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2010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로마서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핵심적인 것이 ‘변화를 받아’  ‘변화’가 핵심입니다. 그러면 변화의 축이 어디입니까?  변화의 출발이 어디입니까?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마음의 변화,  생각의 변화가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다보면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의 특징을 유심히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우선 생각이 다릅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큰 사람이 되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작은 사람이 되고 또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성공적인 사람이 되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많이 실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다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람을 변화시킬 때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느냐 하면, 생각을 변화시키면 그 사람은 변화됩니다. 생각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다 바뀌는 것입니다.

생각의 영향력이 굉장히 큽니다. 생각에는 장벽이 있습니다. 생각 때문에 변화가 안됩니다. [진주만]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활주로가 짧아서 모두가 이륙이 안된다는  상황에서 한사람이 나와서 이륙을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은 모두가 안된다고 했을 때 한사람이 나와서 된다고 하니까 모두가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생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장벽 때문이었습니다.

1954년 영국 옥스퍼드 의대생 로저 배니스터라는 사람이 모두가 1마일을 4분 안에는 못 뛴다는 정설을 깨고 마(魔)의 4분 안에 뛰었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마의 장벽이 깨진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37명의 다른 선수들이 4분 벽을 돌파했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300명이 넘는 선수들이 그 장벽을 넘어섰습니다. ‘인간의 심장으로는 1마일을 4분 안에 뛸 수 없어.’라는 생각이 못 뛰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1954년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붙들어 매었던 것들이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능력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처음 가는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그 사람이 생각의 벽을 모두 깨기 때문입니다. 안된다고 하는 생각을 깨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긍정적인 생각의 리더가 전체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은 신체에도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재밌는 생각, 긍정적인 생각 등을 많이 하면 몸의 호르몬 분비도 다르다고 합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흥분되고 활기가 생기고 기분 좋고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답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생각, 두려운 생각, 걱정, 근심 등을 하고 있으면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근육이 수축되고 몸이 굳어지고 계속 안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몸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민수기에 보면 12명의 정탐꾼이 나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모두 망했고 2명의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차이점이 지파의 뿌리의 차이도 가문의 뼈대의 차이도 능력의 차이도 아니었습니다. 결국에 10명과 2명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여러분도 아는  ‘생각의 차이’였습니다.

생각이 살게도 만들고 죽게도 만듭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생각의 변화’입니다. 생각이 변화되는 것이 믿음의 출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라. 말씀을 묵상하고 외우는 이유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자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든 우리가 먼저 사람을 대할 때 배워야하는 것이 생각입니다. 선진국에 가면 선진국다운 생각이 있습니다. 후진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로마서  8:5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영적인 사람,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영의 일을 생각하는 그 방식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생각이 바뀌는 것이 믿음입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한 번 잘했다가 또 넘어지는 요요현상과 같은 것입니다. 생각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뀌지 않으면 무슨 일에든지 걸림의 문제가 생깁니다.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대로 변화될 때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바꿀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즉 마음의 뜻과 생각까지도 다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말씀과 많이 접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변화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이 생겼습니다’ 라는 말은 ‘생각이 변하였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그 때부터 묘한 현상,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 삶에 열매가 없는 이유가 생각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세인은 바리세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생각의 차이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그 때부터 창조적인 기적을 나타내게 됩니다. 스스로 자립해야겠다는 생각 하나가 그 사람의 미래를 바꿉니다.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행동과 미래와 운명을 모두 바꿉니다.

빌립보서 4: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즉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못 하실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생각의 차이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도외시하며 밤낮 자신의 능력, 자기 분석하다가 그 사람의 고백은 열심히 분석하다가 결국엔 ‘못한다’ 뿐입니다. 열심히 분석하고 핑계대고, 열심히 분석하고 '어쩌란 말이냐'는 말이나 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의 능력이 될 수 있는 그렇게 변화 받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처: Love and Truth Church(사랑과진리교회)

여리고의 바디메오 이야기

여리고의 바디메오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바디메오는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것이 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고난의 밑바닥까지 다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바디메오가 어떤 사람인지 묘사하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즉 소경이요 거지였습니다.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축약되어 있습니다. 먼저 소경이었습니다.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이라.’는 말을 합니다만 힘든 장애 가운데 하나가 시각 장애입니다. 또 바디메오는 거지였습니다. 일상에서 쓰는 수식어가 아닌 진짜 거지였습니다. 감정상의 거지가 아닌 실제 삶이 거지였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든 상황이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인간적인 방법으로 판단할 때에 이런 사람에게 소망이 있겠습니까? 소망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이 바디메오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회복되고 구원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떠한 사람도 절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데 나는 완전히 고난의 시련 가운데 떨어졌다, 나락같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성도님들, 나에겐 남아있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소경 바디메오를 보십시오. 이 사람보다 더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바디메오도 회복되고 구원받았는데 예수 안에서 회복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을 붙드십시오. 절망이 아닌 소망 가운데 서십시오.

가수 태진아 씨의 회심기를 읽었습니다. 본명이 조방헌 이더라구요. 그런데 예명을 짓게 된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데뷔를 할 당시 최고의 미모의 여배우가 태현실 씨였답니다. 그래서 성을 ‘태’ 자를 썼고 가수로서의 최고의 스타가 남 진과 나 훈아씨를 이어서 그 이름 끝자리를 하나씩 써서 ‘태진아’라는 예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해서 무일푼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여기서 잘 되지 않았는데, 잘 되리라는 것도 없이 어렵게 어렵게 매일을 살다가 아내 이옥경 씨를 만났습니다.

결혼을 해서 주로 부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환락과 도박의 라스베거스에 가서 도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도박은 마약보다도 무섭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완전히 탕진해 버리고 풍요로운 미국에서 끼니걱정을 할 정도로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어있는 상황에서 집에만 들어오면 밤마다 부인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었더니 ‘예수바람 났다.’면서 밤마다 기도하러 나간다고 했답니다.

장모님께서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려서 기도 외에는 나을 길이 없다고 하여 기도하러 나간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본인도 궁금하길래 교회를 한 번 찾아갔답니다. 처음 갔을 때 불렀던 찬양이 33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를 듣는데, 꼭 자기를 부르는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 찬양 하나에 눈물이 나고 가식이 사라지고 마음이 열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장모님은 치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가정도 무너지고 최악의 상황가운데 떨어졌던 사람, 겉으로 본다면야 술독에 빠진 사람, 도박에 빠진 사람, 암에 걸린 가족이 있는 사람. 이런 가정에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찾아가셔서 그를 복음으로 변화시키시니까 지금의 모습과 하늘과 땅 차이로 보일 겁니다. 외적인 출세가 아니라 그의 심령을 치유하고 삶과 환경 등 모든 것을 치유하신 능력이 복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든지 결코 절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붙들고 내 삶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삶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일어서는 힘은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일으키실 때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안 사안마다 그 사안에 맞게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그 들은 말씀을 붙들고, 그 불씨를 가지고 그것을 놓고 기도할 때 그 믿음이 더 자라나게 될 것이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닙니다. 믿음을 받으면 이미 이긴 것입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잘난 것도 노력도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니까 변화받고 기적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나와 내 주변도 마찬가지로 이런 기적적인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만나는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힘을 다해서 예배드리고 우리 주변에 많은 영혼들을 생명과의 접촉으로 인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배의 자리로 이끌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필요할 때 어떠한 말씀을 사용하시든 그의 마음을 열어서 그에게 믿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바디메오가 경험했던 기적의 체험을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분의 삶과 주변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출처: Love and Truth Church(사랑과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