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2010

주님은 이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과학적 설명)

[이 자료는 "의학박사 트루만 데이비스(TrumanDavis)", "알렉산더 메드럴 박사(Alexander Metherell)"를 참고로 활용하여 구성한 자료 입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예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이렇게 까지 하셨구나!! 라는 것을 더 깊히 깨닫고 더욱더 실질적으로, 과학을 토대로 묶어 봤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더 알아서 깊은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1. 십자가 달리기 전의 고통
1)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기도 상황에 의한 땀방울이 핏방울 되다. 너무 열심히 기도하신 나머지 땀샘에서 땀과 피가 섞여 나옵니다. 의학적 용어로 "혈한증(血汗症, hematidrosis)"라고 합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을 파괴하는 화학성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소량의 피가 땀샘에 들어오게되는 것입니다. 이로인해 예수님의 심리와 육체는 극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14:3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는 그러한 열심의 기도 였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나, 나를 위해서 그러한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피곤에 겨워 잤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지 않으셨나요?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배우는 제자들도 피곤해서 기도하다가 자는데 예수님이라고 안 피곤 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기도로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끊임없는 대화를 하신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셨기에 겁이 나셨습니다.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며 순종 하셨습니다.그것은 나, 바로 나를 위해서입니다.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으로 증명이 됩니다.

2) 희롱과 몰매를 맞으심. "그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27:30)""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19:3)"

예수님은 나를 위해 몰매와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바로 자신이 창조한 창조물에게 말입니다.

3) 태형.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기 전에 태형을 당하셨습니다."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더라(19:1)"

(1) 채찍의 구조 : 39개의 가닥으로 되어있습니다. 병사의 기분에 따라 가닥수가 많을수도 있었습니다. 땋은가죽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쇠구슬과 뼛조각이 들어 있습니다.

1> 쇠구슬 : 살을 멍들게 했고, 찢어진 근육조직을 더욱 크게 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2> 뼛조각 : 뼛조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살을 찢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영화처럼 그러한 채찍으로 맞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칼보다도 더 무서운, 한번 스치면 사망할수 있는 그러한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2) 때린 부위 어깨부터 등 그리고 엉덩이 정강이 를 때렸습니다. 죽지 않을 만큼 때린거죠.

(3) 몸 상태 골격 근육이 찢어지고 피범벅이 되었으며 살점은 리본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태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예수님은 영화에서 본것처럼 그렇게 죽지 않으셨습니다. 더욱더 극심한 모양이셨습니다.
위의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말처럼 예수님도 정맥이 드러나고 근육과 근골과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을 것입니다.많은 사람은 태형으로 인해 죽었습니다. 그 원인은 고통도 고통이겠지만 더 확실한 것은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상태 였기 때문입니다. 피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3) 저혈량성 쇼크상태.
(1) 증세 : <1>심장이 더이상 피를 못 퍼올림. <2>혈압저하,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 <3>신장에 남아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의 역할이 중지. <4>몸에서 액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목이 아주마름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 달리기 전의 상태는 매우 유독한 상태셨습니다.
  
2. 십자가의 고통.
1) 십자가 묘사 가로들보(Cross bar)즉 패티블룸(patibulum)이라 불리우는 것과 수직기둥과는 분리되어 있습니다수직기둥은 땅에 고정되어있고 가로들보는 땅에 놓인채 예수를 못을 박았죠. 그리고 못 박은후 수직기둥에 올려져 고정되었습니다.

2) 못 묘사 약 18Cm 의 대못입니다.(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인 요한난 벤하콜의 십자가 처형당시의 못발견)

3) 박힌 부위 다수의 의견과 성경적 측면에서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손목에 못이 밖혔습니다. 당시 손이라는 언어는 손목과 구별되어있지 않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손에 못이 밖혔다면 찢어져 땅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못 밖힌 곳은 "중추신경" 이 지나는 위치입니다. 못으로 큰 신경이 파괴가 된것이죠. 고통을 예로 들자면...우리 팔굽을 때리면 아픈 느낌이 나죠? 그곳의 척골신경을 펜치로 비틀어 으깨는 느낌과 비슷 하다고 합니다.

4) 매달린 상황묘사.
1>팔이 6인치 정도 늘어남.
2>어깨 탈골.
예수님의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이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팔은 6인치정도 늘어났을 것이고, 어깨도 탈골이 되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볼수 없는 극형이었습니다.

5) 죽음 원인. 십자가는 질식해서 죽이는 사형틀입니다.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경막" 이 가슴의 상태를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고정시킵니다. 그래서 질식하게 됩니다. 십자가형은 사형수의 몸을 90도 비틀어 나무에 묶고,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팔목과 복숭아 뼈 바로 아래에 쇠못을 박아 처형하는 극형이며, 사형수에게 호흡곤란을 가져다 줍니다. 이 때, 나무망치로 쳐서 무릎뼈를 부러뜨리게 되면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게 되고, 결국 숨이 막혀 죽게 됩니다.

