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2010

인간의 타락과 형벌(8) - 구원의 조건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죄인으로 태어나 오늘날까지 사는 동안에 많은 죄를 지었고,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갑작스런 사고나 불치병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갑자기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몇 십 년 안에 우리 모두 죽습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 곧 불 못인 지옥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죄인의 운명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구원(救援)받는다는 것은 심판과 멸망받을 이러한 운명에서 건짐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 죽기 전에 구원받아야 합니다. 죽으면 이미 심판이 결정나 버리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 구원해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또한 약속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배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과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는 성경의 경고가 믿어지신다면 기도하십시오. 마음속 깊이,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제게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십시오. 저를 도와 주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려서 죽어가던 강도가 회개하고 예수님께 구한 기도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누가복음 23:42)라는 단순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솔직하고 간절한 마음을 주님은 받아 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마음 자세라면,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받아 주십니다. 주께서는 “상한 심령”을 멸시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마음으로 진지하고 간절하게 기도해 보십시오. 참으로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편 34:18).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편 51:17).

어떤 사람은 “나는 몇 십 년 교회 다녔는데도 아직 구원받지 못했는데, 며칠 성경 배워서 구원받는다고? 쓸데없는 소리들 하고 있다”고 비방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에 대한 오해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구원사역(to save)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느냐 없느냐, 구원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여부를 놓고 따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일을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할 뿐 하나님을 개입시키지 않은 까닭입니다.

구원은 내가하는’(save) 것이 아니라 나는 구원을받는’(be saved) 것입니다. 그 일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구원받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며칠이라는 기간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에 얼마의 시일이 걸렸습니까? 말씀 한 마디로 당장 살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시겠습니까?

필요한 것은 사람 편에 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준비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옥 갈 운명에서 구원받으려면 먼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성경이 하나님 말씀임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영원한 세계가 있고, 하나님의 심판과 천국·지옥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며, 자신이 지옥 갈 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해 가시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며,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또한 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서 잃어져 있고, 죄로 인해 심판받을 운명에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배우는 일차적 목적은 그러한 사실을 깨달음으로 지옥 갈 운명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우리 마음을 말씀으로 붙잡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작업입니다. 채널을 맞추면 방송이 잡히듯,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기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성령이 그 속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구원받기 원하면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인간의 타락과 형벌(7) - 지옥에 가는 사람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시록 21:8).   

성경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인 지옥에는 어떤 사람이 가는가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죄목이 열거되어 있는데, 첫째 두려워 하는 자들은 지옥에 간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 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들입니다. 참 이상한 말씀이다 싶으시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믿기는 믿고 교회도 다니는데,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교회 어느 정도 다니면서 성경 배우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믿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1 19절에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는 말씀대로 사람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만 영()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원숭이는 사람과 유사하게 생겼고, 사람 비슷하게 행동도 합니다. 원숭이가 사람처럼 옷 입고 침대에서 자고, 아침에 담배 하나 입에 물고 텔리비젼도 보는 장면이 얼마 전 텔리비젼에 나왔습니다. 수세식 화장실도 잘 사용하고, 나들이옷으로 갈아입고 직장에 출근도 합니다. 직업은 바-텐더, 손님에게 양주에 얼음까지 넣어 주고, 담뱃불도 붙여주었습니다. 사람하고 다를 게 없이 행동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원숭이들로 이루어진 밴드도 있습니다. 나팔 불고 북도 치고 하는 것을 사진에서 봤습니다. 원숭이가 자동차 운전도 하고, 심지어 미국 어떤 농장에서는 원숭이가 트랙터도 몰고 다닙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원숭이는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세계적으로 기도하는 원숭이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원숭이가 제사했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원숭이가 무엇을 섬긴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왜 더 복잡한 것까지도 따라 하면서 원숭이는 기도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원숭이는 종교심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식사할 때 옆에 앉혀 놓고 아무리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도 따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숭이는 () 없는 까닭입니다. 짐승에게는 영이 없습니다. 짐승은 하나님을 찾을 마음도 없고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 속에는 하나님 형상대로 지은 영이 있고, 이 영()은 신()을 찾습니다. 문명의 발달 정도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람은 절대자를 찾고 또한 섬겨 왔습니다.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보고 그게 신인가 싶어 절하고, 밤에는 달 앞에 절합니다. 풍랑이 일면 바다에 절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냅니다.

