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주(the Lord)와 구원자(the Savior)로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저마다 넘어야할 시험과 역경의 산이 있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영화로운 천성을 향하여 행진하는 순례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히 12:1 -2) 또한 마귀로 틈타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 믿음의 순례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요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바라보면 많은 자들이 마귀에게 발목을 잡혀서 곤고한 삶에 처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연 무엇이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걸려 넘어지고 침륜에 빠지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죄(sin)요, 연약함(vulnerabiity)과 허물(iniquity)입니다.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영적 아킬레스건입니다. 그것은 원수 마귀가 들어오도록 벌어져 있는 틈새, 우리의 약점, 마귀가 쉽게 장악할 수 있는 어떤 부분을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굴복하지 않은 옛사람의 어떤 습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특징지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육신의 법(세상의 법)을 따르려고 하는 아직 정복되지 않은 습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에 법에 굴복할 때에 마귀는 우리의 삶에 들어올 합법적인 권리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크리스천이라구요? 나는 세례 교인이라구요?, 나는 성령 세례를 받았다구요?
성경은 우리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서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라고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받은 자라면 어찌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이전에는 믿었으나 세상으로 돌아간 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영적 아킬레스건은 믿는 자라도 미혹하여 멸망케 하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가 발악하며 붙잡으려고 하는 어떤 것입니다. 당신의 아킬레스건은 마귀의 손으로부터 자유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셨으나 실제로 그가 그 땅을 정복하기까지는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수많은 전쟁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실제적인 성취 사이에는 우리가 반드시 치루어야 하는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완전히 진멸하지 않은 소수의 가나안 민족들은 후대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화근이 되어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온전히 정복되지 않은 옛사람의 습성은 그것이 온전히 제거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을 괴롭히고 도적질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전한 승리와 성숙을 위해서 영적 전쟁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이 전쟁을 치루지 않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따르냐 이 육신(세상)의 법을 따르냐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싸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영적인 아킬레스건을 허용하시는 것일까요? 영적 아킬레스건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누구인가? 우리가 경배를 드리는 최고의 대상이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의 법과 권위를 따르고 있는가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있어서 영적 아킬레스건은 미혹과 유혹의 표적이 됩니다.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따를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침범하셔서 대신 선택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축복의 길을 이미 계시하셨습니다. 아킬레스건을 공략하는 마귀의 전략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와 같습니다. 그것을 보게 하고(안목의 정욕), 계속 보게 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는 우쭐한 느낌이 들게 만들고(이생의 자랑), 마침내 먹고 싶어하게 하는(육신의 정욕) 것입니다. 마귀가 던진 미끼를 물었을 때 순간적인 쾌락이 있지만 그 결과는 마귀에게 속하게 되며 죄책감과 수치와 저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자들이 범죄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이 구원에서 떨어질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예 또는 아니오 입니다. 성경은 구원에서 탈락하는 즉,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는 중범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거역하고 고의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항하는 죄
2. 하늘의 능력과 은사를 맛보고도 예수를 부인하고 떠난 죄
3. 명백한 성령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로 모함하고 훼방하는 죄
4. 예수님의 재림 때에 적그리스도(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666)을 받는 죄 등.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러한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ex) 어느 기도원에서 회개 기도가 안 되어서 가슴을 치며 하소연하던 목사님. 그 외의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범죄하면 회개하면 되지 뭐. 그게 뭐 큰 죄인가. 날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걸.’ 라는 태도는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흘린 어린양의 보혈을 모욕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물론 진정으로 회개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들도 범죄에 대한 댓가를 받습니다. 다윗왕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의 남편을 전쟁터에 앞장 세워서 죽였을 때에 원수 마귀는 다윗의 가문을 크게 훼방할 빌미를 얻었고 실제로 다윗은 끔찍한 내전과 가문의 피비린내 나는 난리를 겪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과 권위가 클수록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댓가는 더 혹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영적 아킬레스건을 극복해야 할까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집중 경청!
첫째, 우리는 빛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되신 아버지 곁에 머물 때에 죄와 어둠의 세력을 우리를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어둠은 빛을 쫓아낼 수 없고 거짓은 진리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거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온전한 보호와 위로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낱낱이 고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다루시고 처리하시는 최종적인 권한은 하나님 아버지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조명과 감동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거리끼게 하는 모든 죄악과 그 무서운 결과를 인식하고 통회 자복하며 그 죄로부터 결연히 돌이켜 떠나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으며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는가를 깨닫고 배설물을 쏟아내듯이 그 죄악을 버리고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해야만 합니다. 이 부분이 잘 안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안개 낀 것과 같은 혼탁함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이 잘 되면 우리의 영혼에 최상의 기쁨과 자유함과 평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셋째,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간파하고 그를 담대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는 것은 우리가 그에게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열려진 문, 틈새로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기도 중에 성령님께 물어보시면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한 눈, 탐욕, 우상숭배, 술취함과 방탕함, 음란과 호색, 혈기 부림, 미움, 시기와 질투, 거짓말, 거역과 반항, 폭력과 비흘림 등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법에 속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법에 굴복할수록 마귀는 더욱 우리의 삶을 얽어매고 통제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온전한 회개를 했다면 우리의 삶에 불법으로 침입한 마귀를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가 부족하면 마귀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우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마귀는 실제로 역사하는 악한 인격체이며 우리가 다루어야 할 축사의 대상입니다. 마귀, 귀신은 특정 장소나 사람의 몸 또는 동물의 몸 안에 붙어있거나 기거할 수 있습니다. 마귀를 쫓을 때는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꾸짖고 명령해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의 주권을 선포하며 예수님의 보혈을 선포하고 뿌리는 것은 대단한 영적인 효력을 가져옵니다.
넷째, 우리는 우리의 범죄했던 부분에 대해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 주기를 요청하며 마귀의 침입을 받았던 부분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 바르고 반대되는 것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술취함과 방탕함으로 마귀에게 문을 열어 놓았다면 문을 닫고 우리는 올바른 정신과 단정함으로 축복하며 그러한 덕목이 함양되도록 끊입없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귀에게 한번 잡혔던 아킬레스건은 또다시 잡힐 확률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에 마귀에게 져서 굴복했던 부분을 이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며 하나님의 의와 영광의 도구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영적 전쟁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입니다. 이 싸움은 끈질긴 레슬링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안에서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며 나아갈 때에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1 -2
할렐루야 주 안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시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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