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2010

오메가 - 종말론 요약 설명

성경무오설의 권위와, 그것의 명백한 의미, 또한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해석(문자적 해석 법)을 따르는 것에 전심을 다하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마지막 때(종말론)에 대한 철저히 성경적인 견해만을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겸손히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아래서 서게 되면서 우리가 갖게 된 확신은, 기도와 금식 그리고 예수께 순종하는 맥락 속에서 종말론에 대한 연구에 힘을 쏟을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고 은혜롭게 종말론에 대한 지혜를 열어 주신다는 것이다. 현재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독특한 조직신학체계가 일관된 결핍을 보이고 있는 반면, 사도적 전천년주의는, 예수님의 주권적인 리더십 아래에서 전개될 마지막 때의 사건들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일반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용어이다.

사도적이라는 말은 신약 교회의 비전과 가치, 그리고 특성들이나 혹은 사도적인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는 말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에 이러한 모습의 교회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4:13; 5:23)

전천년설은 온 세상에 대한 천 년의 통치를 시작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구체적인 육의 몸을 가진 만 왕의 왕으로 재림하는 것을 묘사한다.

우리는 성경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의 분명하게 구분되는 세가지 예언적인 시간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믿는다. 첫째 해산하는 고통의 시작(혹은 재난의 시작), 그 뒤로 두 번째와 세번째의 시간대가 따라 오는데, 이 둘에 대해서는 다니엘서에서 7째 주간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 시대의 마지막 7년의 기간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첫 번째 예언적인 시간대는 창조 질서의 혼란, 종족과 국가 분쟁, 기근, 온역, 그리고 그 외에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는 고통들로 특징될 것이다(24:4-8). 두 번째 예언적 시간대시작되는 중요한 현상중의 하나는 성경이 일컫는 적그리스도라는 한 실제 인물과 이스라엘 국가 사이에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 서명이 있게 되는 것이다(살전 5:3, 9:27). 7년 중, 전 삼 년 반동안의 이 시기에는, 비록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의 수위가 상당히 높아질지라도, 여전히 대부분의 나라들은 거짓 평화와 안전으로 지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예언적인 시간대주간’, 혹은 예언적인 7년 기간의 중반부에 시작될 것인데, 그 때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 배도의 성전을 재건축하고 온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경배할 것을 요구할 것이며,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거짓 선지자에 의해 나타낼 거짓 표적과 기사들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킬 것이다(살후2:3-10; 13:11-18). 멸망의 가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사건으로, 대환난, 혹은 야곱의 환난이 시작될 것이다(24:15, 21). 그 다음 42개월 동안은, 세상이 적그리스도의 세계적인 정권에 의하여 쇠하여질 것이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세가지 심판의 연속, 즉 일곱 인, 일곱 나팔, 그리고 진노의 일곱 대접의 시기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6:8-9; 16).


성도들은 대환난이 진행되는 동안, 이 땅 위에 있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과 함께 서서, 필요하다면 복음을 위하여 그들의 생명까지도 순교로 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예언적 시간대를 각각 통과하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교회를 정화하며 정결케하는 목적으로 쓰여질 것이며, 많은 신실한 신자들이 불법과 미혹, 그리고 실족케하는 일로 인하여 함정에 빠져 결국 믿음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일곱째 나팔(11:15-18)이 울릴 때에, 예수님은 자신의 왕국의 건설과 관련된 사건들을 시작하실 것인데, 공중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시고, 교회를 휴거 시키기 시작하실 것이며, 이 두 사건을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보게 될 것이다(1:7). 이어 예수님은 적그리스도의 군대를 멸하시고,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의 끝을 내실 것이다(19:11-16; 11:26). 휴거와 함께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의로운 자들(살전4:13-18)의 육체적인 부활인데, 이들은 메시아 왕국의 전 세계적인 리더십에 참여하여 활동할 것이다(2:26-27; 3:21; 5:10; 20:4-6). 또한 이 때에 사탄은 예수님의 천년 통치(20:1-3)의 기간 동안 묶여 있을 것이며, 이 기간 동안 세상은 끊임없이 증가하는 그리스도의 정부 아래에서 점진적으로 번영을 누리게 도리 것이다.

