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한 1:11)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배척한 죄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에서 쫓겨나 2000년간 전 세계에 흩어져, 가는 곳마다 비참하게 박해와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형벌에 대한 예언과 성취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하나님께 어떤 형벌을 받게 될 것이지,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1500년 전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
"너희가....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레위기 26:27,28,3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형벌 하실 때 그들을 전 세계에 분산시킬 것과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항상 칼이 따름 같이 생명의 위협을 당할 것,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 -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 이 황무지가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그 열국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을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마음으로 떨고 눈으로 쇠하고 정신으로 산란케 하시리니 네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것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신명기 28:64-7)
예수님께서도 돌아가시기 전 이스라엘이 망할 것에 대해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가복음 21:20-24)
예수님께서 이 예언을 하신 37년 후인 A.D. 70년, 예수님 사후 이스라엘이 로마에 대항하여 몇 번의 독립전쟁을 한 것이 원인이 되어, 로마의 타이터스 대장은 시리아 군과 연합한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침공했다. 구약에 기록된 형벌의 날이 그들에게 이루어지고 만 것이다.
아이 밴 자를 칼로 가르고 젖먹이를 어미 품에서 빼앗아 땅에 메어쳐 죽이는 잔인한 학살이 있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로마의 포로가 되어 노예로 팔려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성지 예루살렘은 그 때부터 이방인에게 짓밟히게 된 것이다.
A.D. 70년의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예수님 사후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에 걸쳐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일으켰었다. 당시 로마는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데다가, 이스라엘 같은 변방의 반란으로 강력한 진압이 필요한 때였다. 더구나 유대 저항군과 전투에서 생존을 약속받고 투항했던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에게 떼죽음을 당한 일도 있고해서, 로마의 분노가 극심해진 상태였다. 결국 당시 로마 황제인 베스파시안의 아들 타이터스 장군이 이끄는 8만명의 병력이 이스라엘의 구심점인 예루살렘을 박살내고자 한 것이다.
로마군은 예루살렘성을 에워싸고 압박하며 고사 작전을 폈다. 물줄기를 끊고, 식량보급로를 차단했다. 당시 로마군의 성벽을 공략하는 기술은 역사상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 또한 고지대에 위치한 데다가 워낙 견고한 터라, 전쟁에 승산이 있다고 여겼었는지 유대인들은 로마군의 투항 권유를 무시한 채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였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로마군은 예루살렘성 주변으로 토성을 쌓기 시작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 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누가 19:43,44)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누가23:28 - 30)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태 23:38).
구약에 예언된 말씀에 더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바로 '토성'이다. 고지대의 비탈진 성벽 주변에 어떻게 토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당시 전쟁을 직접 목격한 요세푸스가 「유대전쟁사」에 그 해답을 서술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유대 제사장 신분으로서 이전에 독립 전쟁을 지휘하다 생포되었던 저항군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토성은 나무를 엮어 칸들을 만들고, 그 안에 톨과 흙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쌓았다. 그러자니 엄청난 양의 나무가 필요했다. 그 목재를 충당키 위해 예루살렘 주변 사방18km(90퍼얼롱) 내 전 지역의 나무들을 완전히 벌목하여 황폐화시켰다. 우리 서울의 경우 시청을 중심한 반경 18km 내의 면적이면 서울이 거의 다 포함된다. 예루살렘의 규모를 생각하면 엄청난 면적이 초토화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량보급원이 도리 것을 염려해 유실수 역시 모두 베어 없앴다. 그 이전에는 나무들과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 예루살렘의 자태가 나무가 다 베어져 버린 벌거숭이의 황량한 벌판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요세푸스는 적고 있다.
