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2010

이스라엘 민족과 현재 기독교인의 모습

1.복음을 대적하는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당시 유대인들의 상태나 지금 기독교의 대체적인 상태는 닳은 점이 너무 많다. 20세기 기독교 전성시대, 교회당도 많고 교인도 많으며 종교적 열심도 굉장하지만, 참되고 순수한 복음의 역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 기독교 대표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가결된 내용을 보면 "20세기 기독교의 사명은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간다고 하는 것은 추상적이고 이기적이며 비현실적이다. 이제 그러한 차원을 넘어 현실 문제에 부딪쳐 문제를 해결하고, 선교는 가난한 자를 위주로 하여 약한 자, 억눌린 자를 돕고 사회를 구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핏 보편 매우 훌륭한 것 같지만 그것은 복음과 반대되는 것이요, 적그리스도 운동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기한이 차면 어차피 멸망하도록 정해져 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죄악은 더욱 관명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경건치 않은 모든 자와 함께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한사람, 한사람 마음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심어 주어 거듭나게 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마귀는 아담에게 생명과 대신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했고, 40일간 금식하시고 주리신 예수님 에게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 4:3), "하나님의 아들이 왜 그리 굶주리고 있느냐? 먼저 육신적인 문제, 경제 문제, 현실 문체를 해결하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문제,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를 사모했던 터라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에 어긋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때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영적인것 대신에 육신적인 것,

영원한 것 대신에 현실적인 것,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을 비상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며 지상에 낙원을 이루겠다고 약속할 것이다. 그때, 끝까지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과 거듭나지 못한 세상 모든 사람들은 기쁘게 그 적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적그리스도)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요한복음 5:43).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13:8)

2. 기복주의 신앙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는 신령한 복보다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예수를 믿으면 사업이 잘 된다든지, 병이 낫고 건강하며, 자녀들이 잘되고,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지 주신다고 하는 현실적 물질적인 축복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곳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축복을 사모하는 것은 우상숭배하는 이교도들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하나님도 모르고 믿지 않는데도 육신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 하며 ‥‥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망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디모데후서 3:1∼4, 4 : 3,4)라고 하셨다. 이 세상 임금은 마귀이며, 악한 자가 세상 모든 좋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다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금생에서 저희 분것을 다 받은 자들이며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 갈 것이다(시편 17:14;욥기 21:13)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집에 나셔서 자기의 것은 십자가밖에 없었다. 이 세상은 우리 주님께서 버림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곳이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사도 바울이 굻주리고 헐벗고 춥고 떨며 여러번 옥에 갇히고 매를 수없이 맞고 마지막에 목잘려 죽은 곳이 이 세상이다. 그런 이 땅에 무슨 욕심과 미련이 그렇게도 많은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다 완전하고 영원한 것, 거룩하고 신령한것을 주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거듭난 자녀들을 위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하늘에 간직해 두셨다(베드로전서 1:24). 주님께서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없느니라"고 하셨는데(요한복음 3:3), 거듭난 분명한 경험을 확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슨 육신의 복을 그렇게도 사모하는가! 이 말은 하나님께서 육신의 축복은 전혀 주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먼저 영혼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을 받으면 육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주시는 것이다(마태 6:31, 32) 어쨌든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신령하고 참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불과 몇 십년 간의 인생()이란 하나님의 영원에 비하면 없는 같으며, 세상의 즐거움과 만족이란 영원한 천국과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너무나 천하고 보잘 없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잃는다면 무엇이 유익한가! 그러나 비록 이 세상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다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 모든 사람 아니라 기독교인들까지도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적이고 육신적인 것을 더욱 귀하게 여김으로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멸시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들과 기복주의 신앙을 가진 종교인들의 상태가 약 2,000년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유대인들과 어쩌면 그렇게도 닳은 점이 많은가. 육신적인 축복을 갈망하는 나머지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주님은 마음에 영접지 않는다.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과 대신에 먹으면 죽는 선악과가 더욱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므로, 그것을 먹음으로 죽게 하는 사단의 궤휼에 속고 있는 것이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원인과 그리스도 배척의 죄와 그 대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아 그들이 기다리고 사모하던 그리스도를 배척한 로마인의 손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다. 이것은 더할 없는 죄악이요, 비극이며,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없다. 충격적인 사실이 우리에게 크나큰 교훈을 주고 있다. 나아가 수수께끼를 풀어야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셨지만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이유는 무엇인가?

