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개의 정의 = 회개란 단어는 ‘다시 생각하다’, ‘한 번 더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종교 전체를 잊어버리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면, 회개란 여러분들이 그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 원어로 메타노이아(met anoia)는
단순히 다시 생각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의 변화의 결과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더해지는 생명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마21:28-32).
둘째 아들은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태도로 말하고서는 나갔을 때에 아마도 분노하셨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그의 계획을 바꾸게 하였을 것이며, 그는 돌아가서 다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단계를 뜻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잊어버렸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 그것을 다시 음미합니다. 여러분들은 다시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그가 다르게 생각했다는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는 지금 나갔고 이제 포도원앞에서 하기를 거절했던 그 일을 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마음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했던 것을 후회했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이런 비유 속에서 자신이 사용하시는 용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하십니다. 회개에 있어서 생명과 같은 본질적인 다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태도의 변화입니다. “후에 그는 회개하였고 그리고 갔다.” 이 행위가 바로 회개의 한 부분입니다. 만약 그 아들이 단순히 관점만 변하고 자신이 아버지께 말씀 드렸던 것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으며, 앉아 해변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오후 내내를 소비하고 있었다면 그는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후회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거절했던 그것을 하는 것이 참된 회개의 한 과정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의 소명을 효과적으로 듣고 그것에 반응할 때에는 이런 조건과 이런 태도라는 본질적인 요소들이 새롭게 오게 됩니다.
2. 회개의 발생
☄ 무엇이 회개에 이르게 합니까? = 우리 안에서 회개는 어떻게 나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복된 단어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로 남녀가 행동으로 옮기도록 합니다. 스가랴12:10절을 보면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은혜와 공급하심이 없이는 회개란 불가능합니다. 사도행전 11:18절에서 고넬료 가정의 돌이킴에 대하여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자신들에게 하신 것과 동일하게 임하셨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란 말씀을 듣습니다. 회개는 은혜의 선물, 즉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한 것을 살펴봅시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2:25절). 회개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 편에서 행위를 유발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선포를 통해서입니다.
성경은 이것으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요청하면서 복음은 설교되고 말씀은 선포됩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17:30절).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말씀을 설교함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요나서에서 이런 한 위대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요나의 설교는 니느웨인들에게 회개를 유발시켰습니다. 다른 곳은 사도행전 2장인데, 그곳에서 성령에 충만한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서 설교하였습니다. 그가 설교했던 것처럼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적용하심으로 사람들은 이처럼 외쳤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이것이 바로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회개가 바로 그렇게 하라고 선포된 말씀이었습니다. 회개의 이런 조건을 유발시킨 것은 바로 진리를 전함입니다.
3. 회개의 요소
☄ 회개가 포함하고 있는 것들. = 회개에서 사람들에게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매우 자주 사람들은 회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결정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회개의 그 높이와 깊이와 그 넓이와 길이를 알지 못해 왔습니다. 그러면 회개라는 행위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그 대답은 전 인격입니다. 회개는 전 인격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롬6:17절). 여기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가자아 먼저 마음과 지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부르는 길을 단지 그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도록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의지에만 호소합니다. 그러나 의지는 처음이 아니라 가장 나중에 올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달을 필요가 있으며, 자신들의 상태가 무엇인지를 언급받아야 하며 밝혀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회개에 관한 설교는 지적인 면과 이해의 면으로 시작합니다. 설교가 여러분들에게 지적인 면과 생각의 면을 제외 시킨다면, 그것은 또한 여러분들이 율법을 제외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분께서 그것을 이런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기능입니다.)
1) 회개는 마음과 감정을 포함합니다. - 욥은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6)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리가 “자신의 가슴을 쳤다”(눅18:13)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 볼 수 없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말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여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나아가 자신의 가슴을 쳤습니다. 로마서 7:24 절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7:11절에서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참된 회개에 포함된 감정들을 특별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복된 주님께서 산상보훈에서 친히 주신 자신의 복들 중 하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5:4절). 복된 그들은 단순히 영만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슬퍼합니다. 지금 이것은 우리들에 의해서 간과되어 왔던 것은 아닌지요“? 죄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을 여러분들은 얼마나 자주 보았습니까? 우리 개종자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고통에 관하여 알고 있을까요? 오늘날 살마들이 자신들의 죄를 슬퍼함으로 얼마나 자주 눈물을 흘립니까? 자신들의 죄됨 때문에 그리도 괴로워하는 자들을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을 우리는 성경 속에서 발견합니다.
회개는 마음과 감정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것은 단지 지나치는 후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바람도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의 표현의 강도는 사람 각자의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다른 면에서 다른 것처럼 감정의 면에서도 우리는 다릅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여 관심을 두고 싶은 것은 이런 감정의 강한 요소가 항상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없다면 참된 회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감정을 느낍니다. 괴로움과 경외와 두려움과 같은 그런 종류의 감정이어야만 합니다. 감정들은 항상 회개에 포함됩니다. 바울이 “경건한 근심”(개역성경: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후7:10)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그런 감정입니다.
