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2011

좋은 청중, 준비된 복음전도자

사도행전 10 : 34 ~ 48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하여 고넬료와 그의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이방인 구원이라는 선교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습니다.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들의 생명구원의 선교현장에서 풍성한 생명구원의 사역원리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원리는 무엇입니까?

좋은 청중 
이방인의 첫 열매인 고넬료는 좋은 청중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자하는 준비된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혼자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초청하여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24, 33절). 베드로를 통하여 증거 된 복음을 진지하게 들었고, 말씀을 듣는 중에 임한 성령께 자신을 맡기고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좋은 청중이 있는 곳에 풍성한 생명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좋은 청중은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자신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듣도록 초청하는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준비하고 기다립니다.

풍성한 생명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곳을 보면 그곳에는 반드시 좋은 청중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 청중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좋은 청중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좋은 청중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혼 추수의 현장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혼 추수의 현장은 곧 우리의 삶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추수할 일군이 적다”(마 9:37) 

준비된 복음전도자 
사도 베드로는 준비된 복음전도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증거 하였습니다. 주님의 종 된 자세로 양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 부활하셔서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들을 증거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는 가운데 성령이 말씀을 듣는 이방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의 중생을 확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베드로의 복음증거는 이방인들의 회심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말씀을 증거 할 때 성령으로 말미암는 중생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된 복음전도자를 통하여 놀라운 생명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풍성한 생명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한다면 복음전도자로서 준비되어야 합니다.

준비된 복음전도자는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고 순종할 줄 압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알고 청중들이 받아드릴 수 있도록 전할 줄도 압니다. 청중과 복음의 소통을 성령 안에서 훌륭하게 잘 합니다.

믿음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16:19)

우리의 가정을 세우고 우리를 인도하고 복되게 할 수 있는 한 길이 있다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성경 말씀대로 나아가면 우리는 주 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일을 한다 할지라도 나의 자녀와 아내 즉 나의 가정에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가시길 소망합니다.

첫째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들을 짜증나고 화나게 하지 말라고 볼 수 있으며, 자녀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밀지 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것을 말해보면, 명확하지 않은 기준(경계선), 예상할 수 없는 징계, 균형 잃은 책망, 자녀들에게 분풀이 하는 것 등일 것입니다.

둘째는 자녀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항상 좋은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훈계가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0-11절 말씀을 보면 훈계는 우리를 유익함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훈련시키지 않으십니다.
잠언 13장 24절을 보면 매를 아끼는 자, 차마 때리지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자녀를 교양(교훈)으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교훈으로 키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적절한 교훈을 준다는 말입니다. 먼저는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어릴 때 일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 때에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또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녀들이 어린 때를 국한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성장해도 부모님은 여전히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를 알려줘야 합니다. 어떤 것이 바른 신앙생활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지,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영적인 가르침을 해 주어야 합니다.

왜 이런 가르침이 필요합니까?
어느 대학기관에서 연구를 해보았더니 자녀들이 자라는데 있어서 교회가 주는 영적인 영향력은 1% 라고 합니다. 반면 가정이 주는 영적인 영향력은 무려 83%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가르치고 훈련시키지만 가정에서 자녀를 영적으로 양육시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부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말씀과 기도로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들로 세워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목동제일교회)

‘교회는 다니는데…’

저는 대학교 3학년 때 휴학하고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고 4학년으로 복학해서 교회라는 데를 처음 갔습니다. 법과대학에서 사법시험을 치를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교회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 무식이었습니다. 죄가 뭔지도 말랐으니까요.

그런데 교회 나가자마자 목사님에게 들은 말이, 제가 죄인임을 고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저를 화나게 했습니다.

'나는 나중에 죄인을 다스릴 검사가 될 사람이네, 교회 처음 나온 사람한테 죄인임을 고백하라니, 목사님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인가?'

하지만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진짜 무식한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목사님에게 배운 것이 많았습니다. 예글 들면, 기도는 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법고기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회를 다니다 1년 반쯤 지나서 깨달은 사실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사법고시 합격보다 더 급한 기도제목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도제목이란, 제가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문제였습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느냐고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도 평생 교회 다닐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말입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 교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도 1년 넘도록 교회 다녔지만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 앞에 굴복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에게도 혹시 저와 같은 경험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냥 교회만 다니지 마십시오.
당신이 만약 모태신앙이라면, 당신의 어미니의 예수님이 아닌, 당신의 아버지의 예수님이 아닌 당신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요 주님으로 만나지 못했고, 예수님이 마음속에 살아계신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당신도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나를결정한다중에서...주영수>

99%는 아무 의미없다 100% 전부를 요구하신다 - EM바운즈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 즉 자신에게 속한 것과 자신에게서 비롯하는 것 모두를 바치는 사라에게는 기도를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이것이 온전한 기도의 비밀이자 능력 있는 기도의 조건이다. 그런 기도는 놀라운 결실을 맺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전부를 요구하신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다. 주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없다.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하나님과 세상과 자아[自我]를 동시에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쓸모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없다.

우리의 전인(전인)이 기도해야 한다. 전인, 곧 생명과 마음과 기질과 정신이 모두 기도에 동참해야 한다. 모든 요소가 제각기 기도에 관여한다. 의심, 두 마음, 산만한 감정 등은 기도 골방에 어울리지 않는다.

우선, 우리 몸이 기도에 참여해야 한다. 
이것은 곧 우리의 기도하는 태도와 자세를 반영한다. 기도할 때 몸을 엎드리는 자세는 영혼의 복종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도 교만하게 우쭐한 마음과 산만한 정신 상태로 단지 형식에 불과한 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도할 때 어떤 자세로 기도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단6:10]
솔로몬도 성전을 봉헌할 때 무릎을 꿇고 시도했다[왕상8:54]
주님도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에게 배신당하시기 직전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다[눅22:41]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그 당시 영혼의 상태에 가장 걸맞은 자세로 취하기 마련이다. 몸은 그런 식으로 영혼과 더불어 기도에 동참한다.
기도란,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간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이 시간에 무엇을 구할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헛되고 악하고 무익한 생각은 모두 배제하고, 온전히 하나님게 정신을 집중해 하나님과 하나님께 구할 것과 과거의 축복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마음도 기도에 동참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에 즐거이 복종하려면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을 바쳐야 하듯이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리는 데에도 온전한 마음이 필요하다.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시119: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도 온전한 마음이 필요하고, 하나님을 구하는 일에도 온전한 마음이 필요하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복 있는 사람"[시1:1]이라고 일컫는다. 하나님은 온전한 마음의 소유자에게 임하신다.

인간의 모든 힘이 기도에 동참해야 한다. 하나님은 두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두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