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2010

꿈은 성령께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행전2:16-17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날 성령이 부어진 직후 예루살렘에 함께 무였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이 구절을 말씀한다. 베드로는 이러한 성령의 강림하심이 요엘2 28절에 주어진 예언의 성취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가 그리스도 안에 믿는 모든 이들을 차별 없이 주어진 것이라고 선포했다.(2:38, 39 참조) 예언과 꿈 그리고 환상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똑같이 부어졌다.

오늘날 교회가 점점 더 성령의 역사하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수면중에 자신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영적인 통찰력을 받는 수단으로서 꿈이 가지는 효용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4:6)

만약 요셉이 아기 예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리아와 아이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라고 꿈을 통해 말씀하시는 바를 무시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보라.(2:13참조) 아비멜렉왕이 아브라함의 부인인 사라에 관한 꿈을 제쳐두었다면 어땠을까?(20장 참조) 만약 그랬다면 메시야가 오시는 족복의 연결선이 끊어졌을 지도 모른다. 잠자는 중에 말씀하신 경고를 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계획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꿈은 영성의 척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꿈을 꾼다는 것이 그 사람의 영성이 어느 정도인지, 그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척도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들을 귀가 있는가?
하나님은 주의 백성과 의사 교환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는 능력을 키워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꿈을 항상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님이 꿈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시는 방법을 분별하는 데 우리가 시간을 투자한다면, 하나님의 목적으로 향하는 통찰력의 대로를 열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있는가?

<출처:꿈과 환상/제인 해몬/HPWM>

꿈과 환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12:6)

하나님은 항상 주의 백성들과 대화하기를 갈망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하나님을 조용하고 냉담하신 분으로 여겨왔다. 심지어 창조를 해 놓고 사람들의 일상에는 신경조차 거의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주님은 우주를 통치하시며 온 우주 가운데 편재해 계시지만 자녀들의 매일의 삶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으로 여겼다.

새 천년이 밝아오면서 교회는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말씀하고자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을 쓰신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달아 가고 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12:6-7)

성경을 통틀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지시하시며 판단(judgment) 하시고 축복들을 말씀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종종 주의 종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 때로는 주의 대변자인 선지자들이 주의 메시지를 풀어놓았다.

사사, , 제사장 심지어 악사들도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많은 예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해 개인에게 명령하셨고 교정하셨으며 지시하셨다.

꿈과 환상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뜻을 전하시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일 것이다. 성경에는 꿈과 환상에 대해 50개 이상의 관련구절이 있다.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셨다. 아브라함은 꿈과 환상을 통해 약속의 자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야곱의 삶은 연속된 꿈을 통해 극적으로 변화하였다. 이 꿈을 통해 야곱은 자신의 유산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의 운명을 계시하셨다. 다니엘, 오바댜, 나훔, 스가랴는 꿈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자주 받았던 선지자들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꿈을 통해 요셉과 마리아에게 말씀하심으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보호를 받으셨다.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은 환상을 통해 성령 하나님의 방문하심을 받는다.

꿈은 무엇인가?
웹스터 사전은 꿈을 수면 중 마음에 있는 형상이나 생각의 연속이라고 정의한다. 꿈은 사람의 무의식적인 마음에서 형성되는 데, 개인마다 각기 독특한 형상이나 상징들에 그 기반을 둔다. 이들은 꿈꾸는 자의 배경, 경험, 현재 삶의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

꿈은 의식적인 마음이 깨닫지 못했던 우리 자신혹은 다른 이-에 대한 진리들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다. 헬라어 중 꿈에 해당하는 단어 중 하나인 에누프니온(enupnion)수면 중에 보여지는 것, 혹은 꿈 중의 환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

꿈은 정확하게 자연적인 마음에 비롯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받을 수도 있다. 이들이 항상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선택하신 수단 중 하나이다.

환상은 무엇인가?
웹스터 사전은 환상을 추상적이거나 볼 수 없는 대상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이 지각하는 행동이나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환상을 또한 통찰’(foresight)로도 정의한다. 환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중 하나는 히자욘(chizzayown)으로 문자적으로 계시를 뜻한다. ‘환상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호라시스(horasis)어떤 대상이나 감동되는 겉모양을 응시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꿈은 자는 동안 꾼다. 이에 반해 환상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깨어 있는 동안, 장면으로 받는 이미지나 계시를 가리킨다. 이 점을 제외하고 꿈과 환상은 기본적으로 같다.

어떤 사람들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에 꿈을 꾼다고 말하며, 이 때 자신이 잠에서 깬 상태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 꿈이 본인의 생각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다. 그런 계시가 담고 있는 메기지가 더 중요하다.

