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2010

인간의 타락과 형벌(4) -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음

대저 우리는 부정(不淨) 같아서 우리의 () 더러운 같으며 우리는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이사야 64:6).

우리는 부정한 ,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사람이 죄가 더럽다는 것은 다 알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의()도 더럽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엔 죄와 마찬가지로 더럽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선, 인간이 행하는 의로운 행동도 하나님 보실 때는 옷은 옷인데 더러운 옷입니다. 그 더러운 옷으로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습니다.

사람 속에는 타락된 마음, 양심의 부끄러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죄책감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하면 죄에 대한 양심의 부끄러움과 가책감이 없어질 줄 알지만, 그것은 더러운 사람이 더러운 걸레 조각을 걸치고 자기 수치를 가려보려고 하는 것과 같이 쓸 데 없는 짓입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아서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가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입사귀 같으므로.”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고 난 후, 벌거벗은 수치를 발견하고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은 내용이 나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3:7).

아담, 하와 두 사람 밖에 없었지만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만든 옷은 동물들에게 자신들의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워서도 또 추워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한 수치를 가려보려고 옷을 만든 것입니다.

날이 서늘할 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셨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시자, 아담이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창세기 3:8-10).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벗었다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낮에 선악과를 따 먹고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낮 햇볕에 금방 잎이 마른데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앉았다 일어섰다 몇 번 하니까 나뭇잎 옷이 다 부서져 버렸습니다. 저녁 때 하나님이 부르실 때쯤 해서는 줄기만 앙상하게 남았었을 것입니다. 입기는 입었지만 실은 벗은 것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선행과 열심은 마치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자기 수치를 가리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화과가 옷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인간이 행하는 윤리 도덕과 종교생활, 그리고 인간의 모든 의로운 행동들이 자기의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덮지 못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의 선행과 열심으로도 우리의 죄악을 가릴 수 없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지옥까지 몰아갑니다. 이 운명을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전적 타락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태인이나 헬라인이나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로마서 3:9).

유대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헬라인은 이방인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성경은 이미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 똑같이 죄인이며, 죄 아래 있다는 공포(公布)입니다.

기록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치우쳐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10∼12).

하나님께서 보실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라는 말씀처럼, 죄인으로 났으며 실제 죄를 지었습니다. 의인(義人)이란 선한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죄도 짓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선을 행하기도 하고 죄도 지으며,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며, 남을 돕기도 하는가 하면 해치기도 합니다.

선도 행하고 악도 동시에 행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과 악을 섞으면 악이 되듯이, 선악을 함께 행하는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7:20)고 공언(公言)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이 보실 완전한 ,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할 있을 만큼 선한 일을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선은 위선입니다. 선하지 않는 마음으로 선한 행위를 꾸미니, 그 겉치장이 곧 위선이요 가식(假飾)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를 향해서 “화 있을진저 이 창녀들아, 화 있을진저 이 세리들아. 지옥 갈 이 죄인들아”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종교가들을 향해서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마태 23:25)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외식(外飾)이란 겉으로 선한 체 꾸미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 모양을 내고 의로운 체 하지만, 속에는 교만과 욕심, 위선과 음란 그리고 거짓 등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의롭고 경건한 같지만, 마음속에 각종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면 그것이 외식입니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에는 하얗게 칠해 놓았지만 속에는 송장 썩은 것이 가득하여 악취 나고 더러운 것이 외식하는 자의 마음입니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나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잔의 겉이 아무리 깨끗해도 그 안에 든 것이 더러운 것들이라면 먹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위선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영혼이 먼저 깨끗해져야만 마음과 생활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러운 사람은 “더럽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께 자신을 내놓아야 합니다. 죄가 있다면 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주님이 그 죄를 없이 하시고  그 타락된 마음, 악한 마음을 고치시며 거룩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죽은 자도 살리시고 문둥이도 깨끗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죽은 영혼도 살리시고, 우리의 타락된 마음도 깨끗하게 하고 변화시키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거듭나기 전에 세상에서 노름꾼, 사기꾼, 깡패, 바람둥이 그리고 온갖 죄에 빠져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깨닫고 나서 완전히 새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처럼, 주께서 구원받은 자를 새로운 생애로 인도하시는 것을 필자는 보아왔습니다. 주님은  구속받은 자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백성으로, 새 사람으로 만들어 천국으로 이끄십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린도전서 6:11).

하나님은 죄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하실 수 있으므로 사람은 죄악을 감추지 말고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의 죄를 사실대로 폭로시키는 것은 우리를 고쳐주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위선을 벗기시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 입혀주시기 위함이며, 우리의 거짓을 허시는 것은 참된 것으로 세워주시기 위함이며, 저주받은 것들을 뽑으시는 것은 영원한 축복을 심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 비참한 멸망 받을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발은 흘리는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로마서 3:1317).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위에 굴을 파서 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다가 조상 때부터의 시신을 안치해 두었습니다. 동굴 입구는 바위로 문처럼 닫아 놓습니다. 만일 문을 연다면 그 속에서 송장 썩는 냄새가 나올 것입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는 말은, 입만 벌리면 음담패설, 험담, 더러운 이야기가 무덤 문에서 악취가 나오듯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덕() 되는 이야기나 좋은 이야기, 아름다운 말보다는 아주 몹쓸 이야기나 수치스러운 이야기 또는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말을 더 좋아하고 더 재미있어 합니다. 입을 열면 목구멍은 열린 무덤처럼 악취를 내뿜습니다.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독사의 독만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독이 더 무섭습니다.

전에 텔레비젼에서 어떤 유명인사가 했던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이 격분(激憤)해 독이 올라 악을 쓰고 욕을 할 때면 사람의 입에 독이 가득 찬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입에서 거품이 나올 때, 침을 채취해 주사(注射)하면 황소도 능히 죽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독이 무섭습니다.

예전에 들은 어느 시골에서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북이 등처럼 논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가뭄이 심했습니다. 그런 때는 도랑에 흐르는 물조차도 조금이라도 서로 자기 논에 대려고 했던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가뭄에 물싸움하는 데는 형제간도, 이웃도 안면 몰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모처럼 자기 논에 물을 대 놓았는데, 밤사이에 저쪽 논 주인이 이쪽은 막아버리고 저쪽으로 물길을 돌려놓았던 것입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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