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든지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는 대부분 믿습니다.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을 필자도 여러 번 만나 봤습니다. 교회는 비록 다니지 않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수는 안 믿지만 밥 먹을 때 하나님께 꼭 기도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믿고 사람의 영혼이 있는 것도 믿는데,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교회 가서 기도하려고 눈 감으면 답답합니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시고 자기는 죄수입니다. 죄수가 재판장 앞에 서니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죄 때문에 답답한데 눈 감으니 더 답답합니다. “어찌 하오리까? 이 죄인을 어찌 하오리까?” 하고 눈물로 기도하지만, 그때뿐이고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밤늦도록 울고 또 새벽마다 울고불고 하니, 그래서 교회당이 세워지면 근처의 집값, 땅값이 다 떨어진다고 합니다. 새벽마다 울어대고 밤 새가며 울어대니 사람이 살 수가 있어야지요. 어떤 사람들은 그러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렇게 우는 것을 보니까 예수가 진짜 죽긴 죽었는가 보다”. 정말 답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한다는 소리가 “그것은 말이죠, 은혜 받아서 울지요” 라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그렇게 우는 것입니까? 참으로 은혜를 받아 감사해서 우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받았다는 은혜란 것이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서 그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새벽마다 자기 아버지 방문 앞에 가서 “아버지… 아버지!” 하고 울어대면 아버지가 좋아 하시겠습니까?

그런 기도하는 사람 얼굴을 밑에서 쳐다보면, 인상이 다들 걸레 짜놓은 것 같습니다. 남들 이야기가 아니고, 전에 필자가 그랬다는 말입니다. 옛날에 필자가 구원받기 전 농촌교회에서 목회할 때, 캄캄한 새벽에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런 식의 기도를 하도 오래 해서 발등에 복숭아씨만 한 굳은살이 박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무릎으로 천당에 기어간다’고 하면서 기도하고, 하도 인상을 찡그리며 기도해서 젊었을 때 벌써 주름살이 다 끼었었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바위를 붙잡고 기도하며 울기도 했습니다. 은혜에 감사해서가 아니고 마음이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2 19절에 보면네가 하나님은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은 귀신들도 믿습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지옥 갈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 떱니다. 귀신 들린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마태 8:29) 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유대 종교가들은 예수님을 몰라 봤지만, 이 귀신 들린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봤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하는 중에 만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자가 바울과 그 일행을 보고 따라와서 여러 날 동안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사도행전 16:16)고 소리쳤습니다. 얼마나 정확히 알았습니까. 귀신이 더 잘 압니다. 하나님을 알긴 아는데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귀신에게도 그런 믿음은 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 일서 4:18).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캄캄한 밤에 불을 켜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채워지면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하나님 계신 것을 알게 되고, 자기는 죄인인데다가 죽어서 심판을 받고 지옥에 알았다면 하나님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사실을 알고 너무너무 무서워서 잠을 못 이루기까지 합니다. 마치 지옥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잠자다가도 일어나 두려워 떨기도 합니다.

한 번은 겨울에 전북 어느 농촌에서 집회를 했는데, ()와 심판에 대해 설교를 하고 있는데 중간쯤에 앉아 있던 한 부인이 벌떡 일어나서 앞으로 나오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강단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대성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많은 사람들도 함께 소리애어 울므로 설교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 만에 설교를 다시 계속 했습니다. 그날 복음을 전했는데,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 부인에게 왜 설교 중에 벌떡 일어나서 나왔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부인이 대답하기를, 자기 앞에 지옥불이 훨훨 타오르는 것 같아 너무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혀서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옥의 형벌을 알면 두려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두려움이 사라져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사랑이 죄와 죽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로마서 5:5).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어집니다. 말로만 듣던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가득 채우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나 같은 죄인도 구원받아 천국 갈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구주의 사랑 내 맘에 가득 찬 뒤 성신이 내 맘에 거하며, 주 나의 모든 두려움 물리친 뒤 내 소망이 하늘에 있도다”(찬송가). 

