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2010

기도와 성경공부의 생활화


기도의 향기가 그리스도인을 순결하게 함을 알게 한다. 말씀의 능력이 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원천이 됨을 알게 한다(9:28; 6:17). 각처에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2:8).


기도란, 주 예수의 이름과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14:14).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말씀 공부에 멀어져 감으로 세상과 짝하여 살고 있습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과 날마다 기도의 호흡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1.
기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영적능력을 공급 받는 가장 강력한 무기요, 영혼의호흡이며,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지시 받을 수 있습니다(33:12-13).


기도로써 우리는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고(119:5,10), 영적인 복과(119:25,88) 여호와의 심판을 면하게 되며(32:9-14) 병의 치료함과(5:14-16) 생활의 복을 받게 됩니다(대상4:10).

2. 기도할 때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요?
먼저 기도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이방적인 기도입니다 (6:7).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인간의 정욕적인 기도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6:5). 기도할 때는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겸손하게 구할 것을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24:26; 왕상8:54).

3.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다음 성구를 찾아 읽고 기록해 주시겠습니까?
(1)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1:45).
(2)
은밀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66:18).
(3)
죄악을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59:2).
(4)
의심하기 때문입니다(1:6-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전심전력하여 의로운 기도를 할 때 응답해 주십니다.


4. 기도에는 어떤 유형이 있습니까?
환경과 기도 제목에 따라 기도도 여러 가지 형태로 하게 되는데, 기도에는 조용히 드리는 은밀한 기도(6:6)와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는 합심기도(1:14), 중언부언하지 않는 간결한 기도(5:2)가 있으며, 아브라함의 가족이 드린 가정 기도(12:7)와 대중적인 공중 기도(고전14:14-19). 그리고 특별기도가 있습니다(18:32). 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버림받은 기도(33:20)와 자신을 속이는 위선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전도서 52

기도 종류: 새벽 기도, 잠자기 전 기도, 일어난 후 기도, 식사기도, 구역 예배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 등

5. 성경 말씀은 어떠한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지 않음으로 나약하고 무질서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연구할 때 복음의 능력을 덧입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1)
성경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2)
어린아이 같은 믿음과 겸손함으로 읽으십시오.
(3)
복종과 자기 적용의 자세를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4)
날마다 차례차례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은 후에는 영적인 가르침이 무엇이며, 나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그날의 삶이 승리하는 힘을 얻게 되며(6:12), 찬양과 고백, 감사와 간구가 넘치게 됩니다.


기도할 때 어려운 점이 무엇일까요?
      (11:25; 1:6-7, 4:3)
하나님이 응답하는 기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6:39;   11:25; 15:7)
성경 말씀을 공부하면 어떤 삶을 살수 있습니까?
   (119:9; 20:24; 딤후3:15; 6:16)


할렐루야! 영적으로 성장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삽시다!



기도 제목의 입수와 내용



1. 개인 교제와 생활을 통해
상대방을 위해 무슨 내용으로 기도할 것인가?’ 하는 의문은 일상 생활에서 그와의 대화나 교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 상대방이 곤란 가운데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기도해 주어야 겠다고 느낄 때
* 상대방이 접근하여 자신의 어려움을 나누고 기도를 요청할 때
*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접근하여 대화 나누는 도중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어려움에 기초하여
* 사람들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왔거나 개인 기도 중 퍼뜩 떠오르며 
    기도해 주어야겠다고 느낀 때
* 내가 현재 고민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으로

2. 성경 본문을 활용하여 1:17-19; 1;9-11; 1:9-12
(“너희대신 기도해 주는 대상의 이름을 대입)

3. 기본적인 간구 내용으로써
상대방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에,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기를, 언행심사에서 좀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를,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다.

4. 모임, ,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한 개인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어떤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전체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있고 기도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교회의 사역자들, 교회 전체, 자신의 친척들, 선교 단체, 정부, 해외 선교부, 캠퍼스의 소그룹 활동, 재정 후원 등이 그것이다.

5. 공식적 기도 카드 가지고
어떤 모임이나 개인의 기도 제목을 적어 놓은(인쇄된) 기도 카드는 체계적인 중보 기도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기도의 두 측면


하나님과 사적으로 만나는 매일의 골방 기도- 즉 경건의 시간의 기도-는 다른 모든 경우의 기도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골방에 들어가 아버지께 은밀히 기도할 때 무엇이 그 내용이어야 하는가? 또 폭을 넓혀 우리의 기도가 기도다워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나?

