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5/2009

열 처녀의 비유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영혼들 사이에 혼인예식이 행해지는 집입니다. 어느 마을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 신부가 신부의 집에서 부모, 친척, 친지들과 더불어 마음껏 즐기고 있는 동안에 열 처녀는 신랑의 집 현관에 있는 그들의 자리로 가 있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심벌즈와 노래 소리가 신랑 신부가 신부의 집을 떠나 신랑 집으로 온다는 것을 알릴 때 마중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방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인하는 신부 집에서 잔치를 오래 끌어서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녀들은 최후순간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자신들의 등불을 항상 켜 두었습니다.

거기에는 불을 켜서 밝히는 등불을 가진 열 처녀 중에 슬기로운 처녀 다섯 명과 어리석은 처녀 다섯 명이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용의주도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지면 기름을 넣을 수 있게 기름을 가득채운 작은 그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들의 작은 등잔에만 기름을 가득 채우는데 그쳤습니다.

시간은 한 시간 두 시간 자꾸 흘러갔습니다. 즐거운 대화, 재미있는 이야기, 농담들로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심심하거나 또는 그저 피곤하기만 해서 처녀들은 등불을 아주 가까이에 놓아둔 채 더 편하게 앉았다가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자정이 되어서 '신랑이 온다, 마중 나가라!' 하는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열 처녀는 명령을 듣고 소스라쳐 놀라며 깨서 베일과 꽃줄을 들고, 머리를 손질하고 등불들이 놓여있는 탁자로 달려갔습니다. 등불 중의 다섯은 꺼져가고 가물 가물거렸습니다. 기름이 떨어진 심지는 다 타서 점점 더 약한 빛을 내며 연기를 뿜고 있어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꺼질참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다른 등불 다섯은 용의주도한 처녀들이 잠들기 전에 기름을 더 넣어놓아서 불꽃이 더 성해졌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애원하기를.....
"아이고, 너희들 기름을 좀 다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등불은 들기만해도 꺼지겠으니 말이다. 너희 등불은 아직도 아름답게 타고 있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밖에는 밤바람이 불고 이슬도 굵게 내리고 있다. 바람과 습기에 견딜 수 있도록 든든한 불꽃을 만들려면 기름이 넉넉해야 된다. 만일 너희에게 기름을 나눠주면 우리 불꽃도 가물거리게 될 거다. 그러니까 가게로 뛰어가서 주인에게 청하고, 문을 두드리고 달라고 해라"

그래서 어리석은 처녀들은 숨을 헐떡이고, 베일을 구겨지고, 옷은 더럽히고, 꽃줄을 잃어버리고, 서로 부딪고 하면서 뛰어가서 동료들이 충고하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름을 사러간 동안에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불이 켜진 등불을 가지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 신부를 맞이하러 갔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신랑 신부는 의식을 마저 끝내려고 집으로 들아 왔습니다. 처녀들은 맨 마지막에 신부를 신방에까지 호위해 갔습니다. 신랑 신부가 들어온 다음에는 문이 닫혔고, 밖에 있는 것은 그대로 밖에 남았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의 운명이 이러합니다. 그들은 기름을 사 가지고 오니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처녀들은 쓸데없이 손에 상처를 입혀가며 애처롭게 문을 두드리고 부르짖었습니다.

"서방님, 서방님, 문을 열어주세요, 저희들도 혼인 행렬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저희들은 서방님의 혼인에 영광과 행복을 갖다 주려고 하나님의 자비를 빌기로 된 처녀들입니다."