여호수아1 8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씀한다. 종종, 밤 동안의 묵상은 결국 꿈을 통해 계시를 받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때때로 이 꿈은 하나님의 계시가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신다. 다른 경우에 그 꿈은 개인적인 꿈일 것이다.- 곧 당신의 무의식이 당신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심오한 생각을 계시할 것이다


16 7절은 이를 다음과 같이 확장한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생각이나 내적인 사람)이 나를 교훈(상담)하도다”(시편16:7)

꿈을 통한 의사교환
꿈은 하나님의 영이나 당신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보내지는 메시지이다. 자신의 영혼이 보내는 메시지는 당신의 마음과 의지, 감정을 포함한다. 영혼 속 무의식은 이들 메시지가 보내지기 위한 배경이나 막(screen)을 제공한다.

영적인 꿈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꿈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의해 영적인 꿈을 꾸면 그 꿈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정보를 전달한다. 그런 후 우리의 의식적인 마음이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그 꿈들을 받고 분별해야 한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전파를 받아서 즐기기 위해서는 채널을 조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꿈이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나 우리 자신의 영을 통해서 우리의 잠재의식으로 지속적으로 전달될 때에 맞춰 송신기를 켜고 메시지에 채널을 조정하는 법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미가 선지자는 주의 말씀을 보았다고 말씀했다.(미가1:1) 미가가 어떻게 말씀을 보았을까? 새국제번역은 이를 환상이라 번역하였다. 미가는 자신의 마음 속 스크린에 투영된 형상이나 그림을 본 것 같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전달되었다.

꿈을 통해 성령님의 생각이 전달되는 것과 성경에서 언급된 다른 하나님의 의사전달 방법들-, 예언, 지식의 말씀 등-을 비교해 보자. 이들의 일차적인 차이점은, 꿈은 의식적인 마음이 지각하기 이전에 무의식이 그 꿈을 먼저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출처:꿈과 환상/제인 해몬/HPWM>

카네기 인간관계론

카네기 인관 관계론 인관 관계의 3가지 기본 원칙

1. 비난이나 비평, 불평하지 말라.
2.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하라.
3. 다른 사람들의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켜라.

인관 관계를 잘 맺는 6가지 방법
1. 다른 사람들에게 순수한 관심을 기울여라.
2. 미소를 지어라.
3. 이름을 잘 기억하라.
4. 경청하라.
5.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라.
6. 상대방으로 하여금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게하라. 단, 성실한 태도로 해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1. 논쟁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피하는 것이다.
2.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라. 결코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지 말라.
3. 잘못을 저질렀다면 즉시 분명한 태도로 그것을 인정하라.
4. 우호적인 태도를 말을 시작하라.
5. 상대방이 당신의 말에 즉각적으로 네, 라고 대답하게 하라. 
6. 상대방으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라.
7.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아이디어가 바로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라.
8. 상대방의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성실히 노력하라.
9. 상대방의 생각이나 욕구에 공감하라.
10. 보다 고매한 동기에 호소하라.
11. 당신의 생각을 극적으로 표현하라.
12.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켜라.

리더가 되는 9가지 방법
1. 칭찬과 감사의 말로 시작하라.
2. 잘못을 간접적으로 알게하라.
3. 상대방을 비평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라.
4. 직접적으로 명령하지 말고 요청하라.
5.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어라.
6. 아주 작은 진전에도 칭찬을 아끼지 말라. 
    또한 진전이 있을때마다 칭찬을 해 주어라. 
    동의는 진심으로, 칭찬은 아낌없이 하라.
7. 상대방에게 훌륭한 명성을 갖도록 해주어라.
8. 격려해 주어라. 잘못은 쉽게 고칠수 있다고 느끼게 하라.
9. 당신이 제안하는 것을 상대방이 기꺼이 하도록 만들어라.

11/23/2010

중보 선교사의 필요성 - 마이크 비클

I. 성령님께서 세계적인 기도운동을 조직하고 계심

A. 캔사스 시아이합”(IHOP-KC)의 여정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세계적인 기도운동을 일으키고 계신다는 것을 이해함으로 시작된다. 이 기도운동은 예언적 운동이기도 한 예배운동이다. 기도, 예언, 그리고 예배는 성령의 생수의 강으로 통하는 표현들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은 치유와 전도, 그리고 교회 등의 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강에서 이 세가지 중 한가지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B. 이 기도운동은 지난 2~3년 동안 전세계에 두드러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 전 세계적으로 지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기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성령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금 하나님께서 기도, 예배, 그리고 예언 사역을 회복하고 계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부터 지금까지, 기도를 위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꾸준하게 증가해 왔다.

