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2011

하나님의 열심

성경에 보면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는 말씀이 참 많이 나온다.
포로된 자가 백성을 구원하여 내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왕하 19:31)" 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예언하시면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b)" 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예수님의 탄생도 하나님의 열심을로 이루어졌다. 성경을 보면 그렇게 간사하고 꾀가 많던 야곱도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다듬어져서 나중에 이스라엘이 되었다.

모세도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설득을 당하여 애굽으로 돌아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었다. 정욕에 목말라 사마리아 여인도 이른 아침 예루살렘으로 부터 63km를 걸어 오신 예수님의 열심으로 인하여 생수를 마시고 복음전도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열심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여 내셨다.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열심이 지금 저와 여러분을 붙들고 있다. 그 하나님의 열심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다듬어가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의 열심은 지극히 높은 보좌로부터 지극히 천한 땅으로의 하강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주야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돌보시는 보살핌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어둠의 세력에 둘러쌓인 자녀를 불말과 불병거로 호위하시는 성실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배신하고 돌아선 자녀를 끝까지 찾아가셔서 그 품에 안으시는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죄악으로 포로된 자녀를 긴긴세월 지켜보시며 마음 상해 우시는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자신의 육체를 찢어 기꺼이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거룩한 용기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모든 부당함에 침묵하시는 인내의 가슴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저 바다,저 하늘 끝까지 그 사랑하는 자녀를 추적하시는 집요함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아무리 극한 죄악을 범했을지라도 진실한 회개의 눈물에 그 마음 무너지는 인자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작은 탄식도 놓치지 않으시는 섬세함이며 한 영혼, 한 영혼을 헤아리는 자상함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홀로 그 자녀와 언약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불멸의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육신을 내어주고도 모자라서 불붙는 사랑, 성령으로 부으시는 정열입니다.

*눈이 가장 맑은 곤충은 파리*

이 세상의 곤충 중에서 눈이 가장 맑은 곤충은 '파리'라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두 팔로 얼굴의 대부분을 다 차지하고 있는 눈을 닦습니다. 파리의 눈은 여러개의 눈이 합쳐진 겹눈입니다.

겹눈에 먼지라도 앉으면 눈앞의 먹잇감이나 자기를 죽이려는 적들의 모습이 여러개로 겹쳐보인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낱눈들을 하나하나 티 없이 깨끗하고 반들반들하게 열심히 닦아야 합니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눈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팔복 중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했습니다.
파리가 눈을 닦는 것처럼 사람들도 열심히 마음을 닦아야 하나님이 보입니다.
마음의 눈에 먼지나 오물이 묻으면 딴 것이 보여 위험해집니다.
마음을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밝고 맑고 선하게 유지시키세요

출처:복있는 그리스도인

이것은 신앙입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


링컨이 16 대통령에 당선 되었을  기쁨과 감격에 환호하는 지지자들이 링컨의 당선을축하하기 위해 링컨의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링컨의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그가 신앙인으로서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그렇지만 링컨의 참모들은 축하객들에게 오늘만큼은 포도주나 위스키를 제공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링컨은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아무 술도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저희가 장만하겠습니다."
"아닙니다나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여러분에게 하라고 명령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술이 링컨의 집으로 배달되자링컨은 정중하게 감사를 표시하고는 모두 되돌려 보낸 후 청중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러분저는 오늘 포도주나 위스키로 여러분을 대접하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그러나 그것은 저의 신앙이며어릴 적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입니다오늘은 제가 평소에 포도주 대신 애용하고가족들에게 권장하는 건강 음료를 여러분에게 대접하려고 합니다 음료수는 샘에서 방금 길어  생수인데 시원하고 건강에도  좋습니다함께 마십시다!"

링컨은 냉수 잔을 들고 마시며 그들에 대한 최고의 존경을 표시했습니다.
링컨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비록 술과 고기로 대접을 받지는 못했지만 대통령의진실한 신앙과 검소함끝까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이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사명도 휴거도 기름부음 안에서 결정이 됩니다. - 조호남 목사님

* 제일 중요한 것이 성령의 기름부음인데 사명도 휴거도 기름부음 안에서 결정이 됩니다. *

[눅11:13]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1. 영적인 활동을 통해서 계속 영혼이 성장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은혜입니다.

2. 성령의 충만한 은혜속에서 영적인 교제가 가능하고 주님생각이 가능합니다.

3. 성령이 제일 보배이고 성령으로 모든 것이 결정이 되고 휘황찬란한 약속이 성령안에 있습니다.

4. 겸손하며 사모하며 장애물을 믿음으로 뚫고 이기고 나갈 때 성령의 큰 은혜를 주십니다.

5. 기름부음안에서 변화되고 영광을 얻게 됩니다.

6. 제일 중요한 것이 성령의 기름부음인데 사명도 휴거도 기름부음 안에서 결정이 됩니다.

7. 어느 시대든 자기시대에 주님이 오실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며 이럴 때 준비가 됩니다.