다음은 의학박사 트루만 데이비스(Truman Davis)의 진술입니다. 팔에 힘이 빠지고, 근육에 엄청난 경련이 일어나면서, 깊고, 가혹하고, 지근거리는 고통이 따르게 되고, 이 고통이 근육을 굳게 만듭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몸을 위로 밀어 올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몸이 팔에 매달려 있게 되면, 가슴근육이 마비되고, 늑간근육이 활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공기가 폐로 유입은 될 수 있지만, 밖으로 뿜어내 질 수 없게 됩니다. 예수는 단 한번의 짧은 숨을 쉬어보려고 몸을 위로 밀어 올리기 위한 사투를 하셨습니다.

결국, 이산화탄소가 폐와 혈류에 쌓이게 되고, 경련이 부분적으로 진정을 시킵니다. 격한 경련으로 몸을 위로 밀어 올려, 숨을 내뿜고, 생명을 주는 산소를 마시게 됩니다. 이 상태로 매달려 있다보면, 뇌와 가슴에 피가 공급되지를 않게 되고,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이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 발에 힘을 주어 몸의 윗부분으로 피가 돌게 하는 것입니다.

당국자가 급히 죽이기를 원하거나 고통을 멈추게 하려 할 때에는 사형수의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무릎아래를 곤봉(나무 망치)으로 타격하였습니다. 다리를 부러뜨리는 이유는 죄수가 몸을 위로 밀어 올려서 가슴근육의 긴장을 풀어주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급속한 숨막힘이나 관상동맥무력이 따르게 됩니다. 다른 두 죄수들의 다리는 꺾었지만, 예수의 경우, 이미 죽은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다리를 꺾이지 않았습니다.

6) 숨을 쉬려면? 숨을 쉬려면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로 발을 반복적으로 세웠다가 내렸다 해야합니다. 그러므로 근육이 이완되어 횡경막에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계속적으로 못이 밖힌 발을 움직여야 하죠. 예수님은 숨을 쉬기 위해 못이 밖힌 발을 들었다가 놨다가 했을 것입니다.못이 밖혀 발도 움직일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러했습니다.

7) 죽음. 결국 숨을 쉬기 위해 발을 움직이다가 발의 뼈가 못에 고정되고 ... 서서히 질식을 하게됩니다. 호흡량이 줄어들면 "호흡 산독증(酸毒症)"에 걸리게 됩니다. 이것은 혈액속에 이산화 탄소가 탄산으로 분해죄면서 혈액이 산성으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되고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형수들은 다수 질식으로 죽습니다. 십자가 사형 자체가 질식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극심하게 돌아 가셨습니다. 태형으로 인해 물과 피를 많이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얼마 되지 않아 돌아 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피는 죽어서 다 흘리시고 다리는 꺾이지 않으셨습니다. 완전히 죽으셨기 때문이죠.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이렇게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보이셨습니다.지금도 예수님을 희롱하고 다시 못밖으려 하는 대적자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불신자들은 연합하여 기독교를 몰아내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대화를 해보면 [교만]합니다. 자기가 신이랍니다. 자기는 이러한 증명도 불가한 미신을 믿지 않는 다고 합니다. 자기 머리만 믿는다고 합니다.그래서 이들은 인터넷상으로 많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이러한 자들은 지옥중에도 더 극심한 지옥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저는 공정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에 관한 질문
질문1] 두 강도는 죽지 않아서 다리를 꺽었는데 왜 예수는 다리를 꺽지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나요?

1] 다리를 꺽는 이유는 아까도 말했던것과 같이 질식으로 죽게 하려고 한것입니다. 그 상황에는 다가올 안식일과 유월절로인해 빨리 사형을 종결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사형이 종결된 곳이지요. 로마 군인들은 자신이 소지한 단검의 손잡이로, 또는 망치로 다리뼈 아랫부분을 꺽었습니다. 그러면 더이상 발을 들지 못하고 호흡 산독증으로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알아야 할것은 로마 군인은 사형의 전문가였습니다. 사형장에서 제비뽑기하며 노는것 보면 더 확실히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죄수가 탈출하면 군인들이 대신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실정이었기에 정밀히 시체를 검사했고 확인도 했습니다. 예수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군인은 더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다량의 피와 물(19:34)이 나옴으로 인해 확인이 되었습니다.

질문2] 죽은 사람은 피가 응고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많은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왜그렇지요?

2] 많은 피와 물이 나온 이유. 저혈량성 쇼크로 인해 심장 박동이 증가합니다. 이것이 심장 정지의 원인이지요. 증세는 이렇습니다.

