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6/2009

시대를 뛰어넘는 기도와 강한 영분별

(마 10:41-42)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즘은 인본주의와 이단사상과 물질주의, 혼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성령님을 좇으십시오. 어떤 것도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건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목사라도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에서 큰 교회라 해도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모세도, 세례요한도, 사도바울도, 베드로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분과 분수를 알고 오직 예수님으로 판단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날마다 주님의 성령으로 호흡하며 말씀으로 살아가십시오. 주님의 말씀 뜻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사십시오.

기도를 통해서 말씀 공부를 통해서 전도를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섬김을 통해서 주님과 동행하면서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주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예수님이 아버지와 성령님이 하나이심 같이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성령님께서 완벽하게 온전히 알려주시고 분별하게 해주십니다. 흠도 점도 없이 평강가운데 의로운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래서 사람부터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어떤 목사님이나 어떤 분이 말씀 전하실 때 그분의 속에 있는 영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십니다. 교만이 있는지, 거짓이 있는지 없는지 그 심령과 그 선포하는 말씀이 동일한지 분별하게하십니다. 저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도 주님이 알게 해주시기에 날마다 회개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성령에 민감하면 조그마한 것도 회개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정말 친밀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골방기도에 부터 시작하여 주님을 찾고 의지하고 늘 매사에 예수님을 의지하고 자신을 드리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합니다. 주님 말씀 뜻을 이루고자 하십시오. 자기를 죽여 드려서 드리십시오. 그러면 주님을 닮아 갈 것이요. 주님과 친밀해 지고 주님 음성을 알아듣게 될 것이요. 주님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친밀해지면 민감한 것까지 알게 해 주십니다.

41절 말씀 보면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무슨 말씀입니까? 즉 선지자를 볼 줄 아는 자는 진짜 선지자를 만날 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선지자를 인정하여 선지자를 영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이 말씀은 의인은 의인을 알아보므로, 주님이 인정하는 의인으로 인정하여 의인으로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받아서 깨달아 전하는 자입니다. 의인은 무엇입니까? 주님 앞에 흠도 점도 없이 거룩한 주님이 의인이라 칭하는 온전한 자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사람일까요?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는 자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 안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는 사람이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선지자라 이름 하는 자, 의인이라 칭하는 자 안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과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르지 않는 이상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님을 섬기는 사람이 선지자의 삶을 사는 것이요. 의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뜻을 좇아 행하지 않는 자가 어찌 의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의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많이 아는 것? 절대 속지 마십시오. 사탄마귀도 성경까지 다 압니다. 사탄마귀는 과거에 일을 다 알고 우리를 정죄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시길 힘쓰십시오. 우리의 길과 진리요 생명이며 우리 삶의 기준이며 척도요 모범입니다. 목적과 목표되십니다. 끝도 한도 없이 귀한 분입니다.

그런 분인데 누굴 좇습니까? 무엇을 좇습니까? 누구를 의존해야 할까요? 예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마치 어린 아기가 부모님을 의존하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도움을못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작은 자일까요? 끝도 한도 없이 작습니다.

어린아이가 나 좀 봐달라고 부모님께 울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저도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그것이 저의 내려놓는 과정이며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면 어린아이들의 울며 보채는 일이 귀찮지 않습니다. 사역이 먼저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항상 있어야 하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사역 그 자체가 열매가 되지는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가가 꼭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예수님의 영으로 자라나며, 성경말씀을 깨닫고 미래에 될 일도 성령의 조명하에 깨닫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선지자의 기름부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교회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교회생활하면서 사람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교회를 바라보거나 목사를 바라보거나 남편을 바라보거나 연장자를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고 예수님만 배우려고 하십시오. 사람을 배우려하다가는 다 시험 들고 다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어제 오늘이 아니라 신구약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선지자인지 누가 의인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 못하면 거짓선지자를 진짜 선지자로, 진짜 선지자를 거짓선지자로 판단하여 핍박하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오늘날 이 마지막 시대에는 분별의 영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영분별의 영이 확실하게 있으려면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과 성령님과 친밀해야 하며 말씀을 잘 배워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친밀한 교통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 있어야합니다. 이 혼탁한 이 시대에 확실하고 강한 영분별을 구하십시오.

