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2011

영적 교만을 피하십시요-조나단 에드워드

"겸손만큼 한 사람을 사단의 손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는 것은 없다."(Edwards)

우리 시대에 있어서 가장 편만하면서도 가장 으뜸으로 사악한 오류는 영적 교만이다. 이 문을 통해 사단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열심히 바라는 신자의 마음에 들어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연기는 이 통로를 통해 마음을 검게하며,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 손잡이를 이용해 사단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게끔 만든다. 이 질병이 치료되기 전에는 다른 모든 질병 역시 어떤 약으로도 치료될 수 없다.

교만은 어떤 타락보다도 구별해 내기 어렵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교만함은 자신을 너무나 높이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너무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러한지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자신을 생각하는 그 잣대가 이미 생각의 기반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 높은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교만보다 더 자가당착에 빠지고 찾아내기 힘든 것은 없다. 교만의 본질은 바로 자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으로 배재해 버린다는 것이다.

교만함은 많은 모양과 형태로 나타나 양파껍질처럼 여러 층을 마음속에 이룬다 - 한 겹을 벗기면 바로 다른 껍질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속을 가장 최선의 노력을 통해 살펴보아야 하며 모든 힘을 다해 마음의 탐사자(성령)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시26:2; 139:23; 계2:23).
자신의 마음을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잠28:26).

영적 교만은 그 자체가 비밀스럽기 때문에 직관적인 판단으로는 구별해 내기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열매와 결과를 보고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열매란 그리스도인의 겸손의 열매와 좋은 대조를 이루기에 함께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어떠한 가르침도 필요치 않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그는 충고들에 대해 항상 우습게 생각한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쉽게 충고를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을 평가하는 데 매우 주의 깊으며 자신이 얼마나 빗나가기 쉬운 존재인가를 민감하게 생각한다. 만일 자신이 빗나간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되면 그 문제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조사하며 궁구할 것이다.

교만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위선자의 불행한 망상과 죽은 경건함의 비꼬는 태도이며, 수많은 신자들의 거룩함에 반대한다. 순수한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이와 달라서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잠잠하거나, 그들을 긍휼과 안타까움으로 얘기한다. 교만한 자들은 경건한 자들에 대해 은혜 안에서 진보가 적다고 헐뜯으나, 겸손한 크리스챤은 자신 안의 죄를 바라보며 그것을 걱정한다. 그러므로 그는 남의 마음에 대해 왈가왈부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러우며 자신의 영적인 냉담함을 탓하고 남들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감사하는 줄로 여긴다.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은 타인들을 바라보면서 가장 거친 말로 그것을 표현한다. 종종 그들의 비난은 악한 자들뿐 아니라 자신들보다 월등한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을 향한다. 겸손한 자들은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비상한 발견을 하였을 때에라도 자신의 죄악 됨과 천함에 대해 압도되어 있다. 자신의 동료 크리스챤들에 대한 그들의 호소는 사랑과 겸손의 마음을 담고 있으며, 타인들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와 같은 한량없는 상냥함과 겸손으로 대한다.

영적인 교만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외면적으로 다르게 행동하게 하며, 다른 방식으로 말하게 하고 표정과 행동 속에 나타난다. 그러나 겸손한 크리스챤은 비록 자신의 세상에서의 의무에 충실할 것이지만 홀로 천국을 향해 걸어간다. 온 세상이 그를 저버린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구별을 위한 구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결코 자신을 의도적으로 구별되게 보이도록, 그렇게 나타나도록 따로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의 나중이 되려하며, 양보하고, 따르고 순종하고자 하며 죄를 제외한 모든 일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고자 한다.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의 또 다른 유형은 늘 주목받는 존재가 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존경을 받고자 자긍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남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고 존경을 표할 때, 그는 그것을 당연히 여기며 마음껏 그것을 받아들인다. 사실 그들은 그러한 처사를 기대하고 자신에게 표해야 할 마땅한 바를 행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 악한 감정을 갖는다(에3:5).

사도 바울의 탄식

우리의 생활 가운데 말할 수 없는 비애나 절망이 다가올 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부르짖음과 곤비함이 하나님을 향한 탄식으로 넘쳐나오게 되는 것입니다우리는 사람만 탄식하는 줄로 알지만 사도 바울은 온 우주도 탄식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자연계가 탄식하고 있습니다.
왜 피조물들이 탄식할까요가뭄이나 홍수또는 공해로 울부짖고 있는 그들의 탄식은 어디서 왔을까요그것은 아담의 타락에서 온 것입니다아담이 타락할 때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아담이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박토가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로인간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몸을 내어 던져 버린 인간은 끝없이 탄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모든 사람들에게는 고독으로 인한 영혼의 탄식이 있습니다거리에 나가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모두 다 고독한 사람들입니다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아도 우리의 고독을 채울수가 없습니다왜 그럴까요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고독을 채울수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또 정신적인 탄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무목적성 때문에 탄식합니다. '무엇 때문에 태어나서무엇을 하다가어디로 가는가?' 사람들마다 정신적으로 허무와 무목적성에 부딪쳐 탄식합니다.

또한 인간은 육체적으로 탄식합니다
배고픔과 질병과 죽음의 공포때문에 탄식합니다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탄식이 없을까요성경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로마서 8:23)까지도 속으로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셋째로가장 장엄한 탄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탄식입니다부모가 자식을 잘못 두면 자식때문에 탄식합니다이와같이 인간이 타락하여 저주를 받고그로 말미암아 만물까지 저주 속에서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우주적 탄식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그것은 십자가 위에 저주와 형벌을 다 짊어지시고 못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모셔들여 우리가 거듭나고 3중 구원에 들어가는 길밖에 없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는 탄식을 그치시고 우리도 탄식하지 않게 되며 우주 만물도 창조 때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갈 것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니니" (로마서8:22)

제사장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제사장으로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이란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제사는 무엇이며 제단은 어떤 곳일까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우리들은 제물과 제단이 필요한 제사가 아닌,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만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다섯가지로 그중의 하나가 감사의 제사입니다. 시편 50편23절을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지난 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헤아려 보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제사를 흠향하시고 친히 성령으로 강림하삽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찬미의 제사입니다. 성경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브리서 13:15)고 기록되어 있듯이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선을 행함과 나눠 주는 제사가 있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브리서13:16)그러므로 선을 행하고 나눠주는 제사도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또 기뻐하시는 제사는 물질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립보서 4:18) 우리들은 제물을 바치는 제사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산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12:1)우리들의 생활이 언제나 주님 중심일 때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 되며 이러한 산 제사를 드릴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제사장인 우리가 하나님께 이러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

오늘의 Daily Bread는 (http://blog.naver.com/paul_jhkim)에서 다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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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도 행복자임을 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의 내적 조건은 사랑과 평안과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리할 때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또 진정한 평안은 의로운 마음에서 나옵니다. 양심에 가책이 없는 마음에 행복이 깃들게 됩니다. 그리고 소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소망의 빛은 행복의 환희를 선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나아가 행복의 내적 조건을 얻기 위해서는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얻게 됩니다.

- 기도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행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이 오늘도 ‘나는 행복자’라고 선포하게 하시고 이 행복을 나누어주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

순복음신문 “오늘의 묵상”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