8. 준비는 천국준비이고 영광 준비입니다.

9. 성령의 충만함 안에서 승리의 삶이 보장되고 확증되고 수여됩니다.

출처: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신데렐라 그리스도인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7:25)

신데렐라는 요술의 힘을 빌어 유리구두를 신고, 황금마차로 왕궁에 들어가 왕자와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지요.
즉 마차는 호박으로, 말들은 새앙쥐로, 연회복은 누더기로, 유리구두는 구멍 뚫린 헌신발로 변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왕자와 달콤한 시간을 나누다가 불현듯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에 놀라 정신없이 도망쳐 나왔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신데렐라를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누추한 영적 상태가 드러나기 전에 재빨리 모임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그리고 일단 누군가에게 약점이 노출되면 더 이상 교우관계가 유지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그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신데렐라가 찾아간 왕궁의 무도회처럼 근사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것을 믿음과 은혜 안에서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히려 문제가 없는 척 위장하면 할수록 어색해지는 것이 교회입니다.
신데렐라가 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당신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하는 문제투성이의 그리스도인이며, 그럼에도 은혜가운데 당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생각하는 믿음 행하는 믿음/김인철>

10/30/2011

겸손과 인내, 사랑과 눈물로 사역하라.

사도행전 20 : 17 ~ 27
급하게 예루살렘을 향하던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마지막 고별 메시지를 전합니다. 고별메시지에 나타난 바울의 간절한 당부가 무엇입니까?

겸손과 인내, 사랑과 눈물로 사역하라. 
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마지막까지 바울의 사역의 특징은 무엇보다 겸손과 눈물, 그리고 인내였습니다. 유대인들의 간계로 인하여 번번히 어려움을 당하였지만 그 때마다 참고 인내하였습니다. 사역이 흥왕하여 온 아시아에 복음이 전파되는 큰 성공을 거둘 때에도 그는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행했습니다.
그는 에베소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마음을 다해 열정과 눈물로 섬겼습니다. 이러한 인내와 겸손, 섬김과 눈물이 음란한 우상의 도성 에베소 한 복판에 주님의 교회가 우뚝 세워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바울은 이런 인내와 겸손,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이것은 그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심령에 매임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강하게 사로잡혔기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고 겸손과 인내로 끝까지 사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심령에 매인 바되어 겸손과 눈물로 사람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내 심령에 가득하여 내가 성령에 매인 바 되도록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먼저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일사각오’의 믿음주시고, 사명 감당할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철저히 헌신함으로 복음을 전하라.
바울은 개척자였습니다.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마치 교회 개척 전문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개척은 그냥 쉽게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았고,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헌신과 담대한 복음의 전파로 말미암아 우상의 도시 에베소에 에베소 교회가 개척되고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교회가 개척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복음 전파를 위해 철저히 헌신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 위에서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때와 장소를 가리고 사람들의 눈치나 살피고서는 주님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전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꾸준히 생명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확신있는 태도와 꾸준한 복음 전파만이 영혼구원이라는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일용할 양식:기독대학인회(ESF) 제공

10/29/2011

온전한 헌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쁨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온전한 즐거움을 모르고 있는 듯한 그들을 보노라면그들이 혹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광적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자신을 그리스도께 온전히 내어드릴 마음이 없을 가능성이 훨씬 크죠.
그리스도께 억울하게 이용만 당하면서 인생에서 최고의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는 다음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분보다 내 인생을 더 잘 인도하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예수님은 마가복음 8 35절에서 우리에게 그 분을 섬기려면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며그 분과 그 분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헌신되어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주님을 섬기며 교회와 세상에서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 일은 반드시 성령의 인도 아래 그 분의능력을 통해 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충만케 하시고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그분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 삶을 받으소서 / 마이클 그리피스>

10/28/2011

성경 읽는 법.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에 생활을 성경에 맞춘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는 사람이 먼저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자기를 향해 무엇을 말씀 하시는지 귀를 기우려 듣는 것을 우선순위로 정해야 할 것은 거론의 여지가 없다.

성경 읽는 법은 말씀에서 은혜 받도록 읽어야한다. 은혜를 받으면 등불을 켜서 말(斗)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둔다. 말(斗)은 곡식의 분량을 헤아리는 도구로서 물질을 의미한다. 착한 행실을 물질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두어 세상을 밝혀야한다.

교인들을 보면 말씀을 듣고 받은 은혜 (착한일)를 세상(등경)위에 밝혀서 나누려는 사람이 있고 받은 은혜를 자기중요 감을 채우려고 말 아래 감추고 남의 잘못을 들추어 그쪽은 어둡게 하고 자기는 밝게 보이려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본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 해도 자기에게나 타인에게 해가 되는 성경을 보는 사람이 된다.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씀을 전하기 전에 그날의 메시지를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전하는 사람들이 훨씬 전도를 잘한다.

