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2010

인간의 타락과 형벌(5) - 죽음 후에 오는 하나님의 심판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그렇습니다. 죽은 후에 모든 것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습니다. “흙(육체)은 여전(如前)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spirit:)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전도서 12:7)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直告)하리라”(로마서 14:10∼12).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모든 무릎이 하나님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형사법정의 검사처럼 죄·벌에 대한 논고(論告)를 할 자는 필요 없습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 죄를 다 직접 고()하게 됩니다.

“나 그때 그런 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평생의 모든 일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다시 상영되면서 스스로 확인할 터인데, 어떻게 부인하겠습니까? 자기는 전혀 기억조차 못하는 일까지, 자기는 죄가 아니라고 여겼던 마음속의 상태까지 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일생을 마음까지 찍는 ‘몰래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촬영해 놓은 것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기계보다도 정밀한 기계장치인 양심을 우리 속에 설치해 놓으셨습니다.

로마서 2 15절에양심(良心)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한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죄를 지으면 양심에 모든 죄가 기록됩니다. 녹음할 때 녹음기에 빨간 불이 깜박거리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말의 크기에 따라 불이 깜박깜박 거리는데, 이는 말하는 것이 녹음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물론 모든 장면이 녹화까지 다 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양심에 죄가 전부 기록이 됩니다. 이 말씀은 비유가 아닌 사실입니다. 잠언에 사람의 영혼(spirit)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20:27)라고 말씀했습니다. 양심(良心)은 영(:spirit)에 속한 것입니다. 양심과 마음은 다릅니다. 마음, 생각, 정신 등은 혼(:soul)에 속하고, 양심은 영의 영역입니다. 마음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양심은 동일합니다.

그 영 속에 양심이 하나님의 등불로 사람의 깊은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레이더 스크린에 적기가 잡히듯, 죄가 나타나면 양심이 진동합니다. 죄가 들어오면 양심에 평안이 깨집니다. 속에서 “이 나쁜 놈아!” 라고 나무랍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던 무신론주의자가 양심에 대해 연구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믿게 됐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도 죄를 지으면 양심이 괴롭고, 뭔가 두려워 고민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지상명령이다. 양심을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달이 둥그렇게 떠 있는 여름밤에 아버지와 아들이 산에 달구경을 갔습니다. 길옆에 보니까 수박밭이 있었습니다. 수박 하나를 따 먹고 싶은 생각이 든 아버지가 아들 보고 “예야! 너 망 봐라. 수박 하나 따올게” 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이것은 남의 수박인데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괜찮다. 하나 먹어도 괜찮다. 누가 오는지 안 오는 지나 봐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을 망보게 해놓고 살금살금 수박을 따려고 하는데, 아들이 “아빠, 누가 봐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버지가 “누가 봐?” 묻자, 아들이 “하나님이 보시네요. 달을 보니까 하나님 눈처럼 생겼거든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놈!” 하는 것 같아 얼마나 불안한지…

전에 신문에 난 기사 내용입니다. 어떤 청년이 이틀 동안 굶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부인의 핸드백을 날치기하여 돈을 빼았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배고픈 것을 해결하고는, 배가 부르자 즉시 파출소에 가서 자수했습니다. 배고플 때는 너무 배가 고파서 죄를 지었지만, 배가 부르자 양심에 가책이 생겨 자기 발로 걸어서 자수를 한 것입니다. 양심의 괴로움, 그 양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기는 몰라도 양심은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양심(良心)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죄를 지으면 죄를 지적하는 것이 법()입니다. 양심은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는 그날이라”(로마서 2:16).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양심이 기록하여 저장하고 그 죄들을 자기 입으로 다 실토해 낼 것입니다. 녹음기 가져다가 증언 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4:13).

네가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죄를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시편 50:21).

인간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고 계시니까 사람처럼 눈감아 주는 줄 알았다면 오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침묵하고 계신다고 해서 죄를 눈감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때 죄인의 모든 죄를 각 사람 앞에 차례대로 베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혼자만 알고 지은 죄, 둘만 알고 지은 죄, 쥐도 새도 모르게 지은 죄, 그리고 이미 지나간 옛날에 지은 죄 모두가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편 130:3)

죄는 반드시 드러남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수기 32:23).