후에 로마군이 점령하고 확인한 것이지만, 오랜 기간의 고사 작전으로 성 내에서는 먹을 것이 바닥나고 굶주림이 극에 달해 자식을 삶아 먹는 일이 벌어졌다.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가 그 가족조차도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은 사건(신명기 28:56, 57)들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같은 유대인인 요세푸스 조차도 그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결국 성벽은 무너졌고, 로마군은 무자비한 살상을 서슴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엄마의 품에서 빼앗아 부모가 보는 데서 내동댕이쳐 죽이고, 그 부모마저 죽여 버렸다. 임신한 여인의 배를 칼로 갈라 태아와 임부를 죽였고, 여느 전쟁과는 달리 노약자라고 해서 살려 주는 일도 없었다. 이 전쟁으로 110만 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했다. 기록에 의하면, 유월절을 지키고자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였을 때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다고 한다.
로마군은 성벽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질렀다. 성전이 불에 탐으로 인해 금으로 입혔던 것이 녹아 내려 벽과 바닥에 스며들었고, 군인들이 그 금을 긁어내고자 말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 파괴가 자행되었다. 성읍이 황폐케되고, 성소가 황량케 되리란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로마군은 죽이지 않은 10만여 명의 유대인은 포로로 잡아갔고, 예루살렘은 졸지에 죽은 성이 되었다.
로마에는 타이터스가 세운 개선문이 있는데, 그 개선문 내부에는 예루살렘 점령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금촛대를 로마로 이성하고 있는 광경이 새겨져 있다.
그 후 예루살렘을 제외한 이스라엘 전국에서 독립 전쟁이 다시 발발하자, A.D.135년 하드리안 황제는 아예 이스라엘 전역 985개 성읍을 초토화시키고 58만 명을 학살한 후 생존자는 세계 전역에 이산시켜 살게 했다. 이스라엘 전역을 다 불태워 볼모지로 만들고, 국민 또한 그 땅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래도 이전에는 주권만 없었지 영토나 국민은 있었는데, 국가를 구성하는 세 요소가 하나도 남지 않고 이스라엘 국가는 비참하게 망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 온 땅에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신명기 29:23)이 그대로 사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시에 110만 명, 이스라엘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58만 명이 죽임을 당하면서 남은 자들이 세계 만방에 흩어짐을 당할 때 시작된 유대 민족의 수난사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스라엘 민족, 즉 유대인을 핍박하고 죽인 주된 구실은 그들이 망국민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중세 두 세기(A.D. 1096년-1291년)에 걸쳐 있었던 「십자군 전쟁」의 슬로건은 성지 예루살렘 탈환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무역로 개척이라는 경제적인 목적이 따로 있었지만, 어쨌든 십자군이 지나가는 지역의 유대인은 살아 남지 못했다. 카톨릭 교도들인 십자군은 유대인을 "예수를 죽인 악마의 자식들"이라며 무참히 학살한 것이다.
1215년 「라테란 회의」에서는 유대인에게 황색 '다윗의 별'을 달도록 공포했다. 인권과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죄수의 표를 공식적으로 단 셈이었다. 1243년에는 베를린 근처의 도시 밸리의 유대인이 전원 불에 타서 죽임을 당했다. 1298년에는 뢰팅겐시 거주의 유대인 전부가 화형에 처해졌으며, 같은 해 프랑코니아 바바라에서는 1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1348년부터 1350년까지 흑사병(페스트)이 유럽을 휩쓸었다. 그때 유대인 역시 흑사병의 동일한 희생자였다. 그런데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넣어 그렇게 된 것이라는 혐의를 씌워 엄청난 수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경제적인 터전을 잡고 안주할만 하다 싶으면 핍박과 국외추방이 유럽 각국에서 계속되었다. 1648년-1658년 사이에 있었던 폴란드 대 러시아와의 전쟁 중엔 4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다.
현대사를 통해 세계 만인이 가장 생생하게 보았던 처절한 수난사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이다. 그때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은 약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 수는 당시 전체 유대인의 60%에 이르는 것이었다.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이 묻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 언저리에 벌거벗은 채 줄지어 서 있으면 나치의 기관총구가 그들을 향하여 불을 뿜었다. 총에 맞아 그 구덩이로 떨어지면 군인들이 하나 하나 확인 사살을 한 후 불도저로 그 위에 흙을 덮었다.