1>심낭삼출 : 심장 주위에 있는 막 조직에 액체가 고임.
2>늑막삼출 : 폐 주위에 액체가 고임.
로마병정은 사형의 전문가였고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창을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리를 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 나를 위하여 이렇게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단순하게 예수님이 그저 돌아 가셨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피조물들을 위하여 창조자이신 위대하신 신께서 이렇게 죽으셨던 것입니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선 하나님보단 경제학자들을 경청해야한다 ?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왕상 19:14).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몇 사람을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이다.
축산업에 종사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도착하여 농업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의 머리로는 하나님은 축산업의 신이었고, 현지 농사를 위해선 농경민들에게 비를 내리고 풍작을 주는 바알 신과 아세라 여신을 셤겨야 한다고 믿었다. 오늘날 경제적 성공을 위해선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선 어렵고 이 세상 경제학자들의 말을 잘 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대동소이하다 하겠다.

아합과 이세벨이 이스라엘 왕과 왕비일 때 풍요의 신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노하게 만들었다. 이 때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왕 앞에 보내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거슬린 형벌로 수년 동안 우로(雨露)가 없을 것을 예언을 한다. 이는 우로를 주관하는 신이 바알과 아세라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증면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전이다.

왕과 왕후는 회개하기는 커녕 하나님의 선지자를 박해한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기시고 매일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 등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기적을 행하셨다. 바알과 아세라가 주관하는 줄 믿었던 우로가 하나님의 예언대로 내리지 않고 강물이 말라 버리는 것을 보여주셨지만 왕과 왕비는 그래도 회개하지 않는다. 세계의 top 경제학자들이 주관하던 세계 경제가 바싹 말라도 회개할 줄 모르는 현대인과 대동소이하다.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시돈 땅 사르밧에 사는 과부에게 보내시고 마지막 얼마 안 되는 가루로 떡으로 하나님의 종을 섬기게하신다. 이를 순종한 과부는 비가 올 때까지 집에 가루와 기름을 제공받게되고, 또 병들어 죽은 아들을 엘리야의 기도로 다시 사는 축복을 받는다(왕상 17:1- 24, 눅4:24- 26).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종과 백성을 축복하시고 책임지신다.

가뭄 3년 후, 엘리야를 아합 왕 앞에 보내시고(왕상 18:1, 눅 4:25, 약5:17) 아합 왕과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그리고 이스라엘백성을 갈멜 산에 모이게 한 후, 바알과 하나님 중 불로 응답하는 신을 하나님으로 하자고 백성에게 호소하신다.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제단에 바치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춤추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로서 물과 불을 주관 하는 분이 바알이 아님을 드러내신다.

그 다음 엘리야를 통하여 먼저 이스라엘백성들로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고 제단 주위에 도랑을 판 다음 나무를 쌓고 그 위에 송아지의 각을 떠서 올려 놓고 물을 통 넷으로 세 번 붓게하셨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엘리야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게하신 후,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셔서 번제물˙나무˙돌˙흙 등 모두를 태우시고 또 물까지 말리셨다. 오늘날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바로 엘리야가 드린 이런 기도이다.

이것을 본 온 백성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엎디어 부르짖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죽었다(왕상 18:1- 40; → 신 17:25, 13:13- 16). 그 후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큰 비를 내리셨다. 이쯤 되면 왕과 왕후도 회개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왕후 이세벨은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 했다.

둘째 사람은 엘리야 선지자다.
엘리야는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는데,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하다. 이유는 사역에 성공을 하여도 성공이나 사역에 초점을 마추면 안된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초점을 마추어야한다. 오늘날 목사/선교사님들도 사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사역의 성공에 초점을 마추다가 악령의 공격을 경험하게된다.   

죽음의 손길을 피해 기진맥진한 몸으로 브엘세바에서 다시 하룻 길을 광야로 걸어 가 나무 아래 앉아서 우울증에 결려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기도까지 한다.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를 꾸중하시기보다 엘리야가 잘 때에 천사를 보내시고 그를 어루만지며 `먹으라' 깨워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주신다. 그것을 먹고 마시고 40주 40야를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셨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렇게 이세벨의 독수에서 보호하시고, 낙심하고 실의에 찬 엘리야를 호렙 산에서 여호와의 위광(威光)을 보임으로 새로운 용기를 회복시키시고 바알을 철저히 멸절시키는 세 가지 사역을 주시듯이 당신의 종들을 다시 세우시고 다음 단계의 사역을 주셨다. 

즉 아람 왕 하사엘을 통하여 우상숭배하는 아합의 왕조를 진멸하고, 예후를 통하여 종교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우상들을 진멸하며 엘리사를 엘리야의 후계자로 삼아 종교 부흥을 시키는 계획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예언대로 계속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는 예언대로 계속되고 있다. 경제학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러나 승리하는 삶은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길이 곧 풍성한 삶을 사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여 한다 (요10:10).

