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2010

☆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목을 끄시는 방법

우리가 성령 안에 거하고 있을 때 우리들의 영적 안테나는 하나님에 대해 민감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게된다.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이러한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 어떤 형태로 말씀하시든 그 음성에 민감하게 응답할 수 있게 된다


(1). 불안한 영혼 =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시는 것은 우리들의 주의력을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현명한 일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지 물어 보는 일이다.  영혼이 불안감을 느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하던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2).다른 사람의 말 =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의력을 환기시키 두 번째 방법은 사람을 통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에 교만과 이기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그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나무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실패 할 것이며 참된 충고를 받아들이는 자는 칭찬을 받고 삶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잠언서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때로는 인간적인 충고가 우리를 잘못 인도할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들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3).축복  = 하나님께서는 뜻밖의 축복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예기치 못한 넘치는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심을 끄실 때가 있는 데 그러한 축복은 영적인 것 일수록 재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느뇨”.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와 현재를 보신다. 또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계획을 비추어 보시고 충돌이 생길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 영원한 멸망으로 부터 구원받게 하시는 것이다.


(4).응답되지 않는 기도  =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심을 모으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네 번째 방법은 응답되지 않는 기도를 통한 것이다. 다급한 문제를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묵묵 부답일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심을 모으시는 것이다.


응답되지 않는 이유 - 정욕을 위하여 잘못 구하는 경우(4:3), 불순종하는 경우(요일3:22),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경우(요일5:14),  우리들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의 문을 닫고 계실 때, 그것이 때로는 우리들의 삶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심으로써 인생에서 진정 필요한 곳으로 우리의 관심을 옮겨 주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일 수도 있다.


(5). 실망  = 민수기 14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실망과 좌절을 통해서도 우리들의 관심을 모으심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때때로 인생에 있어서의 큰 좌절로 인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좌절을 겪었을 때에 우리들은 먼저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고자 하시는지를 여쭈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기대하는 새로운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6). 특수한 환경  =  때로는 어떤 특수한 환경에 의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우리들은 매일매일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성령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작품과 발자취 와 손길을 찾아내야 한다.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들과 보내 주신 것들 그리고 그들의 관 심을 일깨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가운데 일으키신 일들만이 있을 뿐 결코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① 실패 = 하나님께서는 실패를 계기로 우리의 관심을 돌려 놓기도하신다. 우리들은 보다 큰 일을 위하여 작은 일에 기꺼이 실패할 줄 알아야 한다. 실수를 기꺼이 인정하고 하나님께 잘못을 고백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관심을 모을 수 있게 해드리신 것을 감사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실패는 결코 우리를 패배자로 만들지 못한다.


② 경제적인 파탄 =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관심을 모으시기 위하여 경제적인 고갈을 주실 때도 있다. 십일조는 하지만 교묘하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역시 경제적인 재난을 주셔서 하나님을 찾게 만드실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함을 아시며 어떤 물질적인 것을 얻는 것보다도 그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신다.


③ 비극 =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때로는 비극적인 상황을 주심으로써 우리들의 주의를 집중시키신다. 한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의 비극을 무조건 하나님의 징계로 보기 보다는 영적인 여과기를 통하여 파악할 수 있어야 하겠다.


④ 병과 고통 = 병이나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심을 모으시는 방법 중 하나이다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들의 병을 통하여 생활을 돌이켜 볼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에 치유에 관한 문제는 매우 유의해서 다루어야 할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일상 생활의 흐름을 멈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려고 신중하게 고려하여 다양한 각양 각색의 방법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결코, 하나님은 우리들이 아무런 위험 신호도 받지 못한 채 열려 있는 맨홀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과연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는가 ?
시편81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한 인간에 대한 슬픈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 사람에게 들려주시려는 특별한 말을가지고 계시며, 우리들을 향해 지금까지 수없이 그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의 생활이 다른 일들로 인해 지나치게 분주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흥분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필요하며 유익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와 똑같은 능력으로 오늘날에도 말씀하고 계시며 우리들이 그 음성을 듣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말씀하시는 이유
1)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 시대의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 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교제하신 것처럼 우리들과도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2) 여호수아나 모세나 야곱이나 노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의우리들에게도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분명하고 세밀한 인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3) 믿음의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들도 평안과 확신이 필요함을아시기 때문이다.
         