C. 성령님의 이러한 전략적 계획은, 천국에서 중보기도의 대접이 가득차게 되면서,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 점점 더해져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하프)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보울)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 5:8)

D. 이 세계적인 기도운동은 하나님의 마음과 품성을 나타내는 많은 표현들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도의 형태들 또한 존중하고 아껴준다면, 서로로 부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II. 선교사 활동과 전도의 세가지 면 
A.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전쟁을 하는 세가지 차원이 있는 데, 이들은 교회를 회복시키고 예수님의 지상 최대 명령을 성취하는 데 꼭 필요한 차원들이다.

1.복음전파 (말씀)이것은 불신자들을 전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수단으로, 사도적인 말씀전파와 교회개척 등을 포함한다.

2.구제활동 (행위)섬김 전도, 음식과 옷을 필요한 가난한 자들에게 제공, 병원, 고아원, 그리고 학교 설립등을 포함한다.

3. 중보기도 (기도)말씀전파와 구제활동이 이루어지는 도시의 영적 기류(분위기)를 바꾸는 중보기도가 이에 포함된다. 아이합(IHOP)은 전도와 가난한 자들을 실제적으로 섬기는 데에 적극적으로 헌신한다.

B. 중보 선교사 하나님 은혜로 이러한 세가지 차원의 일들을 완전히 수용하는 선교사들을 세우는 것이 이 시대에 갖고계신 하나님의 계획이다. , 이들은 전도, 섬김, 그리고 기도에 헌신된 선교사들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 부흥이라 불리우는거룩한 격동  하나님이 부어 주시길 소망한다.

C. 중보 선교사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기도의 영을 통해 권능과 힘을 얻으며, 지상 최대 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섬기는데 헌신한다.

III. 선교를 위한 주야 기도의 필요 조건 (18:7-8)
A. 18:7-8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주야) 부르짖는 택하신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정의, 공의를 가져오지) 아니하시겠느냐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 18:7-8)

1. 정의, 공의(새 미국 기준 성경 – New American Standard)

2. 원한을 풀어줌 (새 킹 제임스 성경 – New King James )

3. 심판(정의)

B. 하나님 공의의 양면 (원한을 갚음, 심판)
1.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 , 흑암의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심판은 대적을 막기위한 그분의 활동을 의미한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이나 공의(정의)에는 이 한가지 이상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2. 온전히 반응하는 자들을 구속(구원)하심. , 교회안에 부흥을 부어주심.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그분의 활동을 의미한다.

3.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하나님의 심판 또는 공의(정의)의 예들.
a.  치유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또는 신원하심.

b. 부흥한 도시에 수천명의 새로운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들의 삶을 맡길 때, 흑암의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게 된다, 커다란  영적 수확을 보게되는 것은 불신앙에 대한 심판이다. 신속한 공의(정의)의 개념은 부흥의 개념과도 일치한다.

c. 연합 분열에 대한 심판

d. 거룩함죄의 중독에서 자유를 경험하는 사람들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본다. 예수님께서는 구속된 주의 자녀들이 성적인 죄, 마약, 대적함, 등등에서 자유케 되기를 원하신다.

C. 예수님은 궁극적 사회 개혁가이시며 공의(정의)의 왕이시다. 예수님은 정의와 사회 개혁의 문을 열어주는 개념을 주야 기도에 연결시키신 첫번째 분이셨다.  주야 기도를 통해 사회 개혁을 구하려 했던 것은 사회 개혁의 역사에 있어 둘도 없는 매우 특별한, 새로운 그리고 놀라운 아이디어였다.

D. 신속한 공의의 실현을 위한 조건으로 예수님은 이 땅에 있는 도시들에게 주야 기도를 요구하신다. 그렇기에, 주야 기도가 지역의 영적 기류(분위기)를 바꿔 많은 무리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을 준다는 점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이루는 실제적 표현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IV. 성령님께서는 지금 중보 선교사들을 회복시키시고 계시다. (. 62:6-7)
A.  예수님은 재림 전에 주야 기도가 교회안에 세워지도록 특별한 은혜를 부어 주실 것이다.

6 예루살렘이여 ! 내가 너의 성벽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말며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 (이사야 62:6-7)

1.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해, 영적 전쟁을 위한 주의 성벽에 파숫군(중보 기도자들)을 주권적으로 세우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이 중보 기도자들은 주님의 나라를 섬기면서 주야로 예배와 중보기도에 동참한다. 이들은 열정을 가지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며, 가난한자를 섬기며, 기도의 영으로 설 중보자들이다.

