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2009

재림의 목적은 무엇인가? – [강병국 목사]


예수께서 왜 재림하시는가? 재림의 목적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 우리 인간들도 재림을 고대하지만, 재림의 순간을 가장 기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그분의 백성을 찾으려 다시 오실 재림의 순간을, 그 순간의 감격을 마음 졸이시며 기다리고 계신다.
재림의 목적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죄의 역사 종결을 위하여
예수께서는 재림하셔서 죄의 역사를 끝내실 것이다.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104:35 상단),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4:1)

1.
하나님의 몫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죄는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고통과 슬픔과 부조화를 가져왔다. 범죄한 이 지구는 하나님의 우주의 질서를 망쳐 놓았으며, 범죄한 인간은 사랑의 하나님 가슴에 너무나 큰 슬픔과 비극을 가져왔다. 아담과 하와로 인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을 때, 죄 때문에 세상이 멸망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 고통이었지만, 더 큰 고통은 사랑으로 창조한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과 헤어져 분리되어 사시게 된 것이었다. “소멸하시는 불”이신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과 함께 거할 수 없었으며, 죄를 해결하시지 않고는 지구가 안전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인간과의 사이를 분리시킨 죄를 해결하시고 헤어진 인간과 다시 함께 거하시기 위해 구속의 경륜을 세우셨다. 구속의 계획은 하나님께는 너무나 큰 모험이며 고통이었지만, 죄로 말미암아 파멸로 달려가는 지구의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자신의 몸 일부와 같은, 삼위일체 중 하나이신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제일 처음 루스벨이었던 사단이 하늘에서 추방되었을 때, 그는 이 지구를 그의 나라로 삼으려고 단호히 결심하였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고 이 세상의 통치권을 찬탈하였다. 그는, 죄의 삯은 사망이고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타락한 인류는 그의 합법적 백성이며 이 세상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경륜을 통해 죄의 값을 치르시고, 인간이 그분의 은총을 회복하고 다시 에덴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던 것이다. 또 그뿐만 아니라, 구속 받은 자들이 살 처소인 하늘 본향과 성도들이 받을 놀라운 상급까지 마련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제는 이 세상 죄의 역사를 종결시킬 길이 다 준비되었다. 죄의 종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몫을 다 하신 것이다.

2.
인간의 몫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1:40)  

죄의 역사는 빨리 끝나야 한다. 재난과 재해와 부조리와 죄의 결과로 빚어지는 비극 속에서 이 세상은 구원을 받아야 한다. 죄의 종결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몫은 다 담당하셨다. 그러나 이제 죄를 종식하기 위해 인간이 담당해야만 하는 몫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역사를 인간 각 개인이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 예수님 보혈의 공로를 받아들이고, 그 은혜로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마음과 생애에서 죄를 승리하고, 죄가 종식되도록 성령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보혈과 구원은 누구에게나 베풀어졌다. 그러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개인적으로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주님 보혈의 피를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완전한 속죄와 회복이 각 사람의 마음속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역사를 자기 속에서 온전히 이루는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귀한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하나님의 참 자녀로서, 다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겠다는 결심과 각오를 한 자들이며, 또한 주님께 대한 충성과 사랑이 충만하여 예수께서 보여 주신 모범의 길을 걸어가며,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며 승리하는 사람들이다. , 자신의 뜻과 의지를 주님께 온전히 굴복하고, 마음속에 예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소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이유 중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이유는,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미워하며 정결한 생애를 산 사람들을 다시는 죄의 유혹이 없는 세계, 다시는 속죄할 필요가 없는 하늘로 데려가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준비되고, 구속의 역사에 있어서의 인간이 자신의 몫을 다할 때, 예수께서는 재림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에 완전한 구속의 계획이 끝나게 될 것이다. 죄의 역사는 곧 종결될 것이다. 지금, 인 맞은 자의 숫자가 거의 다 차가는 신호로 세상에는 많은 재난과 재해들이 일어나고 있다. 재림이 가까웠다.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자!

2) 심판하시기 위하여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16:2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 1:7,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5:29)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님 재림의 이유가 심판을 위해서 오시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정한 기한이 다 차면 심판하러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다.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의 기간, 곧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시간과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 은혜의 시간이 마치고 하늘에서 예수님의 중보 역사가 마쳐지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구원받을 백성과 멸망 받을 사람들을 나누실 것이다. 성경에 언급된 재림 시에 있을 일들과 일어날 사건들에 대하여 차례대로 살펴보자. 재림 때에는 심판과 함께 죽음과 부활의 사건들이 일어나 희비가 교차할 것이다.