ⅰ)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한복음 5:38).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린도전서 2:8)

당시 유대인들의 역사적인 배경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주요 원인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된 민족으로서, 다윗왕 당시에는 주변 이방세력을 정복하고 통일왕국을 이루었으며 솔로몬왕 시대에는 그야말로 황금시대를 이루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하는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셨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버리고 유다 시드기야와 모든 백성들이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갈대아인 노예가 되고, 솔로몬 쌓아두었던 보물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졌으며, 소수의 빈천한 농부들만이 땅에 남아 있었다(열왕기하 25:1-17).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70년간의 포로생활을 마친 , 하나님께서는 바사(페르시아) 고레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놓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주권을 갖지 못한 계속 강대국의 권세 아래 다스림을 받아야만 했다. B.C. 606 바벨론에 의해 정복된후에 메대 바사, 헬라의 지배를 받았고, 예수님 당시에는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로마의 통치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세금을 거두어 로마 가이사(황제)에게 바쳐야 했고, 로마제국이 임명한 분봉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더구나 실제 정치권력 재판권을 로마 총독이 행사했고, 예루살렘은 로마 군인들에게 짓밟히고 있었다.

ⅱ)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고대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커다란 곤욕을 당하고 있었던 까닭에, 오로지 성경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빨리 보내주실 것을 간절히 부르짓게 것이다. 그들은 바벨론 시대부터 600여년간 강대국들의 압제 하에 고통을 받았지만, 메시아만 오시면 압제자 로마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지구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해 것을 기대했다.

ⅲ) 그들의 민족적ㆍ현실적ㆍ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그리스도만 생각한 나머지 영혼구원의 그리스도는 망각했다 앞에 있는 문제들의 해결에 집착함으로 인해, 먼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간의 영혼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 하셔야 것에 대해 자세히 예언된 성경말씀을 그들은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하거나 인간의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위해 지음을 받은 영혼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심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끌어 들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육신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육신과 그들의 땅이 로마의 권세 아래 짓밟히는 이상으로 그들의 영혼이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과 영원한 나라를 마귀로 인하여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며, 또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사리시고 문둥이를 깨끗케 하시며, 소경의 눈을 열어 주시는 이적을 행하시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실 , 유대인들은 예수가 메시아라면 로마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리라 생각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들은 로마황제(가이사:시이저)에게 바치는 중한 세금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때 만일 예수님이 왕이 되실 분이었다면 "이제는 가이사에게 세금 바칠 필요 없다. 내가 로마를 정복할 것이다" 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 미온적이고 불만족스런 대답을 하심으로써 유대인들을 맥빠지게 했다.
물론 말씀 안에는 귀중한 교훈이 있다. 하나님께서 로마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육신으로는 로마의 세력에 굴복해야 것과 영으로는 하나님을 섬겨야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오천여 명에게 이적으로 떡을 만들어 먹이시자, 그들은 "나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면서 예수님을 붙잡아 억지로 임금을 삼고자 했다. 그런 이적을 행할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라면 왕으로 삼아 그를 중심으로 로마를 향해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바라는 되심을 원치 않으시고 그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다( 6:15).

예수님이 정치적인 문제에 아무런 언급도 않으시고 왕이 되시지 않으므로 유대인들은 이에 크게 실망하였고, 기대감이 마침내 미움과 분노로 바뀌어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히려 예수님을 오해하고 미워하고 핍박하게 것이다.

ⅳ)예수님은 민족의 종교적인 위선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하고 책망하심으로써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반감을 사게 되었다결국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지, 현실문제를 도외시한 예수님에 대한 오해, 그리고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기득권 세력들의 반감 등이 복잡하게 얽히어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의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불법재판을 강행하게 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것이다.