매사에 자기의 할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먼저 읽어야 한다. 성경말씀을 은혜 되게 해석하여 자기나 타인에게 유익이 되게 읽어 영혼을 살찌게 하고 남의 잘못은 용서하는 방향이 되게 읽어서 그리스도 안의 신실한 신앙인으로 자라야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1:3)하신 뜻은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읽는 자는 단수고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은 복수로 기록했다. 읽는 입은 하나고 듣는 귀는 둘이고 지키는 지체들은 수가 많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은 전 인격으로 들어야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한다고 하신 말씀이다. 어떤 사람은 말로는 잘 믿는데 행동은 다르고 어떤 이는 주의 일에 봉사하는 데는 앞장서나 속으로는 상업적으로 성경을 읽는다.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입으로 읽어 대언(代言)하고 귀로 듣되 이성과 애정으로 듣고 사지백체는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주님 뜻에 일치하게 생활 하는데 최선을 다 하는 생활에 힘쓰지 않으면 성경 읽는 의미가 없다.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타인의 약점만 질책하는 것을 심심찮게 본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순서가 자기 자신이 회개하고 변하는데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게 해야 자기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이웃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10/27/2011

참 행복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할까?
행복해야 할 사람이 행복을 찾지 못하고 고통중에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경제문제, 가정문제, 건강문제. 정신문제, 인간관계 갈등 등으로 고난당하고 있다. 행복이 없어 술, 도박, 춤, 방종을 해보나 결국 더 불행해진다.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도 많이 하고 건강하고 돈도 많고 잘생긴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게된다. 잘 살다가도 싸우고 갈라지는 부부가 많다. 헤밍웨이 같은 위대한 사람이 자살할것이라고는 그 당시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노벨문학상을 타고 돈과 명예가 있고 인기있는 사람이 왜 갑자기 엽총으로 자기 목을 쏘았을까?

잠이 오지 않아 고통당하거나 악몽, 가위눌림, 분노, 짜증, 억울함, 우울증, 피해망상증, 환청, 환시, 가정불화, 자녀문제 등으로 고난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되고 나무는 땅속에 뿌리를 내려 물과 양분을 흡수해야 살고 인간은 창조주와 더불어 살아야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고통을 당하다 죽게된다.

인간의 근본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생긴것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창조주 형상을 닮았다. 최초의 선조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불행의 근원자인 마귀 말을 듣고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된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죄인이 되었고 저주아래 있게 되었고 영적인 신분이 마귀의 자녀가 되어 사주팔자, 운명에 묶이게 되었다. 마귀와 그 부하들인 귀신들을 벌하기 위해 만드신 지옥에 가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었다. 마귀, 귀신들은 사람이 죽어된 것이 아니고 범죄한 천사들이다.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대신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누구든지 그 분을 믿으면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즉 영원한 행복을 주시는 것이다. 참평안, 참기쁨, 참건강을 주시고 모든일을 형통하게 만드신다.

최선으로 인도해 주신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이다. 형벌을 받아야 될 사람이 상급을 받게 된다. 불안이 평안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게 된다. 모든 문제가 하나씩 해결된다. 영원한 행복의 원천자, 모든 문제의 해결자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되는 것이다. 그 분은 지금 우리 앞에 계신다. 마음의 문을 열면 된다.

근심도 죄다, 죄에 빠지지 말자.

사람들은 보통 '살인하지마라' '간음하지마라'등 커다란 명제에 대해서는 많은 죄책감과 함께 회개도 하고 반성도 하지만 다른 구절인 '근심하지 마라'는 귀절은 그냥 넘어간다고...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한 사람은 그 지은 죄로 인해 결코 죽지를 않는데 비하여 근심을 하는 사람은 그 근심걱정으로 말미암아 죽게 된다고... 그러니 같은 맥락으로 받아 들여야 하며 오히려 근심하지 않는 것이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라며 자신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하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인과 간음 등은 보이는 것이며 상대가 있는 것인데 반하여 근심은 자신에 머무는 것이니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라고 반문을 하였다 그러자 친구가 대답하기를 근심을 많이 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이 많은 폐해가 있다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가령 예를 들어 한 가정에 근심걱정을 많이 하여 우울증이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가정의 구성원들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상처를 받게 되고 우울해지고 가정은 원만하지 못하여 결국 파탄에 이르니 한 사람의 근심이 다른 구성원들을 괴롭게 만들며 행복하지 않게 하니 살인과 다를 것이 무어냐? 또 하나 자식을 예로 들면 자기 자식이 근심걱정으로 얼굴이 편치 않으면 부모 된 자는 마음속으로 걱정과 근심이 되고 애간장이 타는데 그로 인해 또 다른 걱정근심을 하게 되어 가정이 원만해 지지 않으니 그 여파가 사회로 퍼질 것이고 그로인한 폐해가 적지 않으니 그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그 말을 마음속으로 새겨보니 틀린 것이 없다.

커다란 범죄는 비록 그 죄를 지었을망정 얼마간의 회개기간과 반성을 거치면서 그 늪으로부터 헤어날 수가 있으나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근심과 걱정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를 않고서 음지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당사자를 덮치고 그 가정을 불행하게하고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병들게 한다.