1. 교제의 측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깊이 알고 사귀며,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할 뿐아니라 그 분의 뜻을 분별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할 바이다. 이것은 사실 기도의 한 측면이라기보다 기도의 기초가 된다렘14:7-9.

2. 간구의 측면
이것은 하나님의 공금과 채워 주심을 기대하며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아뢰는 일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도하는 자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및 교제를 바탕에 두어야 한다(37:4). 물론 이 두 가지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참조 시27:4-5), 모든 기도의 바탕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및 교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무엇을 기도하느냐?’ 이전에 누구에게 기도하느냐?’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기도의 네 가지 요소
사모: adoration 18:1-2, 29:1-2, 33:1-3, 34:1-3
사모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 짙은 찬탄을 표현하고, 하나님이 모든 권세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라는 것을 시인하는 일이다.

사모하는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1)기분에 관계 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는 신체적 자세로써 사모한다.

2)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어느 하나-그 지혜, 능력, 거룩, 아름다움, 선하심 등-를 묵상하거나 깊이 상고한 뒤 그것을 말이나 찬양으로 바꾸면 된다.

3)타인의 힘을 빌어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시편의 기도나 찬송가 가사, 경건의 글 등을 읽음으로써 이다

고백: confession 32:1, 5, 51:1-3, 14;20
고백한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하여,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낱낱이 아뢰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과 우리의 죄를 보는 일이다
1)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마음을 탐색하는 자기 성찰로써 시작한다.

2)그 잘못한 바(할 것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를 구체적이고 단호하게 말하는 자백의 과정이다

3)회개를 통해 그 잘못한 바를 용서받는 일이다. 이 때, 용서받는 근거는 우리 자신의 기분이나 회개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의와 신실함에 달려 있다(11:9)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감사: thanksgiving 95:1-2, 100:4-5, 105:1-2, 106:1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나 남에게 베푸신 은택과 복을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감사는 첫째 요소인 사모와 긴밀하게 관련된다. 단지 사모는 하나님 자신과 관련되고,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바와 관련된다. 우리에게 최소한 5가지의 감사 내용이 있다.

1) 선하시고 사랑이시고 위대하시며 진리이신 하나님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 만물 때문이다.

3) 나님께서 우리를 정치적 · 영적 속박에서 풀어 내어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

4)  매일의 삶 가운데 의미를 부여하시고 크고 작은 일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 때문이다.

5)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 인간들과 사귀고 만날 수 있게 된것 때문에 감사하게 된다.

간구: supplication 4:1, 7:1, 16:1, 31:1-2
간구는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시인한 채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께서 긍휼 가운데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십사 겸손히 아뢰는 일이다(4:16).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꺼림이 없는 한, 모든 것을 기도로 할 수 있다.

간구의 기도 가운데 특히 남과 남의 필요에 대해 기도하는 것을 중보기도(Intercession)라고 한다. 간구의 기도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15:7, 14:14; 11;24; 11:5-10; 11:25.

기도: 통찰력 있는 제안 사항


1.  기도의 어려움
골방 기도는 극적인 기도 응답과 시간의 길이에 그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꾸준한 지속성에 있다. 이런 꾸준한 기도 생활은 종종 우리 육신의 연약함 및 사단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인 기도 생활에 있어서도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6:12).

2.  기도 · 말씀 · 사색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 것으로부터, 또 우리의 삶에 대한 심원한 사색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경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의 경험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성경 공부와 기도는 상호 보충적이다. 성경 공부가 의미 있고 효과적이려면 기도하는 자세 가운데 되어야 하고, 기도가 참되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성경에 계시한 바에 의해 형성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개인 기도는 성경과 병행해야 하며, 성경을 공부하는 중간 중간에 멈추어 서서 하나님을 올려다 보는 일이 요구된다. 그러는 과정에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 꼭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며, 언어 없이 하나님께 우리 심중이 그대로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이러한 사색이 종종 허탄한 공상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색적인 기도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떤 일이나 사람, 혹은 상황에 대해서 상상하는 내용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올리는 식의 기도 역시 중요하다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소리 내어, 사색하며, 상상력을 동원해 기도하게 된다.