그러나 집 윗층에서 신부가 신방으로 들어간 후에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던 신랑이 친구들이 떠나고 나서 그 처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이지 나는 너희들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너희들의 얼굴은 내 사랑하는 신부를 둘러싸고 환영하는 곳에는 없었다. 너희들은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혼인집 밖에 그대로 있어라"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이제는 쓸데없게 된 그들의 등불을 들고 옷은 구겨지고, 흰 베일은 벗겨지고, 꽃 줄은 흐트러지거나 잃어버린 채 울면서 캄캄한 밤거리를 걸어야 했답니다. (이것이 대환난에 남겨지는 처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영혼 사이에 혼례가 행해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혼례식에는 모든 신자가 초대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녀들은 더 일찍, 어떤 자녀들은 더 늦게 혼례식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행복스런 운명과 저주스런 운명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등장되는 인물들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들이 더 잘 알게될 것입니다. 신랑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신부는 약혼 시절을 아버지의 집에서 지낸 다음, 곧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보호받으며 이 가르침에 순종하고 정의에 따라 살고 나서 혼례를 위하여 신랑의 집으로 인도되어 가는 의인의 영혼입니다.

하녀 노릇을 하는 처녀들은 신부가 남긴 본보기의 덕택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함으로서 같은 영광에 이르려고 애쓰는 영혼들입니다. 신부로 말하면 그의 덕행 때문에 신랑에게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그가 성덕의 산 본보기였다는 표본을 말합니다. 슬기로운 처녀가 신부가 될 성도들이라는 말입니다.

등불을 들고....처녀들은 켜진 등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등은 매우 깨끗하고, 심지에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도록 가장 순수한 기름이 보급됩니다. 그것은 처녀들의 옷과 흰 베일과 화관을 희고, 깨끗하고 산뜻하게 보존 시켜주는 마음이 등불을 말합니다.

등에 있는 기름이 마르면 심지에서 연기와 고약한 냄새를 뿜어내듯이, 사람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나쁜 생각과 나쁜 말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인하여 자신의 희고 깨끗하고 산뜻한 영적 옷을 더럽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조심성이 없고 세심하지 못해서 여분의 기름을 보유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곧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함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이들처럼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영의 등불을 잘 관리해야 슬기로운 처녀로 인정받게 됩니다.

불은 어떤 역할? 불은 밝히는 역할입니다. 자기 마음을 밝히고, 방안을 밝히고, 어두운 세상을 는 역할이 등불입니다. 처음에 혼인 예식에 부름을 받은 열 명의 처녀들은 감사하고 기쁨으로 자기의 마음이 밝았습니다. 그래서 얼굴에는 웃음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얼굴의 웃음은 기쁨으로 나타나는 표정입니다. 그 기쁨은 자기들을 불러준 은총에 대한 감사가 마음의 밝음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얼굴에 웃음이 없는 사람은 기쁨이 없다는 표정이 밖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기쁨이 없 것은 마음을 밝게 하지 못해서 마음에 감사가 없게 된 데서 시작됩니다. 이런 것 때문에 다섯 처녀들은 부족한 기름을 사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옷은 구겨지고, 베일은 벗겨지고, 꽃 줄은 흐트러지거나 잃어버리고 울면서 캄캄한 밤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ㅡ 캄캄한 밤길, 원수들이 다스리는 대환난의 길을 걸어야 된다는 말입니다.ㅡ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그들이 준비했던 희고, 깨끗하고, 산뜻한 옷과 흰 베일과 화관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다스려야 됩니다. 이것은 억지로라도 웃는 표정을 만들고, 억지로라도 기뻐하는 모습을 하고, 억지로라도 감사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강한 의지라 합니다.

흰 옷을 입고....꿋꿋한 마음으로 의롭게 행하는 자라야 흰 옷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에게 있었던 오래전의 얼룩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영광의 광채를 받게 됩니다. 그 빛은 하늘나라에 있는 천사들과 같은 흰 빛으로 그 사람의 영을 완전히 희게 만들어 줍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항상 겸손하고 깨끗한 마음을 유지해야 옷이 깨끗해집니다. 옷이 더럽혀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겸손하지 못한데 있습니다. 교만함은 마음의 깨끗함을 흐리게 하는데 아주 쉽습니다. 마음이 흐리면 옷이 더러워집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겸손은 더러운 것을 씻는 물과도 같습니다.

