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2009

영안이 열리는 것


영안이 열리는 것
 
우리는 흔히 영안이 열린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영적인 눈이 열려 신령한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적 세계란 천국을 포함해서 천사들이나 악령들을 환상 가운데 보는 것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의 영적 세계란 신앙 생활 전체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영안이 열린다고 할 때 접촉하거나 볼 수 있는 세계는 현실적으로 누구나 다 경험하는 교회 생활은 제외하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린다고 할 때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것은 영적 실체와의 접촉일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전혀 볼 수 없는 영적 존재를 실제로 보는 것과 흡사한 환상에 빠져 들어가는 상태 즉 임재상태(trance)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강하게 임하면 우리의 의식세계는 전적으로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며 성령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강력한 임재 속에 들어가는 상태를 말하는데, 우리의 의식이 전적으로 성령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일어나면 우리의 의식 밑바닥에 있는 지식과 정보들이 표면으로 나오게 됩니다.이것을 심리학자들은 무의식의 작용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인데, 내면 깊숙이 있는 정보들을 통해서 우리는 실제처럼 느껴지는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를‘비몽사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상태를 자신의 영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임사상태'(臨死狀態) 또는 ‘가사상태’(假死狀態)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임재에 빠지면 당사자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게 되며, 자신이 본 환상을 현실로 착각하게 됩니다.
 
천국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이런 영적 현상이 나타납니다. 환상으로 경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제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깊은 영적 잠김(spiritual sinking)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사용해서 어떤 상황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따라서 천국을 경험하였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평소 알고 있는 천국에 관한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바울이 삼층천에서 경험하였던 것은 실제였다고 믿습니다. 이런 경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경험은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환상이 아니기 때문에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라고 기록했습니다(고후 12:4).바울과 같은 이런 영적 경험은 무척 희귀하며 아마도 바울 한 사람으로 끝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경험하는 낙원에 대한 경험은 대부분이 강력한 임재에 의한 환상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의 영안이 열리면 때로는 스데반처럼 천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구약 시대에 야곱이 광야에서 잠들려고 했을 때 보았던 환상과 흡사한 그런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영안이 열리는 수준은 성령의 임재 정도에 따라서 차이가 생기는데, 강력한 임재로 인해서 쓰러지거나 정신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생기면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순간에 정신을 잃어버리는 강력한 임재는 주로 성령 집회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그러나 개인이 기도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임재에 의한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은 대체로 몸이 나른하게 이완되면서 잠이 들듯이 그렇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는 베드로가 제 9 기도할 때 경험한 것인데, 환상 가운데 큰 광주리를 보게 되었고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런 상태를 베드로는 비몽사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천사가 와서 그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반응하지 못했으며 자신도 큰 길에 이르기까지 마취 상태에 빠진 몽유병 환자처럼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들어왔을 때에야 이 사실이 환상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강력한 임재에 의해서 행동으로 옮겨지는 일은 오늘날에도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중국의 윈 형제의 간증에서도 나타나는 것이지요.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이 한 두 번 나타났는데 천사의 도우심과 그들과의 대화는 마치 꿈을 꾸는 것과 흡사하지만 실제적인 행동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안이 열리는 것 즉 영적 존재들과의 만남은 우리의 노력이나 기대와는 상관이 없으며, 오로지 성령의 주관적인 임재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영적 경험을 기대한다고 해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며, 구한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우연히 그리고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순간에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우리의 영적 수준이나 믿음의 정도와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그에 따른 영적 경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일 것입니다.
바울은 “말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고후 9:15)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안이 열려 영적 실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구분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영적 분별력에 관한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은 은사 가운데 하나로써 영적 전쟁을 위한 무기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이 은사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성도들 가운데 나누어주시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영적 실체를 접촉할 수 있고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단과 마귀의 일은 성경을 바탕으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영분별의 능력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가능한 일입니다. 사단과 마귀가 하는 일은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으며, 그 열매에 관해서도 다양하게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악령들의 일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성경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귀신의 경우에는 영적 분별력을 은사로써 받아야 합니다. 귀신이 들려서 나타나나는 다양한 증상들이 질병에 의해서 나타나는 증상과 동일하기 때문에 지식과 안목으로는 전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하며, 그 분별력은 영안이 열려서 영적 실체를 보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도 역시 영안이 열린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런 영 분별력을 갖추고 있거나, 축사의 능력을 가진 사역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영안을 열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엘리사가 그의 종 게하시의 눈을 열어서 영적 실체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듯이 흔하지는 않지만 타인의 눈을 열어서 영적 실체를 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 볼 때 부흥회사역시 안수하면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영안이 열려서 영적인 존재를 보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몸에 안수할 때 하늘로부터 천사가 임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주변에 천사가 진열되어 있는 환상을 보기도 합니다.
 
때로는 주님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안수해주었다는 고백도 합니다. 치유를 위해서 안수할 경우에 이런 경험을 환자들이 간혹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몸을 어떤 영적 느낌을 느끼는 경우는 많습니다. 안수할 때 진동을 강하게 하거나 뜨거운 열감을 느껴 옷이 흠뻑 젖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신하여 쓰러지기도 하며, 깊은 잠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경우 어떤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역시 영적 임재이며, 영안이 열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적 임재는 눈을 확인할 수 있는 환영을 경험하는 것과 몸으로 무언가를 느끼거나 정서적으로 깊은 위안과 안위를 경험하는 것도 일종의 영안이 열리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보는 것이나 느끼는 것이나 일종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영적 실존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고 해도 마치 보는 것과 같은 강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평안과 위로와 힘을 얻는 등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말할 수 없는 위로와 말할 수 없는 광경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일 것입니다. 우리는 영안이 열려 실존을 보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고, 다만 가슴으로 몸으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할 때 어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자신을 감싸거나 어루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도하는 장소의 분위기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그윽하고 평안하게 느껴지며, 온화하고 밝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음산하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 같고,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영안이 열린 상태 즉 주님의 임재이거나 악령의 출현입니다.
 
이런 영적 실체를 경험하게 하시는 목적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다양한 목적이 있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로 인해서 살아났고, 기도를 통해서 자라나고 있으며 우리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적 존재들이 실존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이 죽은 불신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통되는 목적일 것입니다. 실존하시는 영이신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인 다양한 천사들과 악령들을 영으로 감각하고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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