4)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멈추신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구약과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
1)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인 계시로 말씀하셨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의 영에 말씀하셨다(창시기12:1-2).

2)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성경은 얘기한다.
)하나님께서 연속적인 꿈을 통하여 세상의 운명을 다니엘에게 계시하신 것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 = 성경은 결코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애쓰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결코 꿈이나 이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자기 백성과 교통하시기 위하여 그 율법을 사용하셨듯이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이야기 하셨다.

4)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믿음의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외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말씀임을 알았기 때문에 순종했다.

5) 하나님께서는 환경을 통해 말씀하셨다.
         
6)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천사의 예언으로 마리아와 요셉에게 계시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7) 하나님께서는 종종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16: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오늘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
1. 하나님의 말씀 =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에 관해 전개되고 있는 진리이다.  율법책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성경은 우리 들의 삶을인도한다.

2. 성령 =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은 성령을 통한 것이다.  오늘날,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시고 거하시며 우리를 지키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의 영에 말씀하고 계신다.

3. 다른 사람들 =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은 다른 사람을 통한 것이다. 우리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할 사람은 일상 생활을 같이하며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를 가장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 하나님의 음성에 전심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4. 환경 = 환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때는 실패의 상황으로 나타나고 어떤 때는 성공의 상황으로 나타난다.  또 어떤 때는 실망과 비극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삶의 환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대화하고자 하시는 목적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것만을 말씀하신다. 결코 잡담이나 서문을 달지 않으신다. 언제나 요점만을 말씀하시고 정확하고 간결하게 말씀하신다.

 (1). 진리를 이해하는 자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첫 번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알게 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고전2: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것 곧 하나님의 깊은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음성이 잘 분별되지 않을 때, 그것은 우리 삶 속에서 무엇 인가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을 수 없도록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1)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그리고 사람과 자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2)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가 자신에 관한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귀한 자들이며,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매우 소중한 것임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3)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에 관한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다른 사람들을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로 여기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격을 깨닫고 자신과 이웃에 관한 진리를 잘 이해하게 될 때에 비로서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청지기로서의 준비를 갖추게 된다.


듣는 자세 : 소극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자세
적극적인 태도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자 열심히 찾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온다. 설교 시간이나 성경 공부 시간에 열린 마음과 귀를 가지고 열심히 듣고 기록하며, 혼자 묵상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향한 통찰로 항상 말씀을 탐구하고 찾으면서 이전에 들었던 말씀과 현재의 말씀을 비교하여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려 하고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할 것이다( 17:11).

소극적인 태도 = 예배나 성경 공부에 참석하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잠시도 생각해 보지 않는다. 듣는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열정을 가지고 집중하여 들어야 한다. 나태한 자세로 말씀을 들을 때는 깊이 깨달을 수 없고 표면적인 뜻만을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각 영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에, 만약 하나님께서 환경이나 친구를 통하여 말씀하신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진리에 의해 변화되는 자 = 하나님께서 우리와 대화하고자 하시는 두 번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따르게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진리에 접하였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이다. 즉①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지는 것을 거부하거나, ②이에 순종하는 것이다. 진리를 따라 빚어지고 진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해 해야 하고,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씀 을 들어야 한다. 

1:23-24; “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3).진리를 전하는 자 =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세 번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게 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은 가령 그것이 돈이건 통찰력이건 진리 이건 간에 결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함께 나누라고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에게 지난3년 동안 가르쳐 온 진리는 결코 개인이 소유하여 자신의 지식 속에 저장하고만 있어서는 안 되며 그들이 받았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함을 명백하게 깨우쳐 주셨던 것이다. 

자기 자신을 영적으로 분별하는 법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을 받은 자니라.'(고후13:5)

종교적 열심을 분별해 봅시다. (두려움, 죄의식, 자만심, 명예욕)
 1.
당신은 주된 임무가 잘못됐다고 생각되는 것을 짤라내는 데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당신보다 영적으로 어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충고(reprimand)를 받았을 때, 너무 어이가 없어 하며 경직된 적이 있습니까?

3.
당신은 신학을 근거로 하나님 말만 듣고 사람 말은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영적인 자랑, 자긍심, 교만)

4.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다른 교회나 선교회에 좋은점을 찾기보다 나쁜 점을 먼저 보는 경향이 있습니까?

