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2011

새 성품의 작용 – 진실한 마음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벧후3:11)

진실한 마음과 상반되는 것을 육에 속한 마음이다. 거듭남의 놀라운 특성들 가운데 하나는, 이전에는 단지 육에 속한 생각들로 가득했던 마음에 진실함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함의 주입은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창조의 결과로서, 예전에 있던 것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지성(知性)좌소(左所)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 그는 두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두뇌는, 삶에서 배워 왔던 온갖 종류의 악행들을 자동적으로 잊어보리지 않는다.

온갖 종류의 죄악들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아 있고 그것들은 옛 성품의 시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믿게 될 때에 새로운 마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이 새로운 마음은 속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따라 새롭게 되고, 소성되며, 활력을 얻게 된다.

두 성품 사이의 다른 여러 대조점과 마찬가지로, 두 마음 사이에 서는 아마도 더더욱 무시무시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 성품은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잘못된 일을 행하기 원한다.

반면, 새 성품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알고 옳은 일을 행하기 원한다. 따라서 하루 동안에도 두 성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대안들이 설정되는 것이다.

진실한 마음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라고 말하는데, 육에 속한 마음은 이와 상반되는 다른 어떤 선택을 제시하므로, 그 두 세력은 투쟁을 계속하게 된다.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신자는 빌립보서 25절에 있는 바울의 도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신자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되, 그것을 모든 관점보다도 높은 그리스도의 마음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4:23).

영적전쟁을 영적승리로/크레이그 매시/나침반

하나님의 능력을 알라

에베소서는 우리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신비를 드러내 보여 준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보는 것은 영원한 과거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영원 속에서 예정, 계획 그리고 뜻을 가지고 계신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미래가 있어 하나님께서는 이 영원에서 자신의 목적을 실천하시며 그 분이 얻기를 바라시는 것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영원 사이에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과거부터 가지고 계셨던 그 예정하신 뜻이 어떻게 해서 영원한 미래에 성취되는가를 보여 주는 소위 우리가 시간이라고 말하는 기간이 있다.

바울의 기도는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의제를 짤막하게 다루고 있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이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기를 기도하고 있으며, 주관적 측면에서 그는 성도들이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1:18-19) 갈망하고 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의 그 분의 주관적인 면-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먼저 객관적인 면을 알고 난 이후라야 주관적인 면이 역사하기 시작한다. 성도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무심코 아예 순서를 뒤바꾸어 놓는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영원하신 목적을 아는 것과 내적인 역사를 옆으로 제쳐두고 있다. 나는 더 거룩해질 수 있고 나는 더 승리를 누릴 수 있고 나는 더 영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성도들에게 관심있는 부분은 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관심을 갖는 순서는 이것이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알았을 때 그분은 우리 안에서 목표를 이루실 때까지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우리의 개인적인 승리나 사역은 모두가 그분의 영원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도 이 질서를 바꾸어 놓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승리, 거룩함 혹은 자신들의 기도의 응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전혀 찾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을 추구하고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한 가지만을 추구하는 것 같다즉 주님 앞에서 자신들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에게서의 관심은 자신들의 문제에만 편중되어 있다. 그들이 평화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바라고 구하는 것은 구원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일이란 온통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전부는 자신의 주위만을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실로 우리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더 필요하며 또 자신의 승리와 거룩함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의 능력과 힘과 해방과 구원 또한 틀림없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먼저 그 분의 역사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아는 비젼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런 후에 그 분은 그 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제한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히 우리에게 개인적인 승리나 거룩함을 주는 데 있지 않다. 그 분은 우리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해야할 하나님의 일과 모든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권능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우리 안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내적인 역사는 외적으로 아는 것에서 시작되며 내적인 능력은 외적인 비젼에서 온다. 먼저 비젼이 있어야 능력이 생기며 외적인 것이 있어야 내적인 것이 생기는 것이다.

비젼이 없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역사하시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비젼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그 분의 계획을 실행하도록 도와 준다.

사도 바울은 그 분의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뿐만 아니라 그 분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1:9)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윝취만 니/생명의말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