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무거운 주제를 나누려고 한다.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책이다. 성경은 책 중에 책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the Book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생각이 같아진다. 하나님의 모든 생각을 실행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다. 하나님이 계획한 것을 예수님이 다 이루신다.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것을 유지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할 분도 예수님이시다. 결국 예수님의 생각을 알려면 성경을 봐야만 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귀중한 책이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하신다. 듣다라는 말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하면 “쉐마”이다. “쉐마 이스라엘”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생각이 같아지려면 들어야 한다. 사랑을 제일 못 하는 사람은 못 듣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주관하시는 분이니 얼마나 할 얘기가 많겠는가? 하나님은 정말 잘 들으시는 분이시다. 다 들으시면서 그 분은 결정적일 때 말씀하신다. 우리도 그 분을 닮아야 한다.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사랑이 시작되면 반드시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듣지 못하면 혼의 사랑을 잘 못 한다. 끊임없이 자기 얘기만 한다. 그리고 자꾸 육의 사랑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듣는 것이 있어야 한다. 들으려면 말씀으로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한다.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굉장히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성도들에게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해석이 먼저 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먹는 것이다.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잃어버리게 된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생각을 대부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속에다 담으셨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 언어, 문화, 정치, 배경 가운데 다 하나님의 생각이 담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지 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것 자체를 나를 이스라엘이라고 해 버렸기 때문에 이상하게 돼 버린 것이다. 우리에게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로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야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을 수 있게 된다.
만약에 나를 이스라엘로 해석하게 되면 성경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온다는 소리가 성경에 어디 있는가?” 여러분! 성경에 가득 써 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안 보이는가? 나를 이스라엘로 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스라엘이 된 것은 맞다. 제가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접붙혀 졌다. 그러나 실제 이스라엘을 부인하면 안 된다. 그러면 자꾸 말씀이 땅에 떨어지게 된다. 말씀 자체가 기도가 된다.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생각을 듣다 보면, 거기서 굉장히 많은 것들이 풀어지게 된다.
듣기를 잘 못하는 사람은 항상 어떤 말에 토를 단다. 일단 들어보라.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이 다 담아 놓으셨다. 온 지구를 향한 계획,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계획, 주님의 다시오심에 대한 모든 계획들을 여기에 다 담으신 것이다. 우리 이방인들은 성경에 이스라엘 이야기만 나온다고 기분 나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단 들어보라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에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을 일단 믿고 기도해 보라. 일단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보면 어떻게 되는지 알 것이다. 그 속에 모든 비밀이 다 담겨 있다. 이것은 굉장히 큰 이야기이다.
우리가 왜 이스라엘을 위해서 24시간 기도하는가? 거기에 모든 하나님의 전략과 계획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을 향하여 욕부터 하지 말고 일단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민족이 유대인이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이 무슨 사랑인가? 우리가 유대민족을 사랑하면 온 열방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라. 그 속에 굉장한 비밀들이 담겨 있다. 또 우리들이 이스라엘이 되었음을 감사하시기 바란다.
이번 시간에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예수님과 생각이 통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땅에 대한 생각이 같아야 된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주로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줄로 생각한다. 하늘에 있는 것들을 중요시 여기는 줄 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실 땅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 이것이 우리에게서 회복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진리이다. 성경은 다 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제가 성경에 나오는 하늘에 대한 단어와 땅에 대한 단어를 다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성경은 하늘을 설명하지 않는다. 저는 이것을 알고 뒤집어 지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제가 배워 왔던 것은 하늘에 대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모세에게도 내가 약속한 (하늘이 아닌) 땅으로 오라고 말씀하신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늘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늘에서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것들이다. 종교는 인간의 사후 세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이 맞는다면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에서 무지막지하게 해 놨어야 했다. 그러나 제가 본 결과 성경에서는 하늘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온다. 성경은 여기까지는 맞는데, 이 영혼이 다시 내려오는 것을 더 이야기한다. 이것을 부활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금 내가 영, 혼, 육을 가지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성경은 이 땅에서 우리가 영원히 산다고 이야기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말이다. 물론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땅과는 전혀 다른 하늘과 땅이 통일 되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우리는 이것을 바라는 것이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신 것으로 시작된다. 즉, 성경은 하늘들과 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땅에 대한 부분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회복되지 않는다면 주님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는 땅에 대한 오해들이 다 풀어져야 한다.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땅 이야기만 나오면 성도들은 다 여호와의 증인인 줄 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이 땅을 창조하신 것이 얼마나 영원하고 위대한 것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에하드이시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아도나이 에하드”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아도나이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 아도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을 직역하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여호와는 우리의 엘로힘이시다. 또 여호와의 정체성은 에하드(하나)라는 것이다. 에하드이시라는 것은 그 분은 모든 것을 에하드로 만드신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그 분의 뜻대로 된다. 이것이 그 분의 통치이다. 그 분의 통치가 임하면 다 에하드가 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하나됨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아도나이 에하드 이신 분이 창조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땅인 것이다. 땅이라는 것은 굉장히 특별해서 다른 것을 다 품고 있다. 땅에 접속되어 있으면 우리는 다 하나가 되어 버린다. 땅이라는 것은 놀라운 에하드 성을 가지고 있다. 땅은 모든 생명을 다 말없이 품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생명을 다 하나되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체들이 이 땅에서 다 하나됨을 이루고 사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생명체들이 이 땅에서 다 하나를 이루고 사는 것을 원하신다. 이렇게 되면 주님이 왕이 되신다.