그리스도 배척의 죄와 대가
총독 빌라도는 이스라엘의 정치 치안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수 수많은 군중이 이끌고 다니는 예수에 대해 여러 각도로 뒷조사를 했을 것은 자명하다. 이미 충분한 조사를 통해 빌라도는 예수님이 도덕적으로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죽여 달라" 로마 총독에게 예수님을 끌고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그에게는 죄가 없다" 놓아주려고 여러 모로 노력한 것을 있다.

유대인의 가장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무리의 소원대로 유대인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으므로,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기 위해 가장 많은 살인 강도 바라바와 예수님 사람 중에 사람을 놓아 주겠으니 누구를 놓아주길 원하느냐고 묻게 된다. 빌라도의 생각에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죄수요 살인자인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그러면 예수님을 석방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빌라도의 생각은 빗나갔다.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함성을 질렀다. 빌라도는 유대 민족의 종교적 감정을 거스렸다가는 민란이 일어나고 또한 총독으로서의 자기 입장만 난처하게 되겠으므로, 유대인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죄없는)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피값을)당하라" 했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기를

"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하므로,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 주고 말았다.( 27:15- 26).

결과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는 그들이 지내온 역사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리스도를 죽인 피값은 과연 그들과 그들 자손에게 2000년간 돌아간 것이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태 12:36) 하셨다. 그리스도를 배척한 죄와 그로 인해 그들이 받아야 대가가 어떠한 것임을 알았더라면, 그러한 경솔하고 망령된 말을 그렇게 담대히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약 율법에 무죄한 자를 죽이면 죽인 자의 피가 아니면 갚을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무죄한 그리스도를 죽인 유대인들의 파가 2000 동안 흘려져야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사형장으로 끌려가실 뒤따르던 많은 무리중에 예수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무리가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누가 23:28-31) 하셨다.

유대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을 크게 수치스럼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환난 당하는 그때에 자기 자식들이 그들 앞에서 비참히 죽는 모습을 보아야 하므로 오히려 자식 없는 자가 복되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고, 차라리 자기들과 자기 자녀들을 인하여 울어야만 했던 것이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신 말씀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남겨진 수수께끼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 푸른 나무 같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도 그같이 형벌을 받았다면, 마른 나무 같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했을 때는 얼마나 형벌을 받겠느냐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자 아브라함 자손으로서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바치며,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했으나 결국 그리스도를 배척해서 엄청난 형벌을 치뤘다. 그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열심히 교회 다니며 종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마음에 실제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듭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배척한 이스라엘이 2000년간 환난과 죽임을 당한 것은,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듭나지 않은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 받을 것을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이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이스라엘의 환란 - 구약에 예언된 두 그리스도의 상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능력으로 인도해 내시고 민족 가운데 나타내 주신 수많이 이적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철저했다. 그들은 또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그들에게 보내주시리라 약속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약속대로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배척하며 로마군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처형시켜 죽였다. 그랬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민족이 크게 오해했기 때문이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그리스도) 가지 상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위해 죽는 어린양처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 죄를 대속해 주실 고난 받으실 그리스도 사이고, 다른 하나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세상을 정복하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실 영광의 그리스도 상이다.

고난 받으실 그리스도 (초림의 모습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양이나 염소는 속죄물로 죽으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관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4,5).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700 전에 예언된 고난 받으실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들이 받아야 형벌과 심판을 그리스도 께서 대신 받으실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초림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영광의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 (재림의 모습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여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거룩한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소유가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편 2:1-9).
  
이는 B.C. 1000 경에 예언된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끝까지 복음을 믿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획을 대적하는 세상을 정복하시고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세력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건설했던 위대한 다윗왕과 영광스러운 솔로몬왕은 모두 영광의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이왕에는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들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이사야 52:14,15).