천년왕국의 끝에, 사탄은 잠시 동안 놓임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을 대항하도록 선동하며, 세상 나라들을 합법적으로 받은 예수님의 상속에 대하여 도전하게 할 것이다(20:7-10). 그러나 그 반역이 박멸되고, 세상이 불로서 정결케 된 후에, 불의한 자들은 마지막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될 것이다(20:11-15). 사탄과 시대를 총 망라한 모든 사악한 자들이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며, 주님은 영원히 의로움이 지속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 위에 임하게 하실 것이다(21:-2)

<오메가 인도자 가이드 /마이크 비클/드로바하우스>

오메가 -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예언적인 기도와 언약들 – 부분적인 일람표

이사야
11:10-16  쫓겨났던 자들을 모으시고 그들을 연합시키시는 하나님.
19:14, 17-24  새롭게 개심한 많은 자들이 일어나게 되는 이적과 기사 속의 부흥운동
30:18-33  주님이 재림하시는 세대에 임하게 될 성령의 역사와 그 계시.
32:15-19  주님이 재림하시는 세대가 간구하는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한 기도
33:2-6, 17  마지막 때를 뒤흔들며 은혜와 능력을 부으시는 하나님
35:1-10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은혜로서 능력과 기적을 가져오는 부흥운동을 일으키 시는 하나님.
42:10-17  예수님을 위한 기도, 마지막때의 주의 군사로서의 주님의 열심을 불러 일으키는 기도
43:1-7  악에서 보호되기 위한 세계적인 부흥이 일어남
44:1-5  강물 같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주님을 갈급하는 사람들에게 흘러내림
45:17, 22-25  이스라엘과 모든 나라들로 예수님 앞에 절하게 하시는 하나님
51:3-11  하나님의 능력이 모세 시대와 같이 나타나게 될 것임
54:1-17  하나님의 확실한 사랑으로 인해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임
56:6-8  이스라엘의 충만한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도의 집을 세우실 것임
59:19-21  그의 백성들에게 거대하고도 세차게 흐르는 강물 같이 임하실 하나님
60:1~62:12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에 대한 그림
63:7~64:12  이스라엘을 위한 이사야의 중보기도
66:7-14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66:18-21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3:14-20  남은 자들의 귀환과 이스라엘의 연합. 목자와 신부의 페러다임
16:14-21  북쪽 땅에서부터 구원을 받아 대 추수로 확장됨
30:16-23  이스라엘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며 그들에게 거대한 축복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31:1-14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가 이스라엘에게 연합과 선함을 가져옴
32:16-23  부흥을 위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
32:37-42  이스라엘을 연합시키시고 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
33:6-26  축복과 능력으로 자신의 백성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50:4-5  주님을 찾으며 그의 구원하심을 경험하게 될 이스라엘
50:19-20, 34  주님을 찾으며 그의 구원하심을 경험하게 될 이스라엘

예레미야애가(예레미야의 기도의 경험): 1:9, 11, 16, 2:12-13, 18-20, 3:20-33, 5:1-22

에스겔
11:17-20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 세계에서 그들을 모으시는 하나님
16:60-63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수치를 영원히 옮기시는 하나님
20:33-44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34:11-31  이스라엘을 온전히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36:22-38  이스라엘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하나님
37:1-28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은 연합과 능력으로 나타남

호세아
2:14-23, 3:5  이스라엘을 온전히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5:15~6:3, 11  이스라엘에게 그의 은혜를 충만히 부으시는 하나님
14:1-8  이스라엘을 기꺼이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요엘
2:28-32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부어주심
3:17-20  이스라엘은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에 의하여 다시 지어지게 될 것임

스가랴
8:2-8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을 다하시는 하나님
12:10-13:6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

학개
2:6-9  나라들을 흔드실 때에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
2:21-22  나라들을 흔드실 때에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

신명기
4:27-31  마지막 때의 이스라엘의 구원(4;30; 30:1; 31:29; 49:1; 24:14)
30:1-10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며 구원을 경험함
33:26-29  이스라엘은 구출되고 주님에 의해서 구원을 받게 됨