성경에도 얼마나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나옵니까? 겉은 목사이나, 속은 노략질하는 삯군 목자들, 오늘날은 정말 헌신된 목자들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몇 년 전부터 헌신된 전도사를 임명하려 했으나 사례비 때문에 다 걸립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자비량 선교를 하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너무나 헌신된 목자가 귀한 시대입니다.

주님은 사례비를 보는 사역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바친 분 아닙니까? 그럴지 못할 지언정 적은 사례비도 감사할 줄 알며 자신의 신분과 분수를 알며 동역하려는 사역자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 분이 정말 귀합니다. 누구든 주님의 심령을 갖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무장 되어있어야 합니다. 가장 기초가 그것입니다. 그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어디로 보내시든지 가며, 무슨 일을 시킬지라도 감사히 합니다. 사례비 없고 자비량으로 하라 해도 할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주님과 친밀해서 주님의 말씀으로 자라나고 거룩해 지고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주님을 닮아 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될때 거짓선지자와 진짜 선지자인지 누가 의인인지 아닌지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42절 말씀 보십시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제자들이라 했는데, 제자들에게도 급이 있습니다. 500여 제자, 70제자, 12제자 즉 제자들도수준과 영성이 다릅니다. 그러나 제자라 할 수 있는 공통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오케이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친밀히 많이 알고 더 잘 섬기고, 더 지혜롭게 할 수 있는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느냐, 여기에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42절 말씀에는 작은 제자라도 제자로 인정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면 상을 잃지 않다고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도 축복받고 하늘나라에서도 축복받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노숙자분들이 구걸할 때 예수님의 심령으로 도와주면 하나님은 또 다른 상급을 예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분들, 우리에게 갚을 기회가 없는 분들에게 많이 도와주십시오.

더더욱 없는 자들에게 나눠주기에 힘쓰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 사랑의 표현입니다. 지금 당장 그들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지라도 그들에게 이런 표현을 하면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구하는 것이 이 세상 즉 없어질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본질적으로 바라는 것이 천국, 영원한 기업 아닙니까? 이 세상에 있는 것은 결국 없어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답을 못 받는 다 하더라도 확실히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답을 받을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면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냥 말로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랑 표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또한 상대하기 싫은 원수라 할지라도 그들을 도와주면 그들의 머리위에 숯불을 올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함과 행함으로 그들에게 실제적으로 보여준다면 우리가 진실하고 거짓이 아님을 그들이 느끼고 예수님의 열매를 보게 됨으로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살아가려면 항상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시고 왕으로 섬기십시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세요. 무시하지 마시고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면 죄에 금방 노출됩니다. 지식에 그치게 하지 마시고 배운 것을 심령에 새겨 기억해서 실천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 것이 됩니다.

지식에 그치는 것은 열매가 아니죠. 그것만 갖고 은혜라 하지 마십시오. 교만만 쌓을 뿐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넘어집니다. 목사들부터 성도들에게 이르기까지 거기에 넘어집니다. 하늘나라 가 보았더니 자신의 상급이 어마어마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얼마 없어 회개하는 사람들도 꾀 있습니다. 사람들의 평판과 평가, 높이는 것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기준으로 두시고 항상 예수님과 성령님과 친밀하게 지내시어 항상 어느 순간에도 그분을 놓치지 마십시오. 어린 아기가 날마다 누구를 가장 많이 생각할까요?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단어 중에 '엄마' '아빠'가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사람사이는 이러한 부모와 아이 사이 이상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십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서는 너무나 작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의존하십시오. 그래야 큰 믿음으로 갑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잘 배워야 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이 마지막 혼란한 시대에 예수님처럼 확실한 영분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이 기준이 되고 주님과 동행하며 오차가 없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항상예수님을 왕, 목자로 삼아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말씀을 배우며 주님만을 따라가게 도와주시옵소서.배운 것을 확신하고 순종하여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열매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어디든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고 주님의 일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매사에 열매맺게, 찬양과 기도로, 섬김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선지자들을 영접하여 선지자 상을 받게 하시고의인을 영접하여 의인의 상을 받게 하옵소서. 제자들을 영접하여 제자의 상을 받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를 그와 같은 삶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 성령님을 통하여 날마다 예수님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천안 생명의 교회>

하나님이 다시 고개를 돌리실 때

명강사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세미나에서 그 강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강사는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높이 쳐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돈을 갖고 싶지요? 어디 이 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한 번 들어보십시오."

