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2011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라

최근 나는, 어떤 기다림으로 인한 설레임과 다른 한 편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교차되는 삶을 살고 있다. 지구촌 처처에서 들여오는 난리와 전쟁, 기상이변으로 인한 홍수와 가뭄의 지진, 화산폭발 등의 소문들이 끊임없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예고라고 여겨지기에 그러하다.

세상의 종말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사실이 웬지 자꾸만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그 예수님은 지금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대속해 주신 분이시다. 이로서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나를 구원을 확증해주신 분이시다. 그런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벅차게 기다려지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또 다른 마음 한 구석에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일어나고 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 예수님께서 내게 그동안 당신이 주신 사명에 대하여 결산을 요구하실 때, '정말 당당하게 충성하였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라고 자책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웬지 '주님의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예수님을 뵙기에 염치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때때로 20 수년전에 별세하신 외조모님을 생각한다. 외조모님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내가 죽기 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외조모님은 그 말씀을 그냥 해보는 말씀이 아니셨다. 당신은 정말로 '살아서 주님을 꼭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하셨다. 그런 말씀을 하시던 외조모님은 언제나 참 진지하셨다. 그런 외조모님의 믿음이 오늘은 나의 믿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가 죽기 전에 오신다. 그냥 '그럴 것이다'가 아니다. 분명히 '오신다'고 믿는다. 지금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문과 소문들이 '이것을 증명한다'고 믿는다. 정말이지 남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61세의 나이 결코 적다 할 수 없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분명히 살아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만날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기다림으로 설레이는 마음과 다른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교차되고 있다.

일찍이 저명한 의사로부터 '5년밖에 못 살 것'이라는 오진(?)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비록 남들처럼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당장 병약하여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지도 않는다. 지체적인 장애로 어려움은 겪고 있지만, 그것이 생명을 위태로운 빠지게 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주 건강하다. 노아 홍수 이후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수명을 120으로 제한하신 만년을 충분히 맞이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이 넘쳐난다.

지금까지 120년 중 꼭 절반의 생애를 살았다. 지난 해부터 '남은 절반의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한 때는 다소 방자하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에 찼던 날들이 많았다. 이제는 그런 무모한(?) 자신감이 서서히 사라진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애의 정점에 오르며 '아직 남아 있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큰 고민으로 작용했다.

올해부터 절반의 후반부 생애가 시작되었다. 이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난 해에는 장기금식을 한 바 있다. 금식할 때, 주님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과 청년의 비전을 주셨다. 이제부터 그 일을 향하여 앞으로 전진하려 한다. 결코 뒤를 돌아보거나 중지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속담에 이르기를 '시작이 반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올해는 내게 있어 아주 중요한 해다.

예수님은 500여명의 무리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다시 오겠다'라고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 예고되었다. 이제 그 때가 곧 가깝게 이르렀다. 바짝 긴장하여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셨던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중에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했던 다섯 처녀들과 같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한다. 설레이는 마음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라. 이를 위해 깨어라. 세상의 잠에 취하여 졸거나 정신없이 잠자는 자가 되지 말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으라. 다가 올 미래에 예수님을 맞이하려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막연한 준비가 아니다. 관념과 이상도 아니다. 실제적인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엎드려 기도하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으며, 그 말씀에 근거하여 엎드려 기도하는 자가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라.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세상의 징조를 깨닫는 지혜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다. 세상의 징조를 깨닫는 지혜만이 예수님이 오실 날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결코 예수님의 재림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 하나님은 세상에서 일어날 여러 가지 징조들을 통해 그날이 임박했음을 깨닫게 하시려고 예고해 주신다는 사실을 유의하라. 그러므로 징조를 깨닫는 지혜를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라. 그것이 곧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요, 다가 올 미래가 준비된 자만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정녕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였는가? 그래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 없다.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이 곧 오신다. 경성하여 깨어 있으라. 다기 올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하라. 미래를 준비한 자만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를 알리는 세상의 징조를 깨달을 수 있다. 징조를 깨닫는 자만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징조를 결코 무시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종말의 경고다. 징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자가 복이 있다. 그것이 곧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다. 그것이 곧 경성하여 깨어 있는 일이다. 깨어 있는 자만이 밧모섬에 유배되었던 사도 요한처럼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외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사도 요한처럼 크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입술로만 외치는 소리가 아니다. 마음 깊이 부르짖는 외침이어야 한다. 이런 외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종말을 진심으로 깨닫고,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한 자가 외칠 수 있는 외침이다. 다시 오실 예수님께 소망을 둔 자가 외칠 수 있는 외침이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2011. 2. 10 (목)
글/ 불꽃 石一進

기도의 30가지 교훈!

