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2011

당신은 기도 없이 살 수 있는가?[행전1:15-26]

예수님이 승천하신 수 제자들은 기도의 자리로 모였다.
기도의 자리로 모여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만큼 그리스도인을 재충전시키는 것은 없다.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기도는 하나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깊은 기도 가운데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靈感)을 얻게 되고, 그분이 나의 앞길을 인도하심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다 할지라도 분석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분석했으면 어느 순간에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영감을 받은 사람은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기도가 없으면 절대로 하나님 뜻에 맞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기도하는 자는 세상을 주도한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주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모드기 때문이다. 무엇을 모른다는 말인가?
무엇이 우리의 목표인지, 무엇이 답인지, 무엇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에 기도하는 하나님 백성은 기도 가운데 그것들을 듣고 보고 알게 되기 때문에 세상을 주도한다.

기도하는 자는 지혜롭다.
논지 없이 억지를 부리면 안 된다.
논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아이젠하워(미국의 제34대 대통령)는 군사령관 때나 대통령 때 아랫사람들에게서 한 장짜리 리포트만 받았다고 한다. 논지를 세워 핵심만 보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리포드를 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 목소리로 주장하거나 무조건 열심히 노력한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에게 지혜를 주셔서 주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하도록 이끄신다.

기도하는 자는 뜻을 세운다.
베드로는 기도를 통해 가룟 유다 대신 다른 사도를 세우겠다는 뜻을 세웠다.
우리도 기도로 뜻을 세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

기도로 뜻을 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첫째, 약점에 매인다.
둘째, 남에게 좌지우지된다.
셋째, 급한 일 처리하다가 인생 끝난다.
넷째, 허망한 데 인생을 탕진한다.

이런데도 계속 기도 안 하겠는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나요?

신기하게도 내면이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그 삶도 점점 더 좋아지는데요. 이것이 훈련의 첫 번째예요. 훈련의 두 번째 내 내면과 삶의 환경이 좋아지고 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섬기거나 선교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에요.

보통사람들이 제일 많이 좋아하는 것은 내가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안정감 있게 사는 수준에서 살고 싶어해요. 다른 사람 섬기기 위해서 수고하고 싶어 하진 않았요.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분들 있죠?

그런데 내가 좋은 정도만 훈련하는 건 안 돼요. 기본적으로 우리가 훈련한다는 것은 내가 왜곡된 상태에서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회복되어야 되고 그 회복된 삶을 통하여 예수님을 증거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훈련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시는 그런 것들의 증거는 뭐냐, 공동체 안에서 내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 맺고 그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거든요. 그것이 증명해 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잘 섬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영혼을 섬기는 일관성 있고 능숙한 기술: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시70:72]

다윗을 하나님이 평가하신 건데요, 이스라엘 백성을 그 마음의 완전함으로 이끌었다. 일관성 있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겼다는 뜻이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 때, 그 사람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람을 향하여 일관성 있는 마음으로 섬기는 가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아주 중요해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일관성 있게 지키고 나에게 맡겨주신 양의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일관성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죠. 양이 말 잘 들으면 하다가 말 한 듣고 분위기 안 좋으면 안하고 이러면 하나님 쓰시기 어렵겠죠. 자기중심적으로 반응하니까요.

그리고 다윗은 그 손에 능숙함으로 지도했다는 겁니다. 능숙한 기술은 뭐냐면 그 사람 영혼이 좋아지도록 세밀하게 터치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해요. 다윗이 단순히 왕노릇 잘했다고 성경에 기록한 것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효과적으로 기술을 사용했다 이거든요. 그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계속해서 만지고 도왔다는 것이죠. 여러분도 그런 기술이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제자의 삶을 살 때, 우리가 하는 일이 영혼을 만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음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능숙한 기술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하나님과의 은혜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구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과의 그런 은혜의 관계가 점점 더 강력해지시길 축복합니다.

결단하는 인생을 살라!

그리스도인은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에릭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하는 책을 보면 인간이 그렇게 자유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의사 결정을 남에게 맡기길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26절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생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라" 다스리는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종입니다.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판단을 내려야 됩니다. 다스려야 됩니다. 말씀에 비추어보아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자기가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정보를 모으고,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해도, 우리가 반드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게 돼 있습니다.

인생 가운데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예를 들어서 대학 입시 앞두고 어느 대락을 가야 될지 결정을 해야 될 때, 자기 직장의 진로의 문제를 놓고 내가 어느 길로 가야 될지 갈등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그러나 군중심리는 생각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생각이 없으니깐 남들에게 끌려 다니고, 세속의 물결에 끌려 다니고, 남들이 하는 대로 하니깐 생각이 없으니깐 기도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이고, 또 하나님의 형상됨을 부인하는 행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서 무엇이 하나님의 길입니까? 무엇이 지혜로운 길입니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자기 결정에 책임지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옆드려야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인생은 하나님의 은햬와 능력이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가 가능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조건은 내 안에 교만이 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교만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마리아하고 마르다 보십시오. 마리아는 예배하는 자였습니다. 겸손하게 엎드렸습니다. 마르다는 내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접해보겠다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교만이 죽어야 겸손의 그릇에 하나님의 은혜가 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능력과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겸손함 가우데 엎드릴 줄 아는 믿음의 종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