그러자 세미나에 참석한 그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한 사람에게 이 돈을 드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먼저 나의 손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쳐들었던 10만 원짜리 수표를 손으로 이리저리 마구 구겼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이 수표를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강사의 그 행동에 놀라면서도 역시 거의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좋아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 10만원 짜지 수표를 땅바닥에 던지더니 구둣발로 밟으며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구겨지고 더러워진그 10만 원짜리 수표를 집어 들고, 아직도 그 돈을 갖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또다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때 강사는 힘찬 어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10만 원짜리 수표를 마구 구기고 발로 짓밟고 더럽게 했을 지라도 그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10만 원짜리 수표는 항상 10만 원짜리 수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실수라는 이름으로 또는 패배라는 이름으로 겪게 되는 그 아픔들.. 그런 아픔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우리 인간이 실패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구겨지고 짓밟혀도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수표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수표와 같은 영원한 가치를 우리에게 부여하시고 그리고 사랑하시며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에 악취를 풍기는 죄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와 교제를 새롭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기십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기저귀에 똥을 싸는 것을 보면 내게 끊임없이 ‘죄’를 범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로서는 오물이 묻은 기저귀를 좋아할 리 만무했습니다. 그 냄새는 내 고개를 돌아가게 했고 나를 한 발짝 물러나게 했습니다. 내 관점에서 배설물이 묻은 기저귀를 갈아 줄 때까지 나와 아이들의 교제가 연기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배설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며 기저귀를 갈아 줄 때까지 계속 울어 댔습니다. 그때 아내가 나와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아이들을 씻겨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며 로션이나 파우더를 발라 주는 등 모든 것을 깨끗하게 만들고 나서야 나와 아이들의 교제도 회복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 속에 있는 죄 때문에 고개를 돌리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을 뉘우치고 울면서 자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개입하셔서 그분의 순 전하고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씻기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가 회복되고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최고의 것을 계획하시므로 우리도 우리를 지독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을 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지닌 본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살아가려면 상당한 믿음과 사랑이 요구됩니다. 오직 성령님만 우리가 그런 사랑을 소유하는 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모글러라는 현대 심리학자는 인간이 고백하지 않고 속죄 받지 않은 죄로 인하여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병들어 있는 존재가 현대인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가정 불화의 원인도 대부분 죄 때문입니다. 서구 선진국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신과 의사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바로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잠이 안 오고 불안합니다. 죄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 국가를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교회가 이 죄의 문제를 적당히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죄에 대하여 자기 방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의미로 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관계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하여야 합니다. 무슨 방법으로든 이 문제는 해결해야만 합니다. 현대인들은 죄에 대한 그런 갈등, 그런 고통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도 죄 사함을 받았으면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확신은 열매와 연결되지 않으면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함을 받았다 하면서도 마음대로 죄를 밥 먹듯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보아도 모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의로운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마가복음 2장 17절> <출처:우림과둠밈>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증거/예언을 이루심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서는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이제 두 번째로는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알아 볼 것입니다. 예언의 성취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씀하시고 그 예언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성취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전능하여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어떤 일을 미리 말씀하시고 그 예언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곧 이 예언을 이루심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최고 힘 있고 능력 있으신 분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어떤 사람이 어떤 계획을 가졌는데 더 힘센 사람이 나타나 그 일을 방해 한다면 그 뜻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대해서 미리 예언하시고 그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할 만한 어떤 존재가 없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최고의 신이시고 유일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사야 44장 6-7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내가 옛날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고하며 진술할 자가 누구뇨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고할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앞일을 미리 말씀하신 후에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곧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섭리하고 다스린다는 증거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증거이며 그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임에 대한 증거요 다른 신이 없다는 증거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증거입니다. 많은 신이 있으나 그것들은 참 신이 아니요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사의 타락으로 된 것이요 사람들이 욕심을 좇아 만든 생명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사야 44장 24-26중절을 보면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거짓말 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 점치는 자를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이 말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나타내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예언들 /예루살렘 성전 재건
이사야 44장 26중-28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북 이스라엘이 애굽의 포로가 되고 남 유대가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 애굽이 무너지고 바벨론이 세계를 정복하였으며 그 후 바벨론이 무너지고 메대와 바사국이 일어났는데 바사국의 왕인 고레스 왕의 허락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이방의 포로에서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으며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하여 3차에 걸쳐 귀환함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다 실제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언이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씀하신 것으로서 정한 때가 되면 반드시 일어납니다. 이것은 구약의 역사가 확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시대에 이루어질 예언이 남아 있습니다. 마태복음 24-25장은 작은 요한 계시록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며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말씀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훼파(이미 일어난 역사적 사실)
마태복음 24장 1-2절을 읽어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46년 동안 지은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자랑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들입니다.