그런가 하면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때는 매장도 안된 많은 시체들이 땅위에서 나뒹굴었다. "네(너희)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 줄 자가 없을 것"(신명기 28:26)이라는 말씀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유럽 여러 곳에 유대인 집단수용소가 설치되고, 각 곳에서 실려온 이들 선민들이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만 명에 이르기까지 매일 가스실에서 죽어 나갔다. 살던 지역에서 짐승처럼 강제 이송되어 온 유대인들 가운데는 집단수용소에 도착한 즉시 질병 예방을 위해 목욕을 해야 한다면서 가스실로 보내지기도 했다. 또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지면 가스실로 끌려 갔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하루에 만 명의 유대인들이 매일 가스실에서 죽어갔다.
시체들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연일 하늘을 덮었고 그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당시의 목격자들은 증언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그들의 고통과 환난의 일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시체 소각장의 부족으로 인해 시체들을 광장에 널려 놓고 기름을 그 위에 뿌려 화장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짐승보다 더 비참하고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며 죽어갔다. 자기들이 흘린 피값에 대해 언젠가는 복수 하겠다는 기록을 유대인 전투조직은 저항과정에서 남기고 있다. 바로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무죄한 피 및 그 대가가 조상들의 맹세(마태 27:25)대로 후손에게 응한 것을 깨달았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으로 인해 갖은 수모를 당하며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신 것을 기억했을까?
더구나 "여호와 께서 너희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신명기 28:37)이라는 말씀과 "네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것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신명기 28:66)는 예언은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그들은 자식들을 키우며 특히 신명기를 많이 암송 시켰으니 뭔가 알았어야 하지 않을까?
벌거벗긴 후 머리를 삭발하고, 신체에 부착된 것은 물로 금니까지 다 뽑았다. 여인들로부터 삭발해 낸 머리털은 잠수함 방수제로 사용되었다. 가스실로부터 나온 시체 기름을 짜서 비누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수만은 생명이 생체실험의 도구로 쓰였다. 마취도 하지 않은채 온갖 잔학한 생체실험이 자행되었다. 또한 사람이 몇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죽는지, 시체를 얼렸을 때 어떻게 죽는지, 병균과 화학약품을 몸에 주입한 후 어떻게 죽는지 등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실험방법이 동원되었다. 4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그렇게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을 다 자행했다. 그러한 유대인의 희생이 독일의 의학 수준을 크게 높인 계기가 되었고 인류는 그 혜택을 입고 있다니,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학살 기념관"에는 학살당한 600만 명 중 200만 명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국 워싱턴D.C. 중심부에는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나게 큰 학살기념관이 있는데, 유대인들은 당시에 찍은 학살장면의 수많은 사진과 유품을 전시해 놓고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전시해 보이고 있다. 유럽 곳곳에 있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와 가스실, 시체를 소각하던 소각실이 유대인들에 의해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과연 그들은 흩어진 열국에서 가는 곳마다 천대와 멸시를 받고 안식할 곳을 얻지 못했으며, 게토에 격리 수용되거나 추방당했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만 했으며 자기 가족과 친구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아침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죽지않고 무사히 보낼꼬, 저녁에는 배고프고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이 저주스런 밤... 빨리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환난사를 읽어 보면 이 말씀이 그들이 참상을 너무나 잘 표현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신명기 28:67).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사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주님께서는 이에대해,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영원히 망하거나 예루살렘이 끝까지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배척한 복음이 이방인, 곧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는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를 말하며, 어느날 이방인의 때가 차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과연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망했고 전 세계 가는 곳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그들이 생명처럼 사랑하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성지 예루살렘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로마, 사라센, 터키, 영국, 아랍 등에게 점령당하는 수모를 격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기적적으로 독립했고, 1967년 6월 7일 제 3차 중동전쟁 때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손에 돌아갔다.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이 그 땅에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약 2000년간의 긴 환난의 시대가 지나가고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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