1.
죽은 의인들의 부활 - 첫째 부활 : 생명의 부활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무덤 속에 있던 의인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세상을 진동시키는 큰 주의 나팔 소리가 나고, 세상 역사에 결코 있어 보지 못한 큰 지진이 나며, 무덤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그 가운데서 깨어 살아 나오는 죽었던 의인들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기쁨 속에서 헤어졌던 그들의 친지들을 만나 찬양을 부르며 주님을 맞이하러 공중으로 끌어올려 갈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언급된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첫째 부활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20:5,6) 의인들, 곧 무덤 속에서 잠자던“복이 있고 거룩”한 자들이 영원한 생명과 불멸의 몸을 입고 깨어나는 것을 성경은 첫째 부활이라고 부른다.

죽은 의인들의 부활은 장엄한 광경을 연출할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자고 있던 수많은 의인이 마치 하룻밤을 자고 난 것처럼 깨어날 것이다. 얼마나 경이로운 일일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을 괴롭혀 온 통증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그저 만지거나 소리를 들어야만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던 소경들의 눈이 열리게 될 것이다.

2. 의인들의 승천
죽은 의인들이 부활한 후, 그들과 산 성도들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도록 끌어올려진다(살전 4:17). 죽었다가 살아난 의인들과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 성도들은 함께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갈 것이다. 부활한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일어날 때에 그들은 불멸의 몸을 입고 일어나며, 그때에 모든 살아있는 성도들도 순식간에 불멸의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예수님의 발은 그때 땅을 밟지 않을 것이며, 모든 구원받은 자들은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그 우주적인 재회는 기나긴 지구의 역사 가운데 가장 황홀하고 감동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자들을 데려갈 장소를, “내 아버지 집”, 혹은 “처소”라는 말로 묘사하셨다( 14:1~3).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처소는 천년기가 끝나기 전에는 이 땅에 내려오지 않을 새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 시에 의인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될 때, 그들의 목적지는 하늘이지, 그들이 방금 떠난 이 지구가 아니다.

3. 재림 때에 악인들이 죽임을 당함
재림의 때에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천천만만의 천사와 함께 오시는 모습을 백마를 타고 오시는 것으로 묘사한 계시록의 말씀처럼,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세상의 반역한 나라들을 심판하여 치실 것이다. 그리하여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고, 사단을 따르던 남은 악인들이 다 죽을 것이며, 살아남은 자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악인들은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 19:21)게 될 것이다. 또한, 재림의 광경과 재림 때에 죽임을 당할 악인들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6:12~16)

4. 땅이 황폐해짐
의인들이 주님과 함께 지내려고 승천하고 악인들은 그분이 나타나실 때에 죽임을 당하고 나면 지구는 한동안 거민들이 없이 지내게 된다. 성경은 그런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4:23~25) “혼돈하고 공허하며”라고 한 창세기 1 2절에 나오는 용어를 예레미야가 사용한 사실은 지구가 창조의 시작 때처럼 혼돈해질 것을 가리킨다.

5. 사단이 결박됨
예수께서 재림하여 의인을 데려가신 후, 사단은 결박되어 황폐된 지구에 갇혀 있을 것이다. 의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승천하였으며 악인들은 진멸되었다. 재림 때에 일어난 지진과 뒤집힌 땅의 표면들과 파괴로 말미암아 폐허로 변해 버린 아무도 살지 않는 지구, 이제 자기가 유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무도 없는 황폐된 지구에 갇힌 채 사단은 자신이 거둔 결과를 적나라하게 목격할 것이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20:1~3)

