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놀랍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마 여러분은 플로리다의 레이크 랜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치유의 기적들에 대해 듣거나 읽어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기적들을 들었고, 기적을 필요로 하며, 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이 자신의 치유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중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그분께서 모든 아픈 자들과 모든 인종, 종족과 방언들 가운데 있는 온갖 질병을 고치시기 위해 긍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긍휼이 그분으로 고치게 하십니다!
이제 그 진리를 가지고 전체적으로 가르칠 이 글 머리 부분에서, 여러분에게 최상의 권고를 하고 싶습니다: 돌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 가르침이 여러분의 마음에 사역하도록 하십시오; 이 글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여러분의 마음에 보내는 진짜 러브레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메시지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는 제 소망과 기도는, 여러분이 아버지의 마음에 대한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계시를 받을 때, 여러분은 예수님에 관한 계시-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한복음 14:9 )-를 받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그분의 크고, 넓은 여러분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여러분이 충만히 알길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3번이나 포장한 선물과 같이, 여러분이 그분의 마음 안에서 회개에 관한 계시를 찾게 된다면, 회개 안에서 그분의 자비를 발견하며 그 자비 안에서 치유-그리스도의 치유의 만지심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위한 그분의 만지심을! 회개가 그 열쇠입니다.
이제, 어떻게 회개가 돌파를 가져오는 지를 살펴봅시다.
THE BEAUTY OF REPENTANCE 회개의 아름다움
회개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3:2 ).”고 외쳤던 세례 요한을 생각하곤 합니다. 불과 유황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죄에 관해 강하게 설교하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저는 회개에 관한 설교를 믿고 그것은 제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룩과, 구별됨과 성결에 관한 메시지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는 그 장소에 있어야 하며, 그에 합당한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회개에 관해 살펴볼 때, 저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자비와 치유의 관계라는 다른 방법으로 회개에 관해 말하려 합니다. 여기서 계시는, 회개는 자비를 가져오며 자비는 치유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회개의 아름다움 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그 계시는 왜 제가 회개를 좋아하는 지를 설명해주는데, 저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회개의 자리로 가서 자비와 치유 둘 다를 끌어와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자비와 치유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자비라는 단어는, Strong’s Exhaustive Concordance[주; 스트롱이 편찬한 성구 대사전] 1653번과 1656번에 보면,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어 실제로 긍휼을 나타낸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비를 본다면, 그리스도의 긍휼을 보는 것이며-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중에 있는 모든 아픈 자들과 질병이 있는 자들을, 늘 긍휼히 여기시며 고치셨습니다. 자비와 긍휼은 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을 자비(와 긍휼) 가운데로 들어오게 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회개를 본다면, 자비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자비를 볼 때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치유입니다! 회개, 자비와 치유! 그것이 제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회개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며, 회개는 늘 여러분을 기적 가운데로 들어오게 합니다.
회개라는 단어는, 죄에서 돌아와 삶 가운데서 마음을 스스로 돌이키기로 헌신하는 것이며, 마음을 바꾸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미리암 웹스터 온라인 사전; 마태복음 3;8) 것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그 사람의 삶에서 그런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며, 그 후에 그들의 성품을 봤을 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THE LORD IS WILLING!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그 뿐 아니라,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것은 진정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를 베풀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기꺼이 그렇게 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자주, 주님께서 그들을 치유하기 원하시는지- “그분의 뜻이 나를 치유하는 것인가요?”라고 궁금해집니다. 마치 예수님께 와서“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태복음 8:2 )”고 했던 문둥병자처럼 보편적으로 부르짖는 데에 이르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챤들 심지어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믿는 자들까지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확신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께서 “만약” 아니면 “음, 하나님, 해주시겠어요?” 아니면 “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절 고쳐주실 때까지 그것을 참을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말로 하나님께 반응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 그런 단단한 계시를 받는 장소에 가서 단지 하나님의 뜻일 뿐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그것을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가장 잘 말한 마태복음 8장을 저는 가장 사랑합니다(그리고 저는 그 특별한 장을 ‘예수님의 원하심’ 장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에는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에게 하신 대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3절) .”라고 말하셨습니다. 그 즉시, 나병은 깨끗해졌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지요!