(슥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여기서도 에하드가 나온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신다는 것은 온 땅 위에 왕이 되신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 분은 온 땅의 모든 것들을 다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땅에 대한 것들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땅은 무한한 생명을 품고 있다. 흙 한 줌을 쥐면 그 안에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가 에하드 성을 주님으로부터 받게 되면 생명을 무한히 품을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실상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자르고, 거부하는 일을 한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안에서 에하드 성이 회복되면 계속해서 생명을 품게 된다. 이것이 영적 선배들이 보여준 실제이다. 그래서 거리에 있는 아이들을 품곤 했다. 그런데 땅은 한 번도 잘라본 적이 없다. 땅은 정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이다. 땅에 있는 생명체가 몇 개인지 아는가? 셀 수 없다. 아마 숫자 이상일 것이다.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생명체가 더 많다. 그런데 그것이 땅에 있으니까 가능한 것이다. 주님이 창조한 이 땅이 얼마나 놀라운 땅인지를 알아야 주님이 우리에게 땅을 주실 수 있으실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땅을 떠날 생각만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에하드 성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세울 자들을 흙으로 만드신다. 여호와를 대신해서 다스릴 사람을 창조하는데 바로 흙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다 흙이다. 이 바싸르들을 다 흙으로 만드신다. 그런데 사람만 흙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바싸르들을 다 흙으로 만드신다. 새도 흙으로 만든다. 짐승들도 다 흙으로 만든다. 바싸르를 가진 것들은 다 흙으로 만든다. 이 바싸르들은 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수 있다. 흙은 흙인데 굉장히 놀라운 흙들인 것이다. 나귀가 말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가? 그런데 그 나귀가 어디 가다가 그랬다는거 아는가? 사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한 선지자를 물어 죽였다. 모든 바싸르들은 이 땅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기 위해 창조한 놀라운 존재들이다.
이 바싸르들이 에하드 되면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사 분란하게 움직인다. 이것이 군대이다. 그래서 여호와는 군대의 하나님이시다. 군대를 움직이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바싸르 중에 바싸르가 사람이다. 사람이 바싸르들의 리더쉽이고, 이 바싸르들은 온 땅을 다스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온 땅이 아름다워 보인다. 성령을 받게 되면 지나가는 개도 예뻐 보인다. 주님은 우리가 온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창조하셨다.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을 지은 이유는 온 땅을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땅을 다스리도록 하는데 있다. 우리가 왜 사는가? 땅을 다스리도록 살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창세기 1장 말씀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번도 물고기라도 우리의 말을 듣게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의 새를 어떻게 다스리겠는가? 하나님이 창세기 1장에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에 대해서 써 놓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중동 선교사가 되라고 써 놓았으면 더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믿고 보는 것이다.
사단은 창세기 1장을 빼앗아 갔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 땅을 오직 인간이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땅을 다스릴 사람이다. 땅의 기초는 영원하다고 했다. 주님은 이 영원한 땅을 인간에게 주기 원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갈망이다. 그렇다면 사단의 갈망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사단이 왜 이 땅을 탐내 하는지 아는가? 이 땅은 하나님의 모든 본질이 다 드러나는 곳이다. 사단은 무식한 애들이 아니다. 2인자에 앉은 그 사단이 과연 쓸데 없는 것을 탐내겠는가? 사단은 가장 높은 자의 자리를 탐내고 있다.
(사14: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여기서 지극히 높은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단은 자기가 창조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자기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 권세에 도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은 권세를 가지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하다. 사단은 이것을 안다. 우리가 사단에 대해서 조금만 안다면 우리는 절대 이 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다. 제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하늘에서의 우리의 포지션이 없다. 성경에서는 이 땅에서 우리의 날이 길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이다. 우리가 이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사단과 할 일이 없다. 사단과의 전쟁에서 전쟁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절대 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창세기 1장이 날라간다. 이 땅에 있는 수억의 인구가 주님이 우리를 창조한 목적대로 사는 사람이 없다라고 주님은 저에게 말씀하셨다. 많은 성도들이 창세기 1장부터 믿고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셨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것이다.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주님을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말이다. 주님을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권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양이라는 것은 주님과 레벨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더 놀라운 소리이다. 모양에서 비교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모양은 비교하라고 있는 것이다. 주님과 같은 모양이라는 것은 주님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과 같은 수준이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권세와 권력을 의미한다. 인간은 이 땅에서 놀라운 존재이다. 주님은 이러한 인간을 탄생시킨다. 그래서 이들로 하여금 땅을 다스리게 한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영과 혼과 육으로 지으신다. 왜 이렇게 지음 받는지 알아야 한다. 땅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시115: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하늘은 여호와의 것이다. 땅은 사람에게 위임하셨다. 땅의 소유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사람에게 위임한 것이다. 사단이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소유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잠시 그 위임이 사단에게 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것을 사단에게 넘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유는 아직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통치는 2인자 적인 통치이다. 이 시스템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받지 않으면 아무리 물고기에게 명령해도 듣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간은 2인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은 이 자체로 능력을 하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그래서 사실 인간만큼 연약한 존재가 없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하면 ‘에노쉬’라고 한다. 인간 자체로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위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그것을 그대로 말하면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 자체로 비어있는 존재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받으니까 바다를 갈라 버렸다. 하나님의 뜻을 받으니까 애굽을 초토화 시켰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다른 것이다. 우리 중에 아무리 연약한 자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내려왔다면 다른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끊임없이 능력을 가지려고 한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의 종교 생활에서도 나타난다. 끊임없이 능력을 갖게 되기 원한다. 왜냐하면 연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능력 있는 자가 되고 싶어 한다. 언제나 손만 얹으면 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체가 능력이 될 필요가 없다. 그 분이 능력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이 엘 샤다이시다. 나는 아무런 능력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은사를 뜻대로 나누어주신다.