주님의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이루어질 , 죄와 죽음과 심판과 지옥의 두려움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같은 죄인도 천국 간다는 소망이 더욱 확실해 집니다. 그것이 성령이 오신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위 ‘뜨거운’ 체험을 한 것을 가지고 ‘성신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용인즉 기도하는데 온 몸이 화끈하고 불이 옆구리로 확 지나가거나, 또는 십자가 환상을 봤다는 것입니다. 신비한 어떤 체험을 하거나 방언을 하거나 기도하여 병이 나았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것들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묘하게 정상적인 것 보다 요상한 것을, 성경말씀 보다는 이상한 체험들을 더 의지합니다. 성령은 육체의 어떤 느낌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서 우리 영()에 오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양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아직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두려워 하는” 자란  믿기는 믿는데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란 말 그대로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그것이 심판의 조건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

또한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 지옥의 심판을 피할 없습니다. 남의 목숨을 파리 같이 여기고, 흉악한 일을 골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흔히 “그런 놈은 지옥에 가야 돼!” 라는 소리를 듣는데, 물론 그들은 당연히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는 흉악한 일을 한 사람 없습니까? ‘나는 살인은 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과연 살인자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으면서 쉽게 살인하는 아주 뻔뻔한 살인자들이 요즘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한 해에 백오십만 명이 넘는 태아가 ‘가족계획’이라는 미명하에 죽어갑니다. 자식에게는 그토록 인자한 어머니가 태아는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것입니까? 뱃속에 있는 자식은 자식이 아니고, 태아의 생명은 생명이 아닙니까?

수년 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당시에, 대통령의 지시로 낙태 수술하는 과정을 촬영했던 필름이 공개되었습니다. 15주 된 태아를 초음파로 찍으니까 심장 뛰는 것까지 다 보였습니다. 신체의 중요한 부분이 이미 다 생겼습니다. 낙태수술을 하기 위해 기구를 집어넣으니까, 그 태아가 본능적으로 기구를 피했습니다. 이리 저리 피하는 태아를 기계가 꽉 집자 그 아이가 입을 벌리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제목이 「소리 없는 비명」인데, 우리나라에는 「침묵의 절규」라는 제목의 비디오테이프로 소개된 바 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것을 보고, “봐라. 아이가 비명을 지른다. 이것이 살인이 아니냐. 이것은 엄연히 살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엄마 살려 줘! 날 죽이지 마!” 하고 애원했을 것입니다.

수술기구에 의해, 아니 부모 및 의사의 공모에 의해 그 태아는 처참히 살해되었습니다. 머리는 기계로 깨어서 흡입장치로 빨아냈습니다. 끄집어 낸 태아 조각들이 깨어진 머리는 머리대로, 팔다리는 팔다리대로, 장기는 그것들대로 용기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어떤 산부인과 의사가 말하기를, 자기는 낙태수술을 수없이 해왔는데 그것은 살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낙태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더 자란 태아를 수술하는 광경이 그 필름에 하나 더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를 본 레이건 대통령은 “낙태수술 절대 반대다”며 낙태수술을 금지시켰습니다. 미국에서 지금은 다시 낙태수술이 허용되고 있는데, 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태아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기껏 한다는 소리가 “떼어 버려! 지워 버려!”라고 합니다. 모두가 살인 공모자들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지금은 처벌을 피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그 살인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직접 죽이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으로 누구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한다거나 남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살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들은 당연히 지옥에 갑니다.

행음자(行淫者) 음란한 행위를 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도 지옥의 형벌을 피할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음행을 무거운 죄로 여기십니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연애까지 판을 쳤던 매우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도시들을 불로 멸망시켜 후세의 경계로 삼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다서 1:7).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죄가 있다면 바로 이 음란죄입니다.