그 외의 구절들
스가랴3:8-20  자신의 영광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말라기4:1-6  이스라엘을 치료하시고 능력을 가진 엘리야를 보내심으로 높임을 받으실 예수님

이스라엘의 구원과 해방을 위한 예언적인 기도들
63:15~64:12; 9:4-19; 미가7:7-20; 3:2-19; 9:5-19; 1:4-11

시편에 있는 예언적인 기도
44; 45:3-5; 65; 67; 79; 80; 83; 85; 86; 90:13-17; 102:12-22; 110:1-5; 122:6-7; 132:11

로마서
10:1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바울의 기도
11:12-15  이방인의 충만함과 이스라엘의 충만함
11:25-27  예수님의 다시 오실 때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임

조나단 에드워즈의 자기 점검표

-1. 성경이 신자들에게 주는 경고 -
성경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매우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7 : 22,23)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또 이 사람들의 삶에는 능력과 헌신과 증거들이 있었다. 어느 시대고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 으뜸가는 신자들로 인정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확신이 옳지 않았다는 것이 마지막 순간에야 드러나고 말았다.

이런 기만의 위험은 혼인 잔치 비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혼인 자리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종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하니라 ( 22: 10-13).

여기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예복을 입고 혼인 잔치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혼자만 다른 옷을 입고 있었으니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고 생각해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아무런 느낌도 없이 태연하게 잔치가 시작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 17:9).

실로 우리 마음은 그러하다. 이 사람은 자기 상태에 전혀 반성하지도 않았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이 사람은 잔치에서 쫓겨났다. 신앙에 있어서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다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대단한 위로와 힘을 부여해 준다. 그러나 확신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면 자기 점검이다. 정확한 점검이 있은 후에야 올바른 확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
2. 자기 점검도 우리의 의무인가? -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각별한 경계심을 행사하도록 요구하신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을 네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 4: 9)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4:23)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시고 ( 26:41)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5:15)

2.
우리가 이 일을 게을리 하고 부주의한 방식으로 살아가다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

3.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유익과 행복을 고려한다면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모든 사악한 길을 버렸다 할지라도 한 가지 죄악에 묻혀 살면 그것은 영원한 파멸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가 고의적으로 악의를 품지 않고 산다 해도, 부주의하게 살아간다면 부패한 우리 마음의 기만성 때문에 하나님을 노엽게 할 것이다.

4.
우리 마음은 본래 악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성도들 속에도 죄의 세력이 존재하므로 엄격하게 우리 자신을 통제하지 않으면 속에 죄의 세력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돌아다닐 것이고 우리는 죄악을 행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의 유혹으로 가득 차 있으니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 2)

우리가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흉배(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벧전 5: 8)

5.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는 죄악 중에 살면서도 그런 자신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도 않고 그것을 지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9:12

3 . 사람들은 왜 속고 사는가?
1.
죄는 본래 사람의 눈을 혼미하게 하고 속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죄를 짓거나 죄가 사람을 지배하게 되면 마음을 더 어둡게 하고 기만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게 될 수록 사람의 마음은 어두워져서 자기의 행실을 뉘우칠 줄 모르게 된다. 더구나 사람의 마음에 있는 탐욕은 육적인 이성(理性)을 자극하여 모든 교활한 수단을 다 동원하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사람이 악한 일을 하면 자아(自我)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발동하여 자신의 악행을 인정하도록 편견을 심어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고 하지 않고 행동에 양심을 맞추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 자신의 행실을 바르게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각별한 부지런함으로 우리 마음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누가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게 하라” ( 3:12,13)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 21:2)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알리요? 마는 ( 17: 9)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 28:26)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우리의 마음과 행실을 깊이 살피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우리 마음을 살펴 주시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139:23,24)

2.
사탄이 우리를 속여서 죄악된 길에 계속 머물도록 유인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의 육적인 이성(理性)을 사로잡아 우리에게 잘하고 있다고 아첨하고 양심을 눈멀게 한다.