주후 70년에 로마 장군 타이터스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다섯 달 동안 예루살렘 성의 출입 통로를막고 열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에서는 허기진 자들이 어린아이까지 잡아먹는 일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 예루살렘 성은 정복 되었고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이 성취되어 그 후 예루살렘 성전은 벽돌 위에 벽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35년에 제 이차 침략이 있었으며 그 때 로마황제는 이스라엘인들을 나라에서 추방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세계 120여 개 국에 뿔뿔이 흩어져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2차 대전 때에 무려 육백만 명 정도가 기차로 실려 가서 죽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예언이 성취 된 것들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예언들/큰 환난 전에 있을 징조들

 
1] 큰 환난 전에 있을(2-3) 징조들(마24:3-8)
제자들의 질문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이 자랑으로 여겼던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니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시 묻기를 언제 성전이 무너질 것인지와 성전 무너지기 전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가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파괴 될 때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시대 말에 있을 큰 환난 전에 있을 징조들과 큰 환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답변
1. 거짓 그리스도들의 미혹이 있을 것임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2. 내란과 전쟁이 있을 것임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3.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임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장 3절부터 8절까지는 큰 환난 전에 있을 징조들을 말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의 미혹이 있을 것이며(4-5), 내란과 전쟁이 벌어질 것이며(6-7),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8). 이 사실들은 벌써 이루어진 사실들입니다. 지금은 임박한 때입니다. 시대의 표적을 볼 줄 모르는 자들은 눈이 감긴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들은 깨어나야 합니다.

[2] 시대 말에 있을 일들/시대 말에 있을 일들(마24:9-14)
1. 제자들이 예수 이름 때문에 받게 될 고난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2. 사람들 사이에 있게 될 일들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3.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이 있을 것임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4.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짐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5. 많은 인내가 요구 될 것임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6.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임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9-14절까지는 시대 말부터 세상 끝까지 있을 일들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예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며(9-10),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이 있을 것이며(11),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고(12-13),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14). 이것들도 이미 이루어진 일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임박한 때입니다. 믿는 자들은 깨어나야 합니다. <출처:예수님따라가기>

바다와 땅이 상징하는 것(세상과 교회)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바다는 땅을 삼키고 있었고 뭍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물은 한 곳으로 모으고 뭍은 드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한 곳에 모인 물은 바다라 하시고 뭍은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각 종류의 풀과 과목이 나게 하셨습니다. 곧 바다가 상징하는 것은 땅을 삼킨 것으로서 사망을 상징합니다. 땅은 각종 생명체가 자라는 곳으로서 생명을 내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계시록의 두 짐승을 푸는 아주 좋은 비유입니다.

계시록 13장에 나와 있는 두 짐승 중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이 있습니다. 바다는 생명을 삼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세상을 상징하고 땅은 생명을 내는 장소로서 교회를 상징합니다. 마지막 때는 세상 정치가 통합되어 세계 단일정부가 형성 될 것이며 그 여러 통합 국가들 중에서 한 대표가 뽑힐 것인데 그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요 종교가 통합 될 것인데 그 종교인들 중에 대표가 거짓 선지자입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올 것이고 거짓 선지자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라도 여기에 많이 속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땅에서 나온 짐승인 거짓 선지자는 첫 번째 바다에서 나온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위해 우상을 만들게 하고 그 우상에게 절하게 하고 절을 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죽이게 될 것입니다(계13:15)

그러므로 땅에 남은 성도들은 마흔 두 달 즉 삼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에게 성도들의 권세가 무참히깨지게 되고(계13:7) 적그리스도는 마흔 두 달 동안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시작 된 후 약 삼년 반 쯤 지나서 큰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계16:17-20) 마태복음에서는 마치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전에 선 후 바로 큰 지진이 있는 것처럼 기록 되어 있지만 이 재앙의 때는 마지막 재앙인 일곱째 대접 때에 있는 재앙입니다. 요한 계시록 16장에서는 여기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재앙의 때는 예수님 재림 바로 직전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다는 세상을 상징하고 땅은 생명체를 내는 장소로서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란 건축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나온 무리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세상과 상관없는 거룩한 자들이어야 하는데 교회가 타락하고 세상과 구별이 없이 하나가 되어 결국 우상의 종교와 통합하여 하나가 되고 그 가운데서 대표자가 선지자의 이름으로 나오나 그자가 바로 거짓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세를 만난 교회의 현 주소입니다. 이것에 눈을 뜨고 준비치 않는 자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세상 정치인 중에서 나와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스리게 될 자를 말하고 땅에서 나온 짐승은 교회에서 나와서 세계 여러 교회를 다스리게 될 자를 말합니다. 이것에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출처:예수님따라가기>

