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2009

“훈련과 활용”


에베소서117-18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한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understanding-KJV)의 눈 (eyes)도 밝혀달라고 간구한다. 스트롱 성구사전에 따르면, ‘understanding’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디아노이아(dianoia)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지성(mind)’, ‘깨달음(understanding)’,  상상력(imagination)등의 형태로 등장한다. 본문에서 실제로 바울은 초자연적인 일들을 이해하는 깨달음의 눈 혹은 상상력의 눈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가 받는 영적인 계시의 대부분은 이미지 센터(상상력)나 지성 안에 입력된다. 이곳에서 당신은 종종 영광의 환상들도 보게 될 것이다. 환상들을 보여주시고 영광에 관한 통찰력들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 속에 거룩한 아이디어와 모략, 깨달음을 넣어주시어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도 하신다.

많은 신자들이 상상력이나 생각들을 통해 받는 영적 체험들에 대해 흔쾌히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영적 통찰력들은 상상력이나 생각들을 통해 주어진다. 이러한 혼의 기관들을 성령님의 통로로 내어드리기만 한다면, 당신은 훨씬 더 풍부한 영적 환상들과 체험들을 누리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514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여기서 지각을 사용한다’(by reason of use)함은 능력을 훈련하고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지성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미암은 이미지들과 개념들로 채워 넣음으로써 영적 감각들을 훈련하고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가 당신의 훈련과 활용에 영향을 미친다. 야고보서217-18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살아가는 것과 훈련이나 적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어떤 신자들은 영적 능력을 훈련하고 활용한다는 개념에 대해 몹시 불편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음악적 재능을 훈련하고 활용한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보겠다. 한 젊은이가 예배인도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이 청년의 꿈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영적인 은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론도 배우고, 목표를 이루기까지 날마다 기도도 하고, 악기를 다루는 법도 훈련하고, 예배를 인도해볼 모든 기회들을 잘 활용하여 기름부으심에 있어서나 기교면에 있어서 탁월한 음악가와 예배인도자로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노련한 중보기도자가 되기를 소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기도에 관한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성경에 나타난 기도에 관한 주제도 연구하는 등, 부단히 거듭되는 훈련들을 필요로 한다. 중보기도에 관한 세미나에 한번 참석했다고 해서 숙련된 중보기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실제로 중보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욱더 숙련된 중보기도자로 바뀌어갈 것이다. 훌륭한 기도용사 혹은 탁월한 예배인도자가 되려면, 기도를 드려야 하겠다거나 악기를 연습해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느껴질 때까지 마냥 기다려서는 안 된다. 무수히 많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은사를 갈고 닦아야 한다. 연습해야겠다는 강한 생각이 들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다면, 당신은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름부음이 있는 복음전도자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복음을 전하면 전할수록 기름부음이 점점 더 많이 풀려나온다. 이것은 일종의 원리이다. 은사 가운데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치유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 행정의 은사도 마찬가지이다. 연습을 통해서만 완벽해질 수 있다! 더 이상 우리가 지성과 상상력을 영적으로 강화시키고 활용하는 일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일반 재능들을 훈련하는 것과 지성과 상상력을 훈련하는 것은 다를 게 없다.

당신이 셋째 하늘 체험을 하게 될 때, 당신을 인도해주실 분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당신의 지성과 상상력을 통해 영광스런 계시와 사건들을 보여주실 것이다. 우리가 혼의 기관들을 잘 연마해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게시를 보다 더 쉽게 받을 수 있다. 이제 혼의 기관들을 단련하는 일과 관련된 근거 없는 두려움일랑 떨쳐버리자. 어떤 이들은 회의적인 태도로 논쟁하려 들기도 한다.

뉴에이지의 관행을 행하는 사람들도 상상력과 지성을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면서 말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원수는 모조품 전문가이다. 원수는 인간이 어떤 기관을 통해 영적 생명과 영적 활동의 실상에 연결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근원이 무엇이냐이다. 기능에 관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체험을 위한 문으로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지성과 상상력(창의성)을 주셨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누가 이 체험을 인도하고 있는가? 누가 근원인가?


<‘그리스도인의 영적혁명중에서 패트리샤 킹>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섬세한 방법들


성경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도 말씀하시고, 열린 환상, 황홀경, , 천사의 방문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그러나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이른바 하나님의 생각들하나님의 영감들을 통해서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가려면, 우선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들은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천국체험은 반드시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루어진다. 또한 믿음으로만 천국체험을 할 수 있다.