3.
오래되고 널리 퍼져 있는 관습이 우리를 무감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전체적인 기류가 악하면 처음에 양심에 꺼리던 사람도 이내 괜찮다고 생각하고 서슴없이 그런 행동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과 다른 사람들의 실례를 보는 것은 우리 마음을 눈멀게 한다.

4.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무에 대해서 세심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죄를 모두 개혁한답시고 개인적인 경건 생활과 공예배 출석에만 열심을 낸다. 그리고는 이웃을 향한 윤리적인 의무들에 대해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상태는 올바르다고 확신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어리석고 속기 쉬운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거룩하신 말씀 안에서 우리의 의무에 관하여 빛을 비춰주셨으므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고 탐사해 본다면
우리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다.

-
4 . 약은 없는가?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완벽하고 진실된 규칙을 제정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규칙을 부지런히 익히고 완전하게 알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규칙을 알려주셨는데도 익히지 않아서 무지함 가운데 범죄한다면 핑계할 수 없을 것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119:105)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19:11)

2.
하나님의 규칙을 안 다음에는 우리 자신을 그 규칙에 비추어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조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규칙과 맞는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들의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 돌아가자 ( 3:40)

<출처 :Elijah House Ministries > 

회개, 자비, 그리고 치유 REPENTANCE, MERCY, AND HEALING [Todd Bentley 타드 벤트리]

Part 1
놀랍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마 여러분은 플로리다의 레이크 랜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치유의 기적들에 대해 듣거나 읽어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기적들을 들었고, 기적을 필요로 하며, 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이 자신의 치유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중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그분께서 모든 아픈 자들과 모든 인종, 종족과 방언들 가운데 있는 온갖 질병을 고치시기 위해 긍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긍휼이 그분으로 고치게 하십니다!

이제 그 진리를 가지고 전체적으로 가르칠 이 글 머리 부분에서, 여러분에게 최상의 권고를 하고 싶습니다: 돌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 가르침이 여러분의 마음에 사역하도록 하십시오; 이 글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여러분의 마음에 보내는 진짜 러브레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메시지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는 제 소망과 기도는, 여러분이 아버지의 마음에 대한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계시를 받을 때, 여러분은 예수님에 관한 계시-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한복음 14:9)-를 받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그분의 크고, 넓은 여러분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여러분이 충만히 알길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3번이나 포장한 선물과 같이, 여러분이 그분의 마음 안에서 회개에 관한 계시를 찾게 된다면, 회개 안에서 그분의 자비를 발견하며 그 자비 안에서 치유-그리스도의 치유의 만지심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위한 그분의 만지심을! 회개가 그 열쇠입니다.

이제, 어떻게 회개가 돌파를 가져오는 지를 살펴봅시다.

THE BEAUTY OF REPENTANCE 회개의 아름다움
회개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3:2).”고 외쳤던 세례 요한을 생각하곤 합니다. 불과 유황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죄에 관해 강하게 설교하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저는 회개에 관한 설교를 믿고 그것은 제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룩과, 구별됨과 성결에 관한 메시지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는 그 장소에 있어야 하며, 그에 합당한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회개에 관해 살펴볼 때, 저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자비와 치유의 관계라는 다른 방법으로 회개에 관해 말하려 합니다. 여기서 계시는, 회개는 자비를 가져오며 자비는 치유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회개의 아름다움 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그 계시는 왜 제가 회개를 좋아하는 지를 설명해주는데, 저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회개의 자리로 가서 자비와 치유 둘 다를 끌어와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자비와 치유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자비라는 단어는, Strongs Exhaustive Concordance[; 스트롱이 편찬한 성구 대사전] 1653번과 1656번에 보면,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어 실제로 긍휼을 나타낸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비를 본다면, 그리스도의 긍휼을 보는 것이며-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중에 있는 모든 아픈 자들과 질병이 있는 자들을, 늘 긍휼히 여기시며 고치셨습니다. 자비와 긍휼은 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을 자비(와 긍휼) 가운데로 들어오게 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회개를 본다면, 자비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자비를 볼 때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치유입니다! 회개, 자비와 치유! 그것이 제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회개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며, 회개는 늘 여러분을 기적 가운데로 들어오게 합니다.