3.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법
기도는 일방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는 것뿐 아니라, 그 분이 우리 심령에 말씀하시기도 하는 쌍방통행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가? 물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방법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색, 순간적인 통찰력, 어떤 생각, 혹은 충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우리에게 암시를 주실지도 모르며, 근심을 가라앉히는 가운데 말씀하실 수도 있다. 또한 일련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정리하실지도 모르며, 그 분 자신의 임재와 가치를 우리가 느끼도록 하실지도 모른다. 또는 성경에서 약속하신 말씀들을 우리 마음에 떠오르게 하실 수도 있다. 우리가 말만 전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열망이 있을 때 분명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4. 골방의 의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한다면 반드시 우리는 골방 기도를 터득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무에게도,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기도의 장소가 필요하다. 절대로 자신의 기도 생활을 남에게 은근히 과사히거나 간접적으로 알리려는 시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의식에도 빠지지 말고, 자기 자아에 대해서까지 골방 문을 닫아 덜 수 있어야 한다.

5. 찬송가의 활용
가끔 기도하기도 싫고 메마를 때, 찾아보지 않고도 가사와 곡조를 외울 수 있는 훌륭한 찬송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기도 응답의 비밀


10:1-17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합니다. 아마도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러한 기도가 모두 응답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진실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를 즐겨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다니엘이 보았던 이상에 관한 기록입니다. 다니엘에게 찾아온 천사 미가엘은 다니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때문에 이렇게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다니엘의 기도는 모든 신앙인들이 선호하고 있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본문 12절을 통해서 다니엘의 기도가 어떻게 해서 응답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다니엘은 깨닫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1) 다니엘의 고민 - 천사 미가엘이 다니엘에게 한 말은 '네가 깨달으려 하여'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무엇을 깨닫기를 소원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잘먹고 잘살게 될까를 고민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용모를 갖게 될까를 고민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그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아름다운 용모를 소원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고민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2) 성령의 인도하심 - 다니엘의 기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로마서 기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좀처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고 하면, 성령께서 우리들을 그분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인 것입니다.

2.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1) 겸손의 기도- 천사 미가엘은 다니엘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겸손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모두 버리고 오직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결코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이 움직여지기를 바랐습니다. 다니엘이 이러한 자세를 갖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응답 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지성이면 감천 - 우리가 기도할 때 자주 범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말이 우리 성도들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고민도 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어떤 작정 기도를 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에는 "내가 이만큼 떼를 쓰는데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겠지"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에 우리가 떼를 쓰는 것은 겸손한 자의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오만무도한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려고 노력하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3. 다니엘은 꾸준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1) 꾸준히 들으신 하나님 - 천사 미가엘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다니엘이 겸손한 기도를 드리겠다고 결심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본문에는 지금까지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말의 진행상 첫날부터 지금까지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맹세한 것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겸비한 자세로 겸손한 기도를 하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꾸준한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꾸준함 때문에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꾸준히 들으신 것입니다.

2) 작심삼일의 기도 -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결심하면 3일을 넘기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기도는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영원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기도의 모습을 보면 꾸준히 기도하는 모습은 보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각 교회마다 하는 '특별' 기도회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특별 기도회라는 용어를 많이 씁니다. 이 말이 어떤 면에서는 한 주제에 관하여 특정한 날을 택하여 기도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부정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간이 지나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의 기도를 보십시오. 그는 결심한 이후 꾸준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미가엘 천사는 다니엘의 기도로 인하여 자신이 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소원이 바탕이 된 기도였고,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겸손의 기도였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계속해서 듣고 계실 만한 꾸준한 기도였습니다. 기도 응답의 비밀이 여기 있었습니다.

중보기도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남을 위해서 계획성 있게 체계적으로 기도하는 일이다. 자기만을 위해 기도하는데 너무 열중해 있어 기도로 주위 사람을 돕지 못한다면, 긴 안목에서 볼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간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중보자이셨고눅22:32; 17, 지금도 중보자이신롬8:34; 히 7;25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고 있다는 표시이다.