1. 기도 없는 경건은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다.
2.
교만 중에 가장 무서운 교만은 기도하지 않는 교만이다.
3.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리는 영적인 낮은 포복이다.
4.
기도 자가 피해야 교만은 기도 많이 한다는 교만이다.
5.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 사상,  그리고 사역에 감화되어 하나님께 설득되는 것이다.

6.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기도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7.
기도 자는 바른 기도를 통하여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점점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바뀐다.
8.
기도는 자기의 욕심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인생 청사진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9.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집을 짓는 벽돌이다.
10.
기도는 소리를 내기 위해 악기를 조율하는 것과 같다

11. 기도는 세상적인 욕심의 발전소가 아니라, 소방서이다.
12.
기도가 없을 때에 마음은 세상 것으로 무거워지고,  기도가 있을 마음은 성령과 하늘의 것으로 충만하다.
13.
기도는 언뜻 보면 좁은 길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넓은 길이다.
14.
기도는 우회도로처럼 보이나 실상은 지름길이다. (요령, 약삭빠름, 잘남보다 빠르다).
15.
세상에서 가장 줄을 서는 방법은 기도이다.  

16.
세상의 성공에는 후유증이 있으나 기도에는 후유증도 뒤탈도 전혀 없다.
17.
세상의 모든 후원에는 용수철처럼 조건이 달려있지만(string-attached),
기도에는 기도 자를 하나님 아버지께 매어다는 용수철이 달려있다(God-attached).
18.
기도 자체는 무능이나 하나님은 기도의 무능을 통해 전능전지의 역사를 하신다.
19.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
20. 기도 없는 곳에 사람만 일하고, 기도 있는 곳에 하나님이 일한다.

21.
기도는 노력 더하기 노력이 아니라, 나의 노력 곱하기 노력이다.
22.
기도가 없는 곳은 사탄의 잔칫집이고, 기도가 있는 곳은 사탄의 초상집이다.
23.
기도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리는 것이다.
24.
기도는 예수님을 닮는 최상의 방편이다.
25.
기도 여행의 목적지는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26.
기도는 성공적인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27.
기도는 노동절약 장치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28.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삶과 기도의 내용은 같다.
29.
하나님께 감동되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감동 시키려고 기도는 중언부언이 된다.
30.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고, 기도 자는 삶으로 하나님께 응답한다.

<출처:임마누엘>

어 이건 하나님 뜻이 아닌 것 같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75세 되던 해, 갈대아 우르에서 그를 불러내셨다. 하나님 말씀만 믿고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먼 약속의 땅으로 왔는데, 그 땅에 기근이 덮쳤다. 그것도 아주 심한 기근이었다.(창12:10)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오히려 전보다 더 힘든 상황에 봉착했으니, 아브람은 따르는 가족과 부하들을 볼 낯이 없었을 것이다.

당신은 그런 경우가 없었는가?
마음을 잡고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사업이 더 힘들어지고, 부부싸움은 더 심해지고,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 오히려 더 큰 고통이 온다. 이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근은 우연히 온 게 아니다. 천지를 주관하신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이다. 하나님은 왜 약속의 땅에 막 도착한 아브함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셨을까? 그것은 아브람의 믿음을 강하게 다지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장래에 소망을 주시고 축복을 주신다. 그러나 먼저 축복을 담을만한 그릇으로 우리를 준비시키신다. 우리 믿음을 깊고 단단하게 만들기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 어려운 상황을 주시는 것이다.

단련되지 않은 믿음은 강해지지 않는다. 조금만 비바람이 몰아치면 무너져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일련의 고난을 허락하셔서, 믿음을 단단하게 하시고 순결하게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어려워지면 '어? 이건 하나님 뜻이 아닌가보다'라고 단정 지으며 다른 길로 피하려 한다. 그래서 아브람도 애굽으로 피했다. 애굽은 나일강 유역에 형성된 비옥한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건설된 국가여서 당시 주변 지역의 유목민들을 기근이 일어나면 발 빠르게 그곳으로 피난을 가곤했다.

믿음의 시련이 올 때 우리의 반은은 '당장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상황을 통해서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계신가?'를 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접어두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해서 하나님이 움직이라 하실 때까지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약속의 땅을 쉽게 버리면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길 원하시며, 비전을 주시고 새로운 약속의 땅을 주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의 인생은 우리를 흥분하게 하고, 기쁘게 하고, 풍성하게 하며, 깊은 만족을 준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흔들고, 아프게 하며, 어떨 때는 답답하고 힘든 어둠의 골짜기를 거쳐 가게 하기도 한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 포기하고 싶게도 만든다.

그러나 이때 절망하고 포기해선 안 된다. 초기의 모진 비바람은 나무의 뿌리를 더 싶고 단단하게 만들어서 장차 아름으리 나무가 될 준비를 하게 하니까.
<다시가슴이뛴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