회개라는 단어는, 죄에서 돌아와 삶 가운데서 마음을 스스로 돌이키기로 헌신하는 것이며, 마음을 바꾸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미리암 웹스터 온라인 사전; 마태복음 3;8) 것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그 사람의 삶에서 그런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며, 그 후에 그들의 성품을 봤을 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THE LORD IS WILLING!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그 뿐 아니라,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것은 진정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를 베풀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기꺼이 그렇게 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자주, 주님께서 그들을 치유하기 원하시는지- “그분의 뜻이 나를 치유하는 것인가요?”라고 궁금해집니다. 마치 예수님께 와서“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태복음 8:2)”고 했던 문둥병자처럼 보편적으로 부르짖는 데에 이르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챤들 심지어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믿는 자들까지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확신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께서 “만약” 아니면 “음, 하나님, 해주시겠어요?” 아니면 “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절 고쳐주실 때까지 그것을 참을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말로 하나님께 반응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 그런 단단한 계시를 받는 장소에 가서 단지 하나님의 뜻일 뿐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그것을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가장 잘 말한 마태복음 8장을 저는 가장 사랑합니다(그리고 저는 그 특별한 장을 ‘예수님의 원하심’ 장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에는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에게 하신 대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3.”라고 말하셨습니다. 그 즉시, 나병은 깨끗해졌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지요!

기적적인 치유가 있고 난 바로 다음에,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이 와서 예수님께 중풍 병에 걸려 집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종의 치유를 구했습니다. 그 즉시 예수님은 고쳐주길 원하셨습니다! 그분은“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7).”그 백부장은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고 말하는 중에 예수님은 (의역하자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그래,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떻게 백부장에게 말해서 그 즉시로 하인이 나았는지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를 알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장모 집에 들어가셔서 열병으로 누워있던 그녀를 보시고, 다가가셔서, 만지시며 그 열을 꾸짖으셨습니다. 저는 그 장이 기꺼이 고치길 원하심을 나타내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기꺼이 그녀가 씻은 듯이 낫길 원한다.” “가서 그녀를 고칠 것이다.” 예수님은 그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아, 그녀가 열로 힘들어하는 것을 봐라...그것을 없애리라!-그분은 그녀를 만지셨고 그녀는 나았습니다! 여러분! 그분은 저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이십니다!

REPENTANCE TRIGGERS GODS NATURE TO BLESS YOU
회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고 싶어 하시는 본성을 일으킵니다.
선지자 요엘에게 임한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본성에 기꺼이 고치길 원하시는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2:12, 13).

그 구절은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입증해줍니다!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좋은 일을 한 가지만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선함을 갖고 계시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지 않을 수가 없으십니다. 또한 그분은 영원히 선하십니다. 그분은 단지 선함을 갖고 계시지 않고 선한 일들을 행하시며, 바로 그 선함의 실체이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자비를 갖고 계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그분은 자비롭지 않으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실체입니다; 그분은 영원하시며, 변함없이 선하시며, 자비로우십니다. 그분은 선한 일들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십니다. 자비롭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십니다. 그분은 자비로우시며 선하십니다.“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13, 14). 그분은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시지 않으시기 까지 크신 인자하심을 가진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셔서 긍휼히 여기시고 축복하는 분이신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롭기 때문에 기꺼이 축복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회개하고 돌이켜 변화를 받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시는 것뿐 아니라, 그 답으로 여러분이 죄 가운데 저질렀던 영향들을 속하시며 회복해주심으로써 여러분을 포로 된 상태에서 바꾸시며,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할렐루야! 축복은 하나님의 본성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진실로 되돌리시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낄 때조차도 그분은 얼마나 “높고 뛰어난” 분이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옳은 일들을 하며,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전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성품 때문에, 그분은 “나는 자비롭고 인자가 크기 때문에 너를 용서하기 원한단다. 나는 너를 용서하는 것뿐만 아니라 네게 축복하길 원한다. 나는 바꾸길 원하고 너희가 받을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라도 베풀기 원한단다. 모든 것이 나의 나 됨 때문이란다. 이제 나로 너를 축복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성품은 축복입니다. 그분께서 축복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기꺼이 축복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크십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이렇게 물을 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하고 싶어 하시나요?” 여러분은 신학적으로 그것을 끌어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학적인 부분도 좋습니다만,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를 믿는 믿음과 그에 대한 계시와 함께 간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축복하신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그 때에는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고 싶어 하시는 지를 깨닫지 않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보십시오:“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세아 6:1).”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낫길 원하기 때문에 너희가 회개하길 원한단다.” 여러분이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누가 회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CLOSING 마치며
이번 주 가르침을 마치기 전에,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로마서 2:4 ).” 저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인자하심과 용서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이 여러분을 회개로 이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너무나 좋은 소식입니다. 그 진리를 귀하게 여겨야겠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 중 몇몇은 여러분을 이끄시고, 지금이 회개해야 할 때라는 깨달음 주는 성령님의 만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살피시고, 그분께서 지적하시는 것들을 다루실 수 있는 시간을 내어드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여러분의 삶에 그분의 치유의 만지심을 풀 수 있는 진정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히브리서 3:15, 16; 밑줄은 저자의 강조).