작성: Paul Yoo 

[특별기고-종교 다원주의 비판] 하나님의 존재와 그 증거(2) 종교 다원주의 비판 (8)

나는 지난번 글에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고 믿기 원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을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자연계와 인간의 경험 안에 다양하게 제시하고 준비해 놓으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하나님 존재의 증명은 20여종에 이른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몇개는 이론이 복잡하고 난해하여, 전문학자가 아닌 일반인은 이해 하기가 어려운 것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 한 증명만은 이론이 매우 간단 하므로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증명은 <설계의 증거에 의한 증명> (design argument) 이라고 불리는데, 이 증명은 단순하므로 이 이론을 독자적으로 생각해 낸 사람은 아마 그 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고대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Socrates) 다.

나는 20여종의 증명 가운데서 <설계의 증거에 의한 증명> 하나만을 여기에 소개 하겠다. 그 것은 소크라테스가 시도한 증명이다.

소크라테스의 이론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 (Plato) 의 저서 안에도 언급되어 있으나, 소크라테스의 동 시대인 쿠세노폰 (Xenophon)이 전하는 이론을 여기에 소개한다.

소크라테스는 서론에 이은 본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맨 먼저 인간을 창조하신 이가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눈과 귀와 같은 감각 기관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눈은 보기 위해서, 귀는 듣기 위해서 입니다. 만일 인간에게 코가 없다면, 여러가지 냄새가 있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만일 맛을 알 수 있는 혀가 없다면, 음식물의 단 맛과 쓴 맛은 어떻게 맛 볼 수 있습니까?. 사람이 잘 때는 눈을 감고 있다가, 필요할 때는 뜰 수 있고, 또 피곤 해지면 문이 닫히듯이 눈꺼풀이 감기는 현상은, 사람의 활동을 미리 예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바람이 불 때, 먼지와 같은 물질이 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마치 체와 같이 속눈썹이 붙어 있으며, 또 이마의 땀이 흘러 내리지 않도록 눈 위에는 눈썹이 있어서 이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사람의 귀를 말하면,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아무리 소리가 많아도 귀에 넘쳐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식물을 물어 뜯기 위해서 날카로운 앞니가 있고, 맷돌 같이 갈기 위한 어금니가 있습니다. 음식을 몸 안으로 들여 보내기 위한 입의 위치는 (눈이 잘 볼 수 있게) 눈과 코 옆에 있으며, 배설을 하는 항문과 요도는 구토증을 일으키지 않도록 얼굴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생각하고 궁리해서 만들어져 있는 사실을 보고, ‘이것들이 우연히 생겼을까?’ 또는 ‘어떤 정신 (mind) 이 그 창조에 참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습니까?. 이와 같은 현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피조물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창조주가 존재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인간의 내적인 경험과 주위 환경에서 생기고 있는 것들을 관찰 함으로써 창조주의 흔적을 인식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이, 먼데 있는 것 보다는 각 사람에게 가장 가깝고, 또 각자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즉 인체의 각 기관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 봄으로써, 거기서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인체의 기관은 마치 어느 지성있는 존재가 머리를 써서 생각하고 설계(design) 한 것 같이 보이므로, 이 증명은 <설계의 증거에 의한 증명>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인간과 동물들의 신체만이 아니라, 자연계 안에 허다하게 존재한다.

만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관찰 한다면, 이런 현상은 자연계 (우주) 안에서 무수히 볼 수 있고, 또 그 하나 하나가 어느 목적을 위해서 궁리를 한 것 같이 보이므로, 이와 같은 합리적인 작품이 우연이나 무작위 (마구잡이, random) 로 생겼다고 보기는 대단히 어렵다.

특히 미래에 필요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 하는 것, 예를 들면,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 유방과 모유를 준비하는 것은, 생각하고 설계(design) 해서 일을 수행하며, 목적을 달성하는 지성 (intelligence) 의 참여의 증거가 더욱 분명하다.

다소 상황과 형태가 다를지 모르나, 기본 원리만은 꼭 같은 현상이 동물, 물고기, 새, 그리고 식물의 세계 안에 무수히 그리고 편만(遍滿:널리 가득참) 하게 존재 한다.
 
이 모든 경우에 공통된 기본 원리는, 미래에 필요할 것을 예상 하여 미리 설계하고 준비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경험에 비추어 말 한다면, 미래 또는 먼 미래에 필요한 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은 지성 있는 정신(intelligent mind)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대한 자연계(우주) 안에는 이런 놀라운 현상들이 편만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우주 배후에는 위대한 정신이 존재 한다고 추리하고, 이 정신을 하나님(God) 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