.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하거나 어떤 기도 응답은 받았는데 실제로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으면 좌절하고 낙심할 때가 많다. 특히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는 약속에 대해서는 회의와 낙심, 희망과 기대가 교차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런 때에 이전에 주신 말씀을 다시 확인하는 말씀을 주셔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신다. 또한 때때로 확인은 분변과도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분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7. 예언은 우리의 마음을 테스트한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이삭이 어떤 아들인가? 아브라함이 100세 때 낳은 아들이 아는가? 요즈음 늦둥이가 유행이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엽다고 하는데, 100세에 얻은 (언약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니 기가 찰 일이 아닌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칼을 내려치려는 순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하나님의 원래 의도는 이삭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애지중지하는 이삭마저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바칠 수 있는가 하는 마음을 시험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100세에 얻은 독생자 이삭마저 바칠 만큼,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할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는 것을 하트 테스트(heart test)라고 한다(대하 32:31 참조). "사람의 일이 제 눈에는 모두 잘돼 보여도 야훼께서는 속생각을 헤아리신다"(잠 16:2; 한글 킹 제임스). 속생각이란 마음의 동기(motives)를 말한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이삭을 바칠 결단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하트 테스트에 합격하여(약 2:21), 다시 한 번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약속을 재확인 받았다(16-17절).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자신을 잘 모른다. 더군다나 우리 마음을 잘 모른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내 영광, 내 축복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간의 의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조금 잘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보다는 내 영광을 취하기가 쉽다.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유다의 히스기야왕에게 죽음을 선포했을 때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받는 축복을 얻었다. 하나님은 그 징조로 일영표 위에 나타난 해 그림자가 십도나 물러가는 징조를 주셨다(왕하 20:1-11).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바벨론의 부로닥발라단 왕은 축하하기 위해 사자를 통해 편지와 예물을 보냈다.
하나님이 적국의 왕을 충동질하여 축하 사절을 보내게 하신 것은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떤한가를 아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 32:31).
그런데 이때 히스기야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히스기야는 적국 왕의 사자들에게 왕궁에 쌓여있는 막대한 재물과 무기를 과시함으로써(왕하 20:12-13), 시험에 떨어졌다.
히스기야의 교만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 모든 재산이 바빌론에 옮김 바되고 그 몸에서 난 자식들은 사로잡혀 환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왕하 20:15-18).
하나님은 수시로 하트 테스트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서 순수하지 않은 것, 동기가 불순한 것을 하나하나 드러내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한 것인가를 절감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서도 스스로 속아 자신의 영광을 취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나 자신의 사역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예언의 말씀을 통해 한 번 물어보라. 뜻밖의 말씀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8. 예언은 우리를 인도한다 - 예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만남, 새로운 사역, 새로운 사업, 새로운 방향 설정이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내가 전임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과정이 그렇다. 출석 교회의 담임목사가 거의 6개월 전에―나에게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을 때―나에게 목사로서의 소명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어떤 식으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로 알았을 것이다. 또한 어느 집사도 기도 중에 나에게 소명이 있다고 아내에게 여러 번 말했고 아내도 금식기도 중에 나에게 소명이 있음을 확인하고 나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Law School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내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런 공부가 아니고 신학을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도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오히려 성경말씀 읽기에 더 치중한 것같다. 말씀을 보면 글자가 살아서 끔틀거리기도 하고 내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도 금식기도를 통해 주님이 나를 전임사역자로 부르셨다고 확신한 후 법과대학원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이때는 내가 예언의 말씀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받은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성경 말씀을 읽는 중에 감동을 받고 그것을 평생의 사역으로 섬긴 사람도 있다. 5만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뮐러는 어느날 성경을 묵상 하던 중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라는 말씀이 그의 마음에 너무나 와 닿았다. 이후 그는 영국에 고아원을 열어서 기도 하나만으로 평생에 걸쳐 수천 명의 고아를 먹여 살리는 사역을 감당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또는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신다. 새로운 사역, 새로운 사업, 새로운 만남으로 인도하신다. <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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