☆ 중보 기도를 하는 이유
1.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기도하시는가? 22:32; 17:9, 20
이 중보 기도에는 누구까지 포함되어 있는가? 8:34; 7:25
예수님이 지상 사역 때뿐 아니라 승천 이후에도 계속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를 위한 중보기도

2.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범
아브라함 18:22-33
모세 32:11-14
다니엘 9:16-19
예레미야 5:1-22
바울 1:15-16; 1:3-4; 1:3; 딤후1:3; 1:4
에바브라 4:12

3. 성경의 명령 고후1:9; 6:18-19; 4:3; 딤전2:1-2

4. 사랑의 구체적 실천 -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길 가운데에는 반드시 그들의 위한 기도가 제일 먼저 포함된다(17).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5:44)의 실천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를 위해서도 기도한(23:34) 것이다. 사랑하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마련이다.

5. 지체 간의 성숙 - 그리스도인은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개인주의적으로 자라지 않는다. 따라서 남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성숙시키실 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남을 위해 기도한 당사자도 성숙하게 된다.

☆ 기도 제목의 입수와 내용
1. 개인 교제와 생활을 통해 - 상대방을 위해 무슨 내용으로 기도할 것인가?’ 하는 의문은 일상 생활에서 그와의 대화나 교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 상대방이 곤란 가운데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기도해 주어야 겠다고 느낄 때
* 상대방이 접근하여 자신의 어려움을 나누고 기도를 요청할 때
*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접근하여 대화 나누는 도중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어려움에 기초하여
* 사람들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왔거나 개인 기도 중 퍼뜩 떠오르며 기도해 주어야겠다고 느낀 때
* 내가 현재 고민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으로

2. 성경 본문을 활용하여1:17-19; 1;9-11; 1:9-12
(“너희대신 기도해 주는 대상의 이름을 대입)


3. 기본적인 간구 내용으로써 - 상대방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에,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기를, 언행심사에서 좀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를,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다.

4. 모임, ,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 한 개인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어떤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전체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교회의 사역자들, 교회 전체, 자신의 친척들, 선교 단체, 정부, 해외 선교부, 캠퍼스의 소그룹 활동, 재정 후원 등이 그것이다.

5. 공식적 기도 카드 가지고 - 어떤 모임이나 개인의 기도 제목을 적어 놓은(인쇄된) 기도 카드는 체계적인 중보 기도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기도 시의 전후 과정
1. 기본 원칙 - 중보 기도는 즉흥적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기도 제목을 적어 놓고 일정 기간에 걸쳐 꾸준하고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또 기도 제목은 두리뭉실하지 않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뿐만 아리나 비록 기도하는 대상에 대해 우리의 기대하는 바가 있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더 이루어지기를 열망(longing 바라는)하는 자세로서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에 뿌리를 박고 있다면 우리는 실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2. 사전 준비 - 그냥 기도 제목을 외워서 하거나 비정기적으로 뒤죽박죽 하지 말고 미리 상대방의 기도 제목을 적은 종이 혹은 기도 카드를 준비하는 것도 좋다. 또 자신의 경건의 시간 노트에 매일 기도하는 사람의 이름과 제목을 간단히 적어 놓을 수도 있다.

3. 빈도와 기한 - 우리가 어떤 이를 위해 기도하려고 하면 얼마나 자주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좋다. 물론 불법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보통 매일 기도하는 사람과 매주 한 번 기도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매일 기도할 대상으로는 가족, 동역자, 불신 친구, 특별 기한까지 매일 기도해야 할 것을 들 수 있다. 매주 기도하는 것으로는 목회자의 설교, 교회에서 파송한 해외 선교사, 집회 등등

4. 응답의 검토 - 기도한 대상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알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며, 그 대상과 나 자신에게 즐거움이 된다. 대 상을 만나 대화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직·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 만나기 어려운 대상이면 전화나 편지로써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때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도중에 그 일이 응답된 것을 깨닫는 경우도 많다. 응답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즉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한다. 

보충적 제안
1. 중보 기도의 생활화 - 우리는 매일의 골방 기도 시에도 중보 기도하지만, 이 범위를 좀더 확대해서 하루의 여러 순간과 생활 전영역을 중보 기도의 내용에 담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개인의 끔찍한 소식이나 전혀 예상치 않은 어려움에 대해 들었을 때, 듣는 순간 그를(어떤 개인)위해 기도 할 수 있다. 누가 기도 부탁을 할 경우, 그 기도 제목을 듣는 그 동안에 속으로 하나님께 그 문제를 의탁할 수 있다. 또 계속 기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반드시 자신의 중보 기도 제목에 올려 좋아야 한다. 그 이외에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사회·정치적 문제, 전쟁, 재난 등을 목격하게 될 때 그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일도 중보사역의 중요한 일면이다.