2. 예수님은 주의 성벽에 파숫군들을 세울 것을 약속하신다. “파숫군을 세움은 주님 자신의 역할인 것이다. , 전임 사역중보 선교사의부름이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그분의 활동을 말한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파숫군들을 세우실 때, 그의 종들을 부르시고, 그들의 삶, 그리고 삶의 방식을 재배치 하신다.

a. 주야 기도로의 부름에 대한 확신을 주심
b. 그들에게 이 부름에 대한 때와 장소를 말씀 해 주심
c. 재정적인 공급을 주심 
d.기도에 권세를 부어주심 

B. 예수님의 탄생 전 예루살렘 성벽에 세워진 첫번째 파숫군의 예로는 안나가 있다. 그녀는 신약시대의 첫번째 전도자였다.

36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37 과부된지 팔십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 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예수)에 대하여 말하니라” ( 2:36-38)

C. 성령님은 예수의 재림에 앞서 안나와 같은 이들을 회복시키시고 계신다.

D. 거룩한 좌절 -  하나님께서는 중보 기도자들이 전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주야 예배와 중보기도 안에서의 그들의 위치를 발견할 때까지 그들의 교회에서 현재 하는 역할에 대한 불만족을 경험하게 하신다.

E. 부적임자예수의 몸된 교회안에는 교회를 진실로 사랑하고 잃어버린 자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그렇지만 그들 삶의 진정한 부름이 예배와 중보기도를 통해 힘을 얻으며, 잃어버린자들을 섬기는데 있다는 것을 찾지 못해 좌절하는 이들이 있다.

F. 주님은 당신이 제일 열정을 쏟아붓는 것에 대한 언어를 주고 싶어하신다. 이 수업의 목적중의 하나는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언가에 대한 언어를 주기 위함이다. 기도와 예배에 대한 당신의 뜨거움과 열정에 대해 부끄러워 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에 대한 언어를 가지는 일이 곧 당신의 마음을 여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명확한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렇게 되면둥근 구멍에 네모난 나무못을 박으려’(부적절함)는 좌절속에 살지 않아도 되기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당신이 누구인가를 바로 알게 될 때, 그곳에 바로 진정한 힘이 있고 이것이 당신의 삶에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이 메세지에 약간의 감동은 있지만 아직 확신이 없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전임 중보 선교사로서의 당신의 새로운 부름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바로 이 확신이 기도의 삶으로 당신을 부르시는 주님의 해답이 될 것이다.

G. 중보 기도자들이여 용기를 가지라지상 최대 명령을 이끄시는 분이신 예수님은 영원한 중보자이시다. 그분은 기도하는 것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재림전에 진정한 존엄과 존귀의 자리로 기도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기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사는 당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절대 부끄러워 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V. 반박할 수 없는 주야 기도의 법칙 
A. 주야 기도는 한 도시의 영적 기류(분위기)를 변화시킨다. 어떠한 권세도 주야 기도로 인한 예수님의 그 도시에 대한 신속한 공의(정의)를 막을 수는 없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허락을 받지 않으신다성령님의 역사는, 서로 협력하며 함께 일하는 악한 영들과 그리고 그 어떠한 종교 지도자들이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B. 우리는 주야 기도가 왕성한 곳에 큰 부흥(정의)이 온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된다.
이것은 반박할 수 없는 법칙이다.

C. 사는 주야 기도가 함께 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신속한 공의(정의)의 돌파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 때마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거룩한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신다.

1. 주후 555, 아일랜드, 뱅골콤갤과 콜룸바누스의 지도하에 있었음. 선교의 열심과 함께 300년이 넘는 주야 예배를 통해 모든 유럽에 영향을 주었음.

2. 주후 1727, 독일, 헤른헛카운트 진젠돌프의 지도하에 있었음. 많은 나라에 영향을 준 선교의 열심과 120년이 넘는 주야 중보기도를 했음.

3. 한국, 서울조용기 목사의 지도하에 지난 40년간. 아시아의 다른 많은 나라들에 선교의 열심과 함께 30년이 넘게 주야 기도를 해오고 있음.

4. 주전 1000, 예루살렘, 다윗의 장막다윗왕의 지도하에 있었음. 33년동안 그리고 솔로몬왕의 지도아래 또다른 세대가 주야 기도와 예배를 했음. 이 두왕은 전임 찬양팀원들과 연주자들의 재정을 후원해 주었음.

5. 현재 이시간, 공의(정의)를 행하시려는 그분의 약속과 헌신으로 전세계의 많은 도시에 주야 예배와 기도를 회복하고 계심.


산상수훈 :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 (the Sermon on the Mount: Core Values of the Kingdom) <마이크 비클>

산상 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헌법”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발전과 사역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약(litmus test)입니다. 우리는, (우리 사역의 크기로 인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상 수훈의 가치들로 행하기를 추구하느냐에 의해, 우리 사역의 영향력을 측정합니다.

