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 결정을 짓는 데 있어서 한 사람 이상이 개입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동의와 일치가 필수적입니다. 각자가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 안에 있으면 반드시 일치하게 됩니다. 예를 든다면, 남편과 아내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완전한 합의와 평강에 있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결정에 개입되어 있는 다른 이들과 하나님과 우리 자신들로 더불어 일치하여야 되겠습니다. 또 시편 133장은 우리에게 연합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우리가 어떤 구체적인 소원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고 또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온 지식적인 말씀이고 또 그것은 하나님의 전체 말씀에 비추어, 성령과 그 내용 양쪽으로 설명이 되었습니다. 말씀의 신호등은 파란 불로 변했습니다. 그런 뒤에 우리가 두 세 증인들의 입으로 확인을 가져온 몇 가지의 개인적 예언과 적절한 권고를 받은 것으로 가정하십시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성령의 열매를 갖고 잇고, 또 성령으로 인한 점검 표나 제지는 없으나 그 대신 평안의 느낌, 허용이 있습니다. 관련된 모든 점이 일치가 되면 만사가 질서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말씀에 의거해서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이며 또 레마의 확인된 말씀에 의해서 그의 구체적인 뜻임을 확신하여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뜻에 관한 이러한 2가지의 파란 신호들은 그대로 실천에 옮기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세 번째 신호등, 하나님의 길도 하나님의 역사가 성취되기 전에 마찬가지로 파란 신호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 - 말씀은 하늘나라의 승인을 알려 주며, 하나님의 뜻으로 진전되고 있는 역사가 당신을 위함인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도 하나님의 소원을 이룩할 수 있는 길을 알아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길은, 그의 맞는 시간, 방법, 그것을 행할 수 있는 필요한 도구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그러나 반드시 어째서는 아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속되는 지도와 환경적인 지배,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될 때까지 밀고 나갈 만한 인내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손에 넣으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너희가 오래 참음의 필요가 있으니, 그로 하나님의 뜻을 행한 뒤에[예언의] 약속을 받게 함이다”(히6:12). 인내를 갖고 있는 사람은 결국 약속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심히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함에 있어서 이러한 세 번째 신호들이 있는지도 심지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들의 길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이사야55:9).
간혹,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그의 길보다 결정을 내리기가 더욱 쉬운 경우가 있습니다. 말씀은 성경책을 검토함으로써 결정될 수 잇고, 그 뜻은 개인적인 마음속에 일어나는 원칙과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확인을 받아서 결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매일마다 걸어나가야 하는 어떤 시간적 과정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의 모든 구체적인 사항은 미리 앞서서 계시해 주시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개인 예언이 그 길은 보여 주며 올바른 방향을 결정적인 교차로에서 가리켜 주는 이정표를 제공해 주며 또 다음 회전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를 알려 주는 역할을 일부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나 많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 주시지 않을 때가 있으므로 그래서 그 길은 우리가 그때, 그때 한 부분씩 끼워 맞추어서 하나로 연결시켜 그림을 완성시키는 일과 똑 같은 방법으로 성취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간혹 한 부분 그 자체로는 개별적으로 의미를 나타내지 못하지만 전체 그림을 볼 수 잇도록 완성되었을 때만이 그 중요성을 얻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를 위한 하나님의 길 - 우리는 아브라함과 모세의 생애 속에서 본보기를 이루는 이러한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여호와를 위한 위대한 종족의 아버지가 되며 또 모국이며 본거지가 되는 가나안을 점령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한 구체적인 뜻으로써 말씀으로 전해졌고 또 수 차례의 예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시키는 길은 “그 땅을 종과 횡으로 걸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창13:17). 그의 개인적인 책임이란 그의 일생 동안 계속해서 바라보며 걸어나가며 또 지정해 놓은 경계 점 내에 그가 발을 밟고 가는 곳마다 그와 그의 자손이 유업으로 물려받으리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400년 이후에 여호수아가 땅을 차지하는 하나님의 길은 달랐다.