옷이 깨끗해지지 않는 것은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도 자기가 교만해서 옷이 퇴색하게 됐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ㅡ '저는 마음이 깨끗하지 못해서 옷을 더럽혔습니다. 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웁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의 발아래에서 웁니다. 그러니 나의 빛 되신 아버지여, 아버지의 관대한 용서로서 자비가 넘치는 사랑으로 제 옷을 희게 해 주십시오' ㅡ하고 회개하면 아버지께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산뜻한 옷을 입고....산뜻한 옷은 마음이 산뜻함을 말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과 자신의 의지로 더욱 깨끗한 마음으로 가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누더기가 되고, 더럽혀졌던 영을 가진 죄인들은 다시는 산뜻한 옷을 가지지 못하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산뜻한 옷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멸시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부터 산뜻함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생활을 바꾸고 성질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기로 결정할 때에 산뜻함을 더하게 됩니다. 속죄로 자신을 씻고 해독하고, 불쌍한 자신의 영을 새롭게 할 때 깨끗함으로 완전해 집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녀에게 거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전폭적으로 청하려면 자신의 절대적인 의지로 간청해야 됩니다. 그리고 끝으로 죄인이었던 '나'에 대한 불만과 교만과 분노였던 더러움들이 어린 아이들처럼 아버지의 빛으로 옷을 산뜻하게 만들어야 슬기로운 처녀가 됩니다.

산뜻함은 자신의 경험으로 인하여 전에 자기와 같았던 사람들에게는 선생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보호하려고 강한 의지를 발동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더럽혀진 자기 영을 산뜻하게 하려고 의지를 발동하라는 말입니다. 두 곱절, 세 곱절, 일곱 곱절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강한 자신의 의지로 영의 옷을 산뜻하게 씻어야 슬기로운 처녀로 입정 받게 됩니다.

흰 베일을 쓰고....잠언서에 '왕의 비밀을 드려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쓰여 있습니다. 겸손은 우리가 행하는 선행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씌워놓는 흰 보자기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특전을 받은 것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 자랑하는 짓은 어리석은 인간적인 영광을 차지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도로 뺏기게 됩니다. 이것이 흰 세마포 옷을 입었다가 빼앗기는 경우 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노래를 불러야 됩니다. '내 영이 주님을 찬양합니다...주님께서 당신의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기 때문입니다' 하고 자기에게 주신 선물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내가 무엇을 선물로 받았네'하고 자기를 자랑하게 되면 아버지께서 주었던 선물을 도로 뺏으십니다. 그것은 자기를 들어내는 교만함 때문입니다.

화(면류)관을 쓰고....영을 위해 날마다 덕행의 꽃 장식을 짜야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는 흠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허술한 모습을 한 것은 자기에게 남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꽃줄을 짜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신랑이 언제 나에게 나타나서 '오너라'하고 불으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화관을 새롭게 하는데 싫증을 내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꽃은 신선함을 잃지만, 덕행의 화관은 신선함을 잃지 않습니다. 각 사람의 곁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는 날마다 짜는 그 꽃 장식들을 거두어 하늘로 가져갑니다. 그래서 새로 지극한 행복을 누릴 신부처럼 혼례를 치르는 집에 들어올 때에 그에게 그 꽃 장식들로 의자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처녀들은 불을 켠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신랑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들의 길을 밝히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등불은 믿음을 얼마나 빛나게 하며, 얼마나 다정한 친구가 됩니까? 믿음은 별 처럼 빛나는 불꽃을 주고, 그의 확신으로 안심하고 있기 때문에 웃는 불꽃이 됩니다. 그것을 담고 있는 기구까지도 빛나게 만드는 불꽃이 됩니다. 믿음에 양분을 주면 사람의 육체도 세상에서부터 더 빛나게 되고, 더 신령하게 되고, 일찍 늙는 것을 면하게 합니다.

