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2011

참 행복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할까?
행복해야 할 사람이 행복을 찾지 못하고 고통중에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경제문제, 가정문제, 건강문제. 정신문제, 인간관계 갈등 등으로 고난당하고 있다. 행복이 없어 술, 도박, 춤, 방종을 해보나 결국 더 불행해진다.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도 많이 하고 건강하고 돈도 많고 잘생긴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게된다. 잘 살다가도 싸우고 갈라지는 부부가 많다. 헤밍웨이 같은 위대한 사람이 자살할것이라고는 그 당시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노벨문학상을 타고 돈과 명예가 있고 인기있는 사람이 왜 갑자기 엽총으로 자기 목을 쏘았을까?

잠이 오지 않아 고통당하거나 악몽, 가위눌림, 분노, 짜증, 억울함, 우울증, 피해망상증, 환청, 환시, 가정불화, 자녀문제 등으로 고난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되고 나무는 땅속에 뿌리를 내려 물과 양분을 흡수해야 살고 인간은 창조주와 더불어 살아야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고통을 당하다 죽게된다.

인간의 근본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생긴것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창조주 형상을 닮았다. 최초의 선조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불행의 근원자인 마귀 말을 듣고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된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죄인이 되었고 저주아래 있게 되었고 영적인 신분이 마귀의 자녀가 되어 사주팔자, 운명에 묶이게 되었다. 마귀와 그 부하들인 귀신들을 벌하기 위해 만드신 지옥에 가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었다. 마귀, 귀신들은 사람이 죽어된 것이 아니고 범죄한 천사들이다.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대신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누구든지 그 분을 믿으면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즉 영원한 행복을 주시는 것이다. 참평안, 참기쁨, 참건강을 주시고 모든일을 형통하게 만드신다.

최선으로 인도해 주신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이다. 형벌을 받아야 될 사람이 상급을 받게 된다. 불안이 평안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게 된다. 모든 문제가 하나씩 해결된다. 영원한 행복의 원천자, 모든 문제의 해결자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되는 것이다. 그 분은 지금 우리 앞에 계신다. 마음의 문을 열면 된다.

근심도 죄다, 죄에 빠지지 말자.

사람들은 보통 '살인하지마라' '간음하지마라'등 커다란 명제에 대해서는 많은 죄책감과 함께 회개도 하고 반성도 하지만 다른 구절인 '근심하지 마라'는 귀절은 그냥 넘어간다고...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한 사람은 그 지은 죄로 인해 결코 죽지를 않는데 비하여 근심을 하는 사람은 그 근심걱정으로 말미암아 죽게 된다고... 그러니 같은 맥락으로 받아 들여야 하며 오히려 근심하지 않는 것이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라며 자신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하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인과 간음 등은 보이는 것이며 상대가 있는 것인데 반하여 근심은 자신에 머무는 것이니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라고 반문을 하였다 그러자 친구가 대답하기를 근심을 많이 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이 많은 폐해가 있다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가령 예를 들어 한 가정에 근심걱정을 많이 하여 우울증이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가정의 구성원들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상처를 받게 되고 우울해지고 가정은 원만하지 못하여 결국 파탄에 이르니 한 사람의 근심이 다른 구성원들을 괴롭게 만들며 행복하지 않게 하니 살인과 다를 것이 무어냐? 또 하나 자식을 예로 들면 자기 자식이 근심걱정으로 얼굴이 편치 않으면 부모 된 자는 마음속으로 걱정과 근심이 되고 애간장이 타는데 그로 인해 또 다른 걱정근심을 하게 되어 가정이 원만해 지지 않으니 그 여파가 사회로 퍼질 것이고 그로인한 폐해가 적지 않으니 그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그 말을 마음속으로 새겨보니 틀린 것이 없다.

커다란 범죄는 비록 그 죄를 지었을망정 얼마간의 회개기간과 반성을 거치면서 그 늪으로부터 헤어날 수가 있으나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근심과 걱정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를 않고서 음지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당사자를 덮치고 그 가정을 불행하게하고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병들게 한다.