그러니 눈으로 보이는 커다란 죄만 죄가 아니라 마음속에 든 근심도 죄가 되며 우리는 되도록 그 죄에서도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인의 대다수가 우울증에 걸려 살고 있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면서 왜 우울증이 생기는 것일까? 점점 커지는 사회생활에 반해 작아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 때문이 아닐까?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자식과 부모의 관계도 그와 같다고 했다.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들을 바라보고 품는 마음에는 그 끝이 없는데 비록 자식이 잘못을 지었을망정 고민하고 애태우다 잘못을 반성하고 돌아서면 그 뿐 그 잘못을 영원히 기억하지를 않는 것이 대부분의 부모 심정인데 반해 자신의 잘못을 끝끝내 드러내지 않으면서 고민하고 좌절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더없이 불행하고 불행이 불행을 몰고 와 결국은 그 가정이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심하지 말지어다~. 어찌 세상 살아가면서 걱정 근심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 자체도 죄로 인식하고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간다면 요즘처럼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다거나 생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고 폐쇄된 자기 공간에 갇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날로 발전하는 첨단 과학의 세상속에서 점점 왜소해지고 고독해지는 현대인들은 이 명제를 곰곰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근심도 죄다 .... 죄에 빠지지 말자

냉수로 이루어진 상급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1:8)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28).
진짜 두려워할 대상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32).
시인한다는 말은 싸인한다는 말이며 동의한다는 말입니다다시 말해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나타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가족들에게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34-37).
이것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무엇이 보다 중요한지를 아는 자들이 제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넷째는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38-39).
때로는 그 길이 십자가를 지는 길이라고 할 지라도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냉수 한 그릇이라도 작은 소자를 위해 주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40-42).

제자들에게 제자의 삶을 나열할 때에 쉽지 않겠다는 어려움과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을 다시 한번 해석해 본다면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오직 냉수 한 그릇만이라도 네가 섬겨 준다면네가 한 그것 내가 잊지 않고 네 상을 잃지 않게 할 것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네가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섬기는 그것도 내가 기억하며 네 상을 잃지 않게 하겠다.” 이런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특별히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라는 말씀은 베드로의 이름야고보의 이름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제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그래서 제자로 살아가는 삶은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섬겨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교회들이 구제하고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일 100억이라는 돈이 기부가 되면 그 중 95억은 교회가 하고 있다고 합니다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 이름이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찬송가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몸” 이라는 찬양이 싫다고 합니다다른 것이 아니라 3절 때문인데요가사가 이렇습니다“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그 다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게 싫다는 겁니다교회 이름도 쓰고 내 이름도 드러나야지 왜 못쓰게 하고 못 나타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고한 것 주님이 아시고 우리 주님이 기억하실 것입니다우리는 그것이면 족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목동제일교회)

기도가 깊어 질수록...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상처를 들고 주님앞에 기도하다보면 점점 절실하게 와 닿는것은 주님이 받으신 상처를 보게 됩니다. 극심한 고독을 가지고 주님앞에 내놓고 기도한다 보면 주님도 이 땅위에 사는동안 고독 하셨음을 보게됩니다.
살면서 받은 아픔 때문에 눈물 흘리며 슬픔에 젖어 주님앞에 기도 하다보면 주님의 슬픔을 만나게됩니다.

기도의 무릎으로 나아가기 전에는 자신의 어떠함을 붙잡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러나 기도로 더 깊이 주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자신의 기분 보다는 주님의 어떠함을 만지고 위로받고 치유받고 회복 되는것을 느낍니다. 점점 기도가 깊어지면 이제는 주님으로 충만한 영혼이 됩니다.

그에게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환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는것 같다가도 조용한 바다위를 걸으시는 주님만 보입니다.

기도 없는 사람은 자기가 움직이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으로 움직입니다.
예수로 말하고 예수로 생각하고 예수를 표현하게 됩니다.

자기의 기쁨은 없어지고 자기의 슬픔도 없어지며 자기의 원한도 없어지고 자기의 행복도 없이 오직 예수의 상처, 예수의 소원, 예수의 심장, 예수의 슬픔으로 예수님을 가득하게 채움 받아 이 세상을 능력있게 살게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글에서]

10/23/2011

욥의 간증에 담긴 의미


“성실하개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28:18)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때로 감당하기 힘든 역경과 환난고난을 겪을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믿음의 선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갇히거나 자녀가 순교하는 등의 고난 가운데도믿음으로 감사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고난 가운데도 믿음으로 감사의 고백을 드릴 때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두려움을 물리치게 되고 걱정과 환난 가운데 다가오는 모든 염려를 물러가게 합니다.