※혼의 기능들
당신의 영(속사람)은 거듭난 순간 이미 천국의 실상에 맞닿았다. 그뿐 아니라 당신의 영은 거듭난 순간 온전히 살아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당신의 영은 당신 존재의 일부로서 주변에서 펼쳐지는 영적 생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당신은 구속받은 영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릴 수 있다.

한편 당신의 혼은 당신의 존재의 일부로서, 생각과 의지, 정서들과 열정들, 상상력과 같은 기능들의 집합체이다. 혼은 당신의 삶에서 관계의 차원들을 표현하고 경험한다. 하나님과 정서적이고 지적인 차원의 관계로 연결되기 위해 당신의 혼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실상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돈독한 관계를 이루려면, 지성과 정서, 열정과 비전, 의사소통의 영역에서 상호작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듭나는 순간 당신의 영은 이미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방식들과의 온전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당신의 혼은 이해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만 당신 안의 의식적인 부분이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성령님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혼으로 하나님의 방식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곶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의 의지는 혼의 영역에 속한다. 의지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만일 당신의 몸과 혼을 벗겨내고 오직 당신의 속사람(spirit man)만 남는다면, 당신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적인 세계를 온전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이 지닌 본성이다. 그러나 당신의 혼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위해, 또한 이 세상에서 이웃사람들과의 교제를 위해, 게시와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당신의 혼이 성령님이 주시는 정보를 받아서, 시간의 영역 안에서 비자시적인 하나님 나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영적 체험으로 안내해주는 이런 유형의 게시를 받는 일은, 당신의 혼의 영역 중 어느 부분이 담당하고 있는 걸까? 영적인 세계를 눈으로 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당신은 자연적이고 혼적인 감각을 통해 영적인 세계와 관련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 지성
당신은 지성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들을 이해하고 변론할 수 있다. 이사야1 18절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초청하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대체로 성령님은 당신의 생각을 통해 말씀하시는 방법으로 인도해주신다.

당신의 지성은 혼에 속하는 기관으로서, 천국체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지성은 현재 떠오르는 생각들을 처리하는 기능을 한다. 생각들은 무수히 많은 출처에서 기인된 것일 수 있으므로, 당신은 각각의 생각들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분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

아래 열거하는 것들은 생각의 원천들이다.
1. 당신 안에 있는 육적인 본성 이러한 생각들은 대체로 이기적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생각이 아닐 때가 많다.

2. 세상 세상의 시스템 자체가 강력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이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세상은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당신이 멋진 근육을 가진 남자라야만 받아들여질 것이다. 당신이 날씬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여자라야만 받아들여질 것이다.’ 세상의 영은 세상의 잣대에 근거하여 말을 한다. 세상의 기준은 대개 하나님의 기준과 일치하지 않는다.

3. 귀신 마귀는 당신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반되는 거짓된 생각들을 주입시키려 한다. 마귀의 음성은 대체로 정죄하고 고발하고 유혹한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는 심지어 예수님마저 유혹하려고 했다.

4. 하나님 당신의 생각이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며, 그 생각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성품에 일치한다.

이토록 중요한 혼의 기관인 지성이 사악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신의 지성은 악하고 정욕적이고 교만한 생각들의 집합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위해 거룩하게 성별된 지성, 하나님의 목적들을 전달받을 수 있는 지성이 되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서 당신은 지혜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고, 주님과 관계도 견고하게 확립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타락으로 인애 우리의 지성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온갖 악한 것들로 매워져 있었다. 우리의 지성이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통로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선 모든 경건치 못한 생각들을 깨끗이 제거해내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고과정들을 늘 주도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지성이 성령님이 쓰실만한 거룩한 그릇이 되길 원한다.

당신 안에 찾아오는 온갖 사악한 생각들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주님의 용서를 구하라. 당신의 지성 안에 어떤 생각을 받아들일지 늘 신중하게 취사선택하기 바란다. 당신이 지금 무슨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를 살피라. 예를 들어, 하루 종일 호색적인 음악을 듣는다면, 당신의 지성은 정욕적으로 오염되어 성령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은 그만큼 저해되고 말 것이다. 이는 마치 안쪽이 녹슨 수도관의 모습과도 같다. 저수지를 출발하여 나올 때만 해도 물을 맑고 깨끗했다. 그러나 녹슨 수도관을 거치는 동안 오염되었기에 수도꼭지에서는 당연히 더러운 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신의 혼도 마찬가지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는 성경의 권고를 명심해야 한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4:23).

