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2011

시간의 감옥을 탈출하라!

유명한 수필가인 영국의 찰스 램은 인도의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그는 매일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다섯시까지 줄곧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마음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시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세월이 흘러 그가 정년퇴직을 하는 날이 되었다.  그는 구속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무척 기뻐했다.

찰스 램은 정년퇴직하는 날  마지막 출근을 했다.
"선생님, 명예로운 정년 퇴직을 축하합니다."
찰스 램의 평소의 소원을 알고 있던 여직원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이제는 밤에만 쓰던 작품을 낮에도 쓰게 되셨으니 작품이 더욱 빛나겠군요."
찰스램도 활짝 웃으며 유쾌하게 대답했다.

"햇빛을 보고 쓰는 글이니 별빛만 보고 쓴 글보다 더 빛이 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찰스램은 혼자 중얼거렸다.

"아아, 이렇게 자유로운 몸이 되길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마음껏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기쁨 때문에 그는 가벼운 흥분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3년후 찰스램은 자기의 정년퇴직을 축하해 주었던 여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사람이 하는 일 없이 한가한 것이 눈코뜰새 없이 바쁜 것보다 얼마나 못 견딜 노릇인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오. 바빠서 글 쓸 새가 없다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글을 쓰지 못하는군요. 할일없이 빈둥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요. 좋은 생각도 일이 바쁜 가운데서 떠오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소 아가씨는 부디 내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겨두고 언제나 바쁘고 보람있는 나날을 꾸며나가기 바라오."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아비를 조롱하여 어미를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

영화 대부에서 갱들은 서로 화합하자고 하지만 결국 화합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화에서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상황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화목하지 못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중요한 몸을 포기하면서라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진실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지도자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서로 화목하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믿음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소금으로서 살아갈 때만 화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금을 생각해보면 먼저 맛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또 방부제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소금의 기능 중에는 고르게 하는 역할도 있습니다. 김치를 담글 때 소금에 저리는 이유는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드릴 때 소금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제물은 철저하게 죽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죽여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예배 드리는 우리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자신을 죽여서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서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해야 할 일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물되는 일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지고 내 주변과도 화목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녹아져야만 그 기능을 감당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녹아져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순수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목동제일교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가정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약5:16)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 중에서 사람을 만드시고 더욱 기뻐하셨습니다. 사람은 더 다양하게 더 귀한 의미와 표현들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정만큼 전능하신 하나님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기관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신 가족관계의 표현은 놀라운 하나님의 아이디어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떠한 가정을 이루라고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을 통해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을까요? 사람들은 세상에서 많은 폭풍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안전지대가 필요한 데 그래서 주어진 것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이런 저런 좌절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특히 살아가면서 정서적인 아픔을 당할 때도 많습니다. 화가나고 외롭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합니다. 이런 정서적인 시련가운데 우리를 지켜줄 울타리가 있다면 그것은 가정이 아닐까요? 우리를 보호하는 기관으로서 가정을 허락하셨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가정이 배움의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머니 품에서부터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배웁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의미에서 믿음의 가정에서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첫째는 관계입니다. 사람은 만나고 살아가기 때문에 관계를 가르쳐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가치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 데 그것은 어떤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인격인데 그것 역시 비언어적인 것입니다. 인격은 내면의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나의 모습인데 아이들은 그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알고, 따라가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느 분은 신앙 생활을 릴레이 경주에 비유합니다. 릴레이는 바톤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는 경기인데 우리는 그 중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받은 신앙의 바톤을 내 자녀에게 넘겨준다는 것입니다. 내 자녀는 또 그의 자녀에게 넘기는 것이죠. 가정은 가르치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세 번째 가정은 사역을 위한 장소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사역을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정말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짜 예배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어디서부터 할 수 있을까요? 바로 가정에서부터입니다. 구제하는 부모 아래의 자녀 중 궁핍한 자를 본 일이 없습니다.

가정은 안전가옥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남을 섬기는 것을 배웁니다. 가정을 통해 온전함에 이르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목동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