5.
당신은 하나님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생각 때문에 강한 죄의식이 있습니까?(하나님과의 관계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기초하기보다 실적에 기초하려는 종교적 열심의 유혹)

6.
당신은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하는 방향을 주는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스스로 하나님 나라 경찰, 보호자 역할을 자처, 실제로는 하나님의 교회에 분열과 문제를 일으킴)

7.
당신의 지도방식이 약한 자에 대해 지배적이며, 거만하며, 관대하지 않습니까?(야고보서 3:17, 18 참조)

8.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 있다고 생각하고, 당신의 삶과 사역 또한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십니까?(예수님보다 우리 실적때문에...)

9.
당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영적 성숙함과 절제력 때문에 우월하다고 느끼십니까?(남과 비교하는 자체가 우리의 목표인 예수님을 잊은것임)

10.
당신은 하나님 역사에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영적 교만, 자기중심적 사고 조심, 참조 야고보서 4:6)

11.
당신의 기도생활이 기계가 돌아가듯이 이루어집니까? (기도시간이 끝나면 일거리 하나 처리한 느낌이 드는가?)

12.
당신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대로 알도록 합니까?(사람 앞에서 신앙생활)

13.
당신이 감정표현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사람들이 당신을 꺼려합니까?(법궤 앞에서 춤추는 다윗, 사무엘하 7:23)

14.
당신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낼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격렬한 감정표현을 합니까?

15.
당신은 주님을 위해 여행을 많이 하거나, 일을 많이 하는 것 때문에 낫다고 생각합니까?

16.
당신이 사역하는 곳의 역사가 다른 곳보다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고무적입니까?(반대 경우를 생각해 보면)


17. 당신이 보기에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현재보다 더 빨리 응답하시고 더 일하셨던 것 같습니까?(종교적 열심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가까이 갈 수없게 막습니다. 현재도 과거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 예수님을 통하여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18.
당신은 새로운 기독교 단체나 모임을 먼저 이상하게 놓고 보십니까?(시기, 자만심, 우리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새로운 것을 안 하실 것이라는 착각)

19.
당신은 당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현상들을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봅니까?(자만심, 하나님도 내가 보는 것같이 볼 것이다 라는 착각. 인내하고 열매를 보고 판단. 데살로니가전서 5:21)

20.
당신은 교회 내에 육적 일이 보이면 즉시 격노한 반응을 보입니까?

21.
당신은 교회가 성숙하지 못하다고 즉시 격노한 반응을 나타냅니까?

22.
당신은 당신의 판단에 의해 완벽하거나 완벽에 가깝지 않은 일에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합니까?

23.
당신은 지금까지 질문을 읽으면서 아하 이것은 내가 아는 이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생각이 많이 떠올랐습니까?

바울은 너희는 너희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가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누구도 모든 질문에 완전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종교적 열심이 우리를 속일 수도 있으므로 우리는 거기에 속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종교적인 열심... 바리새인의 누룩...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자...

특히 4번과 6번 질문에 걸리신 분은 종교적 열심으로 잘못된 분별력을 받은 것 입니다.

나는(릭 조이너) 다른 사람이나 다른 모임,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예외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나 모임, 교회 회복을 위해 사랑으로 일하는 것이 보일 때는 귀를 기울입니다.진정한 분별력의 열매는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특히 8, 9,10,15,16번 질문에 걸리는 분은 자기 스스로 의로움(자기義)이라는 종교적 열심에 걸리는 분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자기를 스스로 낮추며, 이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 이것도 종교적인 열심이며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거짓 겸손입니다순교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분별해 보아야합니다. (자살충동을 그렇게 표현하기도합니다.)

회개 - 로이드 존스


1. 회개의 정의  = 회개란 단어는 다시 생각하다, 한 번 더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종교 전체를 잊어버리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면, 회개란 여러분들이 그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 원어로 메타노이아(met anoia)는 단순히 다시 생각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의 변화의 결과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더해지는 생명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21:28-32).