고난 받으실 초림 그리스도와 영광 받으실 재림 그리스도 사이의 시차는 2000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당대의 유대인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하였지만, 구약시대에 그리스도를 예언한 선지자들은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을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했었다.(베드로전서 1:11)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이스라엘의 환란 - 이스라엘의 형벌에 대한 예언과 성취

성경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한 1:11)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배척한 죄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에서 쫓겨나 2000년간 세계에 흩어져, 가는 곳마다 비참하게 박해와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형벌에 대한 예언과 성취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하나님께 어떤 형벌을 받게 것이지,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1500 전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

"너희가....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레위기 26:27,28,3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형벌 하실 그들을 세계에 분산시킬 것과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항상 칼이 따름 같이 생명의 위협을 당할 ,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 황무지가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끝에서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열국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발바닥을 곳도 얻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마음으로 떨고 눈으로 쇠하고 정신으로 산란케 하시리니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생명을 확신할 없을 것이라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신명기 28:64-7)

예수님께서도 돌아가시기 이스라엘이 망할 것에 대해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알라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날에는 아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환난과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가복음 21:20-24)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신 37 후인 A.D. 70, 예수님 사후 이스라엘이 로마에 대항하여 번의 독립전쟁을 것이 원인이 되어, 로마의 타이터스 대장은 시리아 군과 연합한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침공했다. 구약에 기록된 형벌의 날이 그들에게 이루어지고 것이다.

 아이 자를 칼로 가르고 젖먹이를 어미 품에서 빼앗아 땅에 메어쳐 죽이는 잔인한 학살이 있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로마의 포로가 되어 노예로 팔려 세계에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성지 예루살렘은 때부터 이방인에게 짓밟히게 것이다.
 
                                                A.D. 70년의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예수님 사후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에 걸쳐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일으켰었다. 당시 로마는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데다가, 이스라엘 같은 변방의 반란으로 강력한 진압이 필요한 때였다. 더구나 유대 저항군과 전투에서 생존을 약속받고 투항했던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에게 떼죽음을 당한 일도 있고해서, 로마의 분노가 극심해진 상태였다. 결국 당시 로마 황제인 베스파시안의 아들 타이터스 장군이 이끄는 8만명의 병력이 이스라엘의 구심점인 예루살렘을 박살내고자 한 것이다.

로마군은 예루살렘성을 에워싸고 압박하며 고사 작전을 폈다. 물줄기를 끊고, 식량보급로를 차단했다. 당시 로마군의 성벽을 공략하는 기술은 역사상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 또한 고지대에 위치한 데다가 워낙 견고한 터라, 전쟁에 승산이 있다고 여겼었는지 유대인들은 로마군의 투항 권유를 무시한 채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였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로마군은 예루살렘성 주변으로 토성을 쌓기 시작했다.

"날이 이를지라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너와 가운데 있는 자식 들을 땅에 메어치며 하나도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누가 19:43,44)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누가23:28 - 30)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되리라"(마태 23:38).

구약에 예언된 말씀에 더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바로 '토성'이다. 고지대의 비탈진 성벽 주변에 어떻게 토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당시 전쟁을 직접 목격한 요세푸스가 「유대전쟁사」에 그 해답을 서술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유대 제사장 신분으로서 이전에 독립 전쟁을 지휘하다 생포되었던 저항군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토성은 나무를 엮어 칸들을 만들고, 그 안에 톨과 흙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쌓았다. 그러자니 엄청난 양의 나무가 필요했다. 그 목재를 충당키 위해 예루살렘 주변 사방18km(90퍼얼롱) 내 전 지역의 나무들을 완전히 벌목하여 황폐화시켰다. 우리 서울의 경우 시청을 중심한 반경 18km 내의 면적이면 서울이 거의 다 포함된다. 예루살렘의 규모를 생각하면 엄청난 면적이 초토화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량보급원이 도리 것을 염려해 유실수 역시 모두 베어 없앴다. 그 이전에는 나무들과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 예루살렘의 자태가 나무가 다 베어져 버린 벌거숭이의 황량한 벌판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요세푸스는 적고 있다.