<출처 :Elijah House Ministries > 

지상 교회에 교파와 교단, 개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와 교회에 하나됨에 대한 단상

역사상 지상에 존재해 왔고 존재하고 있는 각 교파와 교단이 존재하는 것은 그 나름의 강조적인 특질과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각 교단은 온전한 기독교 신앙의 한 부분을 맡아왔다. 우리는 내가 속한 교파, 교단만이 정통이며 온전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 나아가 각 개인의  신앙이 최고이며 가장 성경적인 온전한 신앙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정통과 온전함이라는 단어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합당한 말이다. 우리가 교파, 교단, 개교회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면 영적 교만, 영적 바리새주의에 빠지며 그리스도의 몸의 갈등과 분쟁을 일으킨다.

릭 조이너의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에서 그는 지상의 교회의 각 교파, 교단이 독특한 위치를 점하며 우주적인 영적 전쟁에 각자의 임무와 역할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음을 묘사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상 교회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다양성과 통일성을 이루는 것은 어떤 연합과 일치를 위한 조직이나 운동이 아닌 주님 자신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특정 교파, 교단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기 위함이다. 지상의 교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와 계시와 은사는 부분적이다. 어떤 교파,교회도 모든 은사를 받지는 못했다. 지상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각자의 위치와 역할(기능)이 있다. 우리는 다양한 교회의 다른 위치와 역할(기능)을 인정하고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체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서로 다름이 비교의식으로, 개별주의로 나아가 갈등과 분쟁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분명한 마귀의 역사이다.

우리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은 서로 다른 위치와 기능에 대하여 이해하고 인정하고 격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눈이 코에게, 입이 귀에게 머리가 다리에게 발가락이 손가락에게 너는 왜 거기 있니? 너는 왜 그렇게 생겼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지체는 하나님의 작품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개 교파, 교단, 교회의 역사성과 고유한 특성과 기능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줄 알아야겠다.

지상에서 완전한 교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그릇으로 되어져 가는 과정에 있다. 교회가 다양한 모습과 기능을 가지고 태어나게도 하시고 흥왕하게도 하시며 폐하게도 하시고 새롭게 하기도 하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그 시대에 현저하게 나타난 교회의 긍정적인 모습과 기능은 하나님게서 풀어놓으신 은혜의 동시대적인 역사의 산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러한 은혜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비판과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하나님의 때에 발생하는 새로운 물결은 종교 권력 집단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게 속한 자들은 그 물결에 흡수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권력을 잡은 바리새인의 후예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새물결을 거부하고 성령의 역사를 소멸시키려 할 것이다. 그들은 종교권력의 철옹성에 들어가서 그들만의 기득권을 사수할 것이다. 그러나 새포도주는 새가죽부대에 부어지고 헌가죽부대를 찢을 것이다.