둘째 아들은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태도로 말하고서는 나갔을 때에 아마도 분노하셨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그의 계획을 바꾸게 하였을 것이며, 그는 돌아가서 다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단계를 뜻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잊어버렸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 그것을 다시 음미합니다. 여러분들은 다시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그가 다르게 생각했다는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는 지금 나갔고 이제 포도원앞에서 하기를 거절했던 그 일을 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마음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했던 것을 후회했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이런 비유 속에서 자신이 사용하시는 용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하십니다. 회개에 있어서 생명과 같은 본질적인 다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태도의 변화입니다. 후에 그는 회개하였고 그리고 갔다. 이 행위가 바로 회개의 한 부분입니다. 만약 그 아들이 단순히 관점만 변하고 자신이 아버지께 말씀 드렸던 것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으며, 앉아 해변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오후 내내를 소비하고 있었다면 그는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후회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거절했던 그것을 하는 것이 참된 회개의 한 과정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의 소명을 효과적으로 듣고 그것에 반응할 때에는 이런 조건과 이런 태도라는 본질적인 요소들이 새롭게 오게 됩니다.
 
2.
회개의 발생
무엇이 회개에 이르게 합니까?  = 우리 안에서 회개는 어떻게 나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복된 단어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로 남녀가 행동으로 옮기도록 합니다. 스가랴12:10절을 보면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은혜와 공급하심이 없이는 회개란 불가능합니다. 사도행전 11:18절에서 고넬료 가정의 돌이킴에 대하여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자신들에게 하신 것과 동일하게 임하셨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란 말씀을 듣습니다. 회개는 은혜의 선물, 즉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한 것을 살펴봅시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2:25). 회개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 편에서 행위를 유발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선포를 통해서입니다.

성경은 이것으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요청하면서 복음은 설교되고 말씀은 선포됩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17:30).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말씀을 설교함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요나서에서 이런 한 위대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요나의 설교는 니느웨인들에게 회개를 유발시켰습니다. 다른 곳은 사도행전 2장인데, 그곳에서 성령에 충만한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서 설교하였습니다. 그가 설교했던 것처럼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적용하심으로 사람들은 이처럼 외쳤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2:37). 이것이 바로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회개가 바로 그렇게 하라고 선포된 말씀이었습니다. 회개의 이런 조건을 유발시킨 것은 바로 진리를 전함입니다.
 
3.
회개의 요소
회개가 포함하고 있는 것들.  = 회개에서 사람들에게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매우 자주 사람들은 회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결정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회개의 그 높이와 깊이와 그 넓이와 길이를 알지 못해 왔습니다. 그러면 회개라는 행위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그 대답은 전 인격입니다. 회개는 전 인격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6:17). 여기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가자아 먼저 마음과 지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부르는 길을 단지 그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도록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의지에만 호소합니다. 그러나 의지는 처음이 아니라 가장 나중에 올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달을 필요가 있으며, 자신들의 상태가 무엇인지를 언급받아야 하며 밝혀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회개에 관한 설교는 지적인 면과 이해의 면으로 시작합니다. 설교가 여러분들에게 지적인 면과 생각의 면을 제외 시킨다면, 그것은 또한 여러분들이 율법을 제외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분께서 그것을 이런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기능입니다.)

1)
회개는 마음과 감정을 포함합니다. - 욥은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42:6)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리가 자신의 가슴을 쳤다(18:13)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 볼 수 없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말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여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나아가 자신의 가슴을 쳤습니다. 로마서 7:24 절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7:11절에서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참된 회개에 포함된 감정들을 특별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복된 주님께서 산상보훈에서 친히 주신 자신의 복들 중 하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5:4). 복된 그들은 단순히 영만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슬퍼합니다. 지금 이것은 우리들에 의해서 간과되어 왔던 것은 아닌지요? 죄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을 여러분들은 얼마나 자주 보았습니까? 우리 개종자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고통에 관하여 알고 있을까요? 오늘날 살마들이 자신들의 죄를 슬퍼함으로 얼마나 자주 눈물을 흘립니까? 자신들의 죄됨 때문에 그리도 괴로워하는 자들을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을 우리는 성경 속에서 발견합니다.

회개는 마음과 감정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것은 단지 지나치는 후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바람도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의 표현의 강도는 사람 각자의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다른 면에서 다른 것처럼 감정의 면에서도 우리는 다릅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여 관심을 두고 싶은 것은 이런 감정의 강한 요소가 항상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없다면 참된 회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감정을 느낍니다. 괴로움과 경외와 두려움과 같은 그런 종류의 감정이어야만 합니다. 감정들은 항상 회개에 포함됩니다. 바울이 경건한 근심(개역성경: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후7:10)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그런 감정입니다.