이태리에 폼페이라는 옛 도시가 있었는데, 매우 음란한 도시였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어느 날 베수비오스 화산이 폭발하여 도시 전체가 불과 화산재로 완전히 덮여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음란죄로 가득한 도시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필자도 그곳에 가 보았습니다. 화산재를 긁어내니, 지붕은 없어졌지만 벽이나 기타 시설물들이 화석으로 보존된 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음탕한 벽화들과 음란한 조각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웅크린 채 죽은 사람들의 화석과 아이 밴 여인의 화석이 그대로 있습니다. 수백 명이 들어가는 남녀 혼용 대중탕도 있었다고 하니, 그 타락의 정도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악이 관영한 도시를 싹 쓸어버리신 것입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폼페이 못지않습니다. 가정을 가진 가장의 7할 이상이 혼외정사의 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성() 개방 시대’, ‘성 자유화 시대’, ‘성 향락 시대’ 라고 하면서, “그것이 무슨 죄냐?”고 항변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출애굽기 20:13,14)라고 하여, 간음죄를 살인죄 다음으로 큰 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린도전서 6:18).

자기의 인격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죄가 이 음란한 죄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행하는 성행위, 정상적인 결혼생활 외의 모든 성적 행위는 간음입니다. 간음하는 자들, 음행하는 자들 모두 지옥에 갑니다.

요즘 여관, 호텔마다 밤낮으로 붐빕니다. 밤에만 영업해서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까지 말합니다. 자녀 과외비를 마련한답시고 몸을 파는 주부가 경찰에 잡혀 세상을 놀라게도 했습니다. 음란죄가 아예 골수에 사무칠 정도입니다. 보고 듣고 하는 것 대부분의 것들이 성적 타락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술객(術客)들” 즉 점쟁이와 무당들, 그리고 그런 것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자들”, 즉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도 곧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또한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갑니다. 모든 거짓은 마귀에게서 났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예사로 떡 먹듯 하지 않는가 여러분 자신은 어떻습니까? 지금껏 설명 드린 죄목에 해당되지 않으신 분 있으십니까?

옛날에 지어 이미 지나간 죄, 마음속 깊이 감추어진 죄, 쥐도 새도 모르게 지었다고 여기는 혼자만 알고 있는 그 모든 죄들이 누구에게나 있으실 것입니다. 그것들을 자신의 양심은 알고 있고 하나님도 아십니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죄인으로 태어나 오늘날까지 사는 동안에 많은 죄를 지었고,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을 맞게 됩니다. 갑작스런 사고나 불치병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갑자기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몇 십 년 안에 우리 모두 다 죽습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 못인 지옥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죄인의 운명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구원(救援)받는다는 것은 심판과 멸망 받을 이러한 운명에서 건짐 받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 죽기 전에 구원받아야 합니다. 죽으면 이미 심판이 결정 나 버리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 구원해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또한 약속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배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과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는 성경의 경고가 믿어지거든 기도하십시오. 마음속 깊이,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제게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십시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려서 죽어 가던 강도가 회개하고 예수님께 구한 기도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누가 23:42)라는 단순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솔직하고 간절한 마음을 주님은 받아 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마음자세라면,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받아 주십니다. 주께서는 상한 심령을 멸시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마음으로 진지하고 간절하게 기도해 보십시오. 참으로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34:18).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키 아니하시리이다”(51:17).

어떤 사람은 “나는 몇 십 년 교회 다녔는데도 아직 구원받지 못했는데, 며칠 성경 배워서 구원받는다고? 쓸 데 없는 소리들 하고 있다”고 비방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에 대한 오해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구원사역(to save)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원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느냐 없느냐, 구원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여부를 놓고 따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일을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할 뿐 하나님을 개입시키지 않은 까닭입니다.

구원은 내가하는’(save) 것이 아니라 나는받는’(be saved) 것입니다. 그 일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구원받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며칠이라는 기간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에 얼마의 시일이 걸렸습니까? 아닙니다. 말씀 한 마디로 당장 살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시겠습니까?