당신의 지성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를 갖추기 위한 방법이 있다. 성경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지성을 단련시키라.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관해 깊이 생각하고 숙고하라. 특별히 영감과 신선한 게시를 내려주시도록 성령님을 초청하라. 이런 과정을 통해 당신의 지성은 새로워질 것이며, 성경말씀이 지닌 권세를 보다 더 잘 받아 들이는 지성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로써 마침내 당신의 혼은 성령님이 주시는 영감있는 레마의 메시지를 받을 만한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보다 민감하게 복종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성령님께 질문을 던지고 난 다음 성령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특히 질문들과 대답들을 신앙일지 형식으로 기록해갈 때 더욱 효과적이다. 당신이 기록한 대답들이 성경말씀의 권위와 하나님의 성품에 비추어 과연 타당한가를 판별해보라.

거룩해진 상상력
상상력은 또 하나의 혼적 기관이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정결케 된 상상력은 엄청난 잠재가능성을 지닌다. 상상력은 현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혹은 미처 감지되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당신은 상상력을 통해 환상(vision)을 받는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이시고, 당신 역시 꿈꾸는 자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술적인 창조성과 인간의 깨달음 부문에서 상상력의 기능은 높이 평가된다. 반면에 거짓된 이미지들과 관련된 상상력은 비난을 받는다.

이런 이류로 종종 상상력은 무시나 경멸을 당하곤 한다. 우리도 무언가가 상상에서 말미암았다고 하면 이를 실제가 아닌 것이라고 믿을 때가 많다. 이러한 생각은 옳지 못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감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님이 상상력을 주신 목적은 결코 불경건하고 죄악되고 헛된 감동을 위해서가 아니다. 주님은 거룩한 목적들을 위하여 우리에게 상샹력을 주셨다. 성경은 묵시(vision-비전, 환상:역주)가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고 분명히 말씀한다(29:18). 우리에게는 환상(vision)dl 필요하다. 상상력은 환상을 받아들이는 통로이다.

상상력은 모든 형태의 영적 환상들에 관여한다. 예를 들어, 상상력은 황홀경, 열린환상, 꿈들, 어렴풋한 감동들과도 연관이 있다. 상상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결코 환상을 받을 수 없다. 환상은 당신의 상상력의 저장소 혹은 비전센터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시 재검토될 수 있다.

상상력과 관련하여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상상력이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관하여 믿음의 수단으로 사용되려면 반드시 성화되어야 한다. 상상력은 성령님이 당신의 혼에 영적인 개념들을 주입시키시는 통로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상상력을 헛되고 정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둘 때가 너무나 많다.

우리 안에 있는 정결치 못한 생각들에 대해 주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상상력도 예외가 아니다우리의 상상력을 성령님의 거룩한 도구로 성별시켜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당신의 눈이 즐겨 보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늘 주의 깊게 살펴보라. 당신이 육안으로 보는 이미지들은 당신의 혼에 그림으로 입력된다. 오늘날 텔레비전, 영과, 잡지 등을 통해 우리의 상상력은 결코 보아서는 안 될 이미지들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일단 상상력이 성화되고 주님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된 후에는, 성경말씀에 나타난 환상들에 복종시키는 훈련을 통해 당신의 상상력을 강화시켜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언서들에 나타난 환상들은 자체적으로 예언적인 권위를 지닌다. 당신의 상상력으로 성경 속의 이미지들을 그대로 따라가라. 그런 다음 당신의 혼 속에 입력된 이미지들이 말씀의 권세를 통해 풀려나오도록 허용하라.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당신은 환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연마할 수 있다.

성경속의 특별한 장면이 당신 안에 구체적으로 그려지도록 주님께 요청하라. 해당 장면이 지니는 권능과 마음의 열정을 상상하라. 당신이 그 특별한 상황 속에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려보라. 당신이라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했을지 자문해보라. 이렇게 하는 동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더 조성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매순간 성령님께서 당신을 인도하시고 통찰력을 주시도록 내어 맡기라. 자신을 성령님께 복종시키라.  