2)
회개는 의지를 포함합니다. - 회개는 또한 의지를 포함합니다. 이것은 생명적입니다.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7). 회개자는 그것을 반드시 버려야만 합니다. 그는 후회의 감정을 가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반드시 떠나야만 합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2:13). 세례요한의 설교가 있는 누가복음 3장에 가면,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망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3:8). 여러분들은 그것에 관하여 무엇이나 해야 한다고 요한은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마태복음 21장에 있는 두 아들의 비유 속에서 동일한 가르침을 발견합니다. 회개의 본질적인 요소에는 전환점이 있습니다. 의지가 작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전의 잘못된 곳으로부터(from) 바른 곳으로(to) 전환하게 합니다. 행동은 회개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바울은 다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상기시킵니다.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살전1:9). 이것은 회개에 포함되는 이런 행동의 위대함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 측량할 수 있게 하는데, 즉 회개는 전 인격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4.
회개의 주체 = 회개의 주체의 첫 번째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변화된 관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관점들을 잘못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관점들을 소유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하여서도 전혀 다른 관점을 소유합니다. 그리고 다른 주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남녀가 회개할 때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삶 자세와 삶의 목표 나아가 살아야만 할 방법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소유합니다. 그리고 죽음과 영원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발생합니다. 달리 말하면 회개는 전인격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세상에서 가치와 관여된 모든 것에 관한 인격적인 전체 관점 또한 포함합니다.


5. 우리가 회개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관점의 변화 - 제일 먼저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관점과 생각에 있어서 변화를 포함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가 회개할 때입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전적으로 잘못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8:7).

우리는 신약성경에 의해서 경건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12:28 )을 명령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위대하며 그분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의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동시에 그분을 경외함 속에서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경외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소유한(두려워하는)(요일4:18) 그런 경외가 아닙니다. 그것은 겁나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더욱 더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더욱더 형상화되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압니다. 공의와 자비는 함께 만납니다. 이것이 바로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두개를 동시에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인들 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혹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분법으로 나뉠 수 없습니다. 또는 한 편만 강조되어 하나님을 자신들의 요구에 짜맞추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2)
죄인됨을 철저히 인식함. - 보다 더 큰 변화는 이전의 이기적인 자신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죄책감과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죄를 범해 왔다는 감정을 소유합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시편51편에서 다윗이 놀랍게 토로했던 것처럼 그리고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보여준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오염되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여러분들은 오염을 느낌 적이 있었습니까? 저는 비천하고 죄에 가득합니다라고 챨스 웨슬리는 썼습니다. 성도가 위대해지면 질수록 이것을 더욱 더 알게됩니다. 달리말하자면, 그들의 회개는 더 깊어집니다. 그들은 타락과 원죄의 결과로 자신들 속에 있는 비천함과 자신의 마음의 부패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 중에서도 자신들의 연약함과 무기력함을 깨닫습니다.
3) 죄를 미워하고 대적함. - 또 다른 변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생명과 삶에 대한 관점의 변화입니다. 그들은 이를 미워하는 감정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된 행위와 죄된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죄를 죄로 여기고 미워합니다. 그들은 이런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온 적이 없었을 때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졌던 것처럼 이제는 죄를 그렇게 미워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들은 거룩의 아름다움과 의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에 대한 감각을 소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의 아름다움의 영광을 봅니다. 이런 것들(죄를 미워하고 슬퍼함과 거룩을 기뻐하고 즐거워함)이 더 이상 자신들과 상극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니의 법이 완전하며 순수하며 거룩하며 공평하여 의롭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법은 더 이상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6. 회개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들. = 이런 모든 것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제가 요약해 보겠습니다. 회개는 죄 때문에 일어나는 비통과 슬픔의 감정으로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는 자기 혐오-죄된 본성을 미워함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미워합니까? 로마서 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바울이 말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회개는 또한 경외감으로 인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의로우시며 공평하신 분이며, 또한 우주와 영원한 심판의 주님 되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죄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거룩의 빛 안에서 우리의 자기 혐오는 우리를 구원을 위한 갈망으로 인도하며, 그리고 또한 그런 구원이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회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그것을 함에 있어서 잠시 동안 잘못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자신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선하나 표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한 열망 또한 계속됩니다. 그들이 영으로 가난하여 애통해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하나남께서 자비를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깨어진 마음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맡길 뿐입니다. 그들은 어느 것도 변호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을 변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이 바로 회개의 정의입니다.
 
