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

재림은 언제 있으며 그 징조는 무엇인가?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6:12)

2010년 말부터 한국엔 소 돼지구제역으로 많은 가축을 살처분해야 하는 실정에 이어 최근에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넘어 유럽의 영국과 스웨덴, 남미 브라질, 뉴질랜드, 아시아 태국과 일본 등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웨덴 남서부 도시에선 100여 마리 까마귀 종류의 새떼가 거리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중남미에서 바닷물고기들이 떼죽음으로 해변으로 밀려나왔습니다. 원인 모를 돌고래가 떼죽음이 생겼습니다. 미국의 루이지애나(Louisiana)주의 한 도시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5백여 마리의 죽은 새떼가 땅에 떨어져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5천여 마리 새떼가 도로에 떨어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재앙은 강에서도 발견되었다. 강에는 민어과의 일종인 드럼피쉬 8만여 마리가 죽어서 물 위로 떠올랐고, 북동부 메릴랜드(Maryland)주의 체스피크만(Chespeake Bay) 주변에서도 수만 마리의 죽은 물고기들이 쌓였습니다. 영국은 죽은 새들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고, 강에는 수천여 마리의 물고기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미국 아칸소(Arkansas)주에는 5천여 마리의 새들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떼죽음을 당한 이후 조류와 어류 등에 대한 이 같은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Florida)의 작은 만에서는 죽은 물고기 수천여 마리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합니다.브라질 남부의 항구도시인 파라나구아(Paranagua) 해안에서는 최소 100t 가량의 정어리와 메기 등이 죽은 것을 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6일 보도했다.

뉴질랜드에서도 6일 더 많은 물고기가 죽어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해안을 따라 4만여 마리의 꽃게들이 역시 떼죽음을 당한 모습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미국 펜실바니아(Pennsylvania)길버트빌(Gilbertville)에는 찌르레기와 울새 수백여 마리가 죽었습니다

미국지질조사국(U.S. Geological Survey Agent) 국립야생동물보건센터(National Wild Health Center)의 과학자인 Christine Schuller "우리가 어느 때나 (이런 현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정상이 아니라거나 세상에 종말이 온 듯한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연합통신(AFP)에 전했습니다.

소수이기는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동물들에게 닥친 재앙을 마지막 때의 징조로 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징조도 종말에 관한 징조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에 관한 가장 확실한 징조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징조의 확실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24:29) 

“그 때에 그 환난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13:24)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2:20)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말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2:31)

성경에는 주의 재림날을 “크고 영화로운 날”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영화로운 날에 대해서 마태복음 24 30절에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하였고, 31절에는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4방에서 모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판주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날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말한 데살로니가전서 4 16절에서의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천사들을 세계 곳곳(4)으로 보내서 어린양의 신부가 될 자격을 갖춘(택한) 자들을 공중으로 끌어 모은다고 마태와 마가는 설명하였습니다. 그 자격은 “성도의 옳은 행실로”로 스스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βυσσινοs)를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4방에서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전체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그날이 이르기 전에 재림에 대한 징조로서 태양과 달에 이상이 일어난다고 하였고, 마태와 마가는 “환난 후에 재림에 대한 징조로서 태양과 달에 이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휴거사건 후에 땅에 남겨진 불신자들뿐 아니라 엉터리 신자들은 통곡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이들 엉터리 신자들은 요한계시록에서는 3년 반인 42달 동안 이방인들, 곧 적그리스도정부로 일컫는 세계정부주의자들에게 짓밟힘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42달은 3년 반입니다. 그렇다면 처음 3년 반이 지나야 재림징조가 나타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말씀을 종합하면 3년반동안 처음환난이 일어나고, 그 환난이 끝나면 주님의 재림징조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에 태양과 달과 별들에 이변이 생기게 됩니다. 별들에 이변이 생기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모든 자들 곧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6:16)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혹성들이 이변으로 떨어지는 그 무엇을 말하는 것으로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격변후 즉시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4:30. 13:26)”고 하였으므로 세계정부인 적그리스도정부는 이후에 본격적으로 실시된다고 봅니다.

이제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 하는 문제는 주님의 몫이요, 징조 또한 하나님의 몫입니다. 다만 우리는 휴거이후 환난에 남겨져서 통곡하지 않으려면 구원의 옷(λ?νον)이 아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βυσσινοs)가 요구되는 행실로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교회가 행위로는 준비시키지 아니하고 말로만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거짓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다 휴거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말에 속지 마시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천사)가 그 택하신 자들을(거룩한 자들 중에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4방에서 모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믿고 날마다 준비해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예수님과 함께 영광중에 들어가야(3:4)” 복된 성도입니다.-아멘-

십자가의 도뿐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예수그리스도께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시듯 교회 또한 인간들의 모임이면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교회를 모르고 교회를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모르면 죽으신 후 3일 만에 세우신 교회의 비밀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모르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모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이십니다. 언제나 현재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성도의 신비한 연합입니다. 이건 쿠폰이 아니라 현찰입니다. 복음(하나님의 아들)과 세상의 딸(적극적인 사고방식)이 합치면 네피림이 됩니다( 6:4) 위대한 용사가 됩니다. 지금의 메가 처치가 그렇습니다.

십자가 없이 길들여진 기독교가 미국의 들소 같은 야망과 교배를 하면 잡종 영성집단이 탄생됩니다. 한 때 한국 목사들의 선진목회 순례의 대상이든 크리스탈처치(수정교회)가 법정관리로 넘어갔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없는 복음과 적극적인 사고의 밀월이 끝났습니다. 또 기독교가 문화와 접목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사고입니다. 매우 위험합니다

유대인은 철저한 반문화적인 민족입니다. 교회가 세상 문화를 끌어들이는 것은 이미 십자가의 도와 삼위 하나님의 코트가 아니란 말일 수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만 경기를 하니 재미가 없어 용병을 쓰는 운동경기처럼 교회만으로는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져서 문화를 용병으로 끌어들이는 일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경쟁을 한다거나 능가하려고 하면 그건 이미 교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분의 능력과 지혜로 나타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message of cross)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뛰어드는 일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믿음으로 삼위 하나님이 일하시는 영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모든 일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동참합니다. 거부도 멸시도 모욕도 함께 받습니다. 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건너편에는 주의 부활과 그의 능력과 지혜와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의 강을 도하한 우리는 그 분의 부활과 생명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의 존재와 그 분이 이룩하신 은혜에 대한 인격적인 반응이며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언어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그 분과 합일 시키는 일만 해도 충분히 주의 능력과 지혜와 거룩과 영광이 나타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부럽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육체를 자랑하는 곳이 아닙니다(고전 1:29) 

그렇지만 주의 능력과 지혜는 반드시 우리의 육신의 삶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 능력이 우리의 휴일을 늘려준다거나 돈을 공짜로 벌게 해 주지는 않아도 삶 속에 나타나는 신기한 에너지(아우라)가 됩니다. 십자가의 도, 삼위 하나님이 일하시는 코트를 떠나 묘수를 짜내는 잔머리는 이제 제발 그만 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