그러니 눈으로 보이는 커다란 죄만 죄가 아니라 마음속에 든 근심도 죄가 되며 우리는 되도록 그 죄에서도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인의 대다수가 우울증에 걸려 살고 있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면서 왜 우울증이 생기는 것일까? 점점 커지는 사회생활에 반해 작아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 때문이 아닐까?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자식과 부모의 관계도 그와 같다고 했다.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들을 바라보고 품는 마음에는 그 끝이 없는데 비록 자식이 잘못을 지었을망정 고민하고 애태우다 잘못을 반성하고 돌아서면 그 뿐 그 잘못을 영원히 기억하지를 않는 것이 대부분의 부모 심정인데 반해 자신의 잘못을 끝끝내 드러내지 않으면서 고민하고 좌절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더없이 불행하고 불행이 불행을 몰고 와 결국은 그 가정이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심하지 말지어다~. 어찌 세상 살아가면서 걱정 근심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 자체도 죄로 인식하고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간다면 요즘처럼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다거나 생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고 폐쇄된 자기 공간에 갇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날로 발전하는 첨단 과학의 세상속에서 점점 왜소해지고 고독해지는 현대인들은 이 명제를 곰곰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근심도 죄다 .... 죄에 빠지지 말자

냉수로 이루어진 상급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1:8)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28).
진짜 두려워할 대상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32).
시인한다는 말은 싸인한다는 말이며 동의한다는 말입니다다시 말해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나타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가족들에게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34-37).
이것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무엇이 보다 중요한지를 아는 자들이 제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넷째는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38-39).
때로는 그 길이 십자가를 지는 길이라고 할 지라도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냉수 한 그릇이라도 작은 소자를 위해 주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40-42).

제자들에게 제자의 삶을 나열할 때에 쉽지 않겠다는 어려움과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을 다시 한번 해석해 본다면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오직 냉수 한 그릇만이라도 네가 섬겨 준다면네가 한 그것 내가 잊지 않고 네 상을 잃지 않게 할 것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네가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섬기는 그것도 내가 기억하며 네 상을 잃지 않게 하겠다.” 이런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특별히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라는 말씀은 베드로의 이름야고보의 이름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제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그래서 제자로 살아가는 삶은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섬겨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교회들이 구제하고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일 100억이라는 돈이 기부가 되면 그 중 95억은 교회가 하고 있다고 합니다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 이름이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찬송가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몸” 이라는 찬양이 싫다고 합니다다른 것이 아니라 3절 때문인데요가사가 이렇습니다“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그 다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게 싫다는 겁니다교회 이름도 쓰고 내 이름도 드러나야지 왜 못쓰게 하고 못 나타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고한 것 주님이 아시고 우리 주님이 기억하실 것입니다우리는 그것이면 족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목동제일교회)

기도가 깊어 질수록...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상처를 들고 주님앞에 기도하다보면 점점 절실하게 와 닿는것은 주님이 받으신 상처를 보게 됩니다. 극심한 고독을 가지고 주님앞에 내놓고 기도한다 보면 주님도 이 땅위에 사는동안 고독 하셨음을 보게됩니다.
살면서 받은 아픔 때문에 눈물 흘리며 슬픔에 젖어 주님앞에 기도 하다보면 주님의 슬픔을 만나게됩니다.

기도의 무릎으로 나아가기 전에는 자신의 어떠함을 붙잡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러나 기도로 더 깊이 주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자신의 기분 보다는 주님의 어떠함을 만지고 위로받고 치유받고 회복 되는것을 느낍니다. 점점 기도가 깊어지면 이제는 주님으로 충만한 영혼이 됩니다.

그에게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환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는것 같다가도 조용한 바다위를 걸으시는 주님만 보입니다.

기도 없는 사람은 자기가 움직이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으로 움직입니다.
예수로 말하고 예수로 생각하고 예수를 표현하게 됩니다.

자기의 기쁨은 없어지고 자기의 슬픔도 없어지며 자기의 원한도 없어지고 자기의 행복도 없이 오직 예수의 상처, 예수의 소원, 예수의 심장, 예수의 슬픔으로 예수님을 가득하게 채움 받아 이 세상을 능력있게 살게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