필요한 것은 사람 편에 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준비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옥 운명에서 구원받으려면 먼저 알아야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성경이 하나님 말씀임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영원한 세계가 있고, 하나님의 심판과 천국·지옥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며, 자신이 지옥 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해 가시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며,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또한 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서 잃어져 있고, 죄로 인해 심판받을 운명에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배우는 일차적 목적은 그러한 사실을 깨달음으로 지옥 운명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우리 마음을 말씀으로 붙잡아 하나님께로 돌리는 작업입니다. 채널을 맞추면 방송이 잡히듯,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기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성령이 그 속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구원받기 원하면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주님의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인간의 타락과 형벌(6) - 심판 받은 후에 들어갈 영원한 지옥

내가 크고 보좌와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앞에서 피하여 없더라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있고 다른 책이 펴졌으니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사망과 음부도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요한계시록 20:11∼15).   

“크고 보좌”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입니다.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계시고 “땅과 하늘이 앞에서 피하여 없더라”고 하신 바와 같이, 그곳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 앞입니다. 하나님 앞에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보좌 앞에 섰는데. 자나 작은 자나 없이, 모든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 보좌 앞에)책들이 있고 다른 책이 펴졌으니 생명책이라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시록 20”12,15).

책들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의 형사법정에 범죄기록 등의 소송서류철() 죄·형을 규율한 형법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행위에 따라 법에 규정된 대로 판결이 내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심판대 앞에 가면 모든 사람의 범죄기록이 거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 형벌을 내릴 근거라 () 있을 것입니다. 법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나의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 12:48) 하셨습니다.

말씀이 심판합니다. 법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구원받을 있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심판받을 말씀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성경으로 구원(救援) 받든지, 아니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심판(審判) 받아야 합니다.

바다가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사망과 음부도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하나님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알라”(전도서 12:9) 말씀처럼, 사람이 “자기의 행위 대로 심판을 받고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불못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육신이 죽는 것을 첫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끝나버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 대해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하였느니라”(마태 26:24) 말씀하신 것도,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지옥에는 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망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육신(肉身) 죽는 것이고, 둘째 사망은 되살린 육신과 영혼을 결합시켜 함께 심판해서 지옥에 보내는 것입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태 10:28).

누구든지 생명책(生命冊)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누구라도 생명책에 이름이 없습니다. 세례교인 명단에 자기 이름이 있으면 그것이 생명책에 기록된 줄로 아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넣는다고 말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소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교인들과 안식교인들은 “지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옥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옥에 대해서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지옥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마가 9:48,49).  

미꾸라지를 양푼이나 함지박에 넣고 거기에 소금을 뿌려 놓으면 미꾸라지들이 괴로워 몸부림치다가 빨갛게 되어 죽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지옥에 가면 불로 소금 치듯하는 고통을, 그것도 죽지도 못한 영원히 계속 받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옥 꺼지지 않는 ”(마가 9:43) 풀무불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 13:42) 했고,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에는 천국에 대한 말씀보다 지옥(地獄) 대한 말씀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영벌을 받는 고통스러운 지옥과 사랑의 하나님과는 뭔가 맞지 않는 합니다. 지옥을 상세히 말씀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가지 말라’는 경고가 천국에 대한 설명보다는 우선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배반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진노로 바뀝니다. 그런 자에게는 무자비하고 가혹한 지옥의 형벌이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사랑은 털끝만큼도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본래 범죄한 천사들인 마귀와 사자들을 벌주기 위해 만드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을 마귀와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마태 25:41)이라고 하셨습니다. 불못,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이 지옥입니다.

지옥을 터라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분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지옥에는 나만 가나 많이들 텐데” 하면서 하나님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따뜻하고 좋겠네요”라며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옥의 고통이 어떠한지, 뜨거운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 조금이나마 시험해 보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연탄불이나 가스레인지의 새파란 불에 손가락을 1분만 넣었다가 꺼내보면 지옥 맛을 약간 경험하게 것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지옥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부자가 죽어서 음부에 들어가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누가 16:24)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가운데서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손가락에 물이라도 찍어서 혀끝을 서늘하게 달라고 하겠습니까? 누가복음 16장은 비유가 아니고 실제 사실을 말씀하신것입니다 .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인간의 타락과 형벌(5) - 죽음 후에 오는 하나님의 심판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그렇습니다. 죽은 후에 모든 것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습니다. “흙(육체)은 여전(如前)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spirit:)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전도서 12:7)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直告)하리라”(로마서 14:10∼12).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모든 무릎이 하나님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형사법정의 검사처럼 죄·벌에 대한 논고(論告)를 할 자는 필요 없습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 죄를 다 직접 고()하게 됩니다.

