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2011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

사도행전 13 : 42 ~ 52
바울의 설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 똑같은 설교자를 통해 들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다르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사람들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가장 먼저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나자 그들의 반응은 시기심과 적대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스스로 영생을 얻기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며, 복음을 적극적으로 반박, 비방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그 지역에서 쫓아내지 못해 안달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적대적인 반응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겸손히 받지 않고, 말씀을 판단하고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망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도 못하고, 진지해지지도 않고,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심판의 말을 농담처럼 여겼던 롯의 사위들, 스승 사무엘의 말을 듣기 싫어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선지자들의 말을 듣기 싫어한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하기 직전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습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갓난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 같이 갈급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왜 이 말씀을 나에게 주셨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자신에게 적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 영혼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 
유대인들과 대조적으로 이방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편견없이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도들이 전하여 주는 ‘말씀을 듣고자’ 하였고, 들은 말씀을 ‘믿고, 기뻐하며 찬송’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쁨으로 반응하는 그들 가운데서 주의 말씀도 힘있게 전파되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정으로 기뻐하는 자가 되려면 귀와 마음을 열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 속에 있는 돌덩어리와 같은 악하고 치우친 생각들을 깨뜨리고, 세상 근심과 걱정, 염려의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걷어내고, 안일과 향락에 집착하는 마음을 기도와 말씀으로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 밭을 일구어 기름진 옥토와 같이 마음을 가꾸기에 스스로 힘써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짧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말씀이라도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습관, 묵상한 말씀을 기뻐하고 즐기며, 기도하고 찬송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는 우리의 영혼에 말씀의 단비가 촉촉이 내릴 수 있도록 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인생에 치유와 회복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소망의 사람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사26:7)

얼마전 40년을 통치하던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을 내 놓았지만, 무려 40년간을 지배해오던 그의 힘과 총명함이 한 달간의 시위로 무너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그러던 중 설득력 있는 하나의 주장이 나와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통치가 무너진 것에 대해서는 2009년 5월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봅니다. 무바라크 대통령에게는 너무나 사랑하는 모하마드라는 손자가 있었습니다. 측근들의 말을 들어보면 국정을 운영하는 가운데 그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손자만 보면 그는 인자하게 웃고 힘을 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요 행사에 영부인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손자가 그 자리를 늘 차지했다고 합니다. 무바라크에게는 손자가 큰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09년 5월에 원인 모를 두통으로 병원으로 갔던 손자가 뇌출혈로 죽게 됩니다.

그 이후 무바라크는 예전에 보여주었던 추진력도 사라지고, 삶의 의미를 잃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9년 5월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취소하였고, 2009년 6월 5일 이집트로 온 오바마가 상당히 중요한 연설을 하는 자리 조차도 무바라크는 슬픔에 잠긴 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사는 결론인 이렇습니다.
“수많은 기간동안 독재를 해왔던 자들로 본다면 무바라크는 오히려 깨끗한 쪽에 속한다. 그럼에도 그가 무너진 것은 그의 부정부패를 폭로된 것이나 고실업율이나 고물가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힘이 되었던 손자의 죽음일 것이다.”

사람이 자신이 살아갈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면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폴 틸리히는 “신앙이란 그가 바라보는 그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 우리의 소망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산 소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것과 그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소망이 있다는 것 입니다.
소원은 자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는 세 가지 교훈을 통해 소망을 가진 사람. 즉 리더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첫째 리더는 여러 가지 시험이 와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험이 오고 잠깐 근심하게 되는 상황이 있으나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리더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지만 너무 현실만 보고 믿음이 없는 자들이 많음을 보게 됩니다. 리더는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뛰어 넘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리더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리더는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예수님 때문에 참을 줄 알고, 예수님 때문에 가슴 뭉클해 하며 전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동제일교회)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11:2~3)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요?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과는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진정으로 체험 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깊이 있게 묵상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선 내가 십자가를 바라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거기에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매달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믿음과 함께, 나 자신의 가치와 영적인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한없는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내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게 하며 큰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아울러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귀한 은혜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 교리적으로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것은 또한 내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가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물질이나, 명예나 지위가 나를 존귀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상태가 어떻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런 믿음이 커질수록 나뿐만 아니라 믿음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롬3:10)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잘 알았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한다” (갈2:19)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믿음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 삶이 내 뜻과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불평할 때가 많은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며 진정한 감사와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더욱 깊이 묵상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목동제일교회)

강하고 담대하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1)



우리의 전쟁은 세상 나라의 군대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세력들과 싸우는 영적 전쟁입니다우리는 성령의 무기로 허위와 거짓에 대항합니다.
전도집회가 끝난   젊은이가 내게 찾아 와서, "진실을 말씀해 주셔서 감합니다.
제가 기독교인이 되었을  목사님은 앞으로 저의 인생은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저의 모든 문제를 가져가셨기 때문에 다시는 힘들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제가 신자가 되고 나니까마치 핵전쟁이 터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른다면당신은 전쟁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하게 자라가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런 축복은 오직 영적인 전쟁을 통해서만 얻을  있습니다우리는 되풀이되는 죄와 싸우고온갖 종류의 갈등에 부딪힙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앞에 있는 육중한 방어 진지와 강한 군대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단순하게 어금니를  물고 싸우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주님은 여호수아가 담력을 갖도록 삼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목적과 인도하심동행하심을 확고히 붙잡아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것을 기억함으로써 용감하게 싸울  있었습니다.

<인간존엄을 향한 하나님의 디자인 / 리차드 L. 프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