교파와 교단, 교회의 생성과 성장, 소멸의 과정은 지상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갱신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지상의 교회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와 같이 시간이 흐를수록 초기의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조직으로 변질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갱신의 역사는 새가죽부대로의 전환을 만들어낸다. 어떤 교파, 교단, 교회만이 정통이며 온전하고 장구할 것이라는 믿음은 단순한 착각일 뿐이다. 오히려 주님만을 영원히 바라고 즐거워하며 그분의 말씀에 거하는 교회만이 그 생명이 장구하게 보전되고 흥왕할 것이다. 우리는 특정 교파, 교단, 교회의 신학과 교리와 체험의 특질을 우월하고 무오한 것으로 간주하는 비성경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러한 태도는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바리새파적이며 그리스도 몸된 교회의 다양성과 조화를 깨뜨리고 질투와 분쟁을 일으킨다.

개신교가 탄생하게 했던 종교개혁의 선봉장이었던 요한 칼빈의 사상은 장로교 사상, 교리와 조직의 시금석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예정론과 5대교리(TURIP; 전적 타락, 무조건적인 은혜, 제한된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가 전적으로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신학 사상과 이론은 닫힌 체계가 되어서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와 역사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정 신학사상과 교리가 성경 위에 있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은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시키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겸허히 마음을 비우고 이 시대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항상 회개와 거듭남과 그리스도를 닮음을 도출해 낸다. 내가 속한 교파, 교단, 교회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없다면 바로 지금이 회개와 첫사랑 회복을 위한 때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찾아보기 힘든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흘러넘치는 다른 교회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그 교회가 수명이 다 되어 절망적임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진심으로 스스로 겸비하여 그분의 얼굴을 구하고 그분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지키고 순복하는 자에게 지속적으로 임하며 스스로 높아져서 주인행세를 하는 자에게서 떠나간다.

<출처 :Elijah House Ministries>

영적 아킬레스를 극복하라

예수님을 주(the Lord)와 구원자(the Savior)로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저마다 넘어야할 시험과 역경의 산이 있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영화로운 천성을 향하여 행진하는 순례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12:1-2) 또한 마귀로 틈타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 믿음의 순례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요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는 길입니다.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바라보면 많은 자들이 마귀에게 발목을 잡혀서 곤고한 삶에 처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연 무엇이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걸려 넘어지고 침륜에 빠지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죄(sin), 연약함(vulnerabiity)허물(iniquity)입니다.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영적 아킬레스건입니다. 그것은 원수 마귀가 들어오도록 벌어져 있는 틈새, 우리의 약점, 마귀가 쉽게 장악할 수 있는 어떤 부분을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굴복하지 않은 옛사람의 어떤 습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특징지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육신의 법(세상의 법)을 따르려고 하는 아직 정복되지 않은 습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에 법에 굴복할 때에 마귀는 우리의 삶에 들어올 합법적인 권리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크리스천이라구요? 나는 세례 교인이라구요?, 나는 성령 세례를 받았다구요?