후에 로마군이 점령하고 확인한 것이지만, 오랜 기간의 고사 작전으로 성 내에서는 먹을 것이 바닥나고 굶주림이 극에 달해 자식을 삶아 먹는 일이 벌어졌다.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가 그 가족조차도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은 사건(신명기 28:56, 57)들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같은 유대인인 요세푸스 조차도 그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결국 성벽은 무너졌고, 로마군은 무자비한 살상을 서슴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엄마의 품에서 빼앗아 부모가 보는 데서 내동댕이쳐 죽이고, 그 부모마저 죽여 버렸다. 임신한 여인의 배를 칼로 갈라 태아와 임부를 죽였고, 여느 전쟁과는 달리 노약자라고 해서 살려 주는 일도 없었다. 이 전쟁으로 110만 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했다. 기록에 의하면, 유월절을 지키고자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였을 때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다고 한다.

로마군은 성벽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질렀다. 성전이 불에 탐으로 인해 금으로 입혔던 것이 녹아 내려 벽과 바닥에 스며들었고, 군인들이 그 금을 긁어내고자 말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 파괴가 자행되었다. 성읍이 황폐케되고, 성소가 황량케 되리란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로마군은 죽이지 않은 10만여 명의 유대인은 포로로 잡아갔고, 예루살렘은 졸지에 죽은 성이 되었다.

로마에는 타이터스가 세운 개선문이 있는데, 그 개선문 내부에는 예루살렘 점령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금촛대를 로마로 이성하고 있는 광경이 새겨져 있다

그 후 예루살렘을 제외한 이스라엘 전국에서 독립 전쟁이 다시 발발하자, A.D.135년 하드리안 황제는 아예 이스라엘 전역 985개 성읍을 초토화시키고 58만 명을 학살한 후 생존자는 세계 전역에 이산시켜 살게 했다. 이스라엘 전역을 다 불태워 볼모지로 만들고, 국민 또한 그 땅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래도 이전에는 주권만 없었지 영토나 국민은 있었는데,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가 하나도 남지 않고 이스라엘 국가는 비참하게 망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 땅에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신명기 29:23) 그대로 사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시에 110 , 이스라엘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58 명이 죽임을 당하면서 남은 자들이 세계 만방에 흩어짐을 당할 시작된 유대 민족의 수난사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스라엘 민족, 유대인을 핍박하고 죽인 주된 구실은 그들이 망국민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중세 세기(A.D. 1096-1291) 걸쳐 있었던 「십자군 전쟁」의 슬로건은 성지 예루살렘 탈환이었다. 물론 이면에는 무역로 개척이라는 경제적인 목적이 따로 있었지만, 어쨌든 십자군이 지나가는 지역의 유대인은 살아 남지 못했다. 카톨릭 교도들인 십자군은 유대인을 "예수를 죽인 악마의 자식들"이라며 무참히 학살한 것이다.

1215 「라테란 회의」에서는 유대인에게 황색 '다윗의 ' 달도록 공포했다. 인권과 생명을 보장받을 없는 죄수의 표를 공식적으로 셈이었다. 1243년에는 베를린 근처의 도시 밸리의 유대인이 전원 불에 타서 죽임을 당했다. 1298년에는 뢰팅겐시 거주의 유대인 전부가 화형에 처해졌으며, 같은 프랑코니아 바바라에서는 10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1348년부터 1350년까지 흑사병(페스트)이 유럽을 휩쓸었다. 그때 유대인 역시 흑사병의 동일한 희생자였다. 그런데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넣어 그렇게 된 것이라는 혐의를 씌워 엄청난 수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경제적인 터전을 잡고 안주할만 하다 싶으면 핍박과 국외추방이 유럽 각국에서 계속되었다. 1648-1658년 사이에 있었던 폴란드 대 러시아와의 전쟁 중엔 4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다.

 현대사를 통해 세계 만인이 가장 생생하게 보았던 처절한 수난사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이다. 그때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은 약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 수는 당시 전체 유대인의 60%에 이르는 것이었다.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이 묻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 언저리에 벌거벗은 채 줄지어 서 있으면 나치의 기관총구가 그들을 향하여 불을 뿜었다. 총에 맞아 그 구덩이로 떨어지면 군인들이 하나 하나 확인 사살을 한 후 불도저로 그 위에 흙을 덮었다.