이 가치들은 우리 사역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주제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역들은 사역 안에서 (그것의 사역의 크기에 의해 판단되어지면서)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낙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성공을 평가하기 위한 하나님의 기준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산상 수훈에서 기본적인 부르심은 우리가 100번의 순종( 5:48; 6:22)을 추구하면서 팔복( 5:3-12)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팔복은 하나님이 완전하게 개화하기 원하시는 “우리 마음의 정원” 안에 있는 8가지 아름다운 꽃들과 같습니다. 팔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랑, 경건과 영적 성숙을 정의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적인 실제로서의 삶의 양식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연적 욕망들( 5:21-48)과 관계있는 6가지 부정적인 영향력들(독소/독약)을 대항함에 의해 우리가 “우리 정원에 잡초를 뽑으면서”, 그리고 더 큰 은혜의 나누어 주심을 받을 수 있도록 적당한 위치를 잡게 하는 5가지 긍정적인 영양소들(기도, 금식, 나누어 줌, 섬김과 원수를 축복함, 6:1-18)을 추구함에 의해 우리가 “우리 정원에 물을 주면서”, 8가지 꽃들이 주의 깊고 지속적으로 계발될 필요가 있습니다.

5-7장은 팔복이 성숙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이 단락에서, 예수님은 그분의 사람들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자유로 인도하는 통찰력을 주심으로 인해 그들을 돕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유롭게 하는 길에 대해 관용하는 가르침을 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욕망을 거절하고 은혜 안에서 우리 마음을 양육하시기 위하여, 질적인 결정(quality decisions)을 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지혜로운 사람은 그의 개인적인 생활과 사역을 산상 수훈의 가르침 위에 세웁니다.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산상수훈)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7:24-27)

우리의 개인적인 삶과 사역의 기초를 시험할 3가지 폭풍의 적용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역의 수십년간 모든 사역들이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폭풍입니다. 둘째는 마지막 때에 있는 종말론적 폭풍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심판의 보좌에서 우리 개인적인 생활과 우리의 사역의 질에 대해서 받는 평가입니다(고전 3:11-15).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 12:26-28)

교회 안에서의 압력 중의 하나는 거짓 교사들로부터 옵니다(벧후 2장과 유다서를 보시오). 거짓 가르침의 가장 일반적인 분야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해를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회개함 없이 용서를 받기 위하여 그것의 메시지를 삭감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죄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과 편안하게 하려고 함으로서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거짓 교사) 몇이 있음이라 ...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 4)

진정한 은혜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욕망을 거절하도록 감동을 주고, 우리에게 경건하게 행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은혜 위에 서 있는 진정한 가르침은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teaching us)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 2:11-12)

부풀린 “은혜의 가르침”은 진리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협에 힘을 더해주고, 하나님 안에서 위대해지기 위하여 그들을 준비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잘못된 확신을 주게 됩니다.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 5:19)

은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즐거워하시고 (우리가 떨며 화개한 후에)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확신케 하고,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분이 우리를 그분의 열정 안에서 징계하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3가지 다른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거룩함의 높은 기준을 가르치지만 참을성 없고 아량이 없는 하나님(비열한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거룩함의 낮은 기준들을 가르치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는 은혜로운 하나님(친절한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매우 친절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싸우라는 거룩함의 높은 기준을 가르치도록 우리를 권고합니다.

무엇이 잘못된 가르침인가요? 그것은 성경의 주요한 교리를 붙들지 않는 가르침입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예수님이 구원의 유일한 길을 주신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팔복에 정의된 것처럼) 거룩하게 살도록 사람들을 부르심을 생략하는 가르침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은 잘못된 종교들과 관련된 사람들에 의해서만 주어질 뿐 아니라, 거듭난 신자인 교사에 의해서도 주어집니다.

어떤 대중적인 사역들은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인도됩니다. 어떤 사역이 얼마나 규모가 큰가에 의해 속지 마십시오.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비웃음)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조작한) 말을 가지고 ... 13 ...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탐욕에 연단된(숙달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벧후 2:1-3, 13-21)

성경은 마지막 때에 교회 안에 영적인 타협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4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딤전 4:1)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마랄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3-4)


요한계시록 2-3장에 나타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 (Eternal Rewards to Overcomers in Revelation 2-3) <마이크 비클>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 영원한 상급
예수님은 그분의 상급에 대한 깊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22가지 상급들을 언급). 그분은 그분의 마지막 때의 계획 안에서 영광과 위기를 풀어 놓는 동안, 우리가 동기부여되고 견고해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그분은 재림하실 때 우리가 받는 상급을 보여주십니다( 11:15-18).