어떤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완전범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사람을 죽여 자기 집 마당에 묻고 그 위에다가 나무를 심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알 것입니까? 가끔 신문에 나는 기사내용입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 버렸는데, 이상하게 그것이 들통이 나서 자기가 묻었던 것을 자기 손으로 파내기도 하는 것을 현장 검증할 때 보기도 합니다.

또 이런 기사도 있었습니다. 아가씨를 죽여서 자동차 뒤 트렁크에 실어가지고 아무도 없는 저 깊은 산골짜기에다 묻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는데, 이상하게 그것이 들통이 났습니다.

완전범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벌 받는 일들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혹 감춰지는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까지 그 죄를 감출 수 있겠습니까? “너희 죄가 정녕 너를 찾아 낼 줄 알라.” 모든 죄는 반드시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디모데전서 5:24,25).

필자가 전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가난한 여자가 부자 집에 시집을 갔습니다. 요즘에 시집 올 때 혼수 많이 안 가져 왔다고 구박하는 일 많다고 그러는데, 그 집도 그것이 심했었나 봅니다. 푸대접과 멸시를 받던 그 부인은 그것에 앙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난한 집에서 시집왔다고 나를 괄시하는구나 두고 보자?’라고 한을 품었습니다

남편이 출장 갔다가 돌아온 어느 날, 아내는 맛있는 것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마치 특별대우라도 하는 냥 잘 차렸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이 먹는 그 음식에 수면제를 탔습니다. 남편은 실컷 먹고 마시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부인은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커튼을 쳤습니다. 미리 준비해 놓았던 대못 하나와 망치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남편 머리카락을 젓치고 대못을 머리에 박아 버렸습니다. 수면제에 깊은 잠이 든 데다가 머리에다 대못을 박아버렸으니, 그 남편은 그대로 죽어 버린 것입니다. 피 한 방울 나지 않은데다가 머리카락을 못 위로 싹 덮어 버리니 이상한 표시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는 갑작스런 초상이 나서 난리법석입니다. “아이고, 아이고” 서러운 냥 울던 그 아내는 “어찌된 일이냐?”는 친지들에게 “모르겠어요. 남편이 출장을 잘 갔다 와 잘 잡수시고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어요”라며 꾸며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급사했나 보다”며 그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장례식을 치루고, 무덤을 커다랗게 잘 꾸몄습니다

그 부인은 남편의 유산 전부 처분해서 아무도 모르는 먼 데로 가 마음에 드는 어떤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태연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도시계획으로 인해 전() 남편 무덤이 있는 부근이 개발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청으로부터 “무덤 연고자들은 정한 기한 내에 이장(移葬)을 하라”는 공고가 났습니다

한 무덤에 대해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자, 관청에서 무덤을 옮기기 위해 묘지를 파내었습니다. 무덤을 파 보니 해골이 하나 나오는데, 머리통 사이로 녹 슨 대못이 하나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들이 그 유골의 신원을 확인해 보게 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그 유골의 장본인은 예전에 그 마을 큰 부자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특별한 사인도 없이 급사했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을 죽이고 멀리 가서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부자로 사는 그 부인의 대문을 한 형사가 ‘똑똑똑’ 두드렸습니다. “주인 계십니까? OO씨 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어느새 이름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부인은 아기들을 양손에 이끌고 나오면서 “그런 사람 없는데요” 하고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형사가 주머니에서 녹 슨 대못 하나를 꺼냈습니다. “부인 이것을 아십니까?” 녹 슨 시커먼 대못 하나. 그 부인은 그 못을 보자마자 “으악…!” 하고 졸도해 버렸습니다. 곧바로 그 부인은 수갑을 차고 끌려가야 했습니다

녹 슨 대못을 보고 왜 놀라 졸도해버렸겠습니까? 그 대못은 자기 남편의 머리에만 박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에도 하나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양심에 박힌 그 못은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네 죄가 너를 반드시 찾아낼 줄 알라.” 그렇습니다. 가 범죄자를 반드시 잡아냅니다. 하나님 앞에 죄가 나타날 때 누가 그 심판을 피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욥기 34:21,22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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