이제 우주는, 사단이 이 지구를 통치한 결과, 곧 하나님의 법은 공평하지 못하므로 자기가 더 자유롭고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다고 장담하며 지구를 다스린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저주와 혼란과 황폐만 남은 광경을 성경은 “무저갱”이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는 헬라어 “아뷔소스”에서 온 것으로 모든 것이 혼돈된 상태를 말한다. 바로 이때에 일어나는 사건이 이스라엘의 성소 봉사에서 있던 대속죄일의 아사셀 의식에 예표되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여호와의 염소의 속죄 피로써 성소를 정결케 한다. 이 속죄가 완전히 이루어지고 나서 아사셀, 곧 사단을 표상한 염소에 관한 의식이 시작된다. 대제사장은 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두”( 16:21)었다. 그리고 그 염소는 광야, 곧 “무인지경”( 16:22)으로 쫓겨났다. 하늘 성소에서 당신 백성의 완전한 속죄를 위하여 봉사해 오신 그분께서는 이 구속 사업과 하늘 성소의 정결을 완성하시면, 그분 백성의 죄를 악의 창시자인 사단에 전가하실 것이다. 사단은 그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범하게 한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미리 정한 사람"이 아사셀을 무인지경으로 끌고 간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거민이 없는 황폐한 지상으로 추방하시는 것이다

비밀휴거인가요? - [강병국목사]


휴거에 대한 문제는 독자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받는 질문이다. 현 기독교 안에는 비밀 휴거와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에 관한 각각 다른 의견과 해석들이 혼란스럽게 난립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재림이 가까움을 알려 주는 징조들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특별히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에 속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분은 재림 전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4:2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재림의 방법에 관한 가장 성서적인 해석은 무엇인지 질문과 답으로 연구해 보자.

질문 1.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게 될 것인가?
: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4:30) 그리스도는 어떤 특별 부류의 사람들, 곧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거하는 모든 살아있는 자들에게 나타나신다. 주께서 하늘 공간을 통하여 서서히 강림해 오실 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눈이 그를 볼 것이다. 지구 상 모든 나라의 악인들이 다 같이 고개를 들고, 온 하늘을 가득히 채우면서 오시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것이다.

질문 2.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양상에 관하여 예수님 승천 때에 두 천사는 무슨 증언을 하였는가?
: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9~11) 이 성경 절에 나오는 “저희 보는 데서”, “보이지 않게”,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쳐다보느냐?, “본 그대로”와 같은 다섯 가지 표현들은 예수님의 승천은 실제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어떠한 신비적인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주님께서 먼 하늘로 올리워 가서 사라지는 모습을 육신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천사는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주의 오심은 그분께서 승천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것이다.

질문 3. 의인들과 악인들, 두 무리 모두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그분을 보게 될 것인가?
: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1:7) 성경은 의인들과 악인들이 동시에 그분의 오심을 목격할 것을 분명히 알려 준다. 그리스도가 비밀리에 오시며, 의인들의 부재중에 남아 있는 인류에게만 주님의 오심이 알려지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은 옳지 않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비밀스러운 것이거나, 혹은 불가시적(不可視的)인 경험이 아니고 가시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며, 실제적이며, 직접적이요, 세계적인 것이 될 것이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4:27) 살아있는 악인들은 그분의 오심을 보고 통곡할 것이며, 살아있는 의인들은 주의 재림을 보고 기쁨으로 소리질러 찬양할 것이다. 또한, 죽었던 의인들은 부활하여 재림을 목격할 것이며, 그리하여 부활한 의인들은 살아있는 의인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하늘로 승천할 것이다.

질문 4. 그리스도는 조용하게 오실 것인가?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그리스도의 재림은 눈으로는 물론이요, 소리에 의해서도 알려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큰 나팔 소리”( 24:31)가 그분의 백성을 모으는 일에 수반된다. 비밀리에 오시는 일이란 없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은 능력과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16:27) 오신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 재림의 영광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묘사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백마를 타고 무수한 하늘 군대들을 거느리고 오신다고 묘사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천천만만의 천사와 함께 영광스러운 모습과 큰 소리로 오실 것이다( 19:11~16). 그런데 놀라운 광경과 소리는 죽은 자들이 깨어 무덤에서 일어날 정도로 굉장한 일일 것이다. 그 외치는 음성과 나팔 소리는 해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 다 들릴 것이다. 나팔은 조용한 악기가 아니며, 나팔은 불어서 많은 사람에게 들리게 하려고 만들어진 악기이므로 재림 시에는 천지가 진동할 만큼의 엄청난 소리가 동반될 것이다.