2. 생각과 중보 기도 -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즉시 기도를 시작하지 말라. 그에 대해서-그의 현환경과 궁핍점에 대해서- 몇 초 간이라도 생각한 뒤, 그를 하나님의 존전으로 데리고 가라.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 물론 너무 그에 대한 생각이 강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공상으로 치달아서도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의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그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때; 네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어떨까? 내가 가진 괴로움과 고민을 그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등의 감정이입도 도움이 될 것이다.

3. 중보 기도와 사랑의 의사 소통 - 내가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을까? 만일 상대방을 강압해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거나, 은근히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알린다면 잘못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격려하고 상호 간의 교제와 사랑의 증진을 위해서는 좋다고 하겠다(2:2;1:15-19;1:9-11).

4. 선교 사역에의 참여 - 우리의 중보 기도 가운데에는 반드시 교회의 사역자, 선교 단체의 지도자 해외 선교사가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위한 기도를 통해 그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셈이다. 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힘쓰는 악한 세력(6:12)의 전략적 초점은 분명 사역자들을 향할 것이다. 이러한 영적 전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중보 기도는 가장 필수적인 영적 공급인 것이다.

골방기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각도에서 기도 생활을 강조하고 여러 형태의 기도(철야 기도, 금식 기도, 공기도, 합심 기도, 통성 기도 등…)를 이야기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기도 생활은 매일 말씀을 연구하며 골방에서 아버지를 뵈옵는마6:6그 은밀한 사적개인적 교제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기도 생활에 대한 우리의 강조가 매일 일정한 시간을 따로 떼어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고,즐거워하고,깊이 알고 사귀는 것에서 이탈한다면,그 이외의 모든 기도 행위는 형식적 종교 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심히 왜곡시키고 말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토록 중요한 사적 기도에 대해 식견도 갖고 또 실제로 매일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매우 적은 수에 지나지 않는다.

골방 기도를 못하는 이유 - 무엇 때문에 기도에 대한 강조는 많은데 개인적인 기도 생활은 매일의 삶 가운데 자리잡지 못하는가?

1. 기도의 본질에 대한 오해
성경에는 구하라찾으라문을 두드리라…”7:7는 권면도 있고 강청의 태도를 격려하는 비유눅11:5-8; 18:2-8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간구는 반드시 관계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상대방이 누구인지 아는 맥락 가운데에서 간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살 깊은 교제를 열망하지 않는 간구는 흔히 기독교의 이름을 방자한 자아 중심적 기복 행위로 전락하기 쉬다.

2. 하나님의 지식의 결여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면, 살아 계셔서 나의 말을 들으실 뿐 아니라 나와 사귈 수 있는 인격적인 분으로 경험하지 못하면, 한 사람의 은밀한 사적 기도는 하나의 부담이 된다.

3. 그릇된 기도의 본
참된 기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모임 가운데에서 행해지는 기도의 양상이(사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모임을 통해 기도를 배우게 되는데 옳지 않기 때문이다.

4. 체계적 가르침의 부재                                                
개인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나 훈련 및 교육의 부재. 기도는 많이 강조되는데 이상스럽게도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실제적인 가르침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겸손히 머무를 수 있는지,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를 갖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 따른 어려움과 해결책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배우고 가르치는 풍토가 오늘의 그리스도인 모임에 시급하다 하겠다.

기도의 행진을 하라


성경에는 성령의 영감을 따라 성()이며 지역을 행진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 되어 있다. 이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성과 지역 전체를 구속(九贖)하고 회복하시기 위해 개입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물론 그 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내 백성이 지식이(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어 망하는 도다”(호세아4:6)

기도의 행진을 했던 성경의 인물
일찍이 기도의 행진을 시작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예언적 중보기도에서 기도의 행진이 갖는 가치와 그 성경적 기초를 계속해서 깨닫게 해주셨다. 성경에는 성령의 영감을 따라 성이여 지역을 행진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성과 지역 전체를 구속하고 회복하기 위해 개입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물론, 그 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 아브라함 -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기도의 행진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받을 기업을 보여주고 싶으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둘러보며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3:14-17).