아울러 감사하게 되면 자신이 겸손하게 됩니다. 
절박한 상황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분명히 성장 할 수 있습니다욥기 말씀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면 그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심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욥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며 겪게 되는 고난의 의미와 의로운 자에게도 고난이 있다는 사실그리고 그 고난이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은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이다라는 표현을 가슴에 새기시기 바랍니다하나님께서는 결코 아무 뜻 없이 우리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23:10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는 길을 모두 아신다고 했습니다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앞길을 알고 계시니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23:14절에서 ‘작정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각에게 독특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세세한 부분을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다욥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뜻을 분명히 우리 삶 가운데 이루십니다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도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그리고 큰 의미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며우리를 세워 가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고난이라는 연단을 통해서 우리를‘순금’으로 만들어 가시며 우리의 믿음을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게 하시는 분임을 믿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목동제일교회)

믿음에서 믿음으로


“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21:29)

고난은 숨겨진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가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관리에게 아픈 아들이 없었다면 그는 예수님을 찾아갔을까요우리 주위에도 당시에 힘들었지만 그 일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경을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그것은 우리를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시려는 뜻이 계신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이 믿음을 좀 더 승격시키고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관리에게 일어난 믿음의 첫 번째 계기는 환경으로 인해 믿음을 더 잘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두 번째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그것으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우리 가운데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우리를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기까지는 넘어야 할 것들이 있는 데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감각적인 한계입니다사람은 보거나 만져야만 믿을 수 있습니다그러나우리의 믿음은 내가 보고 느끼는 감각을 넘어서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관리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갔습니다사람들은 만져주고 와주어야만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 믿지만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은 이런 것을 초월하는 역사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시간적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우리는 급하지만하나님의 방법은 시간을 통해 우리를 숙성시키십니다그 때는 그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그것을 통해 숙성된 우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경험의 한계에서 벗어나길 원하십니다사람은 자신의 경험 이상의 것을 믿기 어려워합니다그러나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 일어납니다.
다섯 번째로 우리에게는 인격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관리가 자신의 위치만을 생각했을 때그는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믿음 생활은 믿지 못하게 하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관리나 마태복음 9장의 야이로 같은 사람이 믿음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면그들의 문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믿음의 수준의 단계를 넘어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그것은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입니다.
상황과 환경은 넘어지고 실패할 수 밖에 없지만한계를 극복하고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동제일교회)

서둘러 판단하지 말라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행7:34)
 
어떤 사람이 술 취한 것을 보았더라도 그 사람이 심지어 간음 현장에서 잡혔더라도 한 번의 행위는 그가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노아는 한번 롯은 두 번 술에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술주정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불경스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베드로를 불경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어떤 타이틀을 얻으려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한번 본 것에 근거해 누군가를 성미가 급하다거나 혹은 손버릇이 고약하다고 부르는 것은옳지 않습니다. 심지어 누군가 오랫동안 습관적인 죄를 짓는다고 해도 그를 단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시몬은 막달라 마리아를 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진실하게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광대해서 성품을 변화시키십니다. 절대 어제에 근거해서 결론을 내리지 마십시오.

여기 우리가 지켜야할 법칙이 하나있습니다.
죄를 책망해야 할 때 그 죄를 지은 사람을 가능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파렴치하고 악명 높은 죄인과도 터놓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재미있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늑대가 양무리 가운데 있을 때 그 늑대에 맞서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날마다 예수님 마음 가까이/버나드 뱅글리 편집>

10/20/2011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전략

피하지 않고 직접 부딪치는 전략입니다 .
고린도는 아가야의 수도로서 ‘세계의 시장’이라 불릴만큼 거대한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절정기 때 인구가 거의 75만에 달할 정도였으며, 2년마다 지금의 올림픽같은 세계적 경기가 이루어질 정도로 문화적으로도 앞서가는 자부심이 강한 도시였습니다. 뿐아니라 고린도는 도시 한복판에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태양의 신인 아폴로를 섬기는 신전과 공창(公娼)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이렇듯 경제적, 문화적, 성적으로 전도하기 어려운 고린도였지만 바울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고린도 한복판에 뛰어들어 직업이 같은 동역자를 찾아 거처를 정하고, 스스로 생활 및 전도 경비를 조달합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지 않자 이방인인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1년 6개월 동안 힘써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나 장소를 회피하여 돌아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부딪히며 해법을 찾아 복음을 정면으로 전한 것입니다.

바울의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복음 전도 전략을 통해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복음의 문은 적! 극적으로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전도는 안되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 아니라 안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입니다. 두드려보지도 않은 체 낙심하지 말고, 정면승부로 다시 한 번 더 부딪쳐 보시기 바랍니다.[행전18:1-17]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전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고린도 개척전략을 크게 기뻐하셨고, 앞서 행하시면서 바울의 고린도 개척을 이끄시고 도와주십니다. 먼저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예비하여 주셨습니다. 이들은 A.D. 49년 로마황제 글라우디아에 의해 로마에서 추방되어 바울보다 먼저 고린도에 정착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고린도 개척을 격려하시고 도우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하심의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외로운 바울의 좋은 동역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흩어져 있었던 실라와 디모데도 합류하게 하시고, 나아가 바울의 송사가 억울하게 진행되지 않도록 현명한 총독 갈리오도 예비해 두셨습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환상가운데 직접 임하셔서 말씀으로 그 마음을 격려하시고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때문에 우리가 힘써 불신자 전도를 이루려고 할 때 직간접으로 너무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십니다. 복음 전파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행전18:1-17]