당신의 상상력이 당신을 주도해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신에게 거룩한 영감으로 채워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상상력은 단지 당신이 성령님께 복종하고 굴복함으로써 성령님이 주시는 하늘의 영감을 받아들이는 통로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적혁명중에서 패트리샤 킹>

도우시는 성령님(인도자 성령님)


당신은 성령님의 인격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당신은 일상생활 속에서 성령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있는가? 당신은 성령님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듣고 있는가? 무엇이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지, 무엇이 성령님을 아프시게 하는지 당신은 잘 알고 있는가? 성령님은 모든 이들을 이끌어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해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령님은 당신과의 관계를 갈망하신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성령님의 교통하심(communion)이라고 표현한다(고후13:13). 성령님이 셋째 하늘에 관한 모든 것을 당신에게 가르쳐주실 것이다. 진리의 테두리 안에서 영적 체험을 누리는 방법도 가르쳐주실 것이다. 성령님은 결코 당신을 잘못된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진리의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16:13).

당신이 예수님을 당신의 삶 속에 오시도록 초청하면, 당신 안에 들어오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사람인 당신의 영 안에 들어와 사시면서 당신에게 새 생명을 공급해주신다(3:3-6). 당신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기만 했다면, 지금 이 순간 성령님은 바로 당신 안에 계신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온갖 은사들이 있다.

사도행전1 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게 도리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침례[세례-baptize]’라는 말에는 흠뻑 담그다혹은 완전히 채워지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당신이 주님께 성령으로 침례[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면(이는 구원에 수반되는 결과이다), 이는 실제로 성령님의 임재를 이미 성령님이 거주하고 계신 당신의 속사람에 뿐 아니라 당신의 혼과 몸에 충만히 초청하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하여 당신은 성령님 안에 온전히 잠기게 된다. 이는 사실상 헌신의 행위 혹은 하나님을 위한 성별됨이다.

성령 충만을 위한 최초의 요청에 연이어,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다시 채워주시도록[리필해 주시도록] 성령님께 부탁할 수 있다. 에베소서518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본문에서 충만(filled)’이란  단어는 현재 진행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달리 표현하여, 충만이란 당신이 채움을 받고 또 채움 받고 계속해서 채움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시간을 내어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알아보기 바란다. 그분은 너무도 사랑스런 분이시다. 당신의 몸과 혼과 영을 성령님의 거룩한 임재로 넘치게 채워주시도록 그분을 초청하라. 그분은 당신의 초청에 반드시 응해주실 것이다! 당신이 천국체험을 갈망한다면, 당신의 혼과 몸을 성령님으로 충만케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 이제 당신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당신의 경험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느낌의 여부로 결정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당신은 성령님을 초청하였고 성령님은 당신의 초청에 응해주셨으므로, 지금 당신은 성령 충만한 상태이다. 성경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11:13).