앞으로 이루어질 예언들/큰 환난이 시작 되는 표적

큰 환난이 시작 되는 표적(마24:15-26)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이것은 큰 환난의 시작이 되는 사건입니다. 요한 계시록 13장 14-15절을 보면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두 짐승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첫 번째 짐승인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세상에 속한 정치인으로서 세계 여러 나라를 마흔 두 달 즉 삼년 반 동안 다스릴 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올 것이나 그의 정체는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짐승인 땅에서 나온 짐승은 종교에서 나오는 짐승으로서 그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나올 것이나 그의 정체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여기에서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짐승의 우상을 말하고 거룩한 곳은 하나님의 성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전에 우상을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 계시록 13장 14절을 보면 그 우상은 짐승의 우상 즉 적그리스도의 우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전이란 조금 더 지켜보면 명확히 드러나겠지만 제 3성전을 말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질 성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광야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베푸신 식량을 따라 만든 이동 성전으로서 성막이 있었습니다. 그 이동 성전이 솔로몬 왕에 의해서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가 바벨론에게 멸망하면서 솔로몬 성전이 다 훼파 되었고 바사국의 고레스 왕 때에 이스라엘민의 예루살렘 귀환 명령이 내려져 스룹바벨에 의해 성전이 재건되었습니다.

이것이 해롯에 의해 증축 되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이스라엘은 버림을 당하게 되고 주후 70년경에 로마 군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135년에 로마 황제의 추방령을 받고 이방에 뿔뿔이 흩어졌다가 1948년 5월 18일에 과거 조상들의 땅에 고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므로불가능할 것만 같은 하나님의 예언들이 놀랍게 성취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과 이슬람권간에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분쟁을 종식시킬 해결사로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이며 그 방법은 다니엘의 말한 바 칠십 이레 중 아직 성취 되지 않은 마지막 한 이레 즉 칠년 동안 평화 우호 조약을 체결하게 될 것이며 그는 이 업적을 가지고 평화의 왕의 이름으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절반이 지난 후에 약속을 어길 것입니다. 그리고 마흔 두 달 즉 남은 삼년 반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 가는지 더 지켜봐야 정확한 것을 알겠지만 예상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원래 조상들이 예배 드렸던 성전 터에 그들이 다시 성전을 건축하는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지역은 현재 이스라엘 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7년 평화 협상 카드로 가지고 나올 가능성이 제일 큰 것은 바로 이 문제일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평화 협상이 진행 되고 제 삼 성전이 세워 진다면 그곳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우상이 세워 질 장소가 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 갈 지에 대해서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예상 되는 것은 바로 이렇습니다. 이 성전에 우상이 세워지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진노는 시작 됩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통치할 마흔 두 달 동안은 재앙이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에 대한 표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7년 평화 우호조약을 체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7년 평화 우호 조약이 체결 되고 그 절반이 지난 후에 성전에 우상이 세워지는 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표적입니다. 이 사건이 바로 본격적인 환난의 시작점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비밀입니다. 항상 거의 모든 것이 두 방면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공개 되어 있고 또 한 방면은 은밀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공개된 부분은 누구나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은밀한 부분입니다. 은밀한 부분은 우리의 마음속에 우상이 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밀하게 우리 마음을 빼앗는 우상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출처:예수님따라가기>

예수만이 구원의 길인가?

