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아 즉 그들이 기다리고 사모하던 그리스도를 배척한 로마인의 손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다. 이것은 더할 수 없는 큰 죄악이요, 비극이며,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충격적인 사실이 우리에게 크나큰 교훈을 주고 있다. 더 나아가 그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셨지만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이유는 무엇인가?
ⅰ)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한복음 5:38).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린도전서 2:8)
당시 유대인들의 역사적인 배경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된 민족으로서, 다윗왕 당시에는 주변 이방세력을 정복하고 통일왕국을 이루었으며 솔로몬왕 시대에는 그야말로 황금시대를 이루었었다. 그러나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하는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셨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버리고 유다 왕 시드기야와 모든 백성들이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갈대아인 노예가 되고, 솔로몬 때 쌓아두었던 보물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졌으며, 소수의 빈천한 농부들만이 그 땅에 남아 있었다(열왕기하 25:1-17).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70년간의 포로생활을 마친 후, 하나님께서는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놓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주권을 갖지 못한 채 계속 강대국의 권세 아래 다스림을 받아야만 했다. B.C. 606년 바벨론에 의해 정복된후에 메대 바사, 헬라의 지배를 받았고, 예수님 당시에는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로마의 통치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세금을 거두어 로마 가이사(황제)에게 바쳐야 했고, 로마제국이 임명한 분봉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더구나 실제 정치권력 및 재판권을 로마 총독이 행사했고, 예루살렘은 로마 군인들에게 짓밟히고 있었다.
ⅱ)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고대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커다란 곤욕을 당하고 있었던 까닭에, 오로지 성경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빨리 보내주실 것을 간절히 부르짓게 된 것이다. 그들은 바벨론 시대부터 600여년간 강대국들의 압제 하에 고통을 받았지만, 메시아만 오시면 압제자 로마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온 지구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해 줄 것을 기대했다.
ⅲ) 그들의 민족적ㆍ현실적ㆍ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그리스도만 생각한 나머지 영혼구원의 그리스도는 망각했다. 눈 앞에 있는 문제들의 해결에 집착함으로 인해, 먼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간의 영혼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 하셔야 할 것에 대해 자세히 예언된 성경말씀을 그들은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하거나 인간의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위해 지음을 받은 영혼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심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끌어 들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육신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육신과 그들의 땅이 로마의 권세 아래 짓밟히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영혼이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과 영원한 나라를 마귀로 인하여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며, 또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사리시고 문둥이를 깨끗케 하시며, 소경의 눈을 열어 주시는 등 이적을 행하시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실 때, 유대인들은 예수가 메시아라면 로마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리라 생각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들은 로마황제(가이사:시이저)에게 바치는 중한 세금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때 만일 예수님이 왕이 되실 분이었다면 "이제는 가이사에게 세금 바칠 필요 없다. 내가 로마를 정복할 것이다" 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는 미온적이고 불만족스런 대답을 하심으로써 유대인들을 맥빠지게 했다.
물론 그 말씀 안에는 귀중한 교훈이 있다. 하나님께서 로마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육신으로는 로마의 세력에 굴복해야 할 것과 영으로는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오천여 명에게 이적으로 떡을 만들어 먹이시자, 그들은 "나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면서 예수님을 붙잡아 억지로 임금을 삼고자 했다. 그런 큰 이적을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라면 왕으로 삼아 그를 중심으로 로마를 향해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바라는 그 왕 되심을 원치 않으시고 그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다(요 6:15).
예수님이 정치적인 문제에 아무런 언급도 않으시고 왕이 되시지 않으므로 유대인들은 이에 크게 실망하였고, 그 기대감이 마침내 미움과 분노로 바뀌어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히려 예수님을 오해하고 미워하고 핍박하게 된 것이다.
ⅳ)예수님은 그 민족의 종교적인 위선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하고 책망하심으로써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큰 반감을 사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지, 현실문제를 도외시한 예수님에 대한 오해, 그리고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기득권 세력들의 반감 등이 복잡하게 얽히어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의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불법재판을 강행하게 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 배척의 죄와 그 대가
총독 빌라도는 이스라엘의 정치 및 치안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수 수많은 군중이 이끌고 다니는 예수에 대해 여러 각도로 뒷조사를 했을 것은 자명하다. 이미 충분한 조사를 통해 빌라도는 예수님이 도덕적으로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죽여 달라"며 로마 총독에게 예수님을 끌고 온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그에게는 죄가 없다"며 놓아주려고 여러 모로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무리의 소원대로 유대인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으므로,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기 위해 가장 죄 많은 살인 강도 바라바와 예수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놓아 주겠으니 누구를 놓아주길 원하느냐고 묻게 된다. 빌라도의 생각에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죄수요 살인자인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그러면 예수님을 석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빌라도의 생각은 빗나갔다.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함성을 질렀다. 빌라도는 유대 민족의 종교적 감정을 거스렸다가는 민란이 일어나고 또한 총독으로서의 자기 입장만 난처하게 되겠으므로, 유대인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죄없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피값을)당하라"고 했다. 이에 유대인들이 다 대답하기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하므로,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 주고 말았다.(마 27:15- 26).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는 그 후 그들이 지내온 역사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리스도를 죽인 피값은 과연 그들과 그들 자손에게 2000년간 돌아간 것이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태 12:36) 하셨다. 그리스도를 배척한 죄와 그로 인해 그들이 받아야 할 대가가 어떠한 것임을 알았더라면, 그러한 경솔하고 망령된 말을 그렇게 담대히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약 율법에 무죄한 자를 죽이면 죽인 자의 피가 아니면 갚을 수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무죄한 그리스도를 죽인 유대인들의 파가 약 2000년 동안 흘려져야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즉 사형장으로 끌려가실 때 뒤따르던 많은 무리중에 예수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누가 23:28-31) 하셨다.
유대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을 크게 수치스럼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환난 당하는 그때에 자기 자식들이 그들 앞에서 비참히 죽는 모습을 보아야 하므로 오히려 자식 없는 자가 복되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고, 차라리 자기들과 자기 자녀들을 인하여 울어야만 했던 것이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신 말씀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남겨진 수수께끼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 푸른 나무 같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도 그같이 형벌을 받았다면, 마른 나무 같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했을 때는 얼마나 큰 형벌을 받겠느냐는 말씀이다.
옛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자 아브라함 자손으로서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바치며,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했으나 결국 그리스도를 배척해서 엄청난 형벌을 치뤘다. 그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열심히 교회 다니며 종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마음에 실제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듭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배척한 이스라엘이 2000년간 환난과 죽임을 당한 것은,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듭나지 않은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 받을 것을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이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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