10/19/2011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

사도행전 13 : 42 ~ 52
바울의 설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 똑같은 설교자를 통해 들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다르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사람들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가장 먼저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나자 그들의 반응은 시기심과 적대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스스로 영생을 얻기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며, 복음을 적극적으로 반박, 비방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그 지역에서 쫓아내지 못해 안달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적대적인 반응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겸손히 받지 않고, 말씀을 판단하고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망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도 못하고, 진지해지지도 않고,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심판의 말을 농담처럼 여겼던 롯의 사위들, 스승 사무엘의 말을 듣기 싫어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선지자들의 말을 듣기 싫어한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하기 직전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습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갓난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 같이 갈급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왜 이 말씀을 나에게 주셨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자신에게 적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 영혼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 
유대인들과 대조적으로 이방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편견없이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도들이 전하여 주는 ‘말씀을 듣고자’ 하였고, 들은 말씀을 ‘믿고, 기뻐하며 찬송’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쁨으로 반응하는 그들 가운데서 주의 말씀도 힘있게 전파되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정으로 기뻐하는 자가 되려면 귀와 마음을 열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 속에 있는 돌덩어리와 같은 악하고 치우친 생각들을 깨뜨리고, 세상 근심과 걱정, 염려의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걷어내고, 안일과 향락에 집착하는 마음을 기도와 말씀으로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 밭을 일구어 기름진 옥토와 같이 마음을 가꾸기에 스스로 힘써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짧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말씀이라도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습관, 묵상한 말씀을 기뻐하고 즐기며, 기도하고 찬송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는 우리의 영혼에 말씀의 단비가 촉촉이 내릴 수 있도록 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인생에 치유와 회복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소망의 사람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사26:7)

얼마전 40년을 통치하던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을 내 놓았지만, 무려 40년간을 지배해오던 그의 힘과 총명함이 한 달간의 시위로 무너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그러던 중 설득력 있는 하나의 주장이 나와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통치가 무너진 것에 대해서는 2009년 5월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봅니다. 무바라크 대통령에게는 너무나 사랑하는 모하마드라는 손자가 있었습니다. 측근들의 말을 들어보면 국정을 운영하는 가운데 그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손자만 보면 그는 인자하게 웃고 힘을 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요 행사에 영부인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손자가 그 자리를 늘 차지했다고 합니다. 무바라크에게는 손자가 큰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09년 5월에 원인 모를 두통으로 병원으로 갔던 손자가 뇌출혈로 죽게 됩니다.

그 이후 무바라크는 예전에 보여주었던 추진력도 사라지고, 삶의 의미를 잃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9년 5월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취소하였고, 2009년 6월 5일 이집트로 온 오바마가 상당히 중요한 연설을 하는 자리 조차도 무바라크는 슬픔에 잠긴 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사는 결론인 이렇습니다.
“수많은 기간동안 독재를 해왔던 자들로 본다면 무바라크는 오히려 깨끗한 쪽에 속한다. 그럼에도 그가 무너진 것은 그의 부정부패를 폭로된 것이나 고실업율이나 고물가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힘이 되었던 손자의 죽음일 것이다.”

사람이 자신이 살아갈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면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폴 틸리히는 “신앙이란 그가 바라보는 그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 우리의 소망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산 소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것과 그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소망이 있다는 것 입니다.
소원은 자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는 세 가지 교훈을 통해 소망을 가진 사람. 즉 리더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첫째 리더는 여러 가지 시험이 와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험이 오고 잠깐 근심하게 되는 상황이 있으나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리더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지만 너무 현실만 보고 믿음이 없는 자들이 많음을 보게 됩니다. 리더는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뛰어 넘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리더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리더는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예수님 때문에 참을 줄 알고, 예수님 때문에 가슴 뭉클해 하며 전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동제일교회)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11:2~3)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요?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과는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진정으로 체험 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깊이 있게 묵상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선 내가 십자가를 바라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거기에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매달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믿음과 함께, 나 자신의 가치와 영적인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한없는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내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게 하며 큰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아울러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귀한 은혜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 교리적으로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것은 또한 내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가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물질이나, 명예나 지위가 나를 존귀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상태가 어떻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런 믿음이 커질수록 나뿐만 아니라 믿음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롬3:10)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잘 알았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한다” (갈2:19)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믿음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 삶이 내 뜻과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불평할 때가 많은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며 진정한 감사와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더욱 깊이 묵상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목동제일교회)

강하고 담대하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1)