어린양의 신부가 되려는 슬기로운 사람은 자기가 소망하는 그 목적이신 신랑을 차지하게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인도하는 대로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일체의 타락을 피하고 불안이나 공포나 가책이 없어집니다. 그러한 사람에게서 거짓말을 기억하거나 자기의 나쁜 행동을 숨기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처녀의 믿음은 기름을 보존하고 연기나지 않는 빛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자신의 강한 의지로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사랑스러운 기름, 지혜의 기름, 하나님의 기름샘에서 날마다 공급해야 됩니다. 기름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등불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꺼질 수 있고, 짙은 밤이슬로도 꺼질 수 있습니다.

밤은 어두움과 죄와 유혹의 시간이며, 누구에게나 다 오는 영의 밤입니다. 그러나 영이 자신을 믿음으로 가득 채우면 그의 불꽃은 세상의 바람으로도 육욕의 안개로도 끄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처녀에게는 어두운 밤은 없습니다. 어두운 밤에 기름을 사러가지 않고 문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결론....깨어있고, 깨어있고, 또 깨어 있어야 됩니다. '주님은 내 안에 빛을 가지고 있을 때에 오실 것이다'하고 깨어있지 않고, 미련한 처녀들처럼 갑자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문이 닫혀 질 것입니다. 처음 부를 때 재빨리 일어나는데 필요한 것을 갖추어 놓지 아니하고 잠자는 사람에게도 문이 닫쳐 질 것입니다. 최후 순간에야 믿음의 기름을 마련하려고 허둥대는 무모한 사람은 신랑이 올 때에 밖(대환난)에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항상 준비가 되어있도록 깨끗하게 자기 마음과 성품을 다스려야 됩니다. 신랑이 언제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신뢰를 가지고 깨어 있어야 됩니다. 만일 당신이 슬기로운 처녀들이 한 것과 같이 한다면 신랑을 호위하도록 불러주실 뿐만 아니라, 와스디를 대신하여 에스더를 신부로 뽑아서 간택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됩니다.

종교의 영에 대한 경고신호

[종교의 영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

1. 자기의 판단에 근거하여 잘못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허물어뜨리는 것을 자신들의 주요한 사역으로 봄

2. 특히 자신보다 덜 영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질책이나 충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3. “하나님께만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로부터 듣지 않겠다”는 철학을 가지는 것

4.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교회의 옳은 것보다, 잘못된 것을 더 많이 보려고 하는 버릇이 있는 것

5. 주님의 표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죄의식에 압도당하여 지배받는 것-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모든 조건을 충족해 주셨다.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성취하시려고 찾으시는 완성된 사역이 바로 그분이시다. 삶에서 우리의 전체적인 목표는 단순히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6. 자신의 영적 생활에 대한 점수를 채점하는 습관-영적인 성숙의 진정한 잣대는 주님께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임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7. 모든 사람들을 교정해 주도록 자신이 지시받았다고 믿는 것

8. 다른 사람의 약함 또는 실수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거나, 거드름을 피우며, 군림하는 보스 스타일의 지도력을 가지는 것

9. 자신들이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께 더 가깝다는 느낌을 갖거나, 자신들의 삶 또는 사역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

10. 특히 자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될 때, 영적 성숙과 훈련에서 한껏 자부심을 가지고 또한 거기에 도취하는 것-진정한 영적 성숙은 그리스도 안으로 성장하는 것을 포함한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한다면 진정한 목표이신 예수님을 시야에서 놓쳐 버린 것이 분명하다.

11.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최선두”(cuttion edge)"에 자기가 서 있다고 믿는 것

12. 기계적인 기도 생활을 유지하는 것

13.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우상숭배의 징후이다.

