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동행을 하는 데 있어 걸림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난 이후에도 범하는 죄의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죄짐을 풀어놓고 용서를 받았으나, 그래도 재림의 주를 맞기 전(혹은 목숨이 다 하기 전)에는 결코 완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계속적인 자백과 돌이킴이 있어야 한다.
해결의 시도 -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문제에 대한 그릇된 해결안이 많이 제시되었다.
율법 폐기론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으니, 율법을 필요 없다. 내가 어떻게 해도 죄가 아니다.
완전주의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같이 우리도 완전한 성화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율법주의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덧붙여 율법을 지켜야 의롭다
함을 받는다.
근절론 – 믿는 자 안의 옛 성품을 근절함으로써 거룩해진다. 이 근절은 성령 세례(혹은 겉사람의 파쇄) 등 어떤 위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금욕주의 – 성화는 계속적인 종교 활동(금식, 고행, 은둔 생활 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상의 여러 가지 이론은 성경의 가르침을
곡해하거나, 전체적인 균형을 잃어버린 채 세부 사항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렇다면 성경은 믿고 난 이후 짓는 죄의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눅24:47; 행10:43; 엡1:7). 믿음 이외의 다른 것을 부가해서는 안 된다(롬3:28; 갈2:16)
2. 믿은 이후 육신·세상·사단은 우리를 시험하는데, 이에 굴복하면 죄를 짓는 것이다(약1:14-15; 1요 2:15-16).
3.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죄에 빠지지 않도록 힘써야 하며 죄와 싸워야 한다(마5:29½, 30½)
* 만일 믿은 이후에도 계속 죄를 먹고 마시고자 한다면 그의 구원은 의심할
만하다(롬6:1-2; 1요3:9). ’범죄치못한다’ →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죄를 먹고 마시는 등 상습화하지는 못한다’는 뜻
* 또 소극적으로 죄를 안 짓는 것에만 급급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려
거룩해 져야 한다(롬 6:13; 히12:14 ‘이것’ = 거룩함)
4. 그러나 인간이 이 땅에 있는 동안 무죄할 수는 없다.
* 바울(행15:39; 롬7:15) * 바나바(행15:39; 갈2;13)
* 야고보(약3:2) * 요한(1요1:8, 10)
* 베드로(행10:35)베드로는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 즉, 죄성이 완전히 근절될 수는
없다(고후7:1; 벧전2:11)
* 완전성을 뜻하는 구절은 실상 무죄성을 이미하지 않는다. (창6:9. 상대적으로 의인, 완전함. 마5:48 온전하심: 45-47절에
나타난 바 사랑 베푸는 일에 차별없음)
5. 연약해서 쓰러진 경우 곧 다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올려
다 보아야 한다
(시103:8-14; 히10:17; 1요2:1하)
6. 이 올려다 봄은 자백과 돌이킴으로 나타난다(시32:5; 1요1:9; 계2:5) 어떤 금욕주의적 시도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한다[골2:21-23; 딤전4:3]
7. 결국 이상의 과정은 일생 동안 계속되기 마련이다(롬7:21-25; 엡4:22-)완전성을
하나의 목표이지 경험으로 누리는 현실은 아니다 (롬8:23; 빌3:12).
8. 주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는 온전히 주를 닮으려 무죄하게 된다.(히9:28; 1요3:2; 계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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