이것들은, 확신을 가지고 영원 안에 있는 것을 굳게 붙듦을 통해서, 우리를 참고 견디도록 함으로서 우리의 선택들이 영원 안에서 상급을 받게 할 것입니다. 고난이 하나님의 빛 안에서 나타날 때, 그것을 통해 위협하는 세력들은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구원의 은사를 받은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늘의 상급을 받는 방식으로 살도록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원이나 칭의는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존귀함( 2:8-9)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상급은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나, 위대한 구원을 우리에게 주심에 대하여 예수님께 감사하는 반응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각자 자신의 상급에 있어서 영광의 분량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22가지 상급의 대부분은 최소한 초보적인 수준에서는 모든 신자들이 받게 될 것입니다. 2-3장의 논점은 신자가 받는 상급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에 해당됩니다.

이기는 자만이 이러한 상급의 충만한 분량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계 2-3장에서 이기는 자가 되라고 하실 때에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을 가장 합당하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상급들은 모든 사람이 받는 영원한 생명의 기본적인 축복의 다양한 분량들을 의미합니다(고전 15:41).

이러한 상급들은 부차적이거나 무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부르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이 상급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우리의 상급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상급이 모든 신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와 관계없이 그들에게 충만하게 주어진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관점은, 어떤 일들로부터 회개를 요구하시고 끝까지 신실하도록 하는 맥락에서 이 상급을 이해합니다. 계시록 2-3장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거듭나라고 권고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거듭난 신자들에게, 유혹과 박해를 직면했을 때, 더 큰 열심을 갖게 하는 동기로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한 22가지의 상급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먹음 (2:7)
생명의 면류관을 받음 (2:10)
둘째 사망에 의해 해를 받지 않음 (2:11)
숨겨진 만나를 먹음 (2:17)
흰 돌을 받음 (2:17)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을 받음 (2:17)
나라들을 다스릴 권세를 받음 (2:26)
새벽별을 받음 (2:28)
흰 옷을 입음 (3:5)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받음 (3:5)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시인하심 (3:5)
그들을 박해하던 자들이 그들의 발 앞에서 엎드려 절함 (3:9)
그들의 박해자들이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하심을 앎 (3:9)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됨 (3:12)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들 위에 기록된 예수님의 새 이름을 얻음 (3:12)
사람을 부유하게 할 금을 받음 (3:18)
흰 옷을 입음 (3:18)
더 많이 볼 수 있는 기름부음 받은 눈을 가짐 (3:18)
예수님과 함께 먹음 (3:20)
그분의 보좌에 앉음 (3:21)
  
이기는 자의 부르심에 대한 이해  
이러한 맥락에서 이기는 자는, 예수님이 그들의 삶에서 강조하신 신실함의 특별한 영역들 안에서 성숙하게 된 자입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이기는 것이란, 그들의 삶의 마지막 까지 예수님을 향한 처음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게 그것은, 박해 가운데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버가모와 두아디라 교회에게 이기는 것이란, 그들의 삶의 남은 기간 동안 부도덕성과 우상숭배를 저항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사데교회에게 그것은, 그들이 주의 깊게 되거나, 기도 생활을 개발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초기의 시기로부터 그들에게 위임하셨던 것들을 굳게 붙잡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이기는 것이란, 그들의 삶의 남은 기간 동안 성숙한 순종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기는 것이란, 미지근함을 저항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기는 것이란 자신의 성격에 있어서 완전함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끊임없이 우리의 힘을 다하여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커다란 부드러움으로 우리를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매우 친절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커다란 신실함일지라도 아직 흠이 있으며, 억누르고 깨뜨려 버리려는 욕망 가운데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연약함 가운데서도 신실하다고 평가될 사람의 두 가지 실례는 다윗과 아브라함입니다. 바울은 다윗이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이루었다고 기록했고( 13:22), 아브라함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4:20).

번역 : AHOP 사도적 기도의 집 김재윤 목사 

이 땅에서도 천국을 보며 사는 성도들

지금으로부터 약 660년 전 이성계와 무학 대사가 식사를 하던 중 이성계가 무학 대사에게 “당신은 돼지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무학 대사는 이성계에게 “나는 대왕님이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멋쩍어진 이성계는 “나는 당신이 돼지처럼 보이는데 당신은 어찌 내가 부처처럼 보이오?”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무학 대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이 돼지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도 돼지처럼 보이고 마음이 부처 같은 사람은 남도 부처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50년 전 스코틀랜드의 성자 콜롬바는 그 당시 선교하던 땅의 성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주는 콜롬바가 그 땅에서 성자로 통했기 때문에 콜롬바의 모습이 가날픈 몸매에다 얼굴은 온순하게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콜롬바의 모습은 굉장히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기골도 장대했습니다. 성주는 콜롬바를 보면서 비웃듯이 “당신은 돼지처럼 생겼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콜롬바는 성주를 향하여 겸손하게 “당신은 천사처럼 생겼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성주는 껄껄 웃으면서 “나는 당신이 돼지처럼 보이는데 어째서 당신은 내가 천사처럼 보이오.”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콜롬바는 “사람의 마음이 천사 같으면 상대방도 천사처럼 보이지만 돼지처럼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돼지같이 보이는 법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성주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또 콜롬바를 도와 그 지역을 기독교화 하는데 앞장섰다고 합니다.