“나 그때 그런 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평생의 모든 일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다시 상영되면서 스스로 확인할 터인데, 어떻게 부인하겠습니까? 자기는 전혀 기억조차 못하는 일까지, 자기는 죄가 아니라고 여겼던 마음속의 상태까지 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일생을 마음까지 찍는 ‘몰래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촬영해 놓은 것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기계보다도 정밀한 기계장치인 양심을 우리 속에 설치해 놓으셨습니다.

로마서 2 15절에양심(良心)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한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죄를 지으면 양심에 모든 죄가 기록됩니다. 녹음할 때 녹음기에 빨간 불이 깜박거리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말의 크기에 따라 불이 깜박깜박 거리는데, 이는 말하는 것이 녹음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물론 모든 장면이 녹화까지 다 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양심에 죄가 전부 기록이 됩니다. 이 말씀은 비유가 아닌 사실입니다. 잠언에 사람의 영혼(spirit)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20:27)라고 말씀했습니다. 양심(良心)은 영(:spirit)에 속한 것입니다. 양심과 마음은 다릅니다. 마음, 생각, 정신 등은 혼(:soul)에 속하고, 양심은 영의 영역입니다. 마음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양심은 동일합니다.

그 영 속에 양심이 하나님의 등불로 사람의 깊은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레이더 스크린에 적기가 잡히듯, 죄가 나타나면 양심이 진동합니다. 죄가 들어오면 양심에 평안이 깨집니다. 속에서 “이 나쁜 놈아!” 라고 나무랍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던 무신론주의자가 양심에 대해 연구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믿게 됐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도 죄를 지으면 양심이 괴롭고, 뭔가 두려워 고민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지상명령이다. 양심을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달이 둥그렇게 떠 있는 여름밤에 아버지와 아들이 산에 달구경을 갔습니다. 길옆에 보니까 수박밭이 있었습니다. 수박 하나를 따 먹고 싶은 생각이 든 아버지가 아들 보고 “예야! 너 망 봐라. 수박 하나 따올게” 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이것은 남의 수박인데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괜찮다. 하나 먹어도 괜찮다. 누가 오는지 안 오는 지나 봐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을 망보게 해놓고 살금살금 수박을 따려고 하는데, 아들이 “아빠, 누가 봐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버지가 “누가 봐?” 묻자, 아들이 “하나님이 보시네요. 달을 보니까 하나님 눈처럼 생겼거든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놈!” 하는 것 같아 얼마나 불안한지…

전에 신문에 난 기사 내용입니다. 어떤 청년이 이틀 동안 굶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부인의 핸드백을 날치기하여 돈을 빼았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배고픈 것을 해결하고는, 배가 부르자 즉시 파출소에 가서 자수했습니다. 배고플 때는 너무 배가 고파서 죄를 지었지만, 배가 부르자 양심에 가책이 생겨 자기 발로 걸어서 자수를 한 것입니다. 양심의 괴로움, 그 양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기는 몰라도 양심은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양심(良心)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죄를 지으면 죄를 지적하는 것이 법()입니다. 양심은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는 그날이라”(로마서 2:16).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양심이 기록하여 저장하고 그 죄들을 자기 입으로 다 실토해 낼 것입니다. 녹음기 가져다가 증언 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4:13).

네가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죄를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시편 50:21).

인간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고 계시니까 사람처럼 눈감아 주는 줄 알았다면 오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침묵하고 계신다고 해서 죄를 눈감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때 죄인의 모든 죄를 각 사람 앞에 차례대로 베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혼자만 알고 지은 죄, 둘만 알고 지은 죄, 쥐도 새도 모르게 지은 죄, 그리고 이미 지나간 옛날에 지은 죄 모두가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편 130:3)

죄는 반드시 드러남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수기 32:23).