14. 감정주의를 과도하게 반박하는 것

15. 성령의 사역의 대체물로서 감정주의를 사용하는 것

16. 다른 사람들의 사역보다 자신의 사역이 뛰어나 보일 때 용기를 얻는 것

17. 하나님께서 지금 현재 행하시고 있는 일에서보다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셨던 일에 더 영광을 돌리는 것

18. 새로운 운동들이나 교회들에 대해 의심하거나 반대하는 경향을 가지는 것
19.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 현상들에 대해 거부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

20. 교회 안에서 육적인 세속성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21. 교회에서 미성숙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

22. 하나님의 승인에 대한 증거로서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지나칠 정도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그들 자신의 사역과 명성을 증진시키고 세우기 위해 기적들을 증거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길에서 심각하게 이탈해 온 것이다.

23. “완전하거나, 거의 완전한 것”이라고 자기가 여기지 않는 어떤 일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것-주님께서 타락한 인류에 참여하셨고, 자기의 생명을 타락한 인류를 위해 주시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그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품성도 또한 그러하다

24. 종교의 영에 대해 과도하게 편집광적인 것

25. “예수님의 십자가” 또는 “그분께서 성취하신 것”이나 “그분의 어떠하심”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영광을 돌리려는 경향이 있는 것-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그분이 성취하신 것, 또는 그분의 어떠하심이 아닌 다른 것 위에 우리의 삶이나 사역, 또는 교회를 세우고 있다면 우리는 어려움이 올 대 견디지 못하는 불확실한 토대 위에 세우고 있는 것이다.

<릭 조이너 글,[(마지막 날들에 전개될)웅장한 영적 전쟁들] 중에서>

성령님을 의지하는 훈련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모든 삶에 담아내는데 도움이 되는 다음의 기도 예문을 사용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기도의 내용을 추가하셔도 좋고 수정하셔서 사용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성령님? 어서 오세요. 성령님.
오늘도 더욱 제게 오세요... 임재해 주세요.

오늘도 성령님께서 제 안에서 손을 내 뻗게 하심을 따라 손을 움직이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손, 성령님의 손을 놓치지 않기를 원해요. 제 손을 잡으시고 놓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만지게 하시는 것마다 보혈이 발라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님의 보게 하심을 따라 보고 듣게 하심을 따라 듣게 해 주세요.
오늘도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게 해 주세요.
오늘도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놓치지 않고 보고 성령님의 음성을 놓치지 않고 듣게 해 주세요. 그리고 바라보게 하시는 것마다 보혈로 덮여지는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오늘도 나의 얼굴빛, 눈빛, 목소리, 호흡, 숨결, 체취, 의복 빛깔과 스타일까지 보혈로 덮고 성령님께 모두 맡겨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 하나님께 친밀함과 기쁨과 즐거움을 이 세상에 존재해 왔던 어떤 사람들 보다 더욱 드리는 통로로 사용해 주세요.

또한 이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과 능력, 하나님의 친밀하심과 그들을 향하신 사랑을 마음껏 드러내시는데 사용해 주세요,

오늘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보혈로 덮으사 도말해 주시고 오직 성령님의 소욕으로만 채워주옵소서!

오늘도 구원의 감격이 충만한 하루가 되어 예수님만으로 만족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타락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사단의 세상이요 천국 가기 위한 시험 장소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 할 때에 그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삶은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의 삶은 천국 가기 위한 기회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향락을 누릴 때 그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이 주님 뜻을 떠나 자기가 주인노릇 할 때 그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증거가 없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증거는 우리를 위해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없을 때 그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죽을 만큼 사랑하지 않을 때 그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주님의 기쁨이고 싶습니다.

주만 바라보는 주바라기이고 싶습니다.
어둠속의 별이고 싶습니다.
이기는 사자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술람미이고 싶습니다.
목마른 사슴이고 싶습니다.
마르지 않는 엔게디이고 싶습니다.
좋은 땅에 심겨진 밀알이고 싶습니다.

