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2011

'사람’ 때문에 힘드십니까?

본질적으로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을 따르고 의지하려고 하면, 큰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을 다 의심하고, 관계도 맺지 말고, 거리를 두고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과연 나는 사람 때문에 흔들리는 사람인가?"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당신 곁으로 보기에 돌아가는 상황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누가 보아도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할 상황이었지 사울이 두려워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고 리더십도 확실했습니다. 그런데도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다닌 기간이 13년 이상 됩니다. 그 기간 동안 사울은 흔들리지 않는 강자였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모아 데리고 있기는 했으나 혁명이나 반란을 도모하기 위해 모은 것과는 근본이 다릅니다. 그들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것을 보고 모인 그 사회의 '루저'(loser,패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 에너지를 낭비했습니까? 다윗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삼상18:12)

다윗도 사람이었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 역시 사람을 의지하기도 했고 음모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사울과 다윗이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결과적으로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됩니까? 무엇이 다릅니까?

차이는 시편에서 나타납니다. 시편에는 다윗의 적나라한 감정들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의 고백이 공존합니다. 다윗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 자신의 피난처요, 목자요, 바위요, 요새라는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를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보호자시며 권능의 주(主)이심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울에게는 이런 고백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의 선택을 원망하며 그 선택의 대상인 다윗을 저주하며 그 저주를 쫓아 살다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즉 동행을 깨달아야 합니다.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로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나를 지으신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십니다. <폭풍속의동행중에서...>

사람들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교회 여전도회 회장으로서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전도에 나선 적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해도 세상 사람들과 거의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을 원하지 않았다. 변화된 나를 보여주기를 원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을 보기 원했다. 그러나 나는 세상과 다르게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법적으로 전도를 금지하고 있다. 말로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 따라서 나는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주장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을 위하고 친절하게 그들을 섬기며 내 안에서 샘솟는 평안과 기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내 안에 있는 평안을 궁금해 하고 부러워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내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 나눌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을 배고프고 목마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먹이고 마시게 해주어야 한다. 무엇에 배고프고 목마르게 만들어야 하는가? 바로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사랑과 기쁨을 갈구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나와 같은 그리스도인을 읽을 뿐이다. 만약 그들이 내 안에 있는 것을 싫어하면 그들은 내가 소유한 분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소유한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결핍'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네인생은주님의것이다중에서...>

사람들은 다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충성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동기를 가지고 충성하는 것인지 언뜻 보기에는 잘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구별하신다. 충성의 대가를 바라거나 자신에게 돌아올 유익을 구하는 충성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섞인 영광을 받지 않으신다. 때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순간에 나도 영광 받기를 바랄 때가 있다. 하지만 내 것과 주님 것이 섞여 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받으실 수 없다. 지극히 거룩한 분께 합당한 영광과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영광은 뒤섞일 수 없다.

사역을 통해 주어지는 성취감이나 칭찬은 달콤하지만 여기에 중독되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르게 된다. 자칫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버리거나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사명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것으로 주님의 영광을 추구하는지 내 영광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내가 그 일이 망했다고 느낄 때이다. 자신이 실패하고 또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끼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 순간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서운하다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위해 그 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패에 직면하는 반응을 보면 내가 정말 무엇을 위해 사명을 추구해왔는지 분명히 알게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목적을 자아실현에 두는 경우가 있다. 내 가치를 증진시키고 내 행복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삶과 관계가 없다. 내가 죽고 주님이 사시는 삶, 성공이 아닌 주님의 거룩과 영광을 목표로 사는 삶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복음의 삶과 매우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했다면 이 시간 그것을 내려놓으라.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면서...

우리의 고백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하나님, 저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자아가 깨어진 사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위대한 종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자아가 깨뜨려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특별히 택하여 세우셨지만 25년 동안 그는 자아를 죽여야 했습니다. 기근을 당하여 애굽에 내려가고, 거기서 아내를 팔아먹는 수치를 당하고, 조카에게 배반을 당하고, 그래서 그가 얼마나 깨뜨려졌던지 마지막에는 그의 독생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한마디도 변명하지 않고 바칠 정도로 자아가 죽었습니다.

야곱도 20여 년 동안 자아를 죽였습니다. 그는 외삼촌 집에서 품삯을 착취당하고, 거기서 도망쳐 나오다가 라반의 군대에게 잡혀 죽을 뻔하고, 마지막에 얍복 강 가에서 환도뼈가 부러진 다음에야 완전히 자아가 죽었습니다. 야곱의 자아가 죽자 하나님께서 형의 군대를 막아 주시고, 그를 위대한 축복의 조장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죄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 들어 사용하시기 위해 13년 동안 흙구덩이에서 종으로, 종에서 감옥으로 옮기면서 자아를 깨뜨려 나중에는 자기를 판 형들을 만날 때 사랑과 눈물로 맞게 했던 것입니다.

또한 모세도 40년 동안 광야에서 자아를 깨뜨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기 스스로 이스라엘을 구출하려고 했던 모세가 나중에는 깨어지고 깨어진 나머지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라고 하실 때 "내가 누구관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아가 깨어진 사람을 들어서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어떤 문제로든지 얻어맞고 자아가 깨어져서 앉아 있는 성도님들은 기뻐하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은 지금 실패해 있는 것이 아니고 성공의 문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아가 죽고 그 자리에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지렁이 같은 여러분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을 때, 그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타작 기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깨뜨리기 위해 가족이나 이웃이나 친구를 통해 돌이 날아올 때에는 감사하십시오. 사업이나 생활을 통해 돌이 날아온 때도 환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고 하늘나라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돌을 허락하셨습니다. 돌이 날아올 때에는 피하지 말고 맞아서 여러분을 깨뜨리십시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