이 사람 콜롬바는 스코틀랜드를 15년 동안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했고 또 지역마다 수도원들을 세웠습니다. 콜롬바는 수도사들을 위해 시편집들이나 성서를 복사하는데 전심을 기울였고 그의 생전에 300여권이 넘는 성서를 번역했습니다. 그의 삶의 방식은 단순하고 평범해서 잠도 바위 위에서 돌베개를 베고 잤으며 주로 보리와 오트밀 케이크를 먹고 물만 마셨습니다.

그는 단 한 시간도 그냥 있지 않고 기도하고 책 읽고 글 쓰며 선교의 일들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를 온 힘을 다해 사랑했고 대영제국(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개심을 위한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는 오늘날에도 스코틀랜드 영국 국교회에 아주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팔복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에 대하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에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가정에서도 천국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교회에서도 천국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당연히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삽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천국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가정을 지상의 낙원으로 이루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천국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 해도 그 교회가 천국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에 천국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이 사회가 아무리 고도의 문명이 발전에 발전을 더한다 해도 이 세상에서 천국을 볼 수 없습니다.

내 가정이 천국이 되어지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천국이 되어지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천국으로 만들기 원한다면 내가 먼저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천국이란 무엇입니까? 천국이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곳을 말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곳이라면 바로 내 마음이 천국이요, 내 가정이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곳이라면 바로 내 가정이 천국이요, 내 교회가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교회라면 바로 내 교회가 천국이요, 이 사회가 하나님의 주권으로 온전히 실현되는 나라가 된다면 바로 이 사회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

우리는 모두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종착역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이 중간 역들을 되는대로 막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이루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내 마음에 담는다면 내 마음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내 마음이 천국을 이루면 이 땅도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보며 사는 성도들이라면 분명히 그들은 그들이 가야할 천국도 소유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5:3-10)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성도라면 반드시 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신학 공부의 필요성과 중요성

영적 성장과 경건생활을 위해 성경을 묵상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경건한 사람들은 옳은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하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도 상당수의 성도들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학은 신학자나 목회자들의 영역이므로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지나친 편견이자 착각에 다름 아닙니다.

지난 18세기 미국의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며 사상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집 「신학공부의 필요성과 중요성」이란 소책자를 통해 신학공부가 무엇이며 왜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에드워즈는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신학에 대한 정의부터 새롭게 합니다. 그가 말하는 신학은 우리가 아는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등으로 분류되는 특별한 학문이 아닌 ‘하나님 아는 지식’ 즉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는 공부 또는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지식입니다.

따라서 신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스스로를 알려주시기 위해 계시하신 성경에 대한 지식이자 성경의 구체적인 교리에 대한 지식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건대 성도의 가장 바르고 복된 삶이란 성경적, 역사적인 신앙지식을 바르게 세우고 확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성도의 기본이며 아는 만큼 믿고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영적 성장과 성숙의 가장 중요한 비결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의 깊이와 높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는 참된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성례의 참의미를 알 수도 없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님은 좀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성을 주신 것은 신학을 공부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영광과 찬송을 돌려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가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신학교과서는 성경입니다. 모든 성도는 영원한 학생이며 당연히 졸업도 없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에드워즈 목사님은 신학을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먼저 성경을 열심히 읽되 성경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읽어나가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엔 설교를 잘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고 또 건전한 신앙서적을 많이 읽고 지체들과 지식을 함께 나눌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신학을 공부하여야하지 칭찬이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지식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끝으로 기도와 실천은 신학을 더 깊이 만들어 줌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 설교집중에서


11/21/2010

교만할 때 나타나는 증상

교만할 때 나타나는 증상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남을 비난하고 헐뜯으며 그들이 잘못한 이유를 지적한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올바른 삶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교만은 우정을 지속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아니라 논쟁에서 이기는 데 초점을 맞추게 한다.

우리는 교만에 빠지면 ‘제가 잘못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요구하는 마음이 생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을 요구하는 마음이 생긴다.
현재에 만족하기보다는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게 된다. 교만은 분열을 일으킨다. 우리가 교만할 때는 내 교회, 내 그룹, 내 교단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낫다고 자랑한다.

교만한 생각이 들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생각을 구하지 않게 된다. 일이 잘못되면 교만한 사람은 가장 먼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교만은 계속된 자기 연민을 낳게 한다.
교만의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 ‘나는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윗은 어떤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다. 다윗은 자신이 부서지거나 깨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절망이나 비탄에 빠지기보다는교만하지 않은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 때문에 마음이 낙심되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중요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고 그분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길 원하신다면 다윗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께 그 이유를 묻거나 아니면 마음을 굳게하여
교만한 태도를 취하거나 할 것이다. 결코 중간은 없다.

