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이루는
자신의 능력을 우리의 말에 두고 계신다. 요한복음7장의 말씀처럼, 성령이 우리를 통해 강처럼 흘러 넘친다.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7:38 ,39)
생수의 강은 하나님의 음성이 흐르게 하는 수단이다. 시편 29편에 따르면, 하나님의 음성이 물 위에 있다. 그 다음으로 그분의 소리가 중보 기도자들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생수의 강물 위에 있다 폭풍을 꾸짖으신 후, 예수께서는 폭풍을 꾸짖어야 했다는 것을 암시하시면서 그들의 두려움과 불신앙을 꾸짖으셨다. 예수께서는 또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에 우리가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영감 된 선언의 힘을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소리가 된다”
시편29편에는 하나님의 음성(소리)이 하는 일들이 여럿 열거되어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소리가
‘부순다’는 표현이다.
‘부수다(break)’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바르(shabar)의 몇 가지 유력한 예는, 산산 조각내다, 잘게 부수다, 잘게 찢다(야생
곰처럼), 무터뜨리다, 멸망시키다(왕국이나 도시나 민족을), 참회하며 비탄에 잠기다(즉, 깊이 뉘우치다), (자궁이)갑자기 열리게 하다(즉, 아기가
나오다)’샤바르에 대한 정의를 보면, 중보기도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음성이 한편으로는 악한 일들을 무너뜨리며,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자들이
마음을 찢고 회개 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분의 백성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음성은,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분의 목적을 ‘낳을’ 수 있도록 ‘태를 열 수도 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그 백성들이 머고 마시며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보고 율법판을 ‘깨뜨렸다’(샤바르,출32:19). 거짓
신들의 제단이 샤바르의 대상이 될 때가 많았다(왕하18:14; 23:14 .
대하34:4). 이것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의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소리가 생수의 강을 타고 흐를 때 어둠의 일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어둠의 일들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하는 수많은 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흔들기도 한다. ‘흔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추불’ chuwl)이다.
추불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 –두려워하다, 고통으로 떨거나 겁에 질리다, 분만 중이다, 아이를 낳다, 생산하다, 낳게하다 –
하나님의 음성은 원수를 두렵게 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원수가 겁에 질려
고통하며 떨게 만든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은 생산하거나 낳는 능력이 있다. 그분의 음성은 우리의 수고의 열매를 낳는다. 분명 우리가 영적인
영역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더 많이 기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지만 즉각적인 응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깨가 얼마나 많은가. 다니엘이
응답을 받는 데 21일이 걸렸다는 것을 기억하라(단10;12,13) 때때로 우리가 한 중보기도가 응답되기 까지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원하시는 때에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이런 말을 몇 번이나 들어 보았는가? 그러나 이 말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전3: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중보기도자들에게
‘잇사갈의 기름 부음’을 주셔서 시세를 알게 하실 것이다.(대상12:32). 물론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이루실 준비가 되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이루실 준비가 되면 그 말씀을 중보기도자들의
입에 두신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 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렘1:9-12)
여기서 ‘지켜’[watching]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샤카드(shaqad)인데, 이 단어는 “깨어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다, 방심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깨어 계신다. 그분은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입에 두신 말씀을 행하시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방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살구 나무를 보여주셨다. 왜 보여주셨는가? 살구 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샤카드’와 스펠링이 비슷하다. 모든 나무 가운데 살구 나무는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그래서 히브리적 사고(思考)로 살구 나무는 ‘깨우는 자’로
이해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이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방심하지 않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살구 나무를 보여 주신 것이다. 살구 나무가 ‘깨우는 자’의 의미인 것과 마찬가지고 하나님께서는 늘 깨어 계시며, 자신의 말씀을
종들의 입에 두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사용하시게 하라, 원수가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라. 우리에게서 성령이 흘러 넘치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원수들이 도망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