어떤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완전범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사람을 죽여 자기 집 마당에 묻고 그 위에다가 나무를 심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알 것입니까? 가끔 신문에 나는 기사내용입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 버렸는데, 이상하게 그것이 들통이 나서 자기가 묻었던 것을 자기 손으로 파내기도 하는 것을 현장 검증할 때 보기도 합니다.

또 이런 기사도 있었습니다. 아가씨를 죽여서 자동차 뒤 트렁크에 실어가지고 아무도 없는 저 깊은 산골짜기에다 묻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는데, 이상하게 그것이 들통이 났습니다.

완전범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벌 받는 일들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혹 감춰지는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까지 그 죄를 감출 수 있겠습니까? “너희 죄가 정녕 너를 찾아 낼 줄 알라.” 모든 죄는 반드시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디모데전서 5:24,25).

필자가 전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가난한 여자가 부자 집에 시집을 갔습니다. 요즘에 시집 올 때 혼수 많이 안 가져 왔다고 구박하는 일 많다고 그러는데, 그 집도 그것이 심했었나 봅니다. 푸대접과 멸시를 받던 그 부인은 그것에 앙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난한 집에서 시집왔다고 나를 괄시하는구나 두고 보자?’라고 한을 품었습니다

남편이 출장 갔다가 돌아온 어느 날, 아내는 맛있는 것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마치 특별대우라도 하는 냥 잘 차렸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이 먹는 그 음식에 수면제를 탔습니다. 남편은 실컷 먹고 마시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부인은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커튼을 쳤습니다. 미리 준비해 놓았던 대못 하나와 망치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남편 머리카락을 젓치고 대못을 머리에 박아 버렸습니다. 수면제에 깊은 잠이 든 데다가 머리에다 대못을 박아버렸으니, 그 남편은 그대로 죽어 버린 것입니다. 피 한 방울 나지 않은데다가 머리카락을 못 위로 싹 덮어 버리니 이상한 표시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는 갑작스런 초상이 나서 난리법석입니다. “아이고, 아이고” 서러운 냥 울던 그 아내는 “어찌된 일이냐?”는 친지들에게 “모르겠어요. 남편이 출장을 잘 갔다 와 잘 잡수시고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어요”라며 꾸며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급사했나 보다”며 그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장례식을 치루고, 무덤을 커다랗게 잘 꾸몄습니다

그 부인은 남편의 유산 전부 처분해서 아무도 모르는 먼 데로 가 마음에 드는 어떤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태연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도시계획으로 인해 전() 남편 무덤이 있는 부근이 개발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청으로부터 “무덤 연고자들은 정한 기한 내에 이장(移葬)을 하라”는 공고가 났습니다

한 무덤에 대해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자, 관청에서 무덤을 옮기기 위해 묘지를 파내었습니다. 무덤을 파 보니 해골이 하나 나오는데, 머리통 사이로 녹 슨 대못이 하나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들이 그 유골의 신원을 확인해 보게 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그 유골의 장본인은 예전에 그 마을 큰 부자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특별한 사인도 없이 급사했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을 죽이고 멀리 가서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부자로 사는 그 부인의 대문을 한 형사가 ‘똑똑똑’ 두드렸습니다. “주인 계십니까? OO씨 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어느새 이름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부인은 아기들을 양손에 이끌고 나오면서 “그런 사람 없는데요” 하고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형사가 주머니에서 녹 슨 대못 하나를 꺼냈습니다. “부인 이것을 아십니까?” 녹 슨 시커먼 대못 하나. 그 부인은 그 못을 보자마자 “으악…!” 하고 졸도해 버렸습니다. 곧바로 그 부인은 수갑을 차고 끌려가야 했습니다

녹 슨 대못을 보고 왜 놀라 졸도해버렸겠습니까? 그 대못은 자기 남편의 머리에만 박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에도 하나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양심에 박힌 그 못은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네 죄가 너를 반드시 찾아낼 줄 알라.” 그렇습니다. 가 범죄자를 반드시 잡아냅니다. 하나님 앞에 죄가 나타날 때 누가 그 심판을 피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욥기 34:21,22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