다음은 실망스런 사건을 당하거나 마음이 낙심될 때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1. 하나님 당신은 이 상황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시길 원하십니까?
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저의 반응은 어떠해야 합니까?
이 상황에서 제가 위반한 성경의 원칙은 무엇인지요?

2. 이 상황과 관련된 행동이나 관계된 사람들, 방법 등에 있어서 제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 있습니까?

3. 제게 이런 실망감을 안겨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까?

4. 이 상황에서 저를 도와 줄 영적인 사람의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 영적 조언자에게 내 삶과 나의 필요와 나의 반응에 대한 영적인 통찰력을 주셔서 이 사건을 통해 제가 배워야할 교훈들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5. 하나님, 제가 이 상황을 너무 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서 이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지혜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6. 제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고 훈련되어져야 합니까? 
제가 따라야 할 단계들을 알려 주십시오.

7. 지금 이 시간에 제 자신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 대신 섬겨야 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중에서... /플로이드 맥클랑

30가지 기도방법

1.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 주시기를 오히려 원하고 계십니다.(요 15:7, 16)
2. 성급한 태도를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자기 자신보다 우리를 더욱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때에 응답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때로는 느린 것 같고 때로는 응답이 없으므로 불안 초조 가운데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에 게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3. 회개부터 하십시오.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우리에게 죄악이 있을 때에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4.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며 기도 하십시오.
기도는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욕망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야 합니다.
5. 하나님이 듣고 계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그분의 성품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6. 성령 안에서 기도 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요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시는 기도의 영이십니다. 
7. 기도한 것을 받은 줄로 믿으십시오.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친히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기도의 생명입니다(막11:24)
8. 상한 심령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잠3: 34). 그리고 상하고 통회하는 자를 멸시치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시51:17).
9. 감사함으로 기도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것 을 강조했습니다.(빌4:6) 
10. 용서한 후에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음에 분을 품고 기도하는 것을 경멸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해 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11. 힘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전심으로 기도하는 열정에 사로잡힐 때만 하나님의 능력이 깃들게 되어 있습니다.(렘29:13) 
12. 무릎 꿇고 기도하십시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입술의 사람이 아니라 무릎의 사람들에게 능력과 감화력을 더 해 주십니다. 그리고 무릎 꿇는 자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13. 끈질긴 기도를 하십시오.
열심히 없는 기도는 죽은 개로 벼룩을 사냥하는 것과 같고 눈먼 매로 빈대를 잡으려 는 것과 같습니다.(눈18:7)
14.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근심, 초조, 불안, 낙심 가운데 기도하고, 기도한 후에도 계속해서 근심, 초조, 불안, 낙심 가운데 살면 영원히 기도 응답의 기쁨은 없습니다.(갈6:9)
15. 끝까지 기도하십시오.
끝까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깃들게 되어있고, 능력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창32:36)
16.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생활화, 생활의 기도화가 되면 당신의 짧은 기도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삼상12:23)
17. 순간순간마다 기도하십시오.
매순간 매순간 마다 깨어서 기도하는 자에게는 사탄이 유혹하거나 시험할 겨를이 없습니다.(창24:63)
18.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
육신의 부모님께 구체적으로 나의 필요를 요청하듯이 하나님 아버지께도 구체적으로 기도해야만 합니다.(눅11:5)
19.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믿음의 기도만이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약 1:6-8) 
20. 진실하고 솔직하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니라 진실되고 정직한 기도를 원하십니다.(마 6: 7) 
2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기쁘시게 한 자녀에게 모든 것을 채워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마6:33)
22.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작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구하는 것을 뜻합니다.(막14:36) 
23. 새벽에 기도하십시오.
성경의 기사와 이적은 거의 다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늦게 하는 기도는 버린 기도입니다.(막1:35)
24. 금식하며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셨고,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금식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체험했습니다.
25.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구약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 조상들에게 약속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26. 면벽 기도를 하십시오.
구약성경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진기도하였는데 그의 기도는 벽을 마주한 면벽 기도였습니다.(역대하32:24-26)
27. 찬송하면서 기도하십시오.
바울과 실라는 찬송으로 옥문이 열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감옥이 그를 가둔 것이 아니라, 바울과 실라가 감옥을 가두었습니다.
28. 깊은 기도를 하십시오.
하늘의 해와 달을 멈출 수 있었던 여호수아의 능력은 깊은 기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출33:11,수10:12) 
29. 반복하여 기도하십시오.
반복의 기도는 물이 바위를 뚫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0. 씨름의 기도를 하십시오.
구약성경의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천사와 씨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