하나님께서 점령하도록 선택해 놓으셨던 특정한 장소는 가나안이었고, 그러나 그가 종족으로 커지도록 지정해 두신 장소는 애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의 성취가 이루어진 정해 놓은 시간은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히 정복하였고 또 그 땅을 소유하게 된 때로서 4세기가 지난 휠씬 지난 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참음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모리 족속의 죄가 충분히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또 그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알들처럼 되도록 번성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속히 내려왔지만, 그러나 그의 길이 완전히 알려지게 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민족에게는 몇 세기에 관한 예언을 말씀해 주시며, 또 개인들에게는 전 생애에 따른 예언을 말씀해 주십니다,
모세는 이러한 과정의 두 번째 좋은 본보기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3백만이나 되는 선민을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시켜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도록 그에게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은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전해졌고 또 표적과 이적을 확인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을 가는 본래의 여정인 11일의 여로가 아닌 2년의 광야를 통과하는 여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정은 애굽에서의 염병, 홍해를 가르심 그리고 사막에서의 기적과 만나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을 밤에는 불기둥으로 또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바로가 그들을 풀어 놓아 주도록 명령을 내릴 때까지, 또 그 뒤에는 광야에서 또다시 참을성 잇게 견디어야 했습니다. 비록 해방된 노예의 세대가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점령하시기를 바라셨던 특정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결과적으로 인내력을 잃게 되고 죄를 짓고 또 반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와 젊은 세대가 그 대신 예언을 성취시켰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예정표를 연장시켜서 40년의 방향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실 준비가 될 때까지 구름과 불을 따라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목적을 달성시키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요하기를 바라고 계셨습니다.
장막이 그의 처소가 되도록 하는 것과 율법의 조항이 그들을 지켜주며 또 그들과 하나님과 또 서로간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 등입니다. 또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무리를 하나님의 질서로 조작된 12개의 지파로 변모시켰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하신 장막 주위에서 이루어진 변화입니다. 이러한 기간은 전쟁에 대한 적절한 훈련을 쌓는데 충분하여 실제로 원수들과 대결할 기회가 왔을 때, 거인들을 몰아내고 땅을 점령하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믿음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던 것입니다.
☆어떤 공식에 따름이 아니라, 믿음의 흐름에 따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서 그가 대결한 족속들을 각기 정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유별난 길을 알아내야 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여리고는 특별한 길로 점령되어야 했는데 그들이 단순하게 아이 성을 점령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전쟁에 지고 말았습니다. 다윗 역시 전쟁마다 매번 다르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충돌 속으로 모험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길의 파란 신호등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파란 신호’가 실지로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로 주어졌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특정된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역은 때가 제대로 차서 시작되어야 하며 만일 때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게 됩니다. 우리의 태도가 또한 올바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들을 우리가 용서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 우리에게 주시는 구체적인 뜻입니다. 그러나 몇 사람은 쓸데없는 말로 일을 망쳐 버리고 있습니다. “모르고 그랬으니 내 실수를 용서해 주라, 그러면 나도 네 잘못을 눈감아 주지… 그리고 너도 앞으로 그런 바보가 되지 않도록 내가 기도해 주면 되겠지?”
우리의 행위는 또한 하나님의 간혹 있는 특유한 계획을 따라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허다한 경우,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면 실질적이 못됩니다. 즉, 그것은 육의 사람이 행하려고 하는 그러한 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길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걷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육체적인 지식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고 또 예언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길을 구하는 대신에 오히려 어떤 다른 이를 흉내 냄으로써 그 일을 행하려고 시도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경제적인 번영에 관한 개인 예언을 받았으나, 그들이 그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길을 결코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목표를 끝내 성취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길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대로 따라서 행하도록 시작은 했으나, 점점 그들의 옛날 길로 다시 되돌아가서 그들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뜻 위에 부어진 기름부음을 잃게 됩니다.
일단 말씀에 비추어 정식 확인이 되었고, 또 그 뜻이 나타나게 되었으면, 그 길은 잘 알려지게 될 때가지 기다려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의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소서.”(시편27:11)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하심을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셨으나, 그의 길들은 모세에게 알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또 모세와 같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사가 하늘 아래서 이루어지는 시간을 정해 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올바른 길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성도의 노력은 그의 말씀의 권세와 더불어 그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그의 길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모든 3가지 신호등이 파란 불로 켜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하기 위해서 전속력을 다해서 전진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