다음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성령님의 70가지 기능들이다. 성령님은 아래와 같은 일을 수행하시려고 당신 안에 계시고 당신과 함께 계신다.
1. 성령님은 방향을 인도해주시고 지도해주신다(4:1; 1:12; 2:27, 4:1; 8:29; 8:14)
2. 성령님은 (…에게, …안에, …를 통하여) 말씀해주신다(10:20; 1:16, 2:4, 13:2, 28:25; 3:7)
3. 성령님은 마귀를 쫓아낼 능력을 주신다(12:28)
4. 성령님은 권능을 행하신다(4:14)
5. 성령님은 기름 부어주신다(4:18; 10:38)
6. 성령님은 (사람들 위에) 내리시거나 임하신다(3:16; 1:10; 2:25, 3:22, 4:18; 1:32, 33; 10:44, 11:15)
7. 성령님은 침례[세례]를 베푸시며 충만케 하신다(3:11; 1:8; 1:15, 41, 67, 3:16, 4:1; 1:33; 1:4-5, 2:4, 4:8, 31, 6:3,5, 7:55, 10:47, 11:24, 13:9,52; 고전12;13)
8. 성령님은 거듭나게 하신다(3:5,8)
9. 성령님은 예배하도록 이끌어주신다(4:23)
10. 성령님은 영의 사람 속에서 강물처럼 흘러나오신다(7:38-39)
11. 성령님은 진리로 일하신다(14:17, 15:26, 16:13)
12. 성령님은 안에 거하신다(14:17; 8:9,11; 고전3:16)
13. 성령님은 위로, 건강, 힘을 주신다(15:26; 9:31)
14.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다(15:26)
15. 성령님은 미래의 일을 보여주신다(16:13)
16. 성령님은 방언의 은사를 주신다(2;4)
17. 성령님은 예언, , 환상을 풀어놓으신다(2:17,18, 11:28)
18. 성령님은 공간이동을 하게 해 주신다(8:39)
19. 성령님은 구체적인 지도와 안내를 제공해주신다(12;36, 13:11; 10:19, 11:12, 21:11; 딤전4:1)
20. 성령님은 거룩한 분이시다(4:1)
21. 성령님은 생명의 영이시고, 생명(zoe; 그리스도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8:1,10)
22. 성령님은 우리를 성령님과 동행하도록 초청하신다(8:4-5)
23. 성령님은 탄식하시고 간구하시며 중보하신다(8:26-27)
24. 성령님은 말씀의 검(레마)이시다(6:17)
25. 성령님은 열매를 맞으신다(5;22-23; 5:9)
26.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8:26)
27. 성령님은 증거하신다(5:32, 15:28, 20:23; 8:15-16; 10:15; 요일4:13, 5:6-8)
28. 성령님은 양자의 영이시다{8:15)
29. 성령님은 육체의 일들을 제어할 힘을 주신다(8:13)
30. 성령님은 표적과 기사와 선포의 권능을 공급해주신다(1:8; 고전2;4)
31. 성령님은 사랑으로 일하신다(15:30)
32.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살피신다(고전2:10)
33. 성령님은 육신의 행실을 죽이게 하신다(8:14)
34. 성령님은 계시를 주신다(2:25; 고전2;10,12; 1:17-19, 3:5)
35.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드러내주신다(고전2:12)
36. 성령님은 깨끗케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순결케 하시고, 의롭게 하신다(15:16; 고전6:11; 살후2:13; 딤전3:16; 벧전1:2,22)
37. 성령님은 은사를 가지고 계신다(고전12:4-11; 2:4)
38. 성령님은 우리를 인치신다(고후1:22; 4;30)
39. 성령님은 자유의 영이시다(고후3:17)
40.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켜주신다(고후3:17)
41. 성령님은 아브라함의 복에 대한 약속이시다(3:14)
42. 성령님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4:6)
43.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신다(2:18)
44.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게 하신다(2:22)
45. 성령님은 우리를 능력으로 강건케 해주신다(3:16)
46. 성령님은 연합을 이루신다(4:3-4)
47. 성령님은 거룩한 포도주이시다(5:18)
48. 성령님은 공급해주신다(1:19)
49. 성령님은 사귐이시다(고후13;14; 2:1)
50. 성령님은 은혜이시다(10:29)
51. 성령님은 영광이시다(벧전4:14)
52. 성령님은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2:11, 17,29, 3:6,13,22)
53. 성령님은 신부를 부르신다(22:17)
54. 성령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잉태와 기름부으심의 능력을 지니신다(1:18,20; 1:35)
55. 성령님은 가르치신다(12:12; 14:26; 고전2:13; 요일2:27)
56. 성령님은 명령하신다(1:2)
57. 성령님은 증인(순교자)이 되게 해주신다(1:8)
58. 성령님은 담대함을 주신다(4:31)
59. 성령님은 볼 수 있게 해주신다(9:17)
60. 성령님은 일을 위임하신다(13:4)
61. 성령님은 제지하신다(16:6)
62. 성령님은 사역자들을 임명하시고 권세를 부여하신다920:28]
63. 성령님은 사랑을 부어주신다(5:5)
64. 성령님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시다(14:17, 15:13; 살전1:6)
65.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시인하신다(고전12:3)
66. 성령님은 복음을 전파하신다(살전1:5-6)
67. 성령님은 권능을 보존하신다(딤후1:14)
68. 성령님은 새롭게 하신다(3:5)
69. 성령님은 믿는 자들을 감동하신다(벧후1:21)
70. 성령님은 세상을 책망하신다(16:8).

성령님은 정말로 놀라우신 분 아닌가? 성령님은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시다. 이 세상에서 당신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실 것이다. 성령님은 당신을 하나님 나라의 권능과 기적을 행하는 능력으로 충만케 해주시는 분이다. 성령님은 이 세상에서 당신을 강한 증인으로 만들어주실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아 알고, 그분의 인도함에 순종해야 한다. 성령님께 순종하려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영적혁명중에서 패트리샤 킹>


양들은 까다로워서 잘 눕지를 않는다[이진희 목사].


필립 켈러는 목자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목자와 양>에서 양이 눕기 위해서는 최소한 4가지 조건은 충족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로, 배가 불러야 한다.
양들은 배가 부르지 않으면 자리에 눕지를 못한다. 계속 서성이게 된다. 우리도 밤에 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양들의 가장 큰 need인 배를 부르게 해주는 것, 이것이 목자가 양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주어야 할 일이다. 양들이 마음껏 꼴을 뜯어 먹은 다음에야 비로소 자리에 눕는다. 그래서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라고 고백한 것이다.