질문 5. 휴거는 어떤 가르침인가?
: 매우 인기 있는 가르침인 “휴거”는, 예수께서 세상의 종말이 오기 7년 전에 오셔서 선한 사람들을 비밀리에 살짝 데려가신다는 가르침이다. 이 휴거의 관념은 아무런 성서적 뒷받침이 없으며, 의인들의 신비한 휴거 이후에 7년 동안 악인들이 지상에서 계속해서 생존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가상 이야기다.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강림하셔서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실 때” 악인들은 죽임을 당한다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되지 못한 자들의 최후 운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살후 1:7~10)

그러므로 성경은 의인들이 영화롭게 되는 동시에 주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은 그분 임재의 빛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의인들이 영원불멸의 몸을 받는 그 같은 시간에 악인도 심판받는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승천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며, “비밀휴거”는 성서에 따른 진리가 아닌 하나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질문 6. 휴거설에 사용되는 주님께서 “밤중에 도적같이” 임하실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가?
: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24:42~44) 이 말씀의 의미는 사람들이 밤중에 오는 도적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갑자기 맞이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도둑처럼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비밀스럽게 우리에게 오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주의 재림은 거의 모든 사람이 기대하지 않을 때에 이루어질 것이며, 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주의 오심은 이 땅의 사람들이 가장 적게 기대하고 있을 때에 나타날 것이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때에 올 것이다.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오심을 묘사하면서 똑같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벧후 3:10)

질문 7. 휴거에서 자주 인용되는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함”의 의미는 무엇인가?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17:34) 문제의 성경 절인 누가복음 17 34절부터 37절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 문맥의 전후를 읽어 보며 연구해 보자. 먼저, 같은 장 26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그분이 오실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홍수가 나기 전에 어떤 이들은 데려감을 받았고, 어떤 이들은 버려둠을 받았다. 데려감을 받은 자들은 방주로 들어가 구원을 받았고, 남아 있는 자들(버려둠을 당한 자들)은 흉융한 물결에 의해 다 멸망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다른 예화를 가지고 설명하시었는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28~30)라는 말씀 또한 같은 의미로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롯의 때에 어떤 이들은 도시로부터 안전하게 데려감을 받았고, 어떤 이들은 버려둠을 당했다. 남아 있는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모두 불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그러므로 이 성경 절들을 해석할 때에, 그 전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예증들과의 일치성을 꼭 마음에 두어야 한다. 매 경우 의인을 악인으로부터 골라내는 일이 있고 나서 악인이 죽임을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노아와 롯의 때에 버려둠을 당한 자들이 죽음을 당했던 것처럼,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계속되는 성경 절을 읽으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를 더욱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죽음)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37)


예수께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버려둠을 당할 것인지를 물었다. 주님의 대답은 명확하게 버려둠을 당할 자들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의 시체는 독수리들이 뜯는 먹이가 될 것, 즉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 절에는 마지막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들이 갈라지는 일이 어떤 비밀스러운 휴거의 방법을 통해서 될 것이라는 암시가 전혀 없다. 먼저 비밀 휴거가 있고, 7년 후에 다시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비성서적인 두 단계 재림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재림을 위해 준비하는 일에 게으르도록 유도하므로 매우 위험스러운 가르침이다. 악인들은 예수 재림 시에 버림받아 멸망하는 것이지, 비밀 휴거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7년 환난기를 통과하면서 회개하고 구원받을 또 다른 두 번째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공중 재림 이후에 이 지상 어디에도 살아있는 사람이란 없을 것이며, 소위 “7년 대환난”이라는 것도 전혀 성서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예언적 말씀의 그릇 – [데일 파이프]


나는 주님의 임재의 우물에서 투명하고 깨끗한 그릇들을 끌어올렸다.
우물에서 계시를 담은 귀중한 그릇을 다시 조심스럽게 끌어올릴 때, 주님이 말씀하셨다.

"이 그릇들은 이 시간과 또 다른 시간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릇 중 어떤 것들은 지금 이 시간을 위한 계시를 담고 있고, 따라서 즉시 쏟아져야 한다. 다른 것들은 이후의 계절을 위해 보관된다. 내 성령은 언제 각각의 계시의 그릇에 담긴 메세지를 풀어낼 것인지를 네게 알려 줄 것이다. 어떻게 이 그릇들을 운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마라. 내가 내 전령들을 가르쳤고, 그들은 네가 그 그릇들을 지정된 장소로 운반하도록 도울 것이다."