2) 회개는 의지를 포함합니다. - 회개는 또한 의지를 포함합니다. 이것은 생명적입니다.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회개자는 그것을 반드시 버려야만 합니다. 그는 후회의 감정을 가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반드시 떠나야만 합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2:13). 세례요한의 설교가 있는 누가복음 3장에 가면,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망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눅3:8). 여러분들은 그것에 관하여 무엇이나 해야 한다고 요한은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마태복음 21장에 있는 두 아들의 비유 속에서 동일한 가르침을 발견합니다. 회개의 본질적인 요소에는 전환점이 있습니다. 의지가 작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전의 잘못된 곳으로부터(from) 바른 곳으로(to) 전환하게 합니다. 행동은 회개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바울은 다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상기시킵니다.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살전1:9). 이것은 회개에 포함되는 이런 행동의 위대함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 측량할 수 있게 하는데, 즉 회개는 전 인격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4. 회개의 주체 = 회개의 주체의 첫 번째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변화된 관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관점들을 잘못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관점들을 소유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하여서도 전혀 다른 관점을 소유합니다. 그리고 다른 주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남녀가 회개할 때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삶 자세와 삶의 목표 나아가 살아야만 할 방법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소유합니다. 그리고 죽음과 영원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발생합니다. 달리 말하면 회개는 전인격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세상에서 가치와 관여된 모든 것에 관한 인격적인 전체 관점 또한 포함합니다.
5. 우리가 회개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관점의 변화 - 제일 먼저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관점과 생각에 있어서 변화를 포함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가 회개할 때입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전적으로 잘못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롬8:7).
1) 관점의 변화 - 제일 먼저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관점과 생각에 있어서 변화를 포함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가 회개할 때입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전적으로 잘못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롬8:7).
우리는 신약성경에 의해서 “경건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히12:28 절)을 명령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위대하며 그분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의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동시에 그분을 경외함 속에서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경외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소유한(두려워하는)“(요일4:18) 그런 경외가 아닙니다. 그것은 겁나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더욱 더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더욱더 형상화되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압니다. 공의와 자비는 함께 만납니다. 이것이 바로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두개를 동시에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인들 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혹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분법으로 나뉠 수 없습니다. 또는 한 편만 강조되어 하나님을 자신들의 요구에 짜맞추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2) 죄인됨을 철저히 인식함. - 보다 더 큰 변화는 이전의 이기적인 자신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죄책감과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죄를 범해 왔다는 감정을 소유합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시편51편에서 다윗이 놀랍게 토로했던 것처럼 그리고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보여준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오염되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여러분들은 오염을 느낌 적이 있었습니까? “저는 비천하고 죄에 가득합니다”라고 챨스 웨슬리는 썼습니다. 성도가
위대해지면 질수록 이것을 더욱 더 알게됩니다. 달리말하자면, 그들의
회개는 더 깊어집니다. 그들은 타락과 원죄의 결과로 자신들 속에 있는 비천함과 자신의 마음의 부패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 중에서도 자신들의 연약함과 무기력함을 깨닫습니다.
3) 죄를 미워하고 대적함. - 또 다른 변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생명과 삶에 대한 관점의
변화입니다. 그들은 이를 미워하는 감정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된 행위와 죄된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죄를 죄로 여기고 미워합니다. 그들은 이런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온 적이 없었을 때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졌던 것처럼 이제는 죄를 그렇게 미워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들은 거룩의 아름다움과 의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에 대한 감각을 소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의 아름다움의 영광을 봅니다. 이런 것들(죄를 미워하고
슬퍼함과 거룩을 기뻐하고 즐거워함)이 더 이상 자신들과 상극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니의 법이 완전하며 순수하며 거룩하며 공평하여 의롭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법은 더 이상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6. 회개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들. = 이런 모든 것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제가 요약해 보겠습니다. 회개는 죄 때문에 일어나는 비통과
슬픔의 감정으로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는 자기 혐오-죄된
본성을 미워함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미워합니까? 로마서 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바울이 말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회개는
또한 경외감으로 인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의로우시며 공평하신 분이며, 또한 우주와 영원한 심판의 주님 되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죄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거룩의 빛 안에서 우리의 자기 혐오는 우리를 구원을 위한 갈망으로 인도하며, 그리고 또한 그런 구원이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회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그것을 함에 있어서 잠시 동안 잘못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자신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선하나 표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한 열망 또한 계속됩니다. 그들이 영으로 가난하여 애통해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하나남께서 자비를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깨어진 마음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맡길 뿐입니다. 그들은 어느 것도 변호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을 변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이 바로 회개의 정의입니다.
7. 회개와 후회의 차이. = 참된 회개는 후회와는 달리 이런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항하여 그분을 슬프게 만들었고 그분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그런 감정을 가지게 합니다. 제가 반복하지만 회개는 우리에게 오염과 전적 무가치의 감정을 갖게 합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죄를 제거하고 싶은 갈망과 결단을 줍니다. 이런 격렬한
갈망, 이런 행위, 이런 열정, 이런 복수심이 바로 바울이 말한 것들인데, 이것이 바로 경건한 슬픔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팔복의 하나로 다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회개의 궁극적인 시금석이며 후회와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입니다. 즉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 싶고, 더욱더 그분과 같이 의롭고 거룩하며 청결하게 되기를 원하는 그런 열망을 갖게 합니다. 회개하는 자는 단순히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락했고, 그 후에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낙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후회가 소극적이라면 회개는 적극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팔복의 하나로 다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회개의 궁극적인 시금석이며 후회와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입니다. 즉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 싶고, 더욱더 그분과 같이 의롭고 거룩하며 청결하게 되기를 원하는 그런 열망을 갖게 합니다. 회개하는 자는 단순히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락했고, 그 후에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낙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후회가 소극적이라면 회개는 적극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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