우리의 전쟁은 세상 나라의 군대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세력들과 싸우는 영적 전쟁입니다우리는 성령의 무기로 허위와 거짓에 대항합니다.
전도집회가 끝난   젊은이가 내게 찾아 와서, "진실을 말씀해 주셔서 감합니다.
제가 기독교인이 되었을  목사님은 앞으로 저의 인생은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저의 모든 문제를 가져가셨기 때문에 다시는 힘들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제가 신자가 되고 나니까마치 핵전쟁이 터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른다면당신은 전쟁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하게 자라가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런 축복은 오직 영적인 전쟁을 통해서만 얻을  있습니다우리는 되풀이되는 죄와 싸우고온갖 종류의 갈등에 부딪힙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앞에 있는 육중한 방어 진지와 강한 군대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단순하게 어금니를  물고 싸우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주님은 여호수아가 담력을 갖도록 삼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목적과 인도하심동행하심을 확고히 붙잡아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것을 기억함으로써 용감하게 싸울  있었습니다.

<인간존엄을 향한 하나님의 디자인 / 리차드 L. 프랫>

10/18/2011

흥왕 하는 말씀의 역사

사도행전 12 : 20 ~ 25
* 효유(曉喩)한대(21절) : 연설하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당하는 교회에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악한 계획을 무력화 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패배를 모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궁극적인 승리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흥왕 하는 말씀의 역사 
야고보 사도가 순교하고 베드로 사도가 투옥되면서 하나님의 교회는 위기를 맞았고, 비록 베드로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탈옥을 하였지만 헤롯에 의한 핍박이 중단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방인 고넬료가 구원을 받고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면서 세계선교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흉년의 때에 안디옥 교회의 사랑과 섬김으로 복음의 능력을 맛보게 되면서 교회의 역사가 새롭게 되고 있을 즈음에 헤롯에 의한 핍박은 예기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심각하게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위기의 과정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인간들의 계획을 무력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말씀의 흥왕 하는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흥왕 하는 말씀의 역사란 하나님의 말씀이 널리 전파되고, 여러 사람들에게 가르쳐지고, 말씀을 배운 사람들이 말씀을 좇아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의 사람은 말씀을 따라서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새롭게 하고 삽니다.

일용할 양식   기독대학인회(ESF) 제공

행복한 사람이란?

생활이 궁핍하다 해도, 그 내색을 밖으로 하지않고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누가 나에게 섭섭하게 해도, 그려려니 하면서 그 동안 나에게 그가 베풀어 주었던 사랑에 고마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밥을 먹다가 돌이 씹혀도, 이가 안상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돌보다는 밥이 많다며 껄껄껄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밥이 타거나 질어 아내가 미안해 할 때 누룽지도 먹고 죽도 먹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대범하게 말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남이 잘 사는 것을 배 아파하지 않고, 사촌이 땅을 사도 진정으로 같이 즐거워 해주며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축하의 말 한마디 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직위가 낮아도 인격까지 낮은 것은 아니므로 내가 처한 곳에서 의무와 책임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가 오면 만물이 자라나서 좋고, 천둥. 비바람. 폭풍이 와도 바다 밑을 정화하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날이 개면 쾌청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비가 새도 바람을 막을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느끼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았던 추억을 되살리고, 과거의 실패를 거울 삼아서 앞날을 희망차게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돈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의 복. 권력. 지식이 많아도, 아파 누워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아직 몸 건강하게 육신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받을 것은 잊어버리고, 나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을 줄 것을 다짐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가를 세심히 살펴보며,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번 쯤 미리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마음 한 번만 긍정적인 요소로 바꿔 먹으면 그 순간부터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눅 4:16-21) 복음의 기쁜 소식의 핵심을 담고 있는 말씀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사 61:6b).

1. 구원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예언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 61:1-3).  


2. 구원받는 자들의 변화될 모습  
1) 하나님의 자녀(백성)로서 회복될 것이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사 61:4-5).2) 여호와의 제사장이 될 것이다.  


2)“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사 61:6a). 
3) 하나님의 봉사자가 될 것이다.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될 것이다.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사 61:6c).


5) 주의 이름으로 박해를 받으나 영원한 상급이 주어 질 것이다.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사 61:7-9).

6) 영생(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사 61:10-11).

사랑스러워지는 법 15가지

1. 거울 속의 자신에게 미소 짓는 연습을 한다.
2.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아내 칭찬의 말을 건넨다.
3. 나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고, 잘한 일은 침묵한다.
4.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팍팍 쳐주자.
5. 고맙고 감사한 마음은 반드시 표현한다.

6. 때로는 큰 잘못도 눈을 감아준다.
7. 파트너를, 아이들을, 내 자신을 존중한다.
8. 매 순간 누구에게나 정직하자.
9. 나 자신을 가꾸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는다.
10. 아무리 화가 나도 넘지 말아야할 선은 넘지 않는다.