사실 교회사 속에서 가장 하나님께 악영향을 끼친 자들이 능력 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능력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순간이 끝나면 우리는 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 속에 능력이 계속 있다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게 된다. 저는 말씀 전하는 자이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서 능력은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저는 주님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주님이 망하게 하시면 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우리의 영과 교통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영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영이 죽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영이 죽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받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땅을 정복하기 다스리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의 영을 다시 살려 놓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할 때 왜 영, 혼, 육으로 창조했는지 아는가? 사실 이 땅은 하늘이 다스리게 되어 있다. 하늘의 다스림이 이 땅에 내려와야 한다. 땅은 계속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은 땅을 다스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하늘과 땅은 하나이다. 세트이다. 그런데 다스리는 입장에 있는 하늘에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땅을 다스리도록 되어 있는 자가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주님은 골로새서에서 사람들에게 위에 것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이 땅을 다스려야 하는 사람은 하늘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땅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늘의 뜻으로 땅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늘과 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땅은 그냥 땅으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와야 한다. 그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다음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이다. 영을 불어 넣으시면 혼이 생겨난다. 이 혼은 하늘과 땅을 다 가지고 있다. 우리를 대표하는 것은 우리의 혼이다. 이 혼은 하늘과 땅을 다 가지고 있다. 영으로부터 하늘의 것을 받아서 육으로 땅을 다스리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있는 존재가 땅의 탑 리더가 될 수 있다. 몸으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 있다.
우리 혼이 믿는 것은 위로부터 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을 부활체라고 한다. 부활체가 되면 땅을 다스리는데 굉장히 편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몸이 부활체가 아니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부활체는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성경에서 공간 이동 한 사람이 빌립이다. 빌립은 이것을 예표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무나에게 다스릴 수 있는 부활체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는 자들에게만 주신다. 이것을 충성이라고 하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믿음과 충성은 같은 단어에서 나온다. 사람은 하늘과 땅이 통일된 존재이다.
(사32: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영이 하늘에서 부어지면 땅이 다 회복된다. 땅은 하늘이 부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하늘이 다 부어진다. 영이 부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그 땅은 놀라운 땅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단지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문이 완전히 열리면서 모든 육체에게 영이 부어지는 사건이다. 그렇게 되면 땅도 다 회복되고 광야도 다 회복되어진다.
(엡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주 사역이다. 하늘과 땅을 에하드 되게 하신다. 땅은 하늘이 있어야 한다. 땅은 반드시 하늘과 통일되어야 한다. 하늘은 영이다. 영적인 것은 반드시 실제가 있어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한다. 바라는 것이 실제화 되는 것이다. 믿음은 바로 이것이다. 영적인 것은 반드시 실제로 나타나야 한다. 영적인 것을 우습게 보지 말라. 영적인 것은 실제를 움직인다. 사랑은 놀랍게 영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적인 것은 실제를 출현시키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커피라도 사 줘야 한다. 영은 실제를 필요로 한다. 하늘은 땅을 필요로 한다. 하늘은 실제가 없으면 영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령 받은 사람뿐이다.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은 자꾸 이 땅을 벗어나려고만 한다.
왜 성령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주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 성령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는 시온에서 왕이 되신다. 이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을 통일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이 나의 주님이시고,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나도 당신의 뜻대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하늘과 땅의 통일됨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과 땅의 통일됨을 그들에게 부어주신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해하게 된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 이해하게 된다. 제가 주님의 다시오심을 사모하는 이유는 하늘과 땅의 통일됨은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땅도 성령 받으면 회복된다. 땅 밟기 기도를 왜 하는가? 성령이 부어지면 땅도 다 회복된다.
주님이 재림이라는 것은 먼저 우리 속에서 증거되어야 한다. 먼저 우리가 성령을 받아서 하늘과 땅이 통일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 주님이 이것을 가르쳐 주신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는 기도의 핵심이다. 우리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비전을 잃어버리면 여호와의 기도를 받을 게 없어진다. 여호와는 우리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기도를 주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영을 부어주신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도록 복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