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2009

이스마엘과 이삭, 당신은 누가 될 것인가? - [밥 존스]


최근 주님께서 밥 존스에게 예언적 경험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싸움에 대한 이해를 도와줍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예언적 경험이었는데, 이스마엘과 이삭을 교훈적인 비유로 들어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라는 씨앗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정결케 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분명한 가르침이 있는 예언적 경험으로 성경의 두 인물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부르심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귀한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권고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것은 여러분 개인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러분이 내리는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처음 태어날 때 여러분은 이스마엘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거룩해지기 위한 희생을 통해서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가 결정됩니다. 이스마엘은 독립성이 강하고, 야생 나귀 같으며, 심지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비웃어 버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날 때 영은 정결해지나 혼은 여전히 이스마엘과 같이, 한 부분은 언약의 자손으로 또 다른 부분은 세상적인 것이 섞여 있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영혼 속에는 타락한 본성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같은 거룩하지 못한 것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자기 절제를 키워 가는 것은 여러분의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묶어 순종하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난 과거의 승리를 생각하며 자신을 향한 '제단' 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적과 같은 존재인 자연적 인간은 한때 기름부음을 받은 자신의 사역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자존감이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스마엘도 성령의 넘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신령한 축복의 자손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21:19)

그렇다 하더라도 이스마엘은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이 섞인 모습을 보여 주는 거룩하지 못한 영혼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본성은 에서와 마찬가지로 다투기를 좋아하고 언약의 자손과 분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로마서 8 13절에서 보듯 그러한 본성이 죽을 때까지 자신과 싸우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8:13)

예레미야 12 5절에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보행자, 즉 내면에 있는 타락한 본성과의 끊임없는 싸움에 지쳐 있다면, 밖에서 몰아치는 달리는 말과 같은 더 큰 시련을 어떻게 이겨 내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성령 안에서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새로운 악한 영과 맞서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제물로서 기꺼이 바쳐짐을 상징하는 이삭과 같이 됨으로써, 속에 있는 이스마엘의 본성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모두 신령한 축복의 자손이었지만 이삭은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림으로써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12:1). 이삭은 성령에게 자신을 내어드리고 깨지고 상한 심령의 회개를 추구하며 성령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도 조종받지 아니하고 그분께 완전히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통제하기보다 사람들을 축복하기 원하며 자신의 과거 승리에 대해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의 소망은 주님과 친밀해지는 것이고 성령에 의해 인도함 받는 일만을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삭의 본성은 주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자신에게 돌려지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하며, 과거의 승리를 기념하여 자신을 위한 제단이 세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위대하게 여기는 것은 종으로써의 삶과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삶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내면의 싸움을 치러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 싸움은 외부의 악한 세력의 공격에 대한 싸움이라기보다 자신 속에 있는 타락한 본성과의 싸움입니다. 당신의 영혼과 싸워서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당신은 육체의 행실을 죽여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안의 자아와 싸운다고 말했을 때 이 전투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전투를 치르면 여러분은 산 제물로서 기쁨이 넘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7:23~25)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성령의 가장 고귀한 목적은 당신이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동시에 섬기려고 할 때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은 단지 성령의 소멸하는 권능이 당신의 영을 정결케 하고, 여러분이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때에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 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4:30~31)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펼쳐질 정사와 권세,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격렬한 전투를 치르기 이전에 자신의 내면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만일 타락한 본성의 씨앗이 당신 안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적의 공격이 침투하는 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신령한 본성을 유업으로 받아야 하고 세상 정욕을 따르는 이 땅에 만연한 타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시련과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이 세상에 닥칠 것입니다. 신령한 본성이 여러분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시기들은 극도로 어려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육의 행실과 타락한 본성의 소욕들을 죽임으로써, 당신은 '보행자'로서의 싸움을 이기고 '달리는 말'과 같이 싸움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12:5).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0~ 22)

여러분은 이삭처럼 자신의 삶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을 즐거이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위대한 축복의 근원이며 교회의 근본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거룩함을 통해서만 주님의 임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을 높이고자 하는 자를 위한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도 이 땅에 임할 영광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의 사역에 온전히 참가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그 씨앗을 하나님을 위한 제단 위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로마서 12 1절의 말씀이 주님 오심을 예비하는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의 삶에서 실재가 되게 하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위한 순교자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순교자가 되어 당신의 삶을 날마다 복음을 위해 바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이스마엘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삶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자손인 이삭이 되겠습니까?

<'너는 나의 친구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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