성경은 우리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서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라고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받은 자라면 어찌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이전에는 믿었으나 세상으로 돌아간 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영적 아킬레스건은 믿는 자라도 미혹하여 멸망케 하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가 발악하며 붙잡으려고 하는 어떤 것입니다. 당신의 아킬레스건은 마귀의 손으로부터 자유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셨으나 실제로 그가 그 땅을 정복하기까지는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수많은 전쟁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실제적인 성취 사이에는 우리가 반드시 치루어야 하는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완전히 진멸하지 않은 소수의 가나안 민족들은 후대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화근이 되어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온전히 정복되지 않은 옛사람의 습성은 그것이 온전히 제거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을 괴롭히고 도적질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전한 승리와 성숙을 위해서 영적 전쟁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이 전쟁을 치루지 않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따르냐 이 육신(세상)의 법을 따르냐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싸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영적인 아킬레스건을 허용하시는 것일까요? 영적 아킬레스건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누구인가? 우리가 경배를 드리는 최고의 대상이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의 법과 권위를 따르고 있는가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있어서 영적 아킬레스건은 미혹과 유혹의 표적이 됩니다.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따를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침범하셔서 대신 선택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축복의 길을 이미 계시하셨습니다. 아킬레스건을 공략하는 마귀의 전략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와 같습니다. 그것을 보게 하고(안목의 정욕), 계속 보게 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는 우쭐한 느낌이 들게 만들고(이생의 자랑), 마침내 먹고 싶어하게 하는(육신의 정욕) 것입니다. 마귀가 던진 미끼를 물었을 때 순간적인 쾌락이 있지만 그 결과는 마귀에게 속하게 되며 죄책감과 수치와 저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자들이 범죄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이 구원에서 떨어질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예 또는 아니오 입니다. 성경은 구원에서 탈락하는 즉,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는 중범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거역하고 고의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항하는 죄
2. 하늘의 능력과 은사를 맛보고도 예수를 부인하고 떠난 죄
3. 명백한 성령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로 모함하고 훼방하는 죄
4. 예수님의 재림 때에 적그리스도(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666)을 받는 죄 등.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러한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ex) 어느 기도원에서 회개 기도가 안 되어서 가슴을 치며 하소연하던 목사님그 외의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범죄하면 회개하면 되지 뭐. 그게 뭐 큰 죄인가. 날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걸.’ 라는 태도는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흘린 어린양의 보혈을 모욕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물론 진정으로 회개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들도 범죄에 대한 댓가를 받습니다. 다윗왕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의 남편을 전쟁터에 앞장 세워서 죽였을 때에 원수 마귀는 다윗의 가문을 크게 훼방할 빌미를 얻었고 실제로 다윗은 끔찍한 내전과 가문의 피비린내 나는 난리를 겪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과 권위가 클수록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댓가는 더 혹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영적 아킬레스건을 극복해야 할까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집중 경청!

첫째, 우리는 빛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되신 아버지 곁에 머물 때에 죄와 어둠의 세력을 우리를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어둠은 빛을 쫓아낼 수 없고 거짓은 진리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거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온전한 보호와 위로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낱낱이 고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다루시고 처리하시는 최종적인 권한은 하나님 아버지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조명과 감동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거리끼게 하는 모든 죄악과 그 무서운 결과를 인식하고 통회 자복하며 그 죄로부터 결연히 돌이켜 떠나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으며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는가를 깨닫고 배설물을 쏟아내듯이 그 죄악을 버리고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해야만 합니다. 이 부분이 잘 안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안개 낀 것과 같은 혼탁함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이 잘 되면 우리의 영혼에 최상의 기쁨과 자유함과 평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셋째,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간파하고 그를 담대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는 것은 우리가 그에게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열려진 문, 틈새로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기도 중에 성령님께 물어보시면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한 눈, 탐욕, 우상숭배, 술취함과 방탕함, 음란과 호색, 혈기 부림, 미움, 시기와 질투, 거짓말, 거역과 반항, 폭력과 비흘림 등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법에 속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법에 굴복할수록 마귀는 더욱 우리의 삶을 얽어매고 통제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온전한 회개를 했다면 우리의 삶에 불법으로 침입한 마귀를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가 부족하면 마귀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우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마귀는 실제로 역사하는 악한 인격체이며 우리가 다루어야 할 축사의 대상입니다. 마귀, 귀신은 특정 장소나 사람의 몸 또는 동물의 몸 안에 붙어있거나 기거할 수 있습니다. 마귀를 쫓을 때는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꾸짖고 명령해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의 주권을 선포하며 예수님의 보혈을 선포하고 뿌리는 것은 대단한 영적인 효력을 가져옵니다.
 
넷째, 우리는 우리의 범죄했던 부분에 대해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 주기를 요청하며 마귀의 침입을 받았던 부분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 바르고 반대되는 것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술취함과 방탕함으로 마귀에게 문을 열어 놓았다면 문을 닫고 우리는 올바른 정신과 단정함으로 축복하며 그러한 덕목이 함양되도록 끊입없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귀에게 한번 잡혔던 아킬레스건은 또다시 잡힐 확률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에 마귀에게 져서 굴복했던 부분을 이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며 하나님의 의와 영광의 도구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영적 전쟁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입니다. 이 싸움은 끈질긴 레슬링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안에서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며 나아갈 때에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1-2
 
할렐루야 주 안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시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출처 :Elijah House Minist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