흔히 구원이 기독교에만 있다고 주장하는 신자들에게 독선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어리석은 세상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를 믿는 성도라는 분들중에 종교다원론 운운하는 마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든가 아니면 성경에 있는 예수와 다른 예수를 얘기하는 것이 무슨 멋처럼 간주되는 한심한 세태를 봅니다. 마귀의 전법중 가장 고단수의 전법입니다. 예수믿는 것도 좋고 다 좋은데 예수만에서 "만"자만 빼고 얘기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이좋고 매부좋고 다 좋지않느냐 이거지요.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기독교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종교의 범주에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종교나 철학은 인간이 시작한 것이지만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친히 구약을 통하여 약속하신 계시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세상종교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절대자가 되려하거나 아니면 알 수 없는 이 존재를 찾으려 몸부림치는 것이라면 기독교 신앙은 유한한 인간이 찾을 수 없는 절대자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신 계시에 근거한 것입니다. 세상종교가 도덕적인 선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기독교신앙은 초월적인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에게서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세상종교를 같은 배열에 놓고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논리적 모순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먼저 인간의 실존적 현실을 알려줍니다. 우리 인간이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왕일지라도 죽어 썩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타고났는지 이유를 알려줍니다. 구약은 바로 이 죄로 인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 역사를 통하여 오실 구원주께서 어떻게 우리의 절망적 실존을 해결하실 것인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편지이며 역사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오실 고귀한 통로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택하시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우리를 죽음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실 구주가 오실 것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라는 히브리말은 바로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33년간의 삶을 통해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완전한 인간의 본을 보이시고, 죄없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묶고 있던 죄의 사슬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또한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우리의 당면한 실존 즉 죽음의 현실이 더 이상 우리를 묶지 못하고 육신이 죽을지라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부활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의 실존을 체험하는 존재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가 부활에 근거합니까? 세상의 어떤 종교가 우리에게 소망을 허락합니까? 당장 1초앞의 현실도 내다보지 못하는 부질없는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하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야말로 금새 타 죽을지도 모르고 불구덩이속으로 뛰어드는 여름밤 불나방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명심하십시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절대자이며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임을.

인간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이 될 수도 없는 명백한 현실을. 우리의 육신이 이 땅에서 죽음앞에 고통당할지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에게는 죽음 저너머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의 남은 삶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이 땅에서 나타냄으로 한 영혼이라고 더 구원으로 인도하는데 의미가 있음을...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라†>

베드로전후서에서의 하나님의 경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9-10).

베드로는 여덟장 밖에 되지 않는 그의 두 서신에서 창세 전 영원 과거부터(벧전1:2, 20) 영원 미래의 새하늘과 새 땅까지(벧후 3;13)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다루었다. 그는 선지자들이 예언했고 사도들이 전파했던(벧전1:10-12)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중요한 사항들을 다음 네가지 측면에서 밝혀준다.

(1) 삼일(삼위일체) 하나님의 측면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 안에서 미리 아신 바에 따라 한 무리의 사람들을 선택하셨고(벧전1:1-2, 2:9), 그들을 그분의 영광 안으로 부르셨다(벧전5:10, 벧후 1;3). 그리스도는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알고 계셨으나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신(벧전1:20) 분으로서, 대속하는 죽음(벧전2:24, 3;18)과 생명 안에서의 부활과 능력 안에서의 승천을 통하여(벧전1:3, 3:21-22)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구원하셨다(벧전1:18-19,2). 그 영은 하늘에서부터 보내지시어,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셨다(벧전1:2, 12, 22, 4:14). (천사들도 이러한 것들을 자세히 보기를 갈망한다 - 벧전 1:12).

삼일 하나님의 신성한 능력은 구속받은 사람들을 보호하여 완전한 구원에 이르도록(벧전1:5), 그들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공급했다(벧후1:3-4). 또한 하나님은 여러가지 통치적인 심판들로(벧전1:17, 2;23, 4:5-6, 17, 벧후2:3-4, 9, 3:7) 그분의 백성들을 징계하시며(벧전5:6), 모든 은혜로 그들을 온전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터를 튼튼하게 하실 것이다(벧전5;10). 주님은 그분의 백성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는 기회를 갖도록 하시려고 그들에 대해 오래 참고 계신다(벧후 3:9, 15). 그런다음에 그리스도는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분의 완전한 구원을 가지고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다(벧전1:5, 7-9, 13, 4:13, 5:4).

(2) 믿는이들의 측면에서
하나님의 소유인 믿는이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았고(벧전 1;1-2, 2:9), 그분의 영광과 미덕으로 부름받았으며(벧전 2:9, 3:9, 벧후1;3, 10),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았고(벧전 1;18-19),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거듭났으며(벧전 1:3, 23),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구원받았다(벧전3:21).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고(벧전1;5), 정결하게 되어 서로 사랑하고있으며(벧전1;22), 말씀의 젖을 먹음으로써 자라고 있고(벧전2;2), 생명 안에서 영적인 미덕들을 발전시키고 있으며(벧후 1:5-8), 변화되고 건축되어 영적인 집, 곧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 체계가 되어가고 있다(벧전 2:4-5, 9).