사랑이고 싶습니다.
열매이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만족이고 싶습니다.
꼭 껴안아 주고 싶습니다.
가시 없는 나무이고 싶습니다.
아픔 없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퍼 주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정이 아닌 영혼 사랑이고 싶습니다.

땀의 대가를 아는 흙이고 싶습니다.
아골골짝의 외치는 소리이고 싶습니다.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고 싶습니다.
가난한 오두막이고 싶습니다.
훈훈한 사랑방이고 싶습니다.
허기진 자들의 포장마차이고 싶습니다.
추위에 떠는 행인들의 모닥불이고 싶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의 목발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이고 싶습니다.

자기소개/명예나 학벌이 아닌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것

예수의 환난과
예수란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던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처녀 마리아를 통해 육신을 입고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환난이란 외부의 힘과 압박에 의해서 느끼는 고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환난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보냄을 받고 와서 받은 모든 고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구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실 때부터 구유에 뉘었으며 헤롯의 학살극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생활을 해야 했으며 갈릴리 나사렛에서의 가난한 생활고로 인한 고통과 더 나아가 공생애 기간에 사람들로부터 받은 핍박은 십자가에서 극치를 이루게 됩니다.

악한 세대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그의 생명의 권세로 사망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사랑하는 제자들 안에서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지금도 고통당하고 계십니다(행9:4-5) 요한은 이 예수님의 환난에 자신이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나라와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 기도문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을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함은 그 이름의 영광을 말하고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잃어버린 땅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뜻이라 함은 하늘에서 그 뜻이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나라의 회복이란 사단의 반역과 아담의 범죄로 인해 잃어버린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며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계11:15) 다시 오신 예수께서 천년 동안 왕국을 통치하심으로 그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해서 우리가 동참하고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위해 자신이 고난에 동참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대한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세상이 되어버린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많은 참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전쟁을 말하는 것으로서 사단 있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단의 나라인 이 세상 나라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영적 전쟁이요 복음에는 항상 박해가 따릅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하여 힘써 왔습니다.

사단은 불법자요 미혹하는 자로서 세상에 있는 정사와 권세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의 무고한 피를 흘려 왔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억울함을 당해도 대항하지 않고 그 모든 원수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법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많은 인내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음은 장차 받을 하늘에 대한 소망을 인함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과 하나님의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마음이 없이는 복음을 전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합당치 않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표현함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전파에 따르는 고난의 주체를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 자신의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연결선상 위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계시록 기록자인 요한의 자신에 대한 소개입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의 자랑거리나 유명세를 자랑하기보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자랑거리가 너무나도 많은 자요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둥 같은 자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그 증거는 예수님께서 유대 장로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열 한 제자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으나 요한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음으로 죽음의 자리에서도 그 자리를 지킨 자입니다. 이 말은 그가 자기 목숨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여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제자라는 말입니다. 이것보다도 더 큰 자랑거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에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소위 유명한 자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광고물을 본 적이 있습니까? 유명한 학교 출신이어야 하고 무슨 박사나 명예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으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타락한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또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문벌 없는 자들과 가진 것 없는 자들과 약한 자들과 천한 자들을 부르셨다고 했습니다(고전1:26-29) 그러나 오늘 날의 시대는 그와 정 반대의 것들을 기준 삼아 평가 되고 있는 시대인 것 같아서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것은 현 시대가 얼마나 영적이지 못하고 인간적이며 타락한 시대가 되어 버렸는가를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있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영적 전쟁으로서 많은 환난과 참음이 필요합니다. 사단은 불법자요 미혹하는 자로서 이 땅에 있는 것들과 육신에 속한 것들로 우리를 끝없이 미혹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서 보이지 않는 하늘에 속한 것들과 영에 속한 것들을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복음을 인하여 고난을 당해도 기뻐합니다.

요한이 자기 소개를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 자신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환난은 지금도 그 제자들 속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 앞에 합당한 마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