둘째로, 양들 사이에 갈등이 없어야 한다.
양들도 다툼이 대단하다고 한다. 서열 다툼, 자리다툼을 하는 것이다. 양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의 형제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동물들의 세계에는 치열한 자리다툼이 있다. 양도 예외는 아니다.

양들은 특별히 짝짓기 철이 되면 다른 동물들처럼 문자 그대로 피터지게 싸운다. 뿔로 들이박고 싸우는 소리가 1마일 밖에서도 들릴 정도라고 한다. 목자가 이때 말리기는 하지만, 뿔이 뒤엉켜 있을때는 목자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때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싸우다 죽는 양도 생긴다.

양들은 주로 먹을 것을 가지고 많이 싸운다고 한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얼마든지 풀이 많이 있는데도 더 좋은 꼴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고 한다.

양들이 얼마나 순한가? 그런데도 싸울 때가 있다. 교회에서 왜 그렇게 싸우는지 양들의 세계를 알면 고개를 끄떡거리게 될 것이다. 사실 양들이 이리나 늑대와 싸우다 다리가 부러지고 살점이 뜯겨나가고 털이 뜯기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 자기들끼리 싸우다 부상을 입고 상처를 입는다.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원수 마귀와 싸우다 부상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교회 안에서 싸우다 다 부상병이 되고 만다. 그러니 원수 마귀와 싸울 엄두도 못내는 것이다. 원수 마귀와 싸우기 전에 교인들끼리 싸우다 다 망하는 것이다.

목자는 양들 사이의 갈등을 잘 해결해주어야 한다. 갈등의 여지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그래야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참된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셋째로, 양들을 괴롭히는 것이 있으면 자리에 눕지 못한다.
양들은 날파리나 모기 같은 것들이 윙윙 대면서 달려들면 눕지를 못하는데, 그런 것들이 단순히 귀찮게 하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양들에게 날파리는 대단히 위험하다. 날파리들이 양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이유가 있다. 양의 콧속에 알을 낳기 위해서다. 날파리가 양의 콧속에 알을 낳은 것을 목자가 발견하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이것들이 알에서 깨어나 유충들이 코를 타고 양의 뇌 속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양이 미치거나 죽게 된다. 너무 괴로워 머리를 바위 같은 곳에 마구 부딪히다가 죽게 된다. 그러니까 양들은 날파리들이 주변에서 맴돌면 불안해서 자리에 눕지를못하는 것이다.

목자는 양들이 편히 누워서 쉴 수 있도록 양들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해주어야 한다. 날파리들은 쫓아내야 한다. 모기약을 뿌려서 전멸을 시켜야 한다. 날파리들이 목장에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구충제를 뿌려줘야 한다. 파리 한 마리가 양 한 마리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불안하면 자리에 눕지 못한다고 한다.
양들이 배가 부르고, 양들 사이에 갈등도 없고, 날파리들이 윙윙거리지 않아도 눕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옆에 목자가 보이지 않으면 양들은 절대 눕지 않는다. 목자가 곁에 있어야 양들이 비로소 안심을 하고 눕게 된다. 목자가 없으면 언제 어디서 이리나 늑대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양들이 언제 가장 불안해할까? 목자가 보이지 않을 때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는 항상 양들 곁에 있어야 한다. 목자만 옆에 있으면 이리나 하이에나가 멀리서 노려보고 있어도 양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꼴을 뜯어먹는다. 누워서 쉰다.

목자는 양들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만 양들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양들이 푸른 초장이나 쉴만한 물가에 있을 때도 그들 곁에 같이 있어주어야 한다. 양들이 보이는 곳에 항상 같이 있어주어야 양들이 안심을 한다.

목자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목자는 항상 양들과 함께 생활한다. 잠시도 양을 떠나지 않는다. 탕자가 돼지 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뒹굴었던 것처럼 목자는 양과 함께 뒹군다. 양을 품에 안는다. 양을 어깨에 멘다. 양을 껴안는다. 양들 사이에 눕는다. 그래서 목자들에게서는 양 냄새가 난다. 우리는 목자 하면 낭만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제대로 몸도 씻지 못한다. 광야에 물이 어디 있겠는가? 땀 냄새, 양 냄새, 양 똥 냄새로 뒤범벅이다.

이스라엘에서 깨끗한 목자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목자가 정말 좋은 목자이다. 양들이 바라는 목자는 바로 양 냄새가 나는 목자이다. 이런 목자가 있는 목장에서는 양들이 누워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