믿는 이들은 그분의 미덕들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족속이고, 왕들인 제사장 체계이며, 거룩한 나라이고, 그분의 개인적인 소유가 된 특별한 백성으로서(벧전2:9) 그분의 통치적인 심판으로 징계를 받고 있으며(벧전 1:17, 2:19-21, 3:9, 14, 17, 4:6, 12:19, 5:6. 9),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뛰어난 품행을 지니고 경건하게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다(벧전 1:15, 2:12, 3;1-2).

또한 그들은 (본을 보이는 장로들의 목양 아래서, 벧전 5:1-4)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들로서 은사를 공급하고 있다(벧전 4:10-11). 믿는 이들은 풍성하게 공급을 받고 주님의 영원한 왕국(벧후1:11)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주님께서 오시기를 고대하며 재촉하고 있다(벧전 1;13, 벧후 3;12). 더 나아가 믿는 이들은 영원안에서 의가 거하는 새하늘들과 새 땅을 고대하고 있으며(벧후 3;13), 우리 주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으로 계속 자라고 있다(벧후3;18).

(3) 사탄의 측면에서
사탄은 믿는이들의 대적, 마귀로서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삼킬 사람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벧전5:8).

(4) 우주의 측면에서
타락한 천사들은 유죄 판결을 받고 영원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벧후2:4). 경건하지 않았던 고대의 세상은 홍수로 멸망했고(벧후2:5, 3;6), 경건하지 않았던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었다(벧후 2:6). 변절 가운데 있는 거짓 교사들과 조롱하는 이단적인 사람들과 악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인류는 모두 심판받고 멸망할 것이다(벧후2:1, 3,9-10, 12, 3:3-4, 7, 벧전4;5). 하늘들과 땅은 불살라질 것이고(벧후 3:7, 10, 11), 죽은 사람들과 귀신들은 모두 심판을 받을 것이다(벧전 4;5). 그다음에 새 하늘들과 새 땅이 올 것인데, 그곳에는 하나님의 의가 영원토록 거할 것이다(벧후3;13).

바울도 그의 글에서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제외하고) '이런 것들'에 관하여 말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바울의 글들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글을 강화시켰는데, 특히 모든 믿는 이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적인, 징계하는 심판에 관하여 언급하는 면에서 그러했다. 바울은 그의 글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거듭 강조했다(고전 11:30-32, 히12:5-11, 2:3, 4;1, 6:8, 10:27-31, 39, 12;29, 고전3;13-15, 4;4-5, 고후5:10, 롬14:10). 베드로가 바울의 글들을 칭찬하며 추천한 이유는 틀림없이 이러한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추천은 얼마나 아름답고 탁월한가! 비록 고린도 사람들이 분열적인 선호에 따라 베드로와 바울을 나누려고 했을지라도(고전 1:11-12), 베드로는 바울을 추천하면서 바울도 자기와같이 '이런 것들'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바울의 글이 잘못 풀이되어서는 안되고, '성경의 다른 부분'과 똑같이 중시되어야 하며, 구약과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드로가 이렇게 추천하는 것은 작은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신약의 믿음에 대하여 바울에게 면전에서 책망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갈2:11-21).

이것은 베드로가, 요한과 바울과 자기 자신 같은 초기의 사도들이 비록 일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용어와 말하는 방식과 어떤일에 대한 관점과 가르침을 제시하는 법은 서로 달랐을지라도, 그들이 동일하고 유일한 사역, 곧 신약의 사역(고후 3:8-9, 4;1)에 참여했다는 것을 담대하게 인정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역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그 초점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공급한다. 삼일 하나님은 육체되심, 인간생활, 십자가에 못박히심, 부활, 승천의 과정을 통과하신 후에,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성령의 운행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속하신 백성안에 그분 자신을 유일한 생명의 몫과 생명 공급과 모든 것으로 분배하신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것이며, 이 그리스도의 몸은 아버지의 영원한 목적을 따라서 삼일 하나님의 완전한 표현, 곧 충만으로 완결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