11. 진정 원하는 것은 진지하게 요구한다.
12. 나 자신과 사랑에 빠져보자.
13. 갈등은 부드럽게 차근차근 푼다.
14.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편지를 쓴다.
15. 마주치는 것들마다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1초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평생을 최고의 시계를 만드는 데 헌신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들의 성인식 날 손수 만든 시계를 선물하였다.
그 시계는 특이하게도 시침은 동(銅)으로,분침은 은(銀)으로,
초침은 금(金)으로 되어 있었다.

아들은 시계를 받아들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시침이 가장 크니까 금으로 장식하고
가장 가는 초침을 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아니다.
초침이야말로 금으로 만들어져야 한단다.
1초를 잃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시간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는 아들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1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시간과 분을 아낄 수 있겠니?
세상의 흐름은 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명심하고
너도 성인이 되는 만큼
1초의 시간에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라.”

1초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루를 잃고 일생을 잃는다.
인생의 승패는 순간순간에 달려 있다.
때가 악하니 만큼 세월을 더욱 아끼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6:16)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성경에서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이후를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기록했습니다예수님께 고침을 받았지만 결국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사람들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결국 은혜 받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은혜가 은혜되게 하려면 먼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은혜를 깨닫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그리고 은혜는 역경 속에서 알게 됩니다이것은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은혜는 고난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기독교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풍요로울 때 오히려 부패하고역경 속에서 은혜가 넘치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자신을 알아야 은혜가 은혜 됩니다이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스스로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그리고우리는 그 은혜 속에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은혜는 변화가 증거입니다이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자기의 종교성만 만족시키는 것은 결코 은혜가 아닙니다여기서의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습관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은혜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입니다고전15:10의 말씀처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겸손하게 여겨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통해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목동제일교회)

10/17/2011

정체성이 분명한 교회; 선한 사역을 하는 교회

사도행전 11 : 19 ~ 30
고넬료를 구원하심으로 이방인 구원이라는 새로운 선교의 장을 여신 하나님께서 이방 땅에 세계선교의 전초기지인 안디옥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안디옥 교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정체성이 분명한 교회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 말은 결국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정체성이 분명한 교회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말미암아 환난을 당하고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렀고 그들이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함으로 안디옥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무명의 복음전도자들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주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파송하였고, 바나바는 사울을 안디옥에 데려와 함께 동역하였습니다. 이들의 사역으로 인하여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정체성이 분명한 안디옥 교회는 고난 중에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정신과 자발성이 있었고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창조성이 넘치는 사역을 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과 같은 준비된 좋은 지도자의 헌신적인 섬김이 있었고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좋은 양들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모호해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예수 믿는 자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분명할 때 복음의 능력은 나타납니다.

선한 사역을 하는 교회 
안디옥 교회는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이들이 부흥케 된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섬김도 컸습니다. 그런데 큰 흉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안디옥 교회는 힘을 모아 유대에 사는 형제를 구제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이러한 사랑과 섬김은 믿음의 결실이며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힘써 돕는 것은 교회의 마땅한 사역이며 그리스도인의 인격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러한 것을 잘 감당하였습니다(행 2:44~45). 선한 사역과 행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발로입니다. 사랑과 섬김을 주고받는 신자들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음전도의 접촉점이 됩니다. 교회는 기독교의 이미지가 실추되었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향한 선한 사역을 사랑과 섬김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신 은혜와 은사를 따라 지역사회에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감당할 수 있는 선한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감당한다면 복음사역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교회가 감당해야할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출처:매일선교회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원하시는 때에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이런 말을 몇 번이나 들어 보았는가? 그러나 이 말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전3: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중보기도자들에게 '잇사갈의 기름 부음'을 주셔서 시세를 알게 하실 것이다.(대상12:32). 물론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이루실 준비가 되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이루실 준비가 되면 그 말씀을 중보기도자들의 입에 두신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 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렘1:9-12)

여기서 '지켜'[watching]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샤카드'(shaqad)인데, 이 단어는 "깨어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다, 방심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깨어 계신다. 그분은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입에 두신 말씀을 행하시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방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살구 나무를 보여주셨다.
왜 보여주셨는가?
살구 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샤카드'와 스펠링이 비슷하다. 모든 나무 가운데 살구 나무는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그래서 히브리적 사고(思考)로 살구 나무는 '깨우는 자'로 이해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이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방심하지 않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살구 나무를 보여 주신 것이다. 살구 나무가 '깨우는 자'의 의미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늘 깨어 계시며, 자신의 말씀을 종들의 입에 두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사용하시게 하라.
원수가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라.
우리에게서 성령이 흘러 넘치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원수들이 도망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아멘!

택함을 입은 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27:1)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22:14).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수는 있으나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우리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보혈에 적셔지지 않은 사람이 보입니다.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을 "아멘주여감사합니다"하고 받는 것입니다.

능력은 어떤 힘이 아니라  안에 죄가 깨어지고 내 안에 더러움이 사라지고  안에 모든사탄의 세력이 사라질  그것이 바로 능력인 것입니다죄가 사라지는 것이 능력입니다.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그를 통하여 성령의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고 교회에오는 사람은 많으나 보혈을 경험한 사람이 적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용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