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살인하지마라' '간음하지마라'등 커다란 명제에 대해서는 많은 죄책감과 함께 회개도 하고 반성도 하지만 다른 구절인 '근심하지 마라'는 귀절은 그냥 넘어간다고...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한 사람은 그 지은 죄로 인해 결코 죽지를 않는데 비하여 근심을 하는 사람은 그 근심걱정으로 말미암아 죽게 된다고... 그러니 같은 맥락으로 받아 들여야 하며 오히려 근심하지 않는 것이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라며 자신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하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인과 간음 등은 보이는 것이며 상대가 있는 것인데 반하여 근심은 자신에 머무는 것이니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라고 반문을 하였다 그러자 친구가 대답하기를 근심을 많이 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이 많은 폐해가 있다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가령 예를 들어 한 가정에 근심걱정을 많이 하여 우울증이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가정의 구성원들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상처를 받게 되고 우울해지고 가정은 원만하지 못하여 결국 파탄에 이르니 한 사람의 근심이 다른 구성원들을 괴롭게 만들며 행복하지 않게 하니 살인과 다를 것이 무어냐? 또 하나 자식을 예로 들면 자기 자식이 근심걱정으로 얼굴이 편치 않으면 부모 된 자는 마음속으로 걱정과 근심이 되고 애간장이 타는데 그로 인해 또 다른 걱정근심을 하게 되어 가정이 원만해 지지 않으니 그 여파가 사회로 퍼질 것이고 그로인한 폐해가 적지 않으니 그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그 말을 마음속으로 새겨보니 틀린 것이 없다.
커다란 범죄는 비록 그 죄를 지었을망정 얼마간의 회개기간과 반성을 거치면서 그 늪으로부터 헤어날 수가 있으나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근심과 걱정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를 않고서 음지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당사자를 덮치고 그 가정을 불행하게하고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병들게 한다.
그러니 눈으로 보이는 커다란 죄만 죄가 아니라 마음속에 든 근심도 죄가 되며 우리는 되도록 그 죄에서도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인의 대다수가 우울증에 걸려 살고 있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면서 왜 우울증이 생기는 것일까? 점점 커지는 사회생활에 반해 작아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 때문이 아닐까?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자식과 부모의 관계도 그와 같다고 했다.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들을 바라보고 품는 마음에는 그 끝이 없는데 비록 자식이 잘못을 지었을망정 고민하고 애태우다 잘못을 반성하고 돌아서면 그 뿐 그 잘못을 영원히 기억하지를 않는 것이 대부분의 부모 심정인데 반해 자신의 잘못을 끝끝내 드러내지 않으면서 고민하고 좌절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더없이 불행하고 불행이 불행을 몰고 와 결국은 그 가정이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심하지 말지어다~. 어찌 세상 살아가면서 걱정 근심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 자체도 죄로 인식하고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간다면 요즘처럼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다거나 생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고 폐쇄된 자기 공간에 갇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날로 발전하는 첨단 과학의 세상속에서 점점 왜소해지고 고독해지는 현대인들은 이 명제를 곰곰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근심도 죄다 .... 죄에 빠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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