주님의 섬광은 그 우물의 다른 쪽 편에 서 있는 어린 두 천사로 내 관심을 이끌었다. 천사들은 자신들의 발 앞에 모인 그릇들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구별하고 있었다. 그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으라고 명령하신 정해진 장소로 그릇들을 운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그릇들이 성스럽고 귀중한 것처럼 극도의 경의를 갖고 다루고 있었다. 진리의 한 방울도 땅에 떨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어떤 그릇 하나라도 쓰러지거나 부딪치지 않도록 천사들의 움직임은 완벽하고 신중했다. 각각의 그릇은 마치 우주에서 가장 귀중한 물질을 담고 있는 것처럼 경계되고 돌보아졌다. 그 천사들은 그릇들을 특별한 순서로 배치하면서 서로서로에게 이렇게 반복하여 말했다"주님의 말씀이시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주님께서 당신의 손을 내 어깨에 올려 놓으셨다.  그리고 난 후 주님께서는 그릇들을 축복하기 위해 당신의 다른 손을 그릇들을 향해 흔드셨다"이것은 내 임재의 우물로부터 나온 내 예언적 말이다"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이것은 금이나 은보다 귀하다. 이것을 위해 순교자들이 기꺼이 죽을 수 있었다. 예언자들이 이것을 듣기 위해 울부짖었고, 받기 위해 간절히 원했다. 내가 성스러운 것처럼 이것도 성스럽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생명과 거룩함이 있기 때문이고, 또한 능력과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 4:12).

"이것이 내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천사들을 보내어 그것을 지키고 돌보게 했다. 내 말을 잘못 다루며 더럽히는 자는 죽게 될 것이다. 내 말을 오용하거나 왜곡하는 자는 성스러운 분노와 멸망으로 매 맞게 될 것이다( 12:25, 23:19).

내 말은 그냥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 해도 내 말은 절대 멸하지 않을 것이다( 23:35).

"너는 반드시 내 말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그분은 경고하셨다.
"내 언약궤가 성스러운 것처럼 내 말은 성스럽다. 내 음성을 듣기 거절하고 나와의 대화를 두루마리의 활자체로 제한한 사람들은 화가 있을지어다. 내 말은 살아있고 책 안에 완전히 담길 수 없다( 21:25).

어떤 이들은 내 음성을 침묵하게 만들고 내 계시의 우물에서부터 계속 흘러나오는 것을 방해한다. 내 음성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예언자들의 말과 증거를 억누르며 파괴시켜 온 것과 같은 악의 힘이다(왕상 19:1-3, 2:20). 예언자들이 말할 때, 그들은 내 임재의 우물로부터 계시를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그들의 말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라들과 백성들에게 물을 주었다."

"내 아들아," 예수님이 간곡히 당부하셨다"절대 내 임재의 우물로부터 나온 계시의 그릇들을 잊지 말거라. 나의 지시에 따라 그릇들을 부으렴. 어떤 그릇들은 개인적인 용도이다. 나는 모든 인류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심지어 사람들 눈에 가장 하찮아 보이는 사람 한 명을 위해서까지 나의 말을 준비해 두었단다. 한 마리의 상처 입은 양의 울음소리도 내 귀에는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18:12). 또 다른 그릇들은 전체 교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전에 이미 해둔 일들, 즉 내 임재의 말을 특별한 교회들에 전하는 일을 나는 다시 계시할 것이다( 1:11). 또 다른 그릇들은 왕들과 지도자들과 나라들을 위한 것이다. 옛날 선지자들이 내 말을 풀어낸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나는 역시 내 임재의 말을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풀어 줄 것이다."

이 계시와 진리의 어떤 부분은 많은 사람들, 심지어 온 나라를 위한 것임을 성령이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셨다. 어떤 그릇들은 단 한 번만 붓도록 만들어져 있는 반면, 다른 그릇들은 여러 번 붓도록 되어 있기도 했다. 그런 그릇들은 과부의 기름병과 같아서, 계속해서 채워졌으며 사용되는 동안에는 절대 바닥나지 않게 되어 있었다(왕상 17:14).