그런가 하면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때는 매장도 안된 많은 시체들이 땅위에서 나뒹굴었다. "(너희)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 줄 자가 없을 것"(신명기 28:26)이라는 말씀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유럽 여러 곳에 유대인 집단수용소가 설치되고, 각 곳에서 실려온 이들 선민들이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만 명에 이르기까지 매일 가스실에서 죽어 나갔다. 살던 지역에서 짐승처럼 강제 이송되어 온 유대인들 가운데는 집단수용소에 도착한 즉시 질병 예방을 위해 목욕을 해야 한다면서 가스실로 보내지기도 했다. 또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지면 가스실로 끌려 갔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하루에 만 명의 유대인들이 매일 가스실에서 죽어갔다.
                                                          
시체들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연일 하늘을 덮었고 그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당시의 목격자들은 증언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그들의 고통과 환난의 일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시체 소각장의 부족으로 인해 시체들을 광장에 널려 놓고 기름을 그 위에 뿌려 화장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짐승보다 비참하고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며 죽어갔다. 자기들이 흘린 피값에 대해 언젠가는 복수 하겠다는 기록을 유대인 전투조직은 저항과정에서 남기고 있다. 바로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무죄한 대가가 조상들의 맹세(마태 27:25)대로 후손에게 응한 것을 깨달았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으로 인해 갖은 수모를 당하며 벌거벗긴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신 것을 기억했을까?

더구나 "여호와 께서 너희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신명기 28:37)이라는 말씀과 "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생명을 확신할 없을 것이라"(신명기 28:66) 예언은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그들은 자식들을 키우며 특히 신명기를 많이 암송 시켰으니 뭔가 알았어야 하지 않을까?

벌거벗긴 후 머리를 삭발하고, 신체에 부착된 것은 물로 금니까지 다 뽑았다. 여인들로부터 삭발해 낸 머리털은 잠수함 방수제로 사용되었다. 가스실로부터 나온 시체 기름을 짜서 비누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수만은 생명이 생체실험의 도구로 쓰였다. 마취도 하지 않은채 온갖 잔학한 생체실험이 자행되었다. 또한 사람이 몇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죽는지, 시체를 얼렸을 때 어떻게 죽는지, 병균과 화학약품을 몸에 주입한 후 어떻게 죽는지 등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실험방법이 동원되었다. 4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그렇게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을 다 자행했다. 그러한 유대인의 희생이 독일의 의학 수준을 크게 높인 계기가 되었고 인류는 그 혜택을 입고 있다니,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학살 기념관"에는 학살당한 600만 명 중 200만 명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국 워싱턴D.C. 중심부에는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나게 큰 학살기념관이 있는데, 유대인들은 당시에 찍은 학살장면의 수많은 사진과 유품을 전시해 놓고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전시해 보이고 있다. 유럽 곳곳에 있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와 가스실, 시체를 소각하던 소각실이 유대인들에 의해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과연 그들은 흩어진 열국에서 가는 곳마다 천대와 멸시를 받고 안식할 곳을 얻지 못했으며, 게토에 격리 수용되거나 추방당했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만 했으며 자기 가족과 친구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아침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죽지않고 무사히 보낼꼬, 저녁에는 배고프고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이 저주스런 밤...  빨리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환난사를 읽어 보면 말씀이 그들이 참상을 너무나 표현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없다.

"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신명기 28:67).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사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주님께서는 이에대해,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그렇게 것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영원히 망하거나 예루살렘이 끝까지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일은 있을 없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배척한 복음이 이방인,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는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말하며, 어느날 이방인의 때가 차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과연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망했고 세계 가는 곳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그들이 생명처럼 사랑하던 거룩한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성지 예루살렘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로마, 사라센, 터키, 영국, 아랍 등에게 점령당하는 수모를 격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1948 5 14 이스라엘은 기적적으로 독립했고, 1967 6 7 3 중동전쟁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손에 돌아갔다. 그리고 세계에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이 땅에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2000년간의 환난의 시대가 지나가고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대가 것이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