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요한계시록 20:11∼15).
“크고 흰 보좌”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입니다. 그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계시고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고 하신 바와 같이, 그곳은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앞입니다. 하나님 앞에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보좌 앞에)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시록 20”12,15).
책들이 펴 있다고 했는데, 우리의 형사법정에 범죄기록 등의 소송서류철(책)과 죄·형을 규율한 형법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행위에 따라 법에 규정된 대로 판결이 내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심판대 앞에 가면 모든 사람의 범죄기록이 거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해 형벌을 내릴 근거라 할 법(法)이 있을 것입니다. 그 법은 곧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 12:48)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심판합니다. 즉 법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구원받을 수 있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심판받을 말씀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성경으로 구원(救援)을 받든지, 아니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심판(審判)을 받아야 합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도서 12:9)는 말씀처럼,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 대로 심판을 받고 …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육신이 죽는 것을 첫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끝나버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 대해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마태 26:24)고 말씀하신 것도,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지옥에는 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망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육신(肉身)이 죽는 것이고, 둘째 사망은 되살린 육신과 영혼을 결합시켜 함께 심판해서 지옥에 보내는 것입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태 10:28).
“누구든지 생명책(生命冊)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그 누구라도 생명책에 이름이 없습니다. 세례교인 명단에 자기 이름이 있으면 그것이 곧 생명책에 기록된 줄로 아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쳐 넣는다고 말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소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교인들과 안식교인들은 “지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옥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옥에 대해서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지옥 …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마가 9:48,49).
미꾸라지를 양푼이나 함지박에 넣고 거기에 소금을 뿌려 놓으면 미꾸라지들이 괴로워 몸부림치다가 빨갛게 되어 죽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지옥에 가면 불로 소금 치듯하는 고통을, 그것도 죽지도 못한 채 영원히 계속 받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옥 꺼지지 않는 불”(마가 9:43) 즉 “풀무불 …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 13:42)고 했고,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에는 천국에 대한 말씀보다 지옥(地獄)에 대한 말씀이 더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영벌을 받는 고통스러운 지옥과 사랑의 하나님과는 뭔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지옥을 더 상세히 말씀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 갈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가지 말라’는 경고가 천국에 대한 설명보다는 더 우선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배반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진노로 바뀝니다. 그런 자에게는 무자비하고 가혹한 지옥의 형벌이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사랑은 털끝만큼도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본래 범죄한 천사들인 마귀와 그 사자들을 벌주기 위해 만드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마태 25:41)이라고 하셨습니다. 불못,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이 곧 지옥입니다.
지옥을 못 본 터라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는 분이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지옥에는 나만 가나 많이들 갈 텐데” 하면서 하나님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따뜻하고 좋겠네요”라며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옥의 고통이 어떠한지, 그 뜨거운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 조금이나마 시험해 보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연탄불이나 가스레인지의 새파란 불에 손가락을 1분만 넣었다가 꺼내보면 지옥 맛을 약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지옥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부자가 죽어서 음부에 들어가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누가 16:24)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불 가운데서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손가락에 물이라도 좀 찍어서 혀끝을 서늘하게 해 달라고 하겠습니까? 누가복음 16장은 비유가 아니고 실제 사실을 말씀하신것입니다 .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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