<발체: ‘은밀한 처소중에서>

이스마엘과 이삭, 당신은 누가 될 것인가? - [밥 존스]


최근 주님께서 밥 존스에게 예언적 경험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싸움에 대한 이해를 도와줍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예언적 경험이었는데, 이스마엘과 이삭을 교훈적인 비유로 들어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라는 씨앗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정결케 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분명한 가르침이 있는 예언적 경험으로 성경의 두 인물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부르심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귀한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권고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것은 여러분 개인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러분이 내리는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처음 태어날 때 여러분은 이스마엘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거룩해지기 위한 희생을 통해서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가 결정됩니다. 이스마엘은 독립성이 강하고, 야생 나귀 같으며, 심지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비웃어 버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날 때 영은 정결해지나 혼은 여전히 이스마엘과 같이, 한 부분은 언약의 자손으로 또 다른 부분은 세상적인 것이 섞여 있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영혼 속에는 타락한 본성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같은 거룩하지 못한 것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자기 절제를 키워 가는 것은 여러분의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묶어 순종하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난 과거의 승리를 생각하며 자신을 향한 '제단' 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적과 같은 존재인 자연적 인간은 한때 기름부음을 받은 자신의 사역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자존감이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스마엘도 성령의 넘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신령한 축복의 자손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21:19)

그렇다 하더라도 이스마엘은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이 섞인 모습을 보여 주는 거룩하지 못한 영혼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본성은 에서와 마찬가지로 다투기를 좋아하고 언약의 자손과 분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로마서 8 13절에서 보듯 그러한 본성이 죽을 때까지 자신과 싸우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8:13)

예레미야 12 5절에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보행자, 즉 내면에 있는 타락한 본성과의 끊임없는 싸움에 지쳐 있다면, 밖에서 몰아치는 달리는 말과 같은 더 큰 시련을 어떻게 이겨 내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성령 안에서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새로운 악한 영과 맞서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제물로서 기꺼이 바쳐짐을 상징하는 이삭과 같이 됨으로써, 속에 있는 이스마엘의 본성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모두 신령한 축복의 자손이었지만 이삭은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림으로써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12:1). 이삭은 성령에게 자신을 내어드리고 깨지고 상한 심령의 회개를 추구하며 성령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도 조종받지 아니하고 그분께 완전히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통제하기보다 사람들을 축복하기 원하며 자신의 과거 승리에 대해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의 소망은 주님과 친밀해지는 것이고 성령에 의해 인도함 받는 일만을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삭의 본성은 주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자신에게 돌려지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하며, 과거의 승리를 기념하여 자신을 위한 제단이 세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위대하게 여기는 것은 종으로써의 삶과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삶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내면의 싸움을 치러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 싸움은 외부의 악한 세력의 공격에 대한 싸움이라기보다 자신 속에 있는 타락한 본성과의 싸움입니다. 당신의 영혼과 싸워서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당신은 육체의 행실을 죽여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안의 자아와 싸운다고 말했을 때 이 전투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전투를 치르면 여러분은 산 제물로서 기쁨이 넘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7:23~25)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성령의 가장 고귀한 목적은 당신이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동시에 섬기려고 할 때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은 단지 성령의 소멸하는 권능이 당신의 영을 정결케 하고, 여러분이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때에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 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4:30~31)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펼쳐질 정사와 권세,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격렬한 전투를 치르기 이전에 자신의 내면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만일 타락한 본성의 씨앗이 당신 안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적의 공격이 침투하는 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신령한 본성을 유업으로 받아야 하고 세상 정욕을 따르는 이 땅에 만연한 타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시련과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이 세상에 닥칠 것입니다. 신령한 본성이 여러분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시기들은 극도로 어려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육의 행실과 타락한 본성의 소욕들을 죽임으로써, 당신은 '보행자'로서의 싸움을 이기고 '달리는 말'과 같이 싸움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12:5).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0~ 22)

여러분은 이삭처럼 자신의 삶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을 즐거이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위대한 축복의 근원이며 교회의 근본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거룩함을 통해서만 주님의 임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을 높이고자 하는 자를 위한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도 이 땅에 임할 영광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의 사역에 온전히 참가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그 씨앗을 하나님을 위한 제단 위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로마서 12 1절의 말씀이 주님 오심을 예비하는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의 삶에서 실재가 되게 하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위한 순교자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순교자가 되어 당신의 삶을 날마다 복음을 위해 바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이스마엘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삶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자손인 이삭이 되겠습니까?

<'너는 나의 친구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