기적적인 치유가 있고 난 바로 다음에,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이 와서 예수님께 중풍 병에 걸려 집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종의 치유를 구했습니다. 그 즉시 예수님은 고쳐주길 원하셨습니다! 그분은“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7절).”그 백부장은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고 말하는 중에 예수님은 (의역하자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그래,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떻게 백부장에게 말해서 그 즉시로 하인이 나았는지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를 알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장모 집에 들어가셔서 열병으로 누워있던 그녀를 보시고, 다가가셔서, 만지시며 그 열을 꾸짖으셨습니다. 저는 그 장이 기꺼이 고치길 원하심을 나타내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기꺼이 그녀가 씻은 듯이 낫길 원한다.” “가서 그녀를 고칠 것이다.” 예수님은 그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아, 그녀가 열로 힘들어하는 것을 봐라...그것을 없애리라!”-그분은 그녀를 만지셨고 그녀는 나았습니다! 여러분! 그분은 저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이십니다!
REPENTANCE TRIGGERS GOD’S NATURE TO BLESS YOU
회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고 싶어 하시는 본성을 일으킵니다.
선지자 요엘에게 임한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본성에 기꺼이 고치길 원하시는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2:12 , 13).
그 구절은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입증해줍니다!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좋은 일을 한 가지만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선함을 갖고 계시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지 않을 수가 없으십니다. 또한 그분은 영원히 선하십니다. 그분은 단지 선함을 갖고 계시지 않고 선한 일들을 행하시며, 바로 그 선함의 실체이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자비를 갖고 계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그분은 자비롭지 않으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실체입니다; 그분은 영원하시며, 변함없이 선하시며, 자비로우십니다. 그분은 선한 일들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십니다. 자비롭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십니다. 그분은 자비로우시며 선하십니다.“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13, 14절)”. 그분은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시지 않으시기 까지 크신 인자하심을 가진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셔서 긍휼히 여기시고 축복하는 분이신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롭기 때문에 기꺼이 축복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회개하고 돌이켜 변화를 받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시는 것뿐 아니라, 그 답으로 여러분이 죄 가운데 저질렀던 영향들을 속하시며 회복해주심으로써 여러분을 포로 된 상태에서 바꾸시며,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할렐루야! 축복은 하나님의 본성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진실로 되돌리시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낄 때조차도 그분은 얼마나 “높고 뛰어난” 분이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옳은 일들을 하며,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전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성품 때문에, 그분은 “나는 자비롭고 인자가 크기 때문에 너를 용서하기 원한단다. 나는 너를 용서하는 것뿐만 아니라 네게 축복하길 원한다. 나는 바꾸길 원하고 너희가 받을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라도 베풀기 원한단다. 모든 것이 나의 나 됨 때문이란다. 이제 나로 너를 축복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성품은 축복입니다. 그분께서 축복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기꺼이 축복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크십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이렇게 물을 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하고 싶어 하시나요?” 여러분은 신학적으로 그것을 끌어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학적인 부분도 좋습니다만,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를 믿는 믿음과 그에 대한 계시와 함께 간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축복하신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그 때에는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고 싶어 하시는 지를 깨닫지 않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보십시오:“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세아 6:1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낫길 원하기 때문에 너희가 회개하길 원한단다.” 여러분이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누가 회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CLOSING 마치며
이번 주 가르침을 마치기 전에,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로마서 2:4 ).” 저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인자하심과 용서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이 여러분을 회개로 이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너무나 좋은 소식입니다. 그 진리를 귀하게 여겨야겠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 중 몇몇은 여러분을 이끄시고, 지금이 회개해야 할 때라는 깨달음 주는 성령님의 만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살피시고, 그분께서 지적하시는 것들을 다루실 수 있는 시간을 내어드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여러분의 삶에 그분의 치유의 만지심을 풀 수 있는 진정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히브리서 3:15 , 16; 밑줄은 저자의 강조).
<출처 :Elijah House Ministr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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