아브라함은 예언적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자기 세대에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할지라도 그의 후손이 그 땅을 물려받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걸으며 그 약속이 성취되리라는 믿음을 더욱 강하게 가졌다.
       
중보기도할 때, 그의 믿음은 놀라운 영적 도약을 이루는 열쇠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기 이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구원은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즉 십자가에서 완성된 일을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2:8,9).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2:38,39). 치유와 해방도 믿음의 결과이다. 우리가 약속을 받는 것도 바로 믿음을 통해서다. 따라서 기도의 행진을 할 때, 믿음이 충만한 기도를 드리면서 걷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12).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행진할 때, 그의 후손들을 넘치게 더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아들 이삭이 태어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으며, 후손이 많아진 것은 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히 이뤄지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기도의 행진이라는 말은 중보기도의 특별한 역할을 규정하는 하나의 표현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최근 도시 전체에 흘러 넘치는 중보기도의 물결을 묘사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하는 기도는 이미 잘 알려진 기도의 형태와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을 보니 중보기도와 관련한 어휘에 기도의 행진’(prayerwalking) 이라는 말을 첨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기도의 행진을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현장에서 하는 기도로 정의하려 한다 스티브 호슨과 그래함 켄드릭의 설명.

2. 여호수아 - 성경에 나타나는 또 한 사람의 기도의 행진가는 여호수아이다. 그는 가나안 땅의 문제뿐 아니라 그곳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 땅을 행진했다(정탐했다). 기도에도 지식(정보)은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좀더 정확하게 기도할 수 있다. 전쟁을 하기 전, 군인들은 정보를 수집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때때로 우리는 중보기도자로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영적 전투에 뛰어들기도 한다. 기도에 결과과 없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지식 없는 기도가 그 하나다. 우리의 기도가 진실하다고 해도 정작 어떻게, 어떤 내용을 놓고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도한다면 ... 그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여호수아는 먼저 가나안 땅을 정탐하여 지식을 얻었다.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 40년 전,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열명의 지도자들이 그 땅을 정탐하러 갔다. 땅을 둘러보고 돌아온 이들은 모세에게 자신들이 본 것을 보고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어떻게 받을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일은 그 땅을 정복할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비극은 열두 명의 정탐꾼 가운데 단 둘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데서 생긴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한 나라가 그 기업을 받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에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는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14:6-9).

두려움은 무서운 적이다.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을 받지 못하게 한다. 중보기도를 할 때 두려움을 물리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싸움(전쟁)에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라.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길 것이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 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그들을 두려워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그와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행하실 것이요” (7:17-19).
       
열 두명의 정탐꾼 가운데 열 명은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다. 그들은 두려움을 주는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믿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보를 얻고 용기 있게 행진한 결과 약속의 땅을 받았다.

3. 느헤미야 - 기도의 행진은 기도하는 사람과 그 기도의 대상을 하나 되게 한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둘러본 것은 지식(정보)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과 일체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페르샤(바사)의 수산 궁에서 왕의 술을 맡은 관원이었다. 그는 비록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처한 상황을 듣자 가슴을 치며 애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얻어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는 성을 둘러보며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꼼꼼히 살폈다. 느헤미야의 가슴은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치욕을 씻는 것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2:17,18)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둘러보고 그곳 거민들과 일체감을 가지고 기도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은 회복되었고 원수들은 도망쳤다. 우리 어떤 지역에서 기도의 행진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곳 사람들과 하나 되어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느끼도록 도우실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있던 곳
사도 행전에 언급된 아시아는 지금의 터키 지역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안디옥, 지금의 안타키아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모두 터키에 위치해 있다. 바울 서신 가운데 다수는 터키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였다. 이런 신앙의 전통을 가진 땅이지만, 지금 터키 인구의 99%는 모슬렘이고 크리스천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무엘 하14:14절은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 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터키에서 복음의 생명을 빼앗지 않으신다. 원수가 그 생명을 훔쳤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어 쫓긴 자들이 그분에게로 돌아 올 길을 내고 계신다.