7.
회개와 후회의 차이
. = 참된 회개는 후회와는 달리 이런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항하여 그분을 슬프게 만들었고 그분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그런 감정을 가지게 합니다. 제가 반복하지만 회개는 우리에게 오염과 전적 무가치의 감정을 갖게 합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죄를 제거하고 싶은 갈망과 결단을 줍니다. 이런 격렬한 갈망, 이런 행위, 이런 열정, 이런 복수심이 바로 바울이 말한 것들인데, 이것이 바로 경건한 슬픔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팔복의 하나로 다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회개의 궁극적인 시금석이며 후회와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입니다. 즉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 싶고, 더욱더 그분과 같이 의롭고 거룩하며 청결하게 되기를 원하는 그런 열망을 갖게 합니다. 회개하는 자는 단순히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락했고, 그 후에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낙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후회가 소극적이라면 회개는 적극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죄와 용서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동행을 하는 데 있어 걸림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난 이후에도 범하는 죄의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죄짐을 풀어놓고 용서를 받았으나, 그래도 재림의 주를 맞기 전(혹은 목숨이 다 하기 전)에는 결코 완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계속적인 자백과 돌이킴이 있어야 한다.

해결의 시도  -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문제에 대한 그릇된 해결안이 많이 제시되었다.
율법 폐기론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으니, 율법을 필요 없다. 내가 어떻게 해도 죄가 아니다.
완전주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같이 우리도 완전한 성화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율법주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덧붙여 율법을 지켜야 의롭다 함을 받는다.
근절론 믿는 자 안의 옛 성품을 근절함으로써 거룩해진다. 이 근절은 성령 세례(혹은 겉사람의 파쇄) 등 어떤 위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금욕주의 성화는 계속적인 종교 활동(금식, 고행, 은둔 생활 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상의 여러 가지 이론은 성경의 가르침을 곡해하거나, 전체적인 균형을 잃어버린 채 세부 사항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렇다면 성경은 믿고 난 이후 짓는 죄의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24:47; 10:43; 1:7). 믿음 이외의 다른 것을 부가해서는 안 된다(3:28; 2:16)

2. 믿은 이후 육신·세상·사단은 우리를 시험하는데, 이에 굴복하면 죄를 짓는 것이다(1:14-15; 1 2:15-16).

3.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죄에 빠지지 않도록 힘써야 하며 죄와 싸워야 한다(5:29½, 30½)
* 만일 믿은 이후에도 계속 죄를 먹고 마시고자 한다면 그의 구원은 의심할 만하다(6:1-2; 13:9).범죄치못한다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죄를 먹고 마시는 등 상습화하지는 못한다는 뜻
 
* 또 소극적으로 죄를 안 짓는 것에만 급급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려 거룩해 져야 한다(롬 6:13; 12:14 ‘이것’ = 거룩함)

4. 그러나 인간이 이 땅에 있는 동안 무죄할 수는 없다.
* 바울(15:39; 7:15)      * 바나바(15:39; 2;13)         
* 야고보(3:2)                 * 요한(11:8, 10)          
* 베드로(10:35)베드로는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 , 죄성이 완전히 근절될 수는 없다(고후7:1; 벧전2:11)
* 완전성을 뜻하는 구절은 실상 무죄성을 이미하지 않는다. (6:9. 상대적으로 의인, 완전함. 5:48 온전하심: 45-47절에 나타난 바 사랑 베푸는 일에 차별없음)

5. 연약해서 쓰러진 경우 곧 다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올려 다 보아야 한다
(103:8-14; 10:17; 12:1)

6. 이 올려다 봄은 자백과 돌이킴으로 나타난다(32:5; 11:9; 2:5) 어떤 금욕주의적 시도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한다[2:21-23; 딤전4:3]

7. 결국 이상의 과정은 일생 동안 계속되기 마련이다(7:21-25; 4:22-)완전성을 하나의 목표이지 경험으로 누리는 현실은 아니다 (8:23; 3:12).

8. 주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는 온전